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ep62. 핏빛 폭포와 노인의 심장 (4)
나는 예전부터 리리에게 이계의 신화에 대해서 많이 들어왔다. 신화에 관련된 내용 중에서는 내가 지금 들고 있는 태양의 돌에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돌들은 신이 세상에 가한 권능이 물질화된 거야. 대마법사가 말했듯, 충분히 강한 에너지는 물질이 될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을 뿐이었다. 신기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내 입장에서는 그냥 따뜻한 돌이기 때문이었다. 쥐고 있으면 그냥 손바닥만 따뜻한 게 아니라 희미한 온기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듯한 그런 돌.
보통 사람이라면 얼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혹한의 지역을 돌파해 내는 건 이 돌의 도움이 컸다. 작은 온기일 지라도 죽지 않을 정도의 체온을 유지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니까.
불사조의 전설을 조사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키워드가 세 개 있었다.
노인의 심장, 얼어붙은 숲, 태양.
그중에서 특히 ‘태양’은 불사조가 태양신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물론 지금 이곳에서 불사조가 다 죽어 가는 모습으로 이렇게 있는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힘이 불사조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일 뿐이었다. 너무 비약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발견은 이런 과감한 시도에서부터 나오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파아악—!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증기.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죽어 가는 불사조. 죽어 간다고는 하지만 그 몸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절대로 만만하지 않았다. 아직까진 천잠사의 망토로 막아 낼 수 있는 수준이지만…….
생각하지 말자. 나는 태양의 돌을 앞으로 내밀고 한두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사아악—
태양의 돌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열기가 실처럼 길게 늘어져 불사조에게 연결되는 게 느껴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보통 모험을 할 때 이런 순간은 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니까.
불사조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 힘을 받아들이면 기력을 회복하고 노인의 심장이라는 곳으로 날 데려다줄까? 아니면 얼어붙은 숲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순간일 뿐, 바로 이상함을 느꼈다.
“삐이익…….”
긴 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새가 입을 열자 작은 신음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리리는 별생각이 없는 듯했지만, 나는 저 소리에서 굉장한 이질감을 느꼈다.
내가 이상함을 감지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리리는 불사조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말했다.
“……기력을 회복하는 중인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무력하게만 보이던 불사조가 그나마 반응을 하기 시작한 거니까.
하지만 나는 다른 부분을 느꼈다. 짐승의 신음 소리는 다 똑같이 들려도 거기에 담긴 감정은 각자 다르다. 그리고 난 그걸 구분할 수 있었다.
저건…… 공포.
도망치고 싶어 하는 신음 소리였다.
태양의 온기를 받아들이는 듯 가만히 있던 모습은 그저 기력이 없어서 도망칠 힘이 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나는 당장 뒷걸음질 쳐 태양의 돌을 불사조에게서 떼어 놓으려 했지만, 한 번 연결된 기운의 흐름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모로스moros.”
에너지를 허공에 고정하는 룬을 외어서 힘의 흐름을 차단했다. 희미한 주황빛으로 이루어진 선이 허공에서 흐름을 멈추고, 구체의 형태로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기운을 허공에 흩어 보낸 뒤 바로 태양의 돌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삐익…….”
불사조는 그저 신음할 뿐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리리는 당황했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리리는 다시 불사조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듯싶었다.
“잠깐, 불사조의 영혼이 뭔가 이상한데.”
나는 리리의 말을 잠자코 기다렸다.
“자세히 보니까 찢겨져 있어…… 어떤 영혼에서 찢겨져 나온 조각처럼 생겼어.”
그건 이 불사조가 온전한 하나의 영혼이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
어떤 영혼에서 찢겨져 나온 그저 하나의 작은 조각.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조사를 계속해야겠지.”
나는 리리를 데리고 증기에서 나와 렐릭시나가 기다리고 있던 호숫가로 이동한 뒤 느낀 점을 말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부분이 많아.”
“당신도 불사조는 처음 보는 거 아냐?”
“그렇지.”
“그럼 이상한 걸 어떻게 구분해?”
“불사조이기 이전에 동물이니까.”
세상을 구성하는 생물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들은 공통적인 습성을 공유한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다 보면 그 부분을 눈치채게 된다.
“모든 동물들은 제집에서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아. 사람도 동물들이랑 똑같잖아? 누군가 허락 없이 제집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가만있는 동물들은 없어.”
“그럼…….”
“단순하게 생각하면 답이 보이겠지. 여기가 저 불사조의 집이 아니라는 뜻이야.”
하지만, 모든 동물은 몸에 문제가 생기면 집에 틀어박히는 경향이 있다. 몸이 약해질수록 가장 안전한 곳에 머물려는 무의식의 발로이다. 그럼 불사조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이곳이 불사조의 집과 관련된 단서가 되는 곳이라서?”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증기를 뿜어내는 호수의 전경과 떨어지는 폭포의 시작점을 잠시 바라보다가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했다.
“리리.”
“응.”
“텐트 치자.”
“언제까지 머물 건데?”
“수수께끼를 풀 때까지.”
“……못 풀면?”
“계속 있어야지.”
“내가 열심히 노력할게.”
리리는 이젠 트집도 잡지 않고 가방을 풀어 텐트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나는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는 거대한 산악 지형을 눈보라 너머로 바라보았다.
* * *
일반적으로, 산악 지형을 탐험할 때는 고도에 민감해야 한다. 이런 곳은 변덕스럽지만 또 정직하기도 해서, 고도가 높아질수록 충실하게 안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 규칙을 정면으로 어기는 곳이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불사조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 아래보다 따뜻한 게 신기할 지경이네.”
모닥불을 뒤적이며, 리리가 그렇게 말했다. 마른 땅이 있는 부분이 좀 좁지만, 그것만 조심하면 이 산맥 어디보다 머물기 좋은 곳이었다. 주변보다 높아서 시야가 탁 트여 있어 정찰에 용이한 건 덤이다.
나는 며칠 동안 절벽 끄트머리 폭포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 해?”
“피처럼 붉은 폭포가 거울이 되어 떨어질 때, 변덕쟁이 노인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입을 다물리라. 노인의 심장은 그 거울 안에서 뛰고 있으리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키워드를 뽑아 보는 게 아무래도 제일 중요하지. 피처럼 붉은 폭포, 변덕쟁이 노인, 노인의 심장. 이 세 개가 제일 중요한데…….”
“감도 안 와. 뭐 짚이는 게 있어야 조사를 하든지 말든지 할 텐데.”
내가 대답하지 않자 리리는 다시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뭔가 알 거 같은 거야?”
“어.”
“대체 뭘?”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대답하기에는 조금 이르다. 나도 지구 온 지역을 돌아다닐 때 우연히 본 풍경을 떠올리고 아이디어를 얻었을 뿐이었다.
이곳이 이계라면, 그리고 이런 환경이라면…….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리리가 슬슬 식량과 연료를 걱정하기 시작한 때가 되었다.
“아래로 내려가서 자재를 구하고 올라와야 할지도 모르겠어. 렐릭시나가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네.”
그 말이 나온 날의 아침은 유독 맑았다. 언제나 몰아치던 눈보라도 잠잠했고, 말 그대로 구름 한 점 없는 아침의 햇살이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지상에 내리쬐었다.
새하얀 노미나 산맥은 그 햇살을 반사하여 온 세상을 더욱더 밝게 밝혔다.
마치 거울처럼.
“……리리.”
“응?”
“아마 오늘 저녁에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르겠어. 미리 준비해 두자.”
“…….”
리리는 군말하지 않고 바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야영지를 접는 건 이른 선택이지만, 짐을 미리 싸둬야 이동을 결정할 때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리리의 하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리리의 눈동자 색깔에 지지 않을 정도로 붉은빛.
그 빛은 하늘에서 시작되어 있었다.
“노을이…… 빨개.”
노을은 원래 빨갛다.
하지만 리리가 굳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구름 한 점 없는 빛이 냉기로 응축된 대기를 통과하는 노을의 붉은빛은 정말이지 피를 연상시킬 정도로 빨간색이었다.
내가 기다린 현상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폭포 쪽으로 다가갔다. 리리도 내 뒤를 따라왔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렐릭시나도 벌떡 일어나서 터덜터덜 따라왔다.
나는 폭포 옆 낭떠러지에 위태롭게 섰다. 그걸 보고 리리가 뒤에서 소리쳤지만, 나는 그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곳은 운이 좋게도 조금 노출된 지형이라 계곡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을 제대로 엿볼 수 있었는데, 리리도 따라와 폭포를 바라보더니 잔소리를 삼키고 넋을 잃었다.
폭포가 불타고 있었다.
물감을 푼 듯한 붉은색으로 빛나는 노을을 그대로 머금은 폭포는 역설적으로 노을보다 더 빨간 색깔로, 노을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폭포 안에서 이리저리 산란된 빛은 다시 폭포 바깥으로 튀어나오며 폭포를 찬란하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용암이 흐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붉게 빛나는 물줄기.
“내가 살던 세상에서 이런 폭포를 본 적이 있었어. 어떤 조건이 맞으면 마치 용암처럼 붉게 빛나는 폭포. 일 년에 몇 번밖에 못 보는 풍경인데 나는 운이 좋게 볼 수 있었거든.”
리리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듯했다.
그저 멍하니 폭포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피 같아.”
— 피처럼 붉은 폭포가 거울이 되어 떨어질 때, 변덕쟁이 노인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입을 다물리라. 노인의 심장은 그 거울 안에서 뛰고 있으리라.
수수께끼의 첫 번째 키워드.
붉은 폭포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해가 더 떨어지고 하늘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붉은빛은 더욱더 강해졌다.
거대한 폭포는 태양의 빛을 그대로 품은 채 계곡으로 떨어졌고, 빙하가 되어 계곡을 흐르면서도 빛을 잃지 않고 밝게 빛났다.
계곡 아래에서 흐르는 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지상으로 새어 나왔다.
그 물은 끊임 없이 흐르며 저 멀리 어딘가로 향한다.
얇고 길게, 구불구불 흐르는 물. 이 산악 지대 전체에 그런 물줄기가 있었다.
수많은 물줄기가 산과 계곡의 사이에 희미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제까지는 발견할 수 없었던 그 모든 흐름이 지금 이 풍경에서는 한눈에 들어왔다.
그 모든 물길들이 전부 붉은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산악 지역. 그 사이를 구불거리며 흐르는, 붉게 빛나는 수많은 물길들.
그건 이 산의 핏줄이었다.
산은 그 어떤 이야기에서도 자주 노인에 비유되고는 한다.
리리는 말했다.
“……피처럼 붉은 폭포.”
“노인의 몸을 흐르는 혈관.”
그 ‘혈관’들은 저 멀리, 한 점에서 만나고 있었다.
혈관이 만나는 지점을 우린 이렇게 부른다.
“……심장. 노인의 심장!”
리리가 그렇게 외쳤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얼어붙지 않은 호수. 그 증기 속에 머물고 있는 불사조.
이 산을 흐르는 물줄기는 불사조의 온기를 머금은 덕분에 녹지 않고 흐를 수 있었다.
불사조는 그걸 위해서 이곳으로 왔던 걸까?
“리리.”
“빨리 짐 싸자.”
리리는 나보다 먼저 야영지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렐릭시나를 타고 내려왔다. 계곡의 흐름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리고 산에 둘러싸인 채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평야라고 부르기엔 조금 작은 분지 지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보았다. 노인의 심장을.
아주 오래전, 노미나 산맥과 같이 태어나 산맥과 하나가 된 숲.
숲을 구성하는 나무도, 풀도, 버섯도, 바위조차도 얼음으로 이루어진 숲이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깨달았다.
“노인의 심장과 얼어붙은 숲은 같은 곳을 말하는 거였어.”
이곳은 얼어붙은 숲이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