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ep63. 평범한 인간이 지켜 낸 불꽃 (4)
불사조를 올려다보았다. 머릿속에서는 불사조를 알기 전, 그 신비로운 생물에 대해서 연맹원들과 조사하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불사조에 대해서 알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고대의 불멸자이자 신의 첫 번째 자손인 용은 전설이지만 실존하는 전설이었다. 그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불사조는 그저 전설이었다. 전설이란 때론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어서, 그 존재는 주점 한편에서 노래하는 시인의 즐거움에 지나지 않는 망상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불합리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불사조의 역할은 중요했다. 자신의 온기로 냉기의 씨앗을 품어 생태계의 질서를 지켜 주는 일.
그렇기에 불사조가 그저 전설로만 남지 않기를 바랐던 거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사도 역시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손에 쥐어진 따뜻한 배지를 바라보았다. 붉은색의 광택 나는 금속 재질의 마름모. 옷깃에 매달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불사조는 말했다.
둥지지기의 휘장, 가까운 미래 세상의 모든 이가 그 의미를 알리라.
내가 물었다.
“너는 이제 뭘 할 건데?”
불사조는 말했다. 하던 걸 해야겠지. 그게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둥지지기와 불사조의 서약이니.
과거, 초대 둥지지기는 불사조에게 냉기를 품어 달라 요청한 모양이었다. 불사조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알 수는 없다. 역사란 그런 거니까. 분명 있었던 일이지만 자세히 알 수 없고 체감할 수도 없는 것.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불사조에게 요청했다.
“머레이를 도와줘.”
불사조는 대답한다. 도우라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가 다음 둥지지기를 계승할 수 있도록. 훈련이 필요하다면 훈련을 시키고, 가르침이 필요하다면 가르쳐 줘.”
불사조는 말한다.
그는 평범한 인간이다.
“나도 평범한 인간이야.”
나를 바라보는 리리의 시선이, 연맹원들의 시선이, 농부와 도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평범하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되진 않아.”
불사조는 말했다.
「묻겠다. 생명의 상징이 그 기사에게.」
불사조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었다.
목소리를 낼 수 있었구나.
말하지 않는 것도 이 생물이 가진 금기였던 걸까? 알 수는 없었으나 따로 묻지 않았다.
「어째서 둥지지기의 지휘를 넘기려 하는가. 그 영광이 그대에겐 별 의미 없는가?」
“반대로, 내가 물어볼게.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고 사명 같은 건 관심도 없는 떠돌이, 제 몸을 장작 삼아 둥지를 지킨 평범한 인간.”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질문이다.
“누가 더 둥지지기에 어울릴까?”
불사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영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내 안에서 느껴졌다.
불사조는 고개를 들었다. 다시 날갯짓을 시작했다.
성 위로 순식간에 날아간 불사조는 제국의 본성, 솔라의 첨탑 꼭대기를 휘감았다가 다시 남서쪽으로 저 멀리 날아갔다.
우리는 불사조가 하늘에 남기는 기다란 불의 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솔라의 첨탑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거대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원래부터 그곳에 있어야 했던 것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이 찬란하게 성을 밝히고 있었다. 등대 같았고, 봉화 같았다.
“……태양의 도시, 솔라.”
올리버가 이야기했다. 이것도 어떤 전설 속에 남은 말인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풍화의 시대에, 그 셀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빛이 바랬던 제국이 다시 색깔을 찾았다는 걸.
그건 불꽃의 색깔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뒤를 돌아보았다. 엉거주춤 서 있던 사람들. 조금은 친해진 연맹원들마저 내게 거리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저건 뭔가 서운한데.
리리는 내 옆에서 아까부터 계속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괜히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우렁찬 소리가 들었다.
“불사조의 기사에게 예를 갖춰라! 이는 고대 황실에서부터 내려온 규율이다!”
연맹원들 뒤에서 난 소리였다. 연맹원들은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나도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항상 피곤한 얼굴을 하고 다니던 황실 근위대장이었다.
그는 내 앞에서 고개를 살짝 내리고는 제국식 경례를 했고, 근위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사람들은 한쪽 무릎을 꿇었고, 연맹원들도 미소를 품은 얼굴로 그렇게 했다.
나는 굉장히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실의 근위대가 황제 이외의 사람에게 경례하고 막 그래도 돼요?”
“고대 황실의 규율이라 하지 않았는가.”
규율이라 경례만 하고, 반말은 그대로인 건가?
그 모습이 뭔가 재밌어서 웃어 버렸다.
* * *
나는 항상 솔라에서 외부인이었다. 딱히 거부당하진 않았지만, 지역 간 왕래가 극단적으로 적어진 현재 이계의 상황에서 외부인은 사람이 꽤 많은 도시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던 거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의 시선 변화가 더욱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
리리는 언제나 이런 내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았다.
“받아들이라니까.”
“싫어.”
“당신은 어디에 가도 평범하게 지낼 수 없어.”
“우리 세상에서는 평범 그 자체였는데 말이지.”
“진짜?”
리리가 의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딱히 아닌 것 같긴 하다. OWIC과 베이스캠프의 지구 쪽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제 잘 아니까.
“……에휴. 빨리 떠나야겠어.”
그리고 항상 이런 결론이다. 나는 한 군데 오래 머무는 건 취향이 아니고, 특히 사람들이 이런 시선으로 보게 된다면 더욱더 그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연맹으로 찾아가 내 의사를 말했다. 바로 떠난다는 말에 놀라거나 서운해하는 걸 예상했는데, 의외로 연맹원들은 받아들였다.
“탐험가는 원래 한 군데 오래 있지 않는 법이죠.”
“그럼, 그럼.”
그렇게 이야기하며 서로 공감대를 형성했을 뿐이다.
내가 짐을 싸는 동안, 엘리엇은 두루마리를 품에 잔뜩 안은 채 다가왔다.
“읏차!”
“이게 다 뭐예요?”
“벌써 잊으셨소? 우리 의뢰를 해결해 주면 내가 드린다고 한 게 있잖소.”
“……아.”
맞아. 애초에 목적이 있었지.
와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던 터라 잠시 잊었네.
“황금의 왕국으로 가는 길에 대한 정보.”
“정확히는, 그 정보가 있는 곳이지.”
정보도 아니고 정보가 있는 장소에 대한 정보라니.
뭔가 이상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계란 그런 곳이니까.
“스텔라리움. 별들의 무덤이자 지식 보관소.”
별의 무덤이라면 나도 안다.
“살리-운드sali-wond.”
“……알고 계셨소?”
“우연히 배운 단어예요.”
“룬을 우연히 배웠다고 말하는 건 온 세상에 귀인뿐일 거예요.”
짐 싸는 걸 도와주던 아멜리아가 덧붙였다.
나는 그 방향을 남극성 정도로 취급했다. 어디에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기에 나침반으로 삼기 좋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설명했다.
“스텔라리움은 남쪽에 있소. 그리고 신화적 장소가 늘 그렇듯 방향을 아는 것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역이오. 별의 무덤을 가로질러 정보의 바다에 도달한 뒤, 그 중심부에 도달해야만 목격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하지.”
“그렇다면 도달하는 방법은?”
“두 가지 준비가 필요하오. 첫 번째는 이거.”
엘리엇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손바닥 크기의 렌즈 같은 물건이었는데, 보통 렌즈라고 부르는 둥근 모양이 아니라 수많은 각으로 이루어진 다이아몬드와 같은 물건이었다.
“렌즈예요?”
엘리엇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렌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탁했다. 날카로운 각으로 이루어진 보석이 그렇듯, 건너편을 보기에는 빛의 산란이 너무 심한 물건.
하지만 여기는 이계기에 지구의 상식으로 섣부르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쓰는 거예요?”
“그 렌즈를 통해 하늘을 바라보시오.”
엘리엇의 말에 렌즈를 눈앞에 가져다 대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예상대로 별 효과 없이, 그저 불규칙적으로 하늘의 빛을 산란시킬 뿐이었다.
대체 뭘 보라는 거지.
하지만 엘리엇은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은 듯 기대에 찬 초롱초롱한 눈빛이었고, 왠지 그걸 배신하고 싶지 않아 하늘 이리 저리를 관찰해 보았다.
그러던 중.
“……어?”
남쪽 언저리를 가리킨 순간이었다.
분명 지금은 새파란 낮이었는데, 갑자기 렌즈 너머의 풍경이 새까만 밤하늘로 변했다. 별 몇 개가 외롭게 떠 있는 풍경이었으며…… 그 한가운데에는 지구 밤하늘의 시리우스 별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떠 있었다.
“지식의 화신, 안토니오의 별이오. 우리는 그걸 남극의 수호 성좌라고 부르지.”
“안토니오?”
어디에서 들어 본 이름인데.
기억력이 좋은 리리가 대신 대답했다.
“최초의 기록관 안토니오. 열두 지배자 중 하나. 우리 첫 번째 유적에서 본 조각상 인물이야.”
“박식한 꼬마로군.”
“성인이에요.”
엘리엇은 껄껄 웃으면서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맞아. 내가 가진 황금의 유물 중에 기록관의 반지가 있지.
저게 초대 기록관인 안토니오란 말이지?
“초대 기록관인 안토니오는 필멸자 시절 추구했던 가치에 따라 스텔라리움의 별이 되었소. 그리고 그곳으로 누군가를 안내하는 별이 되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별을 따라가면 된다는 거지?
나는 그 물건을 아공간 가방에 넣었다. 내 다음 행선지를 알려 주는 물건이니 소중하게 다뤄야겠지.
우리는 빠르게 짐을 쌌다. 확실히 거점을 도시에 잡으니 보급품 문제에서는 완전히 자유로웠다. 탐험가 연맹은 탐험에 대한 지식이 많았고, 어떤 보급품이 필요한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챙겨 주었다. 덕분에 이번 여정은 꽤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고마웠어요. 잘 지내다 가요.”
“우리가 더 고맙지. 좋은 경험이었소.
“아, 그리고 황실에서 하사품이 왔습니다.”
올리버가 말했다.
맞다. 섭정과 내기한 게 있었지?
올리버는 내게 나무 지팡이를 내밀었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기에서 이긴 걸 축하한다고 전해 달라 하시더군요. 섭정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
지팡이를 받아 들었다. 등반이나 도보 보조용으로 쓰이는 평범한 지팡이 같았는데, 어떤 얇은 식물 줄기를 엮어서 만든 듯했다. 재질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흐느적거리지 않고 굉장히 견고했다.
“이게 뭐래요?”
“……과거 광인이 지켰던 장미의 줄기로 만든 지팡이라고 합니다. 과거 광인이 떠도는 동안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
하마터면 황실로 달려갈 뻔했다.
하지만 곧 관두었다. 지금으로선 스텔라리움에 더 가고 싶었으니까.
“……모든 일이 끝나면 천천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겠지.”
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섭정께서 한마디를 더 전해 달라 하셨다고 합니다.”
올리버는 말을 이었다. 나는 오히려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자기 예언대로 일이 흘러가서 좋대요?”
섭정은 예언자의 상이었다. 미래에 있을 대화를 미리 녹음해 놓을 정도로 강력한 예언자. 현세대 예언자인 벨라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
왠지 이 내기를 즐긴 듯한 섭정은 아마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올리버의 표정을 보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오히려, 올리버는 내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아뇨. 반대였습니다. 신기하군요.”
“……반대요?”
“예언을 극복해 낸 걸 축하한다고 말씀하셨다는군요.”
“……?”
나는 올리버를 바라보았다.
“극복이요?”
“저도 정확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해 달라고 했으니.”
나는 리리와 눈을 마주쳤다.
예언은 반드시 일어날 미래라고 하지 않았었나?
내가 그걸 극복했다고?
“……뭘 신기하게 생각해?”
리리는 말했다.
“당신은 이미 예언을 몇 번이나 뒤집었잖아.”
“…….”
“대악마 가롯과 함께 죽으려던 벨라는, 예언 속에서 그렇게 되기로 했기 때문에 그 운명을 받아들였던 거야.”
그리고 그 벨라는 지금 살아서 총본산의 대주교가 되었다.
“…….”
아, 몰라.
생각하기 귀찮아졌다.
나는 그저 렐릭시나의 등에 아공간 가방을 올리고, 그 엉덩이를 두드려 주고, 연맹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다음에 또 올게요.”
“오실 거요?”
엘리엇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첨탑에서 휘날리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졌거든요.”
엘리엇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든 뒤 렐릭시나의 위에 올라탔다.
아, 맞다. 이 말을 한다는 걸 깜빡했네.
나는 천천히 걷는 렐릭시나의 위에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멜리아.”
“네?”
“나중에 한번 놀러 와요.”
“남쪽으로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좋긴 한데…… 왜요?”
“그쪽 여동생이 제 집에 세 들어 살고 있거든요!”
“……어? 네? 뭐요? 잠시만, 잠시만요!”
나는 일부러 말의 속도를 높였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했고.
“……악질이야.”
리리에게 한 소리 들어야만 했다.
지도 웃고 있으면서.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