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ep62. 핏빛 폭포와 노인의 심장 (5)
“여기는…….”
“얼어붙은 숲. 불사조의 전설에 항상 따라다녔던 숲이네.”
모든 것이 얼음으로 되어 있었다. 아직 우리는 숲의 경계면에 서 있었는데, 이 안쪽에는 생물이 살 수 없을 정도의 냉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키이익—!”
설산 눈 사이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작은 도마뱀이 그 경계선을 넘자마자 얼어 버리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으니까. 푸르고 투명해서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 조금은 작은 숲. 우리는 그 앞에서 방심할 뻔하다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
리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노인의 심장과 얼어붙은 숲이 하나를 뜻한다는 사실에 놀란 걸까?
아니, 물론 전설이 짜 맞춰지는 순간은 짜릿하지만, 리리가 멍하게 된 이유는 그게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내 집 주변에는 불사조의 전설에 관련된 숲이 있었어.’
리리는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그렇다면 이 숲이 리리의 집 근처에 있다는 숲이 된다는 뜻이다. 산의 핏줄이 하나로 이어지는 노인의 심장이 말이지.
그렇다면 리리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 얼음 숲이라는 특이한 지형이 있다는 사실을 왜 이제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이제야 기억나. 아니, 내가 기억을 못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어. 뭔가 익숙한 거 같으면서도 기억이랑 달라서 착각하는 건 줄만 알았는데…….”
리리는 숲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고, 그래서 숲의 투명함이 더욱더 적나라해 보였다.
“……내가 살던 시절에는 이런 숲이 아니었어. 이 근방 전체가 이렇게 혹독한 환경도 아니었고. 눈은 있었지만 농사도 지을 수 있었고, 이 숲도 푸른색이었어. 들어갈 수 없는 금기의 숲이었지만.”
리리는 황금을 위해서 이제까지 기억을 억눌러 왔었다. 잡생각을 버리고 목표에 집중하고자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지역이 자신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여기는……. 우리 영지야. 우리는 아까 전부터 신카의 영지에…… 들어왔던 거야.”
리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에 보여 주던 무표정에서 크게 얼굴이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어떤 감정이 휘몰아치는지는 대충 이해할 수 있었기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우리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이제는 이 숲의 비밀에 대해서 풀어야 할 시간이었다.
“들어갈 수 있을까?”
“아마도.”
이건 내 예상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턴 도박을 할 생각이니 리리를 말려들게 하지 않기 위해 먼저 앞으로 나아갔다. 리리는 나를 말리지 않고 뭘 하나 신중하게 지켜보는 듯 뒤에서 숨을 죽였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태양의 돌을 꺼냈다.
태양신의 권능이 고체화된 물건.
온몸에 온기를 돌게 해 주는 이 물건이라면 어쩌면…….
숲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조심스럽게 얼음 바닥을 밟았고, 순식간에 방한화를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었다.
내 예상대로, 태양의 돌은 이 비정상적인 한기를 막아주고 있었다.
“리리.”
“응.”
나는 뒤로 손을 내밀었고, 리리는 그 손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왔다.
“크르릉—!”
렐릭시나는 대체 뭐 하냐는 듯 심드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푸르륵.”
그리고 자랑스레 보란 듯이 콧김을 내뿜는다. 뭐야? 얘는.
뭔가 귀엽게 느껴져서 그냥 웃어 주었다.
“리리. 우리 손 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이번에는 조심해야 해.”
리리는 조금 고민하더니, 배낭 고리에 걸어 두었던 밧줄을 꺼내 우리 둘의 손을 묶었다. 이빨과 반대 손으로 능숙하게 묶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을 묶는 건 원래는 위험하지만……. 지금은 떼는 게 더 위험하니까. 맞지?”
좋은 판단이다. 생각해 보니까 얘도 이제 어엿한 탐험가네. 어디 가서 경험담으로 꿇릴 게 없는 진짜배기 탐험가.
우리는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안쪽으로 들어갔다.
태양의 돌을 놓치거나 손을 떼면 리리에게 큰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 둘은 평온했다. 리리의 깡이 이전보다 훨씬 더 세진 것도 있고, 이곳이 우리가 아는 이계의 숲이랑은 차원이 다르게 고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숲이 노인의 심장이라면…….”
생각에 잠겨 있었던 리리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말했던 산의 심장이 이 숲이란 말이야?”
산의 심장.
숲의 심장과 크게 다르진 않다. 차이가 있다면, 산과 나이가 거의 같은 오래된 숲의 심장이라는 것.
그 정도 초월적인 시간이 지나면 숲은 산과 구별되지 않는다. 숲의 심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 가고 정기가 흐르는 산의 뿌리는 그 영향력이 지나가는 통로로 적합하며, 곧 산의 뿌리를 타고 숲의 기운이 산 전체에 흐르기 시작한다.
그 시점이 되면 숲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숲의 정체성이 곧 그 산의 정체성이 된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그 숲을 다른 숲과 구분하기 위해 ‘산의 심장’이라고 멋대로 이름 붙였다.
이계 기준으로 오래전의 일이고, 지금 시대에는 산의 심장을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정도 오랜 기간이 지나면 산의 심장마저 삭아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순환을 계속한다는 의미겠지. 자연이란 게 원래 그렇다.
리리는 내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 심장은 왜 이런 꼴이 된 걸까?”
리리가 살던 시절.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15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숲이었다고 했다.
리리가 떠나고 불과 15년 만에 이런 상황이 되었단 말인데.
나는 자신의 온기를 실시간으로 잃고 있었던 불사조의 모습을 떠올렸다. 여전히 뜨겁지만, 그건 확실히 다 죽어 가는 불사조였다. 마지막 남은 온기로 산맥의 혈관을 녹여 그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던 불사조.
그건, 이 심장이 죽어 간다는 의미가 되겠지.
그 사이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우리는 숲의 중앙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수십 갈래의 물줄기가 솟아올라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예전에는 이곳의 막대한 에너지를 품고 온 세상으로 뻗어 나가는, 그야말로 심장의 혈관 시작 지점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물과 얼음이 뒤섞여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묶고 있던 손을 떼어 냈다. 이곳에서는 더는 태양의 돌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기가 느껴졌고, 숲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녹색이 조금이나마 보이는 이곳.
우리는 여기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았다.
수많은 불사조의 사체들을.
“……리리.”
리리는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그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가 떠나고 나서 이 숲이 얼어붙은 이유. 뭘 거 같아?”
“불사조의…… 떼죽음. 아니, 아니야.”
리리는 붉게 물들인 동공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죽지 않았어. 아직 살아 있어! 영혼이 있어! 안개처럼 희미해서 형태조차 안 보이지만…….”
리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에서 보이는 장면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네가 여기서 살던 시절과 떠난 뒤 지금. 대체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걸까.”
그때 노인의 심장은 살아 있었다. 불사조가 정상적으로 살고 있었다고 추론해도 되겠지.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불사조 둥지지기의 부재.”
“아.”
리리가 비로소 나를 바라보았다.
리리의 아버지. 안드레이 신카.
아니, 불사조와 서약한 기사 베클레아의 마지막 후손.
안드레이 베클레아의 죽음.
* * *
내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이곳은 원래 혹한의 지역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살 수 없고, 점점 퍼져 나가 산맥을, 더 나아가 어쩌면 온 세상을 얼려 버릴 정도의 혹한을 품은 지역. 그야말로 빙하기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산맥은, 노인의 심장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모종의 방법을 통해 불사조들을 이 숲에 살도록 했다.
불사조들은 자신의 온기로 냉기를 대항했고, 숲의 심장은 그 온기를 품은 신성한 물을 사방으로 흘려보냈다.
그 온기는 산맥의 분수령을 타고 흘렀고, 정기와 뒤섞이며 산의 뿌리를 타고 온 세상으로 퍼졌다.
퍼지는 과정에서 열기는 미약해졌겠지만, 태양을 도와서 세상을 덥히는 데에는 충분했겠지. 냉기가 가득한 지역과 열기로 가득한 존재의 균형. 그게 이 세계의 생태계의 한 갈래였던 거다.
하지만 불사조의 영혼이 죽기 직전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둥지지기의 부재가 원인이 되었겠지.
15년 전, 이곳에서…….
“우리 아버지가 죽었으니까.”
내가 회피하던 결론을 리리가 직설적으로 꺼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게 있어.”
리리가 말했다. 그 눈은 지금 아직 사라지지 않은 불사조의 영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사조의 삶을 위해 둥지지기가 꼭 필요하다면……. 왜 아직 불사조는 죽지 않은 거야?”
불사조는 지금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또 완전히 소멸한 건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 불사조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규칙이 있다면 규칙에서 벗어난 이 상태는 이상하다. 둥지지기가 없어서 죽든가, 둥지지기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든가. 둘 중 하나 아닌가?
도대체 뭐가 불사조의 영혼을 지탱하고 있는 거지?
“……아.”
누군가의 신음. 나는 반사적으로 나이프를 뽑았고, 리리도 뒤 돌아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 말고 누군가 이곳에 있었다.
……태양의 돌이 없다면 들어올 수 없는 이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그 소리는 이곳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
이 숲의 심장 뒤편에서 들리고 있었다.
“…….”
리리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숲의 심장 뒤로 돌아갔다.
보통 숲의 심장은 검은색 수정이 땅에 박혀 있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곳, 산의 심장은 우리가 평소에 만나는 숲의 심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대했다.
누군가 숨어 있다면 그 몸을 충분히 가릴 수 있겠지.
신중하게, 한 발자국씩, 거리를 벌려 다가갔다. 손에는 기록관의 반지를 껴서 룬 공격에 대해 대비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건.
새하얗게 바랜 머리카락과 수염이 땅에 닿을 정도로 길고 뼈의 굴곡이 다 드러날 정도로 마른 남자였다.
땅에 철퍼덕 주저앉은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 남자의 몸은—
불타고 있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그 피부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사그라들 것 같다가도 다른 부위에서 다시 솟아올랐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떨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리리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그리고 그의 영혼을 바라보더니, 원래 하얗던 얼굴에 그나마 남아 있던 피가 다 빠져나간 듯 창백해졌다.
리리는 몸을 낮춰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남자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빛을 잃는 눈. 고통에 일그러져 주름진 피부.
“……머레이? 머레이야?”
“머레이?”
“예전에, 내가 탈출하기 전에 나를 보살펴 주던 시종이었어.”
리리의 동공이 붉게 물들었다. 그 두 눈은 남자의 영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겉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영혼으로 알아본 모양이었다.
“……불사조들의 영혼과 이어져 있어.”
“이 남자가 둥지지기라는 거야?”
“아니야. 완벽하게 이어져 있는 게 아니야. 억지로 지탱하고 있어.”
리리는 말했다.
“……자신의 영혼을 태워서 불사조을 지탱하고 있어. 대체 왜? 왜 이런 짓을?”
멸망한 신카의 가문. 둥지지기의 자격이 없었던 그저 평범한 인간 시종.
그는 15년 남짓한 세월 동안, 제 영혼을 장작 삼아 홀로 불사조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