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ep65. 먹구름의 짐승 (1)
낮에는 이동을 하고 밤에는 야영을 한다. 이 원칙은 대부분의 경우 바뀌지 않는다. 낮에는 시계가 넓고 햇볓을 받은 신체가 활성화 되며, 밤에는 위험한 야생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데에만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험가들 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타입을 좀 보았다. 특히 오지를 탐험하는 이들이 그런 성향을 보이는데, 사실 그런 행동을 하는 근거를 나는 알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건 위험하거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휴식을 취한다는 건 에너지 보충을 위해 위험에 노출되는 걸 감당한다는 의미가 된다. 야생에서 가장 목숨을 많이 잃는 순간은 병에 걸렸을 때, 그리고 잠을 자고 있을 때니까.
하지만.
“이! 약해빠진! 새끼가!”
퍼억—!
이제 막 우리 야영지 옆에서 두개골이 쪼개진 곰이 풀썩 쓰러지는 걸 보면서, 이번 여정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바리안은 곰의 배설물을 근처에 흩뿌렸다.
“저게 뭐 하는 거야?”
리리가 물었다.
“맹수의 배설물 냄새는 그보다 약한 녀석들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 게다가 같은 종의 맹수들도 다른 놈들의 영역은 함부로 들어가지 않으려 하니까.”
조금 더럽게 보일 순 있어도 이런 숲속에서는 효과적인 방어수단이라는 거다.
나랑 스타일이 다른 탐험과와 여정을 하는 건 꽤 흥미로웠다.
“저는 숲 낀 계곡 같은 경우에는 웬만하면 밤을 새서 돌파하는 편이었어요.”
“어?”
곰을 순식간에 해체하는 바바리안, 나쉬르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위험한 방법을 쓰시나? 숲이 변덕을 부리면 어쩌려고?”
“그건 크게 걱정 안 하는 편이라.”
“생각보다 막 나가는 타입이시군.”
“그러는 나쉬르는 보기보다 신중한 타입이네요. 뭔가 상남자스러울 줄 알았는데.”
“상남자가 밥 먹여 주나? 우선 살고 봐야 허세도 부리고 노래도 부르고 하는 거지.”
나쉬르가 하는 말은 마음에 들었다.
그 옆에서 책을 펴고 쓰러진 통나무에 걸터앉아 노래 연습 중인 오크가 있었다.
“~~~~~!!”
“마! 시끄러워!”
“아니 시인이 밤에 노래 연습을 안 하면 언제 해요 진짜!”
“방금 곰탱이 새끼한테 뒤통수 벗겨질 뻔해 놓고 그게 할소리냐?”
아무리 생각해도 저 오크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쉴쿨이라고 했나? 이름마저 입에 붙지 않았다.
둘은 야영 때마다 유대의 룬에 대해서 계속 연구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바바리안쪽은 인간이 아니라더라. 바위산에서 살던, 인간과 드워프의 혼혈 민족 출신이라고 했다.
“이 세계에도 혼혈이 있구나.”
“그럼.”
리리가 대답하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나쉬르와 쉴쿨은 밤마다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유대의 룬 연구에 매진했다.
나쉬르는 그 안에 스텔라리움으로 가는 열쇠가 있다는 가설을 세웠고, 오크인 쉴쿨은 모험가의 명예를 찬양하는 그저 하나의 문구일 거라는 고집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이런 생각일 뿐이었다.
“도착하면 그때 고민해 보면 되지.”
열쇠구멍을 봐야 맞는 열쇠가 뭔지를 알 수 있는 법이다. 그 전에 고민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바드들이 연구에 매진하는 동안 나도 마냥 빈둥거리고 싶진 않았다. 이제까지 미뤄 둔 새 물건들 점검을 좀 할 생각이었다.
「포식자의 송곳니」
「목자의 인장」
지배자의 유물 두 개. 하나는 내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 탐험가 연맹에서 교육 받고 있을 한 모험가 지망생의 물건이었다.
엘리엇은 이 물건을 내게 맞겼다.
‘언젠가 목자의 상이 훌륭하게 큰다면, 귀인께서 직접 그 물건을 선사해 줬음 좋겠소.’
이런 말을 남기면서 말이다.
“……엘리엇은 당신이 그 소년의 동기부여가 될 거라고 이야기했었어.”
어린아이가 누군가에게 동경을 품는 건 좋은 일이다.
그래서 난 그 아이에게 내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머릿속에서 나는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어야 하니까.
“그래야 그 애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랄 테니까.”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나는 믿는 내 지론이다.
리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미소 지었다. 조금 뻘쭘해져서 하던 일을 계속 하기로 했다.
나는 포식자의 송곳니와 목자의 인장을 각각 보석으로 바꾸어서 황금 지침 뒷편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리리가 내민 가면을 받아 들었다.
「인도자의 가면」
리리를 고뇌에 빠지게 한 물건. 대체 왜 그러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었으나, 리리의 고민을 존중해 주기 위해 일부러 신경 쓰지 않았다.
가면도 보석으로 바뀌어서 황금 지침의 아홉 번째 홈에 들어갔다.
“이제 세 개밖에 안 남았어.”
리리는 기대와 고뇌가 뒤섞인 복잡한 눈으로 지침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다음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아 봐야겠지.”
딸깍-
지침의 측면 버튼을 누르고, 뚜껑이 열린다. 이제 화살표는 열 번째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 가리킬 것이다.
“……?”
그리고 화살표는 아무 곳도 가리키지 못하고 있었다.
좌우로 흔들리다가는 갑자기 한 바퀴 빙글 돌기도 하고, 왼쪽으로 돌기도 오른쪽으로 돌기도 한다.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불규칙성.
“……황금 유물이 가까이 있으면 지침이 이렇게 움직이지 않아?”
리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건 달라. 그때는 규칙적으로 빙글빙글 돌잖아.”
이건…….
“다음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 못 찾고 있는 거야.”
마치 신호를 놓친 천체 망원경의 안테나가 방향을 찾지 못하고 하염없이 고개를 휘젓는 것과 같다.
“……아마 다음 유물은.”
“스텔라리움에 있겠지.”
스텔라리움이 단순한 공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침이 증명해 준 셈이다.
“이만 자죠?”
“우리는 조금 더 살펴보다가 자겠네. 오크야 저 가서 「별들의 의사소통」 책좀 꺼내와라.”
“네.”
“우리 내일은 어떤 마을에 도착할 거예요. 다종족이 사는 소규모 마을이니까 참고해 주세요.”
오랜만에 들르는 마을이다.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마을이지.
남쪽 마을.
“가서 노래 해도 되나?”
“너무 오래 걸리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말하고 리리와 나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 * *
베이스캠프에서 작은 계곡을 지나 살짝 동쪽의 산속으로 들어가면 작은 평야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방책으로 사방을 막아 놓은 자연 한복판의 마을이 있었다.
나는 뭐 간단하게 ‘남쪽 마을’이라고 불렀지만, 그곳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지.
“선지자시여!”
“우리를 버리신 줄 알았습니다!”
“왜 우리의 기도에 답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아니, 안 들리니까 답 안 해 줬지.
내가 성좌도 아니고…….
내 앞에 모여서 절 하는 사람들.
오크와 바바리안은 그 사람들을 앞에 둔 채, 이제까지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웃긴게.
“그래. 수고했다.”
나는 내게 꽃다발을 가져다주는 소년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거다.
리리가 그 모습을 보며 킥킥댔다.
“오, 당신 좀 익숙해졌어?”
“놀랍게도.”
사람이란 게 진짜 간사하다는 걸 진짜 느낀다.
이렇게 변덕이 심한 내가 성좌의 자격을 갖췄다니. 엘신이 보고 웃겠네.
반짝.
…… 아니 진짜 웃진 말고요.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저게 엘신의 별인지는 잘 모르지만, 뭐 어차피 모르는 거 멋대로 생각하면 그것대로 좋은 거다.
어쨌든 별들이 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는 건 잘 알겠다.
어쨌든 마을에서 무슨 일이 난 모양이었다.
“선지자께서 하루라도 빨리 이 마을에 도달하시기를 일주일째 기도했습니다!”
“……일주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일주일이면 내가 한창 탐험 준비를 할 때가 아닌가?
스텔라리움으로 가기로 결정해 놓고 말이야.
그리고 나는 이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마을에 가득한 풍선.
눈코입이 그려져 있는 풍선.
이 마을 사람들이 윌슨을 묘사하기 위해 가죽공으로 만들어 둔 상징물 따위가 아니었다.
진짜, 지구에서만 찾아낼 수 있는 총천연색의 플라스틱 고무 풍선이, 나이론 실에 묶인 채 마을 여기저기에 출몰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다 뭐요.”
바바리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윌슨에 대해 모르니 더 괴기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평소의 유쾌한 표정이 싹 사라지고 경악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설명해 주세요.”
엘프 사제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천공의 부유자께서 갑자기 마을 내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밤중에 길을 걸을 때, 뒤를 돌아보면 원래는 없었던 나뭇가지에 묶여 있기도, 지붕 위에 묶여 있기도.”
“우물 안에서도 나오셨어요!”
“…….”
대체 이유가 뭐지?
성좌가 지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힘을 써야 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이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 뭐 때문에 화났나?
하지만 이건 다행히 아닌 듯했다.
“저희도 이유를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바로 일주일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보다 남쪽에 뭐가 있는지 아시지요.”
“남부 접경 지대.”
대악마, 본드래곤 가롯이 있었던 곳이다. 가롯의 영향력 때문에 지역 전체가 검은색으로 뒤덮인 죽음의 땅이 되어 있을 정도였지.
“그곳으로 가는 길목이 막혔습니다. 접경지대에서 머물고 있던 연구원들은 일주일째 그곳에 고립되어 있고요.”
바드들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저희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검은 구름과 같기도 하고, 그 안에 번개가 치는 것 같은데, 움직이는 건 분명 생물이었습니다.”
도저히 뭔지 모르겠다. 아무리 떠올려도 비슷한 무언가마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뒤에서 바바리안 나쉬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먹구름의 짐승.”
리리와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도 그곳에 닿았다.
“검은 별을 숭배하고, 하늘에 떠 있는 별을 가리는 기분 나쁘고 검고 축축한 먹구름. 붉은 번개를 품으며 사람들의 시야가, 별들의 시야가 서로에게 닿지 못하게 만드는 게 소원인 부정한 짐승들.”
검은 별.
흑성이 떠올랐다.
“……별이 움직인다면, 그 대척점에 있는 녀석들이 움직이는 것도 당연하지.”
대충 감을 잡았다.
그런 놈들이 내가 남쪽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았고, 내 앞길을 막기 위해 움직인다?
그럼 윌슨은?
“……천공의 부유자께서는 우리를 지켜 주고 있었습니다. 그걸 바로 어제 알았습니다.”
잘했어.
윌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결단을 내린 내 모습에 바바리안이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시오? 그들은 숫자가 많소. 하나하나의 힘도 어마어마하게 강력할 텐데.”
“숫자가 많다라…….”
나는 황금 지침을 꺼냈다. 그 뒤에 박혀 있는 아홉 개의 보석을 바라보았다.
“…….”
생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홍빛 보석을 꺼내 들며 말했다.
「포식자의 송곳니.」
모든 짐승들을 내가 통제할 수 있게 만드는 물건.
“우리도 많은 숫자가 되면 되는 거 아닐까?”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단순할수록 효과적인 법이지.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