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ep60. 명계왕 (4)
후드드득.
이 일대에 모래의 비가 내렸다. 퍼져 나가는 먼지에 숨이 막혀 왔지만, 연맹의 간부 세 명은 모두 그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이제까지 눈앞에 떠 있었던 화면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명계를 엿보는 건 불가능했지만, 더 이상 명계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상황이 그 모든 관심도를 일시에 끌어모았으니까.
“어, 어쩌지? 어떻게 하지?”
이제는 완전히 판단력을 잃어버린 아멜리아는 그 녹색 눈동자를 정처 없이 흔들며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올리버는 아멜리아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 처음 보았다. 데미이블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고, 그걸 숨기느라 활기찬 척을 하는 줄 알았다. 그게 올리버가 판단한 아멜리아의 진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조금은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아멜리아 역시 탐험가 연맹의 일원. 불가사의하고 거대한 현상이나 존재를 바라보며 심장이 뛸 줄 아는 모험가였다.
올리버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엘리엇은 품속에서 작은 천을 꺼낸 뒤 코와 입을 단단히 막았다. 먼지와 독소를 걸러 주는 향료에 적셔 둔 연맹식 방독면이었다.
올리버는 그제야 자신 역시 아멜리아처럼 멍하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상식을 벗어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기에, 그들의 판단력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엘리엇만이 평정심을 유지한 채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귀인과 그 옆 꼬마애의 상태부터 확인하지. 올리버.”
“네.”
“지금 당장 연맹으로 돌아가서 응급처치 도구를 싹 다 긁어 오게. 나도 수틀리면 귀인을 업고 연맹 쪽으로 가고 있겠네. 중간에서 만날 수 있도록 길을 벗어나지 마.”
“알겠습니다.”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어 버린 엘리엇의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시가 끝나자마자 올리버는 뒤로 돌아 달려 나갔다.
“아멜리아. 나랑 같이 가자.”
“네!”
엘리엇은 짧은 다리를 빠르게 놀려 모래 먼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강선후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높이 떠오를 때부터 그 위치를 특정하기 쉬웠으니까.
“으윽…….”
뱀파이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리버는 모래 먼지를 헤치며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모래에 반쯤 파묻힌 그 뱀파이어를 만날 수 있었다.
“진짜 미쳤어. 다 미쳤어…….”
뱀파이어가 왜 이렇게 중얼거리는지는 명계에서부터 이 상황을 봐 왔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 괜찮소?”
“엘리엇? 저는 괜찮은데, 잠깐만…… 읏.”
뱀파이어가 몸을 일으켜 강선후의 상태를 살폈다. 강선후는 솟아올랐다가 같이 떨어진 모래에 반쯤 파묻혀 있었는데, 그 주변의 모래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 냄새는 익숙한 것이었다.
“……피.”
리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강선후의 몸에 난 수많은 상처. 그중에서 두 개의 구멍은 완전한 관통상. 중상이었다. 명계와 이승의 법칙이 서로 다르다는 게 증명되었다. 현세로 올라온 강선후의 상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출혈을 부틸 수 있을까? 리리는 여전히 자신의 날개가 여전히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금지된 뱀파이어의 혈술. 남들 앞에서 이 모습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치욕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
“한 번만 더…….”
치욕 이전에 혈술의 부하를 몸이 견딜 수 있을지 더 걱정되었다. 리리는 손을 강선후의 상처에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왁—!”
강선후가 눈을 번쩍 뜨며 소리 질렀다. 순간 거의 정신을 잃을 뻔한 리리는 어느새 자신이 뒤로 넘어간 채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강선후는 리리의 얼굴을 보며 낄낄 웃었다. 리리는 거의 영혼이 가출한 듯한 표정을 하다가 점점 미간을 찌푸리더니 도끼눈으로 바뀌었다.
“……당신.”
“많이 놀랐냐?”
“……됐어. 문제 없으면 차라리 다행이지.”
이제는 체념한 듯, 리리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강선후도 상처를 감싸안은 채 천천히 모래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상처는 큰 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저 참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강선후는 몸을 일으키며 엘리엇과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죠? 아닌가?”
“반나절만이오.”
“내가 정신을 잃었어서. 시간 개념이 좀 없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문제 생긴 건 아니죠? 살짝 걱정이네. 아마 좀 커다란 게 나랑 같이 올라왔을 거라서.”
“다행히 여기는 아무도 없는 숲이요. 숲은 좀 다쳤겠지만…… 큰 문제는 아닐 거요.”
“그럼 다행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명계왕의 뿔이 있는 곳이었다. 리리도 날개를 최대한 접으며 그 뒤를 따라갔고, 아멜리아와 엘리엇은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따라나섰다.
그들이 걷는 사이에 모래 먼지는 조금씩 희미해졌고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곡선을 그리는 거대한 뿔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높이만 해도 솔라의 방벽을 넘볼 수 있을 법한 크기. 웬만한 저택과 같은 규모였다.
그 거대한 구조물이 솟아오른 여파로 주변 지형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발이 닿는 데마다 땅이 푹푹 꺼지고 무너져 걷기조차 위험해 보였다.
강선후는 뿔의 지척까지 다가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크긴 크네.”
“이걸로 뭘 할 생각이에요?”
“이게 뭔지는 알죠?”
엘리엇과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확자의 눈을 통해서 모든 일을 다 봤기에 이게 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명계왕의 뿔에 다가갔다. 회백색의 뿔은 그 자체로 명계왕의 기운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문뜩 거대한 존재의 위엄이 느껴져 두려워졌다.
“……명계왕의 뿔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승리.”
강선후는 그렇게 말했다. 모두가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과거, 한 인간이 명계왕에게서 승리했다는 증거.
강선후가 명계로 간 이유는, 데미이블을 죽이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 증거를 얻기 위함도 있었다.
대체 왜 그 증거가 필요했는가?
그 의문에 대해서, 강선후가 대답을 내놓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가 된 계기가 명계왕에게서 승리한 그 순간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렇게 말하며 리리를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웃고 있었다. 리리는 그가 한 말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포식자의 상…….”
“그래.”
열두 지배자.
그중 하나인 포식자의 상. 역사 속에서도 가장 의문으로 남아 있는 지배자의 영혼.
강선후는 다른 차원의 사람인 자신이, 이 세계에서 특별한 존재가 된 이유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 봤었다.
그리고 그가 내린 답이 이거였다.
내가 이 세계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사건.
더 나아가, 특별한 존재로서 역사 위에 군림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그만한 격을 가진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별이 된 자들이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존중 받은 끝에 성좌가 된 것처럼.
그리고 그런 격을 가진 이야기라면.
“명계에서의 승리.”
최초의 부활자라는 칭호.
그게 이유가 될 것이다.
강선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뿔은 내게 어떤 의미가 될까?”
여기서부턴 직관이었다.
그리고 리리는 강선후의 직관이 틀린 적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의 연속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강선후는 황금의 시대를 이해하고 유일한 현대인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법칙 역시 무의식 깊은 곳에 학습되어 있으리라.
강선후는 명계왕의 뿔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명계왕의 뿔이 희미한 황금색 광채를 발하기 시작했다.
아멜리아는 그걸 바라보며 말했다.
“……제 본가에 보관되어 있었던 명계왕의 뿔은 손에 쥘 수 있는 크기였어요. 이렇게 크지 않았었다고요.”
뭐가 그 차이를 만든 걸까?
뭐가 이토록이나 거대한 명계왕의 뿔을 손바닥 크기로 줄여 버린 걸까?
그 순간을 아멜리아는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곧 황금 광채로 완전히 둘러싸인 명계왕의 뿔은 점점 작아졌다. 계속해서 작아지며, 곧 손에 쥘 수 있는 크기가 되었다.
그리고 광채가 사라졌다. 소의 뿔과 흡사하게 생겼지만 오묘한 곡선을 그린 그것은 뿔이라기보단 송곳니에 가까운 생김새였다.
그 표면에는 황금 자수가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고, 부러진 부분에는 자홍빛의 구슬이 박혀 있었다.
아멜리아가 어린 시절 보았던 보물과 완전히 같은 모양이었다.
리리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바라보았다. 리리 역시 지배자의 혼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물건이 강선후의 영혼과 완벽히 일치하여 공명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이 물건의 정체성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황금의…… 유물.”
열두 지배자와 대응하는 보물. 황금의 유물.
그 여덟 번째.
『포식자의 송곳니』
“……황금의 유물은 왕이 만들어 남긴 게 아니었나?”
크게 뜬 눈으로 올려다보던 엘리엇은 자신이 알고 있던 역사가 완전히 잘못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눈앞의 이 남자가, 포식자가 완전히 법칙의 예외 사항일 뿐일지도 몰랐다.
왕이 지배자에게 하사했다는 유물.
그중 포식자는 왕이 하사한 게 아니었다.
평범한 한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었다.
유일하게 역사 속에서도 남아 있지 않았던 의문의 지배자.
포식자의 정체는 왕에게 의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벽에 부딪혔던 평범한 인간이었다.
한동안 이들은 뿔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마 아무런 일도 없었다면, 두 개의 태양이 모두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모두가 이렇게 서 있었을지도 몰랐다.
“…….”
풀썩—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뱀파이어가 눈을 뒤집으며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강선후는 그녀를 업었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엘리엇과 아멜리아는 신속하게 그들을 연맹 저택으로 인도했다. 중간에 올리버를 만났고, 리리가 왜 이런 상황인지 그가 알고 있었다.
“뱀파이어의 금술은 이성을 갉아먹는다고 들었습니다. 과거 뱀파이어란 종족은 이성이 없는 동물과도 같은 종족이었으니. 아마, 정신이 한계에 달한 듯합니다.”
“심각한 건가요?”
“아뇨. 며칠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 뒤 느낄 죄책감은 이 자가 견뎌야 할 몫이겠지만.”
침대에 누워 있는 리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박쥐 날개가 침대 옆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리리가 쉬고 있는 사이, 넷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다. 명계에서 있었던 일들은 모두가 쉬쉬했다. 뒤풀이용 잡담으로 다루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죽은 후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산 자들에게 원초적인 공포를 심어 주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스텔라리움은 남쪽 끝에 있소.”
엘리엇은 미뤄 둔 보답을 먼저 꺼냈다.
“모든 별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보관된, 별들의 도서관.”
“남쪽에 있다는 거죠?”
엘리엇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으로 쭉 가면…… 최초의 기록관 안토니오의 무덤이 있다고 들었소. 그 무덤이 스텔라리움으로 가는 이정표가 된다. 연맹 내에는 그런 전설이 있소.”
“더 알아봐야겠네요.”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귀인을 돕겠습니다.”
올리버의 말에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선 그 전에 들려야 할 곳이 있는데요.”
“어디입니까?”
“리리의 저택. 거기로 돌아가기로 약속했어요.”
리리의 저택. 그 지하에 있는 공간.
서지아가 리리에게 건넨 황동 열쇠는 그 지하실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했다.
그곳에 뭔가 중요한 게 있다는 말이었다. 아마도 황금의 유물이지 않을까? 강선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리리도 너무 어렸을 때 집을 나와서 거기가 어딘지는 잘 모른다고 하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나오겠죠? 귀족의 저택인데 누군가 위치를 알겠지.”
“변방의 로얄 블러드는 은둔자들입니다. 특히 신카는 인도자의 상을 타고난 가문이기에, 여러 단체의 표적이 되었고, 그렇기에 더욱 숨어 들어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올리버의 말에 강선후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막연한 목표를 추적하는 데에는 이제 익숙한 탓이었다. 갑자기 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어 버린 불사조. 얼어 버린 숲.”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는 리리가 서 있었다. 문틀에 기대 있는 걸로 보아 여전히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했다. 날개도 여전히 돋아나 있었다. 숨이 거친 듯 어깨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우리 저택 주변에 있었던 전설이었어요.”
“전설이라.”
“우리 저택의 위치는 찾지 못해도, 전설의 위치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잖아요?”
리리는 그렇게 말하며 조소를 보냈다. 지긋지긋하다는 미소였다.
“당신들은 탐험가니까. 그리고 당신도.”
엘리엇과 올리버는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올리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소리 내서 웃는 건 강선후가 유일했다.
“불사조라. 그래. 그렇구만.”
엘리엇이 말했다.
“내가 아는 이야기구만!”
신난 듯한 목소리였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