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ep66. 별의 무덤 (2)
“여기까지가 남부 접경지대 영역의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아다마와 하바는 간혹 동시에 말하는 경우가 있다. 리리가 영혼을 봤을 때도 둘이 하나나 다름이 없는 정도라고 이야기했었지.
영혼 연결을 한 뒤 그 동화가 강하게 작용하면 하나의 영혼으로 보인다고 리리는 설명했었다. 뭐, 우리 식으로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천생연분이라는 말이겠지.
나는 그 목소리를 등 뒤에 남겨 둔 채 남쪽을 바라보았다.
엘리엇에게 받은 렌즈를 눈에 대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정오였지만 이 렌즈 건너로 보는 하늘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었다.
그리고 남쪽에서는 우리 세상의 시리우스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색의 별이 있었다.
남극성.
지식과 정보의 성좌, 고대 황금의 시대에 활동한 열둘 지배자 중 하나인 초대 기록관 안토니오.
이 렌즈로만 볼 수 있는 그 별을 쫓아야만 스텔라리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니 내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은 한쪽 눈에 렌즈를 대고 남쪽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다.
“……안경으로 만들어 달라고 할걸.”
남쪽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단순히 찬 바람이 아니라 척박하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바람. 건조하고, 아무런 냄새가 느껴지지 않으며, 그 어떤 흔적도 싣고 오지 않는다. 무색무취. 감각이 너무 예민해진 나로서는 꽤 이질적이라 느껴졌다.
물론 이런 기분에 공감할 사람은 없겠지. 나는 잠시 렌즈를 내려놓고 남쪽으로 펼쳐져 있는 드넓은, 너무 넓어서 이런 환경이 왜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대악마가 있는 동안 제국에서는 이 풍경을 알지 못했겠네요.”
“남쪽으로 향하는 길은 이곳이 유일했으니까요. 노미나 산맥의 분맥들이 유독 거칠어 산을 넘어갈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으니.”
저 멀리에서 보이는 산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절벽은 나조차도 별로 돌파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
슬슬 지루해지는지 투레질을 하기 시작한 렐릭시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뒤에서 하바가 앞으로 나섰다.
“아버지. 별빛은 분명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별이요. 저는 시인처럼 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마 이 시대에서 그 누구보다 별을 오래 바라본 이일 겁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계속해서 하늘만을 바라봤으니까요.”
“……지루하진 않았겠네.”
하바는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텔라테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학문은 언제나 최악의 가정을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엘드리치시여.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아마 이번 천 년기 안에 모든 별들이 일시에 스텔리오 경계선을 넘는 대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냥 밤하늘이 좀 심심해지는 걸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그렇죠?”
“그 모든 별이 흑성이 되는 겁니다. 하늘을 가득 채우는 모든 별이.”
나도 모르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파랗게 빛나 별은 보이지 않는 하늘. 하지만 여전히 별은 저 푸른색 베일 뒤에서 반짝이고 있다.
“위대한 암흑시대…… 풍화의 시대 다음에 올 시대는…… 황금이 아니라 암흑일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천 년 뒤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당장 일 년 뒤, 어쩌면 보름 뒤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끝없는 어둠 너머의 일은 천 년 단위의 오차 이내 추측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우리는 서둘러 그 이유를 찾고, 해결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곳에 아마 그 실마리가 있을 거다.
“뭐, 애초에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고요.”
일동 침묵.
전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이 말이 지금 적절하지 않다는 것 정도를 헤아릴 눈치는 있다.
“그것도 각오해 두세요.”
“……우리는 방법을 찾을 겁니다.”
나는 텔라테리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내가 웃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텔라테리는 평소처럼 힘없는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꼬리를 흘리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 태도.”
텔라테리의 굳센 눈빛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뭐, 혼날 걱정이라도 하는 걸까?
“나는 진짜 좋아해요. 좋은 자식들을 남겼네. 아다마, 하바.”
아다마도 하바도 웃었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선명한 미소.
나는 말을 이었다.
“용기는 좋지만 언제나 무력함을 받아들일 각오도 반드시 있어야 해요. 이 우주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베일 뒤에 있을 끝없는 어둠, 그곳을 날아다니는 고래들과 어딘가에서 날갯짓하고 있을 신을 상상해 보고 무수히 많은 별들을 가늠해 본다.
이 모두가 단순히 내 망상이 아니라 저 먼 곳에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별이 실제로 존재하는 위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그저 밤하늘을 장식하는 반짝이는 무언가 정도로 치부하며 살고는 하지.
“이 우주는 우리가 모든 걸 다 통제하기에는 너무 크니까.”
“의외입니다.”
아다마가 말했다.
“아버지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모든 걸 극복할 대상으로 보시는 줄 알았는데요. 실제로 그러시기도 했고요.”
“하.”
명계왕과 싸우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구한 게 바로 이 둘이었으니까. 추억이네. 정작 나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렐릭시나의 위에 올라탔다.
“무운을 빕니다. 아버지.”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했다.
조금 길을 가다가 리리가 물었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어.”
“저 사람들이랑 같은 생각 하는 거야?”
리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하고 내 주제를 아는 것 중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어. 히말라야산맥을 처음 갔을 때 그 산에게 배운 거거든.”
“히말라야산맥?”
“그런 게 있어.”
오래전 아직 돌아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던 시절을 떠올리자 웃음이 나왔다.
“할 게 없어지고 지루해지면 같이 가 보자. 너도 꽤 좋아할걸. 너 살던 동네랑 분위기가 비슷한 면이 있거든.”
리리는 말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 * *
모험이란 술자리에서 썰로 풀 때는 박진감 넘치고 자동차가 수시로 날아다니는 비포장 레이싱 같지만, 사실은 아주 반복적이고 길게 늘어지는 철로를 다음 역이 나올 때까지 달리는 것과 같다. 길의 모양새가 지루하고 개성이 없을수록 이상적이고 안전하다.
매일 밤 남은 식량을 확인한다. 물은 룬으로 해결하고 사냥이 성공하는 날은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고기를 보존처리 한다.
1회당 이동 거리를 최대한 늘리고, 체력을 보존해서 식량을 최소한으로 소모한다. 나는 거기에 현대의 칼로리 계산법을 조금 접목시켰다. 리리는 그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방식하고 납득하고 조용히 따랐다.
그동안 바드들은 밤마다 유대의 룬을 계속해서 연구해 나갔다.
『스텔리아 인 사티아stellia en satia』
윌슨이 내게 전달해 줬다는 이 문장.
“옛말에 이런 말이 있어. 아시오?”
“뭐요?”
“말도, 동료도, 신도 영웅을 배신하지만, 노래꾼만큼은 영웅을 배신하는 법이 없다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 말을 증명해 보도록 하지!”
나쉬르의 호언장담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쉬르와 쉴쿨이 나를 바라보는 게 달라지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계속해서 안토니오의 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 쓰고, 탐험의 안정도를 유지하기 위해 이것저것 체크하면서 차분하게 나아간다.
나는 그런 반복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예상치 못한 이벤트는 여전히 적응되는 법이 없다.
“……이게 다 뭐야 대체.”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보이기 시작한, 남쪽으로 가면 갈수록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한 폐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나 보던 고대 황금의 폐허는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눈동자가 흔들리기 전에 가슴이 먼저 뛰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이 시대의 폐허인가?
그것 역시 아니었다.
이건 현대와 고대 사이에 여전히 존재했던 문명과 사람들의 흔적이었다.
“……리리.”
“응.”
“남부 접경지대의 남쪽이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
“……전혀.”
“나쉬르?”
“마찬가지지. 우리 말고 모두가 아무것도 모를 거요. 극남쪽의 사람들만이 스텔라리움으로 떠날 수 있다는 노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긴 했지. 그게 남부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이었는데…….”
나는 쉴쿨을 바라보았고, 쉴쿨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을 마친 우리는 남쪽으로 계속 향했다. 폐허를 좀 뒤져 보았지만 쓸 만한 건 보이지 않고 더욱 불가사의함만 남을 뿐이었다. 심지어 어느 순간 사람이 증발해 버린 듯, 바로 직전까지 사람이 살다가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하는 흔적마저 발견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멈춰 섰다.
“…….”
그리고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왜 멈췄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이정표가 되어 주었던 남극성, 안토니오의 별이 어느 순간 정오의 위치, 하늘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야.”
직감적으로 느꼈다.
단순히 두 발로 걸어서 별에 무덤으로 향할 수 있는 건 여기가 한계라는 것을.
이곳에 바로 별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이 세계의 남극점에 있었다.
우리 세상처럼 눈보라가 몰아치지 않았다. 이곳을 휘감는 바람은 아무런 냄새도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흙먼지 냄새마저.
나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렌즈를 치웠다.
여전히 파란 하늘이 보였다.
“…….”
그때, 나쉬르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실, 그쪽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숨기고 있었던 게 있지.”
나는 나쉬르를 바라보았다.
“……유대의 룬의 비밀을 풀었어요?”
“아주 조금이지만, 핵심은. 애초에 나하고 이 녹색 곰팡이를 위한 룬이 아니었잖소. 이 룬의 마지막 열쇠는 바로 그쪽이지.”
“…….”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그 룬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었다. 다른 룬처럼 어렵지 않게 발음할 수도, 그릴 수도 있었으니까.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스텔리아 인 사티아stellia en satia』
그냥 의미가 없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건 그냥 의미가 없는 문장이었다.
“그건 당연하지.”
나쉬르가 말했다.
“그 성좌가 알려 준 노래. 그다음 가사를 깨달았소.”
“그게 뭔데요?”
나쉬르는 쉴쿨을 바라보았다. 별의 노래. 그 마지막 구절을 읊조릴 기회를 제 애제자에게 넘겼다.
쉴쿨은 마지막 질문을 노래로 화답했다. 중후한 저음, 걸걸한 목소리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노래에 어울렸다. 지난번과는 달랐다.
* * *
「별은 잊지 않았다.
승천의 기회마저.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던 제 친구에게 양보한 한 인간에 대해서.
이제는 별이 될, 아무것도 아니었던 존재는 친구에게 물었다.
어째서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기회를 놓느냐고. 왜 나를 하늘로 올려보내냐고.
그때, 인간은 대답했더랬다.」
노래는 거기에서 멈췄다. 나는 노래꾼이 아니고 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는데도, 저 다음에 들어갈 마지막 대사를 알 수 있었다.
쉴쿨은 말했다.
유대의 룬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노래를 내린 별은 내가 그 언어의 의미가 뭔지 알아서 깨달으리라 믿기 때문이었다고.
“……굳이 그렇게 어려운 방법을 쓸 이유가 있었을까? 그냥 말해 주면 되는 걸 가지고.”
“그 별은 장난기가 아주 많은 양반이더군.”
나쉬르의 말에 피식 웃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는 눈을 감았다.
신기하게도, 머릿속에서 노래가 울려 퍼졌다.
「별은 잊지 않았다.
승천의 기회마저.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던 제 친구에게 양보한 한 인간에 대해서.
이제는 별이 될, 아무것도 아니었던 존재는 친구에게 물었다.
어째서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기회를 놓느냐고. 왜 나를 하늘로 올려보내냐고.
그때, 인간은 대답했더랬다.
“별이 아닌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stellia en satia.”
언젠가 이 몸뚱어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더랬다.
모든 모험의 종착지가 그곳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눈을 떴고 쉴쿨이 말했다.
“……이미 성좌거나, 성좌에게 은혜를 얻었거나.”
대체 무슨 표정인지 모를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리리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성좌의 자격을 이미 갖추었거나.”
노래꾼들에게 관용구라도 되는 듯 퍼져 있는 이 말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었다.
“……별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조건이었구나.”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러니까 별의 무덤을 발견한 사람이 아무도 없던 거구만.”
지상에 남아 있는 별이어야, 그게 가능하니까.
물론 내가 그거란 소리는 아니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진 파란 하늘이 우주의 강풍에 씻겨 날아가기라도 한 듯 사라지고, 새까만 하늘만이 내 머리 위에 있었다.
별은 가까웠고, 그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하늘색으로 강렬하게 빛나는 하나의 구형 천체가 있었다.
우리 세계의 달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저렴한 비유지만, 대충 올림픽 운동장 정도의 크기려나.
그 천체의 북극점과 남극점에서는 천체 그 자체보다도 길게 늘어진 빛줄기가 양쪽으로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었다.
그 찬란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도 너무나 고요했다.
마치 무덤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들고 있던 렌즈를 잠시 바라보다, 조금 힘을 줘 하늘로 던져 보았다.
떨어질까 싶던 렌즈는, 서서히 위로 치솟아 그 별을 향해 ‘떨어졌다’. 그 속도는 별로 빠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별의 무덤의 중력에 몸을 맡겼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