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ep61. 신카의 구성원 (1)
다음 날 아침.
나는 잠시 저택의 뒷마당에 나와 있었다. 내가 룬을 실험하면서 생긴 구덩이들이 매워져 있었다. 잘 정돈된 잔디 사이사이 동그랗게 생긴 흙구덩이를 보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다들 고생 많이 했겠는데.”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뜩, 해가 뜨는 시간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첫 번째 태양과 두 번째 태양의 간격이 길어져서 이제는 점심 때쯤 되어야 두 번째 태양이 뜨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계에도 계절이 있었지. 우리 세상처럼 규칙성이 보이지 않아서 과거 조난 시절에도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계절 대비를 하지 않으면 물론 목숨이 위험하지만, 뭐 예측이 되어야 대비를 하든가 말든가 하지.
“으음…….”
움직이는 게 불편해서 습관적으로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다.
가슴과 오른손에는 붕대가 단단하게 감겨 있었다. 뼈가 부러지고 나서 이상하게 붙어 있었다던가? 연맹이 부른 의사는 내 상처가 인간의 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회복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난감한 기색을 표했었다.
‘명계에서 악마를 사용하시면서 신체 역시 이상 반응을 보인 게 아닐까요?’
아멜리아의 추측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관통당하는 상처를 두 번이나 입고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선악과의 악마 덕분이었다.
그 녀석을 무기로 사용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끊임 없이 울려 퍼지던 목소리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받아들여.’
녀석은 내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해 몸부림을 치면서도 날 유혹하기 위해 끊임 없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너무나 달콤했다. 위험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명계가 아니라 이승에서 그것을 사용했다면…… 솔직히 이렇게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갈 자신이 없었다. 다음에는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악마를 사용한 기분은 어땠나요?”
고개를 돌려보니, 아멜리아가 뒷문을 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안 좋아요. 엿볼 생각 절대 하지 마요. 다음부터는 나도 쓸 일 없게 할 거고.”
“필멸자를 초월한 힘이란 건 유혹적이지 않던가요?”
“전혀. 끔찍하기만 해요. 써야 해서 썼을 뿐이지.”
“……그 유혹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귀인 말고는 없을 거예요. 자요.”
아멜리아가 건넨 잔 안에는 뭔지 모를 따뜻한 음료가 담겨 있었다. 향을 맡아 보니 무슨 차 종류인 거 같은데. 어떤 식물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가시나무 잎을 그 수액에 절여서 숙성시키고, 말려서 만드는 약용 차예요.”
“약용?”
“활력을 돌게 하고 잠을 몰아내는 성분이 있어서 도시에선 많이 마시거든요.”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구나. 근데…….”
나는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왜 얼굴이 좀 벌게요? 술 냄새 나는 거 같은데.”
“와. 그게 느껴져요? 귀인 앞에서는 조금 조심해야겠네. 몇 년동안 알아본 사람 한 명도 없었는데.”
아멜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 허브는 엘프 입에 들어가면 술이에요. 그래서 근무 시간에 술 대신 먹기 딱 좋지.”
“……물통에 몰래 술 넣고 마시는 거랑 뭐가 달라.”
“다르죠!”
아멜리아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건 들키잖아요? 이건 안 들키고.”
“와. 정말 성실한 직원이 따로 없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아멜리아가 나왔다는 건 안에서 할 일을 다 끝냈나보지.
그날 불사조의 전설에 대해 알게된 뒤, 우리는 바로 자료 조사에 들어가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얼마 가지 않아 리리가 다시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상황으로 돌아오는가 싶다가도 정신을 잃고 고열에 시달렸다. 나도 계속해서 그 옆에 있었는데, 무슨 안정 치료를 위해서는 옷을 모두 벗기고 약물을 푼 물에 담궈야 한다길래 잠시 밖으로 나왔던 것.
“리리는 이제 괜찮아요?”
“안정기예요. 생각보다 발작이 심했지만, 잘 견디고 있어요.”
리리는 명계에서 혈술을 사용했었다. 예전에도 들은 적 있는데, 로얄 블러드는 순혈과 다름없고, 고대 흡혈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그대로 품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취급 받았었지. 리리 본인이 쉬쉬하는 분위기길래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내심 궁금하긴 했었다. 왜 타고난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지.
그리고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멜리아에게 재차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몸에 문제 없는 건 확실한 거죠?”
“단순히 신체만 보면 오히려 더 건강해진 거예요. 뱀파이어 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끌어올려진 상황이니. 문제는 정신에 있는 거죠.”
아멜리아도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리리가 쉬쉬하고 말하고 싶지 않아 했던 것, 그걸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이 정도로 심한 문제라면 나 역시 알아 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대체 무슨 문제예요? 본인은 말하고 싶지 않은 거 같아서 이제까지 가만히 있었는데, 이 정도라면 알아야겠는데.”
“……혹시 만나는 사람마다 놀라지 않았나요? 뱀파이어와 인간이 같이 움직이는 모습예요.”
“그랬던 거 같은데.”
“뱀파이어에게 인간은 식량이에요. 고대의 일이지만. 그래서 기본적으로 인간들은 뱀파이어를 좋아하지 않아요. 본능에 새겨진 거부감인 거죠.”
“…….”
사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원래 뱀파이어라는 종족에게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오히려 맞는 셈이니까.
“뱀파이어는 이성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어요. 육식동물에 가까웠죠. 그러다 인간의 독립 전쟁이 있은 뒤, 인간과 친하게 지냈던 뱀파이어 셋이 일어나 종족을 통합했대요. 신을 섬기고 ‘옳음’을 추구하자는 사상으로요. 그들이 이제 로얄 블러드의 선조.”
그들의 노력으로 뱀파이어는 인간을 폭식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되었고, 여러 가지 규율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피를 구걸하지 말라. 그리고 혈술을 쓰지 않는다. 잔혹한 본성을 잠그기 위해 귀족 스스로 건 제약이에요.”
그걸 사용한 뱀파이어는 본성이 깨어나는 걸 억누르기 힘들게 된다.
리리가 지금 저 상태인 건,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본성과 끊임 없이 싸우고 있는 정신의 문제라는 거다.
여기까지 듣고 보니 리리의 행동이 다르게 해석되었다. 이제까지 혈술을 사용하기 전에 크게 동요하던 리리는 명계에서 데미이블과 처음 만난 그 순간, 그 어떤 고민 없이 바로 혈술을 개방했었다.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나는 몰랐었다.
“……변명을 조금 하자면, 리리가 그걸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나는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억지로 끄집어내지 말라는 주의라서 모르고 있었네요.”
“누구 잘못이 아니잖아요? 기억해 두셔야 할 게, 지금 저 귀족 뱀파이어는 잘 견뎌 내고 있다는 거예요. 아마 오늘 저녁이면 툴툴 털고 일어날 걸요?”
그렇다면 다행이지. 사실 그럴 거라는 생각도 했고.
그렇다면, 우리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되겠지. 평소에는 시간문제를 크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좀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택 위치. 좀 알아낸 게 있어요? 어떻게든 알아내야 다음 계획을 짜는데.”
“그건 올리버가 지금 따로 조사를…….”
그때, 2층의 창문이 열리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올리버였다.
“제가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조금 알아낸 게 있는데 잠시 올라와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바로 2층의 자료 보관실로 들어갔다. 좁은 공간에 가득 들어찬 고서와 종이들. 캐캐묵은 먼지 냄새가 인상 깊은 공간이었다.
그 종이 뭉치들 사이에 올리버가 서 있었다. 채광이 좋지 않아 삐걱거리는 등불에 의존하여 책을 읽은 건지, 눈이 피로한 듯 인상을 쓰고 있어서 안경 쓴 마른 얼굴이 도드라져 보였다.
파악—!
종이 뭉치 사이에 거의 묻혀 있다시피 하던 엘리엇이 고개를 들었다.
“젠장! 이 무슨…… 방 정리 꼬라지가 이게 뭐야? 종이 사이에서 수영을 하는 기분이네!”
“그렇게 중요한 걸 이런 방 안에 대충 던져 놓고 까먹어 버린 하리파 님의 잘못이지 않을까요?”
“넌 어떻게 한마디도 안 지냐! 어! 내가 키 작다고 무시하는 거냐!”
엘리엇 하리파는 쓰러져 엉망이 된 종이 뭉치 사이에서 기어 나온 뒤 그렇게 툴툴거렸다. 이 사람은 연맹의 대장이라면서…… 아니, 오히려 위엄이 있을 때는 있는데, 평소에는 이렇게 서로 허울 없이 지내는 듯한 모양새였다. 같이 지낸 기간이 긴 건가.
“아우, 잠깐. 다시 찾아 봐야겠는데? 놓쳤어.”
아마도 뭔가를 찾아냈는데, 종이 뭉치가 쓰러진 바람에 다시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우리는 다시 종이 속으로 헤엄처 들어가는 엘리엇의 묘기를 가만히 관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엘리엇이 그 사이에서 고개를 들었다.
“찾았다!”
그건 낡디 낡은 뱃지였다. 딱 봐도 어떤 가문의 상징을 나타내는 듯했는데, 엘리엇이 먼저 입을 열지 않아도 뭔가 특별한 문양이 있다는 걸 내가 먼저 알 수 있었다.
언뜻 복잡해 보이는 문양들 사이에는 명확하게 보이는 하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알을 깨고 나오는, 불타는 날개와 부리를 가지고 있는 새를 형상화한 그림.
만약 나의 상식과 이계의 상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저게 바로…….
“불사조.”
엘리엇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노미나 산맥에서 조난당했을 때, 우연히 발견한 버려진 저택에서 발견한 상징이지.”
“……그게 리리네 저택인가요? 혹시?”
엘리엇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꼬마 뱀파이어 아가씨가 태어나기도 전 발견한 거요. 신카의 저택일 리가 없지. 근데, 뱀파이어의 저택은 맞았던 거 같소. 그들 특유의 건축 양식이었으니까. 검은 벽돌에완전 불길한 실내 구조 등등…….”
본론에서 벗어나려던 엘리엇은 올리버의 제지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로얄 블러드의 저택인 건 확실했는데, 정확히 어디인지는 잘 알지 못하겠더군. 그러다가 이 상징을 발견했는데…… 이건 옛날 고문서에서도 자주 나오는 상징이었지. 이 상징을 쓰는 가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발견한 게 내가 최초야! 제국에서 그냥 난리가 났…….”
“하리파 님.”
“크흠.”
“그래서 그 상징이 뭐였는데요?”
내 질문에 하리파는 진지한 눈을 하고 말했다. 마치 그 업적을 달성한 시절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베클레아. 불사조와 그 둥지를 지키는 기사단. 세 뱀파이어 선조의 직계 후손.”
“…….”
재밌는 이야기긴 한데, 구체적으로 이게 내게 어떤 도움이 되는 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탐험이란 게 그렇다. 이런 작은 단서에서 시작해서 황금을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그래서 이 정도로 만족하려고 했다.
하지만 엘리엇이 다음에 꺼낸 이야기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 뱃지의 주인 이름은 안드레이 베클레아.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는 전설 속 둥지지기의 이름이라네. 혹시 들어 본 적이 있지 않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리리의 아버지 이름이 안드레이 신카라고 하지 않았나?
신카 가문 주변의 불사조의 전설.
그리고 전설 속 둥지지기와 같은 이름을 가진 리리의 아버지.
이게 우연인가?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