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ep64. 다음 탐험 준비 (4)
이 바바리안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성좌’라는 이름이 나온 이상, 나는 이 얘기를 그저 지나칠 수 없었다.
내 다음 목적지가 바로 별들의 지식 보관소라 불리는 스텔라리움. 즉, 성좌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뱀파이어 같은 종족은 애초에 성좌의 가호를 받는 종족이라곤 하지만, 나는 그런 것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인간 중에서도 희한하게 성좌와 꽤 연관이 많은 사람이었다.
“…….”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두 개 있었다. 둘 다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성좌. 하나는 확실히 성좌였지만…… 나머지 하나는 여전히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느라 바바리안과 오크가 입을 다물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 사람들이 뭐라고 했더라?
“그러니까, 그 유대의 룬 언어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성좌거나, 성좌가 될 자격을 갖추었거나, 아니면 성좌가 제자리를 내어 줄 정도의 은혜를 입은 사람.”
“첫 번째, 내가 만약에 성좌라면 지금 이 자리에 없겠죠?”
“성좌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현세에 내려와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힘을 가진 자들이지. 애초에 그럴 생각을 하는 자는 성좌가 될 자격 자체를 얻지 못했겠지만.”
엘신을 생각했다. 항상 초연하고 모든 일에 그저 관람객인 것처럼 여유로움 일색이었지만, 내면과 영혼에 담긴 힘, 그리고 품격은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한눈에 있었다.
“어, 그럼 두 번째, 성좌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면 이미 저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지 않을까?”
“자격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승천의 의지가 없다면 진실로 승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 의지 자체가 마지막 조건이라고 할 수 있으니.”
“보통 승천자들은 그것만을 위해 달려가는 자들이니, 의지가 없는 경우는 잘 없겠지만요.”
옆에서 오크가 거들었다.
음.
“……그럼 세 번째. 나 같은 인간이 성좌에게 제자리를 넘겨줄 정도의 은혜를 베푼 사람이겠어요?”
“그게 아니라면.”
바바리안의 눈이 번뜩였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봐도 전사의 눈빛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대체 왜 자기는 음유시인이라고 우기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갈 정도.
바바리안은 깊은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체 왜 성좌가 그쪽에 대한 노래를 우리에게 읊조린 거지? 하필 우리가 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날 밤에.”
“……내 얘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바드란 홀몸으로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는 족속들이오. 온갖 버러지들과 아버지 대자연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지. 그래서 눈만 보면 알 수 있는 게 보통 사람보다 많아질 수밖에 없어.”
“…….”
저게 무슨 뜻인지 나도 잘 이해한다. 나도 같은 처지에 있었던 사람이니까.
“쉴쿠르의 노래를 들은 당신의 눈은, 자기 이야기를 왜 오크 나부랭이가 하는지 궁금해하는 눈치가 담겨 있더군.”
오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멸칭을 사용하는데도 스승의 말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성좌가 개인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경우는 잘 없소. 찬양 일색인 가사가 담기는 경우도 거의 없고 말이지. 이제는 내가 물을 시점인데, 그쪽은 누구요.”
“…….”
저 질문에는 항상 할 말이 없다. 내 입으로 내가 누구냐고 소개하는 것만큼 낯뜨거운 일은 없다고,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험가.”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리리가 대신 대답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에요. 더 이상 뭐 없어요.”
리리는 처음 나에 대해 말할 때 지배자의 숙명, 포식자의 상에 더 의미를 두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그런 단어들을 입에 담지 않은 지 꽤 오래된 거 같다.
바바리안은 짙은 눈썹 아래의 도끼 같은 눈으로 리리와 나를 바라보았다. 리리의 대답이 맘에 들지 않은 걸까?
하지만 곧, 그 눈이 반달처럼 둥그레지더니 입가에 한껏 웃음을 머금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구구절절 수식어 붙이는 건 우리 같은 노래꾼들이나 하는 짓거리지!”
아무리 생각해도 시인이 아니라 진짜 전사 같은데. 제자라고 데리고 다니는 놈도 그냥 오크고.
“……그럼 마지막으로, 나 진짜 궁금한 거 있는데 좀 물어봐도 돼요?”
“뭐든.”
“그거.”
나는 바바리안의 거대한 등에 매달려 있는 양손 도끼가 분명한 그것을 가리켰다.
“이 마을 무기 소지한 채 입장 금지거든요. 간단한 호신 도구가 아니면. 근데 그거 안 뺏겼어요?”
“무기라니!!”
후우웅—!
바바리안이 순식간에 등에 있는 도끼를 뽑아 들었다.
무기 맞잖아. 미친놈아.
자세히 보니 손잡이 부분은 조금 두껍고 평평했고, 그 위에는 다섯 개 정도 되어 보이는 현이 달려 있었다.
“악기다! 안 그래도 마을 경비병들이 빼앗으려고 하던데 설득하느라 진 빠지는 줄 알았소! 바드에게서 악기를 빼앗으려는 경비가 세상에 어디 있어? 대가리를 깨부술까 했네, 이걸로!”
“악기가 왜 그렇게 생겼어요?”
“말했잖소! 우리는 세상의 위협에 홀몸으로 뛰어드는 자들이라고! 호신의 수단이 필요한 건 당연하지!”
그럼 무기 맞잖아. 미친놈아.
* * *
다행히 바바리안과 오크는 참을성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이들을 통해 중요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의 언어는 그 노래를 알려 준 성좌가 대상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하면 되지 왜 이렇게 전달할까요?”
“아무리 성좌라곤 해도 저 위에서 지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많은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오.”
별생각 안 하고 있었던, 그저 친근하기도 했던 엘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풍선 녀석이 왜 그렇게 유령인 것처럼 미스터리하게 굴었는지 엿볼 수 있는 설명이었다. 애초에 대놓고 뭔가 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네.
물론 그 녀석이 진짜로 성좌라는 전제하에 하는 생각이다. 나는 아직도 그것이 성좌가 되었다는 사실을 반 정도는 믿지 않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
아무튼 유대의 룬이 성좌가 내게 말하고 싶은 룬이다?
“그렇다면 그 의미가 뭔지 내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말을 듣고 오크가 이를 드러냈다. 흠칫했지만, 그게 오크식 의문 표현이라는 사실을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의미를 모르겠어요? 룬은 입으로 의미도 안다는 의미가 되는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뜻을 모르겠는 게 아니라, 진짜로 아무런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문자라고 느꼈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곱씹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무래도 준비를 더 서둘러야겠는데.”
“왜?”
차소희가 물었다.
“너 이런 상황에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더 여유롭게 움직이잖아?”
이유는 간단하다. 리리는 눈치를 챈 듯했다.
“궁금해졌거든.”
별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스텔라리움에 대해서.
이것만으로도 빠르게 움직여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다.
우선 내 오두막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바드들은 나에 대한 호기심이 다 충족되지 않았는지, 너무 당연하게 내 뒤를 따라왔다.
그래서 길을 걷는 동안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누가 봐도 싸움꾼같이 생긴 주제에 스스로를 바드라 주장하는 이들은 내 목적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길길이 날뛰었다.
“스텔라리움이라고!”
“왜요?”
“모든 바드들의 성지가 아닌가!”
“……바드들은 노래꾼인데 은근 별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네요.”
“모든 바드는 천문학자기도 해. 마법사가 신의 언어를 탐구하는 이들이라면, 바드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탐구하는 이들.”
리리가 대신 대답했다.
바드가 별을 탐구하는 이들이라니.
음유시인과 별의 관계는 조금 어울리게 느껴지긴 했다.
그리고 이다음에 할 얘기는.
“우리도 데려가 주십쇼!”
오크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뻔해서 예상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내 대답은 당연하다.
“따라오는 건 말리지 않아요. 방해만 안 된다면.”
나는 같이 모험하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다.
같이 모험한다는 건 사실 같은 목적을 향해 힘을 합쳐 달려나간다는 이야기랑은 조금 다르다.
리리와 내 관계가 조금 특별한 거다.
탐험을 같이한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우연히 같은 길을 걷는 두 사람이 만나는 것과 같다.
내가 이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같은 길을 걷고 싶은 사람에게 ‘넌 하지 마’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거다.
이 이야기를 하자 바바리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로 쓰기 좋은 말이로군. 기억해 두겠네.”
우리 세상에선 하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이렇게 좋게 반응해 줘서 다행이네.
점점 말이 짧아지는 건 바바리안식 친밀도 표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 *
아침마다 세계수 쪽을 바라보고 그 영혼과 교감하는 서지아를 신선하게 느끼며 구경하기도 했고, 지구 쪽으로 돌아가 얼마 전에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 모든 모습을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내가 여기서 할 다음 탐험을 위한 준비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바드들에게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러면서 바드들이 평소에 노래 연습을 하고, 가사를 외우고, 별에 대해서 연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스텔리아 인 사티아stellia en satia.」
내가 알아들은 유대의 룬을 종이에 적어 주자 이들은 밤새도록 그걸 붙잡고 연구에 매진했다.
거의 준 거인 수준의 떡대 둘이서 학술적인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니 인지부조화가 올 지경이었다.
“아니, 이건 분명 인사말이라니까요! 스승님은 로그 스타에 대해서 잘 몰라요! 로그 스타는 사람을 놀리며 구경하길 좋아하는……!”
“뭐 인마!”
쾅—!
“야 이……!”
“뭐.”
“……죄송합니다.”
그 방식이 조금 괴팍한 건 어울리지만 말이다.
오크를 힘으로 제압하는 인간이라니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대충 준비가 끝났다고 여겨졌다. 내가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식량이었다. 리리도 내 걱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기간이 예상이 안 돼서 걱정인데. 당신, 생각해 둔 게 있어?”
“스텔라리움 영역권이 문제야. 정보의 바다, 별의 무덤. 이런 수식어가 붙는 곳인데…… 여기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을지, 머무는 기간은 어느 정도일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으니까.”
바드들에게 물어봤지만 이들도 알고 있는 건 전혀 없다고 했다. 별들은 스텔라리움에 대한 정보만큼은 의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숨긴다고 했다.
“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약 세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물자. 물은 내가 만들 수 있으니 무게를 정말 많이 줄인 결과물이었다. 물론 아껴 먹고, 내 피를 리리에게 나눠 주기까지 하는 걸 전제로 둔 계산이었다.
뭐, 이 정도면 되겠지.
“정말 괜찮겠어?”
차소희의 물었다.
“안 될 이유는 찾아내면 항상 있어. 안 될 이유 보고 무언갈 결정하면 집 밖으로 절대 못 나가지.”
“너 그 말 나한테 몇 번 한지 알아? 이제 백 번 채웠을 듯.”
차소희는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서지아는 우리 얘기를 뒤에서 가만히 듣다가, 핸드폰에 고정한 시선을 그대로 둔 채 입을 열었다.
“……나는 걱정 안 해.”
“왜?”
“엘신이 바라보고 있는 인간이 별을 따라가는데.”
서지아는 나를 바라보았다.
“문제가 생길 리가 없지.”
크게 근거는 없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 뒤로 있었던 일은 평소와 같았다.
사람들이 모이고, OWIC 쪽은 지금 상황 때문에 바쁘다며 전화통화로 배웅을 받고, 나는 렐릭시나를 옆에 세운 채 목적지를 바라본다.
남쪽.
내가 언제나 나침반으로 사용했던 별의 무덤이 있는 곳.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바리안. 이름이 뭐예요?”
“나쉬르.”
“나쉬르. 스텔라리움은 별들의 지식이 담겨 있는 곳이라잖아요.”
“모든 지식이 담겨 있는 곳이지. 정보, 지식, 이야기, 역사. 우리가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그럼, 내가 지금 남쪽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려나?”
그 순간이었다.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남쪽 하늘에 떠 있는 수백의 별들이 차례대로, 노란색으로, 파란색으로, 보라색으로, 붉은색으로 반짝였다.
그건 폭발이었다. 언젠가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신성(新星). 물론 여기에서 보기에는 아주 작은 폭발이었다. 밤하늘이라는 호수에 손톱만한 돌을 연달아 던져 만들어진 파장이 퍼져나가는 듯했다.
별들은 그 파장을 퍼트린 뒤에도 여전히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대답했다.
당연히 알고 있지 않겠느냐고.
나는 한동안 우주의 현상을 지켜보다 다시 잠잠해진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발을 내디뎠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