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
23화 – 사냥개 서지아 (2)
“······.”
서지아는 살짝 당황했다. 예상한 것보다 강선후의 반응은 너무 미지근했다.
서지아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를 맨 처음 만나는 사람 중 이토록이나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서지아는 그저 당황했다.
“어, 안녕하세요?”
“의뢰가 있으세요?”
‘윽···.’
무슨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강선후.
관심 없는 ‘척’이 아니라 정말로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한 반응.
서지아는 괜히 오기가 생겼다.
“의뢰는 아니고요. 여기에서 사무실을 차렸다고 하셔서 구경하러 왔어요.”
“그러시구나. 야, 차소희.”
“응?”
“이분 네가 안내해드리고, 나는 지금 바로 갈 데가 있으니까. 뒷정리 그냥 대충하고 너 할 일 하러 가. 나머지는 내가 갔다 와서 치울게.”
“응? 아, 응.”
미소가 만개한 서지아를 그대로 지나쳐 베이스캠프 쪽으로 향하는 강선후.
‘···이럴 수는 없는데.’
서지아는 지금 이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존심에 거대한 스크레치가 나는 느낌을 받았다.
***
살다 보면 촉에 의존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직감.
그리고 내 직감은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낯선 여자를 경계하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 이건 반쯤 농담이었다. 단순하게 서지아란 사람에게서 좋지 않은 직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게다가 좀 이상한 사람이잖아.
어쨌거나 난 저런 사람들과 엮일 생각이 없었다. 할 일이 많을 테니까.
— 장비 준비를 마쳐야 한다.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지만, 언제까지고 베이스캠프 주변만 맴돌 수는 없었다. 더 먼 곳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본격적인 시작을 할 수 있고, 그러려면 준비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
기생체의 소재로 만들 장비를 구상해봤다.
번데기 외피로 만든 롱재킷, 그리고 칼날 발톱으로 만든 나이프, 그리고 명주실은 엮어서 망토로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코트와 망토를 만드는 데에는 별문제가 안 되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을 찾기만 하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일.
하지만 칼날 발톱으로 나이프를 만드는 건 이야기가 전혀 달랐다.
“동화석이라.”
핵심 소재가 이거라고 리리는 설명했다.
그리고 이건 그렇게 희귀한 광석이 아니었다. 어떤 광맥이든 덤으로 들어 있는 광석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베이스캠프 근처 유일한 광산이 서쪽에 있다는 거고, 지금은 폐쇄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사실 문제는 아니다.
내가 직접 가서 얻어올 거니까. 그곳에 메두사의 서식지가 있다는 건 이미 알았고, 이 정보만 있으면 충분했다.
나는 마을의 관리사무소로 들어가서 번호표를 뽑고 신청서를 미리 작성한 뒤, 대기하다가 창구로 향했다. 주민센터에서 일처리 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고전풍 가죽옷을 입은 접수원이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걸 도와드릴까요?”
“탐사 허가받으려고 하거든요.”
“아, 강선후 씨···. 신청서 작성하셨나요?”
신청서를 접수원에게 넘겨줬다. 내용을 확인하는 접수원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서쪽으로 가신다고요? 혹시 잘못 적으셨나요?”
“그쪽에 광산 있지 않나요?”
“네. 있긴 한데···. 폐쇄한 광산이거든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을 갔다 오려고요.
“서쪽은 실종률이 굉장히 높은 곳인데요.”
“허가 안 나오나요?”
내 입장에서는 이게 제일 중요했다. 그리고, 허가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접수원은 의자를 조금 뒤로 뺀 뒤 옆자리의 동료를 불렀다.
“저, 선배님. 이분이 서쪽 광산으로 탐사 신청하시는데요.”
“뭐? 서쪽?”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끝에 접수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가능은 하네요. 그런데··· 탐사 기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사흘 이상은 허가해줄 수 없······.”
“하루요. 오늘 돌아올 거예요.”
“아··· 하루요.”
사흘이나 필요하나?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서 바로 제작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
서지아는 멀리 떨어진 곳, 나무 위에 올라간 채 강선후의 사무소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력은 인간의 측정법으로 6.0을 넘어가는 수준이었기에, 이 정도 거리에서도 뭘 하고 있는지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서쪽으로 출발하려고 한다.’
강선후가 배낭을 싸기 시작하는 걸 똑똑히 확인했다. 수정체를 깎아 만든 도끼, 그리고 처음 보는 종류의 특이한 사냥 나이프. 그리고···.
‘저게 끝?’
이건 말도 안 되는 준비물이었다. 식량도, 여분의 옷도 하나 챙기지 않는다고?
‘고작 저만큼 챙겨가다니.’
바보 같은 되물음이라는 걸 아는데도 멈출 수 없었다.
분명 서쪽에 사람을 금속으로 만드는 괴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않았는가?
패스파인더가 거기에서 당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근데 무슨 동네 산책이나 나가는 것처럼 움직이다니.
서지아는 하나같이 ‘강선후는 범상치 않은 놈’이라고 말하는 부하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강선후에게 주목하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정말로 실력이 있는지는 다른 이야기지만.”
차원문이 열리고 부하가 하나둘 생기면서 서지아가 현장에서 직접 움직인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럴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강선후를 향한 호기심이 정수리까지 차올랐으니 그랬다.
강선후는 오두막에서 나와 서쪽으로 출발했고, 서지아는 거리를 유지한 채 그의 뒤를 미행했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 지난 시점, 서지아는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지치지도 않아?”
서쪽은 가면 갈수록 점차 자갈밭으로 변해가는 곳이었다. 이 끝에는 거대한 바위산이 있고, 바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작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폐광산이 있었다.
중요한 건, 그만큼 거친 지형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강선후는 지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염소가 뛰어놀듯 바위의 표면을 가볍게 밟으며 끝없이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서쪽 폐광산 지역.
송곳 같은 뿌리를 바위에 박은 나무들이 높게 올라서 있었다. 이곳은 숲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했고, 차라리 군집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았다.
바닥에서는 붉은색 잔디가 바위와 자갈 틈에서 솟아 나와 있었다.
빛바랜 붉은 초지(草地).
이곳의 별칭이었다.
문제는, 그 초지를 이루는 잔디와 나무들이 군데군데 금속으로 덧입혀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 녹은 쇳물을 한껏 부어낸 뒤, 틀에 찍어 굳혀낸 듯한 느낌이었다.
그 범인들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쉬이이···.”
강선후는 그 괴물과 마주쳤다.
강선후는 메두사라 부르는 바로 그 이계의 괴물.
길이 2m는 넘어 보이는 뱀의 꼬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위에 얹어진 상체는 중성적인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역시 비늘로 가득 찬 피부에 뱀의 혀를 날름거리는, 눈 뜨고는 못 봐줄 정도의 추한 모습이었다.
아무렇게나 뻗친 붉은 머리카락은 멧돼지의 털처럼 억세 보였다. 인간이 만난 그 어떤 이계종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괴물이라고 불릴만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시이잇!”
한 마리가 아니었다.
총 세 마리의 메두사가 강선후를 똑바로 바라보며 상체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마치 공격하기 직전의 코브라처럼.
서지아는 헤드폰의 외부 소리 증폭 기능을 켜며,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카가가각—
기분 나쁜 소음이 들려왔다. 강선후의 피부가 광택을 띠기 시작했다.
강철이 되어가는 소리였다.
메두사의 눈에서 뿜어내는 특수한 파장이 강선후를 조금씩 금속으로 덮어가고 있었다.
세 마리의 메두사가 동시에 그를 바라보는 터라 변하는 시간은 그 언제보다도 빨랐다.
그렇게, 강선후는 동상이 되었다.
“시이이이······.”
메두사 중 한 마리가 금속이 된 강선후를 휘감은 뒤, 자신들의 거처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폐광산이었다. 그 광산은 메두사의 서식지가 되어있었던 것.
“······.”
서지아는 그 모든 장면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끝난다고···?”
강선후는 메두사들을 마주쳤고, 그들의 눈빛에 동상이 되었으며, 그대로 비축 식량 신세가 되어 거처로 끌려갔다.
이게 끝인가? 정말?
강선후를 목격한 이들의 경험담, OWIC의 집착, 그로 인해 자신이 가졌던 호기심과 기대감.
이 모든 게 산산이 조각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자신 있게 이곳까지 온 강선후는 아무런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채 동상이 되어 메두사들에게 끌려가 버렸다.
서지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메두사들이 들어간 폐광산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조심성이 아주 많았기에, 한 시간이 훌쩍 넘는 동안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맨손으로 갈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메두사의 서식지가 되었다는 게 확실해진 이상, 서지아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게 하운드 사업의 본질이었으니까.
서지아는 허벅지에 힘을 준 뒤, 나무와 나무 사이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빠르게 폐광산의 입구로 도착한 뒤 나무 기둥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입구는 생각보다 좁다.”
한 사람이 고개 숙여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예측하건대, 중간에 한 번 이상 붕괴된 모양이었다.
괴물은 몇 마리나 있을까? 동굴의 크기는 어느 정도나 될까? 위험성이 너무 커서 함부로 몸을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여기까지 왔는데도 딱히 건져갈 걸 찾을 수 없었다.
이제 돌아갈까.
“···수지 안 맞는군. 쯧.”
서지아는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생각했다.
오랜만에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서, 조금은 무료한 일상에 활력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가끔은 이런 유흥이 그녀를 즐겁게 만들어주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그저 이계에서 병신 짓을 하는 사람 하나가 더 죽었을 뿐이었다.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겠지.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리려는 순간.
툭—
무언가가 폐광산 안에서 튀어나와 땅을 굴렀다.
“···?”
서지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서 그걸 바라봤고.
곧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이이······.”
그건 아직도 죽지 않은 메두사의 머리였다.
“으아아아아—!”
그 끔찍한 모습에 서지아는 뒤로 나자빠졌다.
붉고 억센 곱슬머리에 모래가 잔뜩 엉겨 붙었고, 핏발이 잔뜩 선 그 눈이 따로 움직이다가는 금세 서지아에게 고정되었다.
메두사는 목이 잘려도 금방 목숨이 끊어지는 생물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사람을 동상으로 만드는 그 효과도 여전하다는 뜻.
“씨발!”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지만,
까드드득—
어느새 발목은 금속에 둘러싸여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서지아는 꼼짝없이 그 눈빛을 그대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는······.”
놀라 자빠진 자세 그대로 끝내 동상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손이 폐광산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렇게 입구의 모퉁이를 잡은 채, ‘읏차’하면서 허리를 굽혀 나오는 한 남자.
그의 왼팔은 아직 금속 껍데기가 남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움직임에 따라 부스러져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하운드는 다 이렇게 기분 나쁜 녀석들 투성인가?”
강선후였다.
“왜 미행을 해? 기분 나쁘게.”
***
리리는 혼자서 오두막을 지키며 아까 식사 중에 오두막으로 찾아온 그 여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그 미소가 가면이라는 사실을 순식간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여자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상은, 귀가 긴 여성이 까만 후드를 쓴 채 검을 물고 있는 형상이었으니까.
그 영혼의 상이 의미하는 바가 대체 뭘까? 확실한 것 하나는, 그 여자는 활기차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음침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기분 나빴어.’
리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요즘에는 이렇게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생존을 위해서 몸 비트는 삶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강선후가 돌아온다는 걸 금방 깨닫고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당신, 말도 없이 어디 갔다가 이제······.”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평소대로 배낭을 메고 있는 강선후.
왼손에는 동그란 것들이 두어 개 들어 있는 포대기를 들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여성의 형상을 한 동상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그거 뭐야? 취향?”
강선후는 그저 키득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전리품.”
“기분 나빠.”
영문을 알 수 없기에, 리리는 그저 인상을 쓸며 거리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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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사냥개 서지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