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ep64. 다음 탐험 준비 (1)
타닥, 타닥.
강선후의 텐트 앞, 캠핑용 화로 안에서 붉으스름한 빛이 새어 나와 리리의 얼굴을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리리는 모닥불의 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따스함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종족인지라 밤하늘의 차가움을 느끼며 잠드는 걸 더 선호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온기가 없으면 허전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했다. 벌써 강선후와 여행을 다닌 지도 반년이 훌쩍 넘은 탓이었다.
타닥, 탁.
리리는 문뜩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당신, 내가 이 얘기 해 준 적 있었어?”
“어떤 거?”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채 노트에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던 강선후는 고개를 들어 리리를 바라보았다.
“격동의 사계.”
“서지아가 한 얘기네. 뭐, 엘 로크라 벨라가 울리고 나서 찾아올 계절이랬나?”
“응.”
“틀린 소문인 모양이던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아무 일도 없잖아.”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신년의 의식이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신년의 의식?”
“새해가 시작될 때 이번 해의 계절이 어떻게 될지, 농작이 얼마나 풍요로울지 정하는 주신들의 의식이야.”
“의식은 보통 사람들이 신한테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특별한 거지. 신들도 의식을 거행한다는 이야기니까. 주신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며 그 질서에 자신들도 포함시키신 거야. 스스로도 거스를 수 없는 규칙을 만들면서.”
“그럼 그게 언젠데?”
리리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자매달 운데라는 언제나처럼 못 박힌 듯 하늘에 고정된 채 세상을 비추고 있었고, 라 시마는 뭐가 그리 급한지 육중한 몸을 이끌고 천구를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언제나의 밤하늘이었다.
“이제 두 달 남았어.”
“해가 바뀌는 게?”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기억해 둬야겠네.”
강선후의 태도는 자칫 심드렁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리리는 그가 이런 대화를 절대로 잊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강선후는 다시 노트 위에 몰입했다.
“뭐 해?”
“일지. 나도 이런 걸 좀 써 볼까 싶어서. 차소희가 줬던 녹화용 카메라에 찍힌 거 보니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
차소희가 녹화해 달라고 준 체스트캠은 최대한 아껴 썼음에도 배터리가 다 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장면은 다 담겨 있었다.
“기록해 놓으면 나중에 들춰보기 좋더라고. 처음엔 부탁 때문에 한 건데 오히려 내가 차소희한테 뭔가를 배운 느낌이네.”
리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오자 저도 모르게 무릎을 세워 몸을 움츠렸다.
수천의 별이 지상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리리는 성좌가 얼마나 강대한 힘을 가졌는지 바로 옆에서 본 기억을 떠올렸다.
성좌는 바로 곁에 있을 때 태양과도 같은 힘을 뿜어냈다. 어떻게 그런 기운을 품고도 형태와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의문일 정도로 찬란하고 뜨겁고 두려웠다. 그걸 스스로 견뎌 내는 존재였으니 승천을 할 수 있었던 거겠지.
리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다음에 가야 할 곳은 스텔라리움. 별들의 지식 보관소.
그곳은 어떤 곳일까? ‘장소’라고 부를 수 있긴 한 곳인 걸까?
알 수 있는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설레는 거잖아.’
리리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생각하고 놀랐다. 이건 강선후나 할 생각인데.
그와 모험하는 건 즐거웠다. 이제는 부정해선 안 되는 명백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가끔 밤마다 혼자 생각에 잠기면 이런 상념에 젖어 들고는 했다.
내가 즐길 입장이 되는 건가? 숙명을 위한 여정을 그리 가볍게 여겨도 되는 건가?
아니, 그전에 즐길 자격이 있기는 한…….
“리리.”
리리는 고개를 들어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노트를 바라본 채 한 손으로 펜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너무 고민하지 마.”
“…….”
“뭘 그렇게 밤마다 축 처져 있냐? 기운 빠지게.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너무 단순하면 안 되지만 가끔 도움이 될 때가 있어. 내가 이런 말 해도 되는 어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장자니까.”
조금 뜸을 들인 뒤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뭐 때문에 그런지는 물론 모르겠지만.”
머릿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걸까? 그게 가능할 리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는 해낼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던 리리는 문뜩, 자신의 황금의 유물을 아직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리는 가방 속에서 가면을 꺼내 강선후에게 건넸다.
“이거, 당신 거…….”
“네 거지. 네 유물이잖아.”
“필요 없겠어?”
“애초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거뿐만 아니라 다른 황금 유물 전부.”
리리는 엉거주춤 허공에 떠 있던 손을 다시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가면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강선후는 일지를 덮었다.
“내일이면 집에 도착할 거야. 음…… 일찍 자자.”
“굳이? 왜?”
“내가 항상 어디 갔다 오면 쌩 난리를 부려서 더 피곤해지잖아. 집 지키는 사람들 말이야.”
“……그렇지.”
집으로 돌아가면 그 날은 푹 쉬기 힘들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그걸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그런 사사로운 고민 때문에 오히려 상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건 어쩌면 즐거움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 *
나는 우두커니 선 채 리리에게 물었다. 관심 없다는 듯 투레질을 치는 렐릭시나의 콧바람이 지금만큼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리리.”
“어, 응.”
“이게 다 뭘까?”
“당신이 설명해 줄 줄 알았는데.”
베이스캠프. 내가 탐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돌아갈 집이었다. 낡고 방치되어 있더라도 그거 하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중요하다. 그 존재가 모험가와 방랑자의 차이를 만드는 걸지도 모르지.
그리고 우리에게 집이란 베이스캠프에서 조금 떨어진 아늑한 오두막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동료들은 가끔 귀찮았지만 탐험가를 맞이해 주는 고향의 식구라 불러도 크게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간혹 먼 거리를 오래 모험을 하다 보면 잊는 사실이 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고향의 모습은 끊임없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거인 최고!”
“김 씨! 이제 거기 그만해도 돼!”
“오늘 수고했어 김 씨!”
멀리서 작업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누군가가 거인에게 그 말을 통역해 준다.
거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박아넣은 토대를 팡! 팡! 하고 두드린다.
“……김 씨?”
그 거인은 묘지기고, 사람들은 지구 쪽 공사장 기술자와 인부들이었다.
마을은 내가 떠났을 때와 비교해서 엄청나게 발전하는 중이었다. 내가 떠나기 전만 해도, 5층 이상의 건물은 한 손으로 세고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로밖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중앙부에 있는 건물은 거의 그 높이를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저기, 잠시만요. 혹시…….”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돌아보았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이 빠질 듯 크게 뜨고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마을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저 사람 안 잡아도 돼?”
리리가 날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귀찮아질 텐데?”
“……됐어.”
이제 귀찮은 것도 익숙하네. 나는 그냥 궁금증을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묘지기이이!”
내 목소리에 묘지기는 고개를 돌리더니 반가운 얼굴로 걸어왔다. 아니, 반가운 얼굴인진 모르겠다. 항상 뒤집어쓰는 넝마 때문에 얼굴은 제대로 보인 적이 없었으니까.
「오랜만.」
“어, 오랜만이네. 오랜만에 만나는 김에 묻는데 말이야.”
나는 저 멀리 공사현장을 가리켰다. 묘지기는 몇 걸음 성큼성큼 걸으면 닿을 거리인데 내 입장에선 꽤 멀었다. 베이스캠프 중앙 사거리 쪽이었으니까.
“저게 다 뭐야?”
「네가 시킨 것. 잊었나?」
“내가 저런 건물을 지으라 시켰다고?”
「너 묘지기보다 바보 같음.」
거인은 마을 쪽을 가리켰다. 거인이 가리킨 건 공사 현장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도우라 하지 않았나. 네가 묘지기에게.」
“……아, 그랬지.”
기억이 났다.
나는 묘지기에게 사람들의 작업에 손을 보태라고 요구했었다. 지구 쪽 사람들의 이계 진출을 돕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무언가를 성취함으로써 세상에 대해 배워 보라는 의미였다.
거인은 아틀라스의 죽음으로 인해 깊숙한 곳에 분노가 새겨진 종족이었고, 묘지기는 그것에 고통받고 있었으니까.
물론 위험한 명령일 수도 있었다. 거인이 자제심을 잃어버린다면 자칫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거인을 믿었다.
자신이 학대하던 유령 군단에게 용서받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장벽을 극복한 녀석이니까.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던 거다.
어쨌든 간에, 그때는 공사 하나만 도우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니까 그런 말은 안 했었네.”
나는 어떤 공사 하나만 도우라고 했던 건데, 거인은 그 뒤로 내 요구를 묵묵히 따르고 있던 거다.
그나저나.
“김 씨는 뭐야?”
「인간들은 날 그렇게 부른다.」
“…….”
뭔가 괴상하지만, 저런 호칭이 붙었다는 것 자체가 거인이 이제까지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었다.
“잘 지냈나 보네. 수고했어.”
「봐서 반가웠다.」
거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려 터벅터벅 걸어갔다. 아니, 모습만 그렇지 실제 소리는 쿵! 쿵!이지만.
나는 문뜩 떠오르는 게 있어 거인을 붙잡았다.
“좀 배운 게 있어? 지하 묘지에서 유령들이랑 관계는 좀 어때?”
거인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대답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뭐지?
거인은 뭔가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멋쩍다에 가깝나?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하다가 누군가에게 걸린 듯한 모습이었다.
……나중에 지하 묘지에 한번 가 봐야겠네.
그리고 우리는 전날 밤에 예상했던 대로.
“벌써 기운 빠져.”
그리고 방금 리리가 말했던 대로.
오늘은 좀 피곤할 거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있었다.
“가아아앙선후우우우우! 이 배신자야아아!”
“……기운 빠져.”
저 멀리에서 차소희의 목소리를 듣고 생각했다.
아까 달려가던 경비원을 붙잡고 입막음이라도 시켰어야 하는데.
* * *
사실 지구에 있었을 때는 더 오래 자리를 비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이 많다 보니 체감상 년 단위로 자리를 비운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집은 역시 언제 와도 익숙하다. 베이스캠프의 사람들은 날 배려해 준다고 확장 공사를 하는 와중에도 내 작은 숲을 건들지 않았다더라. 고마워해야 하나?
“죽은 줄 알았다? 어? 연락도 없이?”
“이계에서 뭔 연락을 해. 멍청이냐?”
차소희에게 일갈한 뒤 음료잔을 받아 들며 진서연과 하던 대화를 이어 나갔다.
“OWIC이 무너질 것 같다고요?”
“법인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어디에 인수되거나 찢기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리고 OWIC을 인수할 수 있는 회사는 몇 없으니까 크게 바뀔 건 없을지도 모르는데…….”
대충 정치인한테 로비를 넣은 게 잘못된 대다가 내부에서 곪아가던 게 문제 되기 시작했다고 진서연은 설명했다.
흥미로운 이야기일 수는 있긴 한데…… 난 역시 정치, 경제란 헤드라인을 장식할 법한 소식에는 도통 관심이 끌리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딸각, 차소희가 음료잔을 책상 위에 조금 거칠게 내려놓으며 흥분된 얼굴로 말했다.
……잠깐, 흥분된 얼굴이 아니라 취한 거 같은데.
“너, 그거 술이냐? 아직 점심때가 안 지났는데?”
“그게 중요해? 말해 봐. 불사조? 비밀 결사 탐험가 연맹? 데미이블? 그런 걸 들었는데 술을 안 까고 어떻게 버팀?”
“아직 시간 많아. 천천히 이야기하자.”
물론 이번에는 평소처럼 여유를 부릴 순 없다. 다음 목표는 그냥 걷다 보면 도착하는 세상 어딘가가 아니라 별들의 도서관이라는 스텔라리움이니까.
그래도 이 정도 이야기는 할 수 있겠지.
“서지아.”
“나? 왜.”
다리를 꼰 채 소파 한편에 앉아 있는 서지아가 특유의 얇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손에도 잔이 들려 있었는데, 아마 저것도 술인 것 같았다.
어떻게 가족이라는데 이렇게 서로 다를까?
술 좋아하는 것만 똑같네.
“나 네 자매 만났어. 제국 도시에서.”
“푸흡!”
아이 씨 더러워.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