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ep64. 다음 탐험 준비 (2)
서지아는 기침을 멈추고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남의 말을 이 정도로 경청하는 건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서지아는 때론 능글맞고, 때로는 무뚝뚝했다. 나는 능글맞은 쪽이 가면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구에서 오래 생활하며 나름대로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패였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센 척에 가까운 느낌.
어쩌면 서지아와 나는 비슷한 일면이 있었다. 서로 연고가 없는 세상에 더 가까운 삶의 방식을 택한 처지였으니까. 그래서 내 무의식 안에서는 이 녀석을 신경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아멜리아의 말을 듣자마자 이 사실을 반드시 서지아에게 알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뮨 시네라.”
끝까지 내 말에 의심을 버리지 않았던 서지아는 내게서 이 말이 나오자마자 마지막 의심의 꼬투리까지 버렸다.
“아멜리아 뮨 시네라. 방랑자의 가문을 잇고 있다는 연맹 소속 엘프의 이름이었어. 너랑 똑같이 금발이고, 짧게 잘랐고, 눈매가 닮았던데.”
서지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에 저도 모르게 손을 댔다. 지구 쪽에 살게 된 이후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언제나 검정으로 염색한 장발이었지만, 항상 금세 뿌리쪽으로 솟아오르는 순백에 가까운 금발을 숨기길 수는 없었다.
서지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뭐, 상관없는 느낌이네. 기억 안 날 정도로 옛날이야기니까.”
그렇게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느낌으로 다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워하기에는 같이 지낸 기간이 너무 짧아.”
* * *
“아닐걸.”
그날 밤 소소한 환영회가 끝난 뒤, 바람이나 쐬러 마당에 있던 나에게 리리가 이야기해 줬다.
“그리워하고 있을 거란 뜻이야?”
“엄청 동요하고 있을 거야.”
리리는 설명했다.
“엘프는 오래 살아. 필멸자 중에서 그나마 오래 사는 편인 우리 뱀파이어 보다도 훨씬 더. 일생에 한 번은 로크 벨라를 반드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인생에서 만났던 모두가 죽고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남는 종족이란 뜻이야. 친구가 의미 있을 것 같아? 게다가 종족 단위로 뭉쳐서 사는 문화도 없어. 그런 종족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뭐인 것 같아?”
“가족.”
“그리고 그나마 주변에 있는 동족들. 그리고 영원히 존재할 숲과 나무. 이런 말이 있어. 엘프는 자연과 함께 하도록 만들어진 종족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자연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종족이라고.”
나는 잔뜩 몰입해서 이야기하는 리리의 모습에 웃어 버렸다.
“……왜 그래?”
“너 생각보다 서지아를 되게 신경 쓰고 있구나 싶어서.”
리리는 포식자의 상이라는 나와 자신의 인도자 숙명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던 녀석이었다. 다른 인물과의 관계도 그저 합리적인 동료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경계심도 꽤 심했고 말이지.
그런 리리의 입에서 서지아에 대해서 저렇게 장황한 걱정이 튀어나올 줄 몰랐다.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변명마저 웃기네.
어쨌든 나는 사실 별생각 없었다. 전혀 심각하게 여길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거든.
“나중에 여유 생기면 데리고 솔라에 데리고 가 보자.”
이러면 끝나는 문제니까.
* * *
“……좋은 아침.”
차소희가 다크서클을 광대 밑에 걸고 내려왔다. 먼저 일어나 거실에서 뒤늦게 짐을 정리하고 있었던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어 버렸다.
“뭐야. 나보다 더 피곤해 보이네.”
“못 잤어…….”
“밤에 뭘 했는데.”
“네 영상 확인했지. 그런 걸 보고 대체 어떻게 자는데? 나 울었잖아. 머레이…….”
“뭘 울기까지나.”
차소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려왔다. 옆에서 짐 정리를 잠잠히 돕고 있었던 리리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우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닐걸?”
“뭔 소리야?”
내가 묻자, 차소희는 마치 이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을 들고 쪼르르 뛰어왔다.
“봐봐.”
“대체 뭔데 그러는…….”
딱히 차소희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유튜브 채널, 그 배너에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 게 뭔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리리도 와서 보더니 눈을 꿈뻑였다.
그건 나와 리리가 탐험을 떠나는 뒷모습이었다.
대체 언제 찍은 건지,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잘 찍은 건지 모르겠다.
“…….”
“뭐야. 기억 안 나? 내가 괜히 촬영해 오라고 카메라 준 게 아니잖아.”
맞아.
유튜브 채널 시작한다고 했었지.
이 탐험 스토리를 모두에게도 소개하고 싶다고 했었고,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그래서 흔쾌히 수락했던 기억이 났다.
근데 이건…….
뭐지? 이 조회수는?
이 구독자 수는?
멤버쉽? 공짜 영상인데 굳이 돈내고 본다고? 일, 십, 백, 천, 만…… 만 달러 가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더라?
자막이 50개 언어로 달려 있어?
머릿속으로 온갖 바보 같은 생각이 휘몰아쳐 고개를 휘저어 잠재웠다.
내가 며칠 자리를 비웠는지 계산했지만 나는 이런 걸 세는 성향이 아니었기에 금방 관두었다.
차소희는 내 반응이 아주 흡족한 듯했다.
“……야. 차소희.”
“왜?”
“당장 나가서 선글라스하고 마스크하고 모자 사와.”
“넵! 이 시대 최고 인플루언서 강선후님! 미리 사뒀죠 안그래도!”
“……네 월급에서 뺀다.”
“어? 왜에!”
“몰라. 그렇게 하고 싶어.”
“악덕 자본가! 그렇게 살다 언젠가 혁명 당해?”
“어.”
이제는 이계 베이스캠프 근처에서도 데이터가 연결 되어 있으니, 나도 핸드폰을 꺼내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해 봤다.
“…….”
“나쁜 기분은 아니지?”
솔직히 차소희 말이 맞았다. 내가 조난 당하기 전, 아마추어 탐험가로 활동할 때 만들었던 유튜브 채널이 기억 났다. 그때는 구독자 1만도 참 모으기 힘들었는데.
나는 사람들이 이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악마와 악마를 막는 종교 집단, 세계수와 대수림. 이런 요소들은 우리 사회가 이해하기에는 꽤 이질적인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예전에도 한 번 비슷한 생각을 했었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였다. 우리에게 스마트 폰이 생겼을 때도 그랬고, 이계의 문이 처음 열렸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더욱 인상 깊었던 건 이거였다.
“……OWIC이 흔들리는 이유가 이거 때문이야.”
차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계를 금 나오는 광산 정도로 생각하지 않아.”
– 이계에 사람이 있잖아요!
– 이제까지 보였던 것처럼 멍청하지도 않고 미개하지도 않아. 솔직히 나보다 낫다
– 우리 기업이 마음대로 들쑤시게 놔둬도 되는 거냐?
대충 이런 댓글들이 보였다. 물론 모든 의견이 일치하진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의견의 지지자가 많다는 건, 그런 여론이 실제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여론의 키워드는 이거다.
상생.
“네 영향력이야. 내가 말 했잖아. 이건 엄청날 거라고.”
그때 차소희가 한 말은 별로 와닿지가 않았는데.
“내가 말했잖아.”
가만히 듣고 있었던 리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당신은 싫어도 세상을 바꿀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그럼! 그럼!”
차소희가 깔깔대는 건 항상 뭔가 꼽긴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두기로 했다.
우선 챙겨 온 짐을 대충 정리한 뒤, 오랜만에 베이스캠프 구경도 하고 지구 쪽 내 집도 갔다 와보기로 했다.
리리와 차소희를 데리고 마을 쪽으로 향했는데, 입구에서부터 마을의 깃발이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소희가 물었다.
“다음 모험지는 어디야?”
“스텔라리움. 별들의 지식 보관소.”
“……어떻게 가는데?”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사실 골치가 아플 수 있는 문제였다. 이제까지 간 곳중에서 가장 추상적인 곳이었으니까.
단순히 오래 걷는다고 도달할 수가 있는 곳일까?
우선 지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만, 언젠가는 풀어내야 하는 문제였다.
“……?”
그렇게 걷다 베이스캠프 안에 높이 걸려 있는 깃발을 보았다.
이계쪽 사람이 마을에서 머물고 있다는 경고의 깃발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계의 인간인 척 적당히 눈치 챙기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와 있나 보네.”
“요즘 저거 때문에 여관에 접근 주의령 내려 있어. 뭐 카페테리아에서 맨날 뭘 한다는데?”
“…….”
여관주인 윤민지 씨가 이럴 때마다 매번 고생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 사람은 유령 습격 받았을 때도 돌아다니면서 ‘커피 한 잔?’ 이러던 사람이니까. 별걱정이 드는 건 아니긴 하지.
우선 궁금하긴 하다. 우리는 여관부터 들러보기로 했다.
여관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맨 처음 본 건 눈을 감고 헝겁 쪼가리로 컵을 닦고 있는 윤민지와 어색하게 앉아 있는 이계 사람인 척하는 지구 쪽 프리랜서와 하운드들.
그리고 우리가 맨 처음 들은 건.
“~~~~~~~~~~!”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노래하고 있는 어떤 오크였다. 처음 보는 현악기 종류를 들고 있고, 어깨를 흔들면서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쿠크리를 뽑아 들 뻔했다.
“……?”
생각해 보니까 오크는 처음 본다. 리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소를 지었다.
“와…… 진짜 있구나.”
“……뭔데.”
우리는 저 오크가 들을까 염려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차소희도 경직되었다가 우리 말을 경청했다.
“음유시인 오크.”
“……?”
“오크는 극단적인 종족이야. 그래서 폭력적이고 이성이 없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감성적인 부분을 타고난다면 그만큼 극단적으로 감성적인 종족인 거지.”
“그래서?”
“그런 오크들은 세상을 유랑하며 노래를 부르는 걸 숙명으로 여긴대.”
“그놈의 숙명. 별게 다 있네.”
어쨌든 위험하지 않다면 그걸로 되었다. 나는 초월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며 여관 주인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던 윤민지한테 인사나 건네려고 했다.
그 순간, 우연히 저 오크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내뱉는 노래 가사를 우연히 들은 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리리도 마찬가지였다.
리리와 나의 차이점이라면, 나는 눈가가 떨리는 걸 막지 못했고, 리리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
“뭔데? 왜? 뭐라고 하는 건데?”
이계의 언어였기에 당연하게도 차소희는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지 않자, 리리가 선수를 쳤다.
“고대 황제의 시절을 잇는 영웅은 찾아왔다네.”
…….
“파도치는 사막을 지나 불의 장벽을 건너, 색이 바랜 황제 없는 도시로.”
“그 모험가는 검은 머리를 가졌다네. 특별함은 보이지 않았지만, 오오, 그 불타는 열정으로 이제는 별을 쫓으러 갈 줄 누가 알았겠는…….”
“그만. 제발.”
“푸흡.”
이건 차소희의 반응이었다. 리리는 아주아주아주아주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나 말이야.”
“왜.”
“당신이 이렇게 당황하는 거 처음 봐.”
“어. 그것 참 신기하겠네.”
나는 저 오크가 저 모든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는지가 더 궁금하다.
“음유시인은 꿈 속에서 이야기를 선사해 주는 성좌를 섬기거든.”
“……그 성좌가 누군데?”
“나도 정확히는 몰라. 모든 성좌가 다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도 있어.”
됐다.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이곳에서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래도 인사도 남기지 않는 건 너무 정 없는 것 같아 홀을 지나쳐 카운터로 다가갔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노래 가사가 귓가에 때려박혔다.
「별을 쫓는 자가 별을 쫓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
별 역시 검은 머리 모험가의 눈을 보았다네—
천공의 부유자는 그를 위해 무덤으로 가는 길을 닦고—
이 노래에 그 길로 가는 열쇠를 담았다네—
그 열쇠는 바로—」
“……!”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노래 가사 안에 룬 언어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오크 음유시인의 거친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