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ep66. 별의 무덤 (3)
리리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리리는 자신의 저택에 있었다.
어머니가 눈앞에 있었다. 황금의 시대가 끝난 뒤부터 내려오던 신카 가문의 오랜 숙명을 상징하는 가면을 쓴 채, 리리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거울로 향해 있었다.
거울 속의 어머니는 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딸. 신카의 계승자. 황금의 유지를 이을 숙명을 짊어지느라 수고가 많구나.”
“……나는.”
리리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의지로 하는 말이 아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숙명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게 나의 황금이니까. 그것만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와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지킬 수 있겠니? 지치진 않았니?”
“지치지 않았어요.”
“그럼, 이뤄 낼 수 있겠니?”
“나는, 이뤄 낼 수…….”
“너의 황금, 네가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뜨거운 빛.”
도이나 신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가면의 무표정한 얼굴이 리리에게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걸 붙잡을 수 있겠니? 내 딸아.”
꿈이 끝나기 직전,
리리는 아마 자신이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았다.
“……허억!”
눈을 떴다. 그리고 그 눈앞에는.
“으아아!”
녹색의 덩어리 같은 게 눈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리리가 놀라는 모습에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뒤를 바라보며 외쳤다.
“깨어났습니다, 스승님!”
“깨어났다는군!”
리리는 어느새 자신이 정신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다. 빠르게 이성을 되찾은 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땅이 멀어지고 하늘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땅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다. 아래라는 방향은 이제 우리 세상보다는 별의 무덤 쪽에 더 가까웠으니까.
그들은 별의 무덤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이 정도라면 좀 아프더라도 견딜 수 있는 충격일 텐데.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쉴쿨도, 나쉬르도 당황하고 있었다.
그제야 눈치챘다.
콰아아아아아아—!
천체의 북극점과 남극점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렵하고 기다란 빛줄기가 그들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천체의 자전축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강선후 일행의 접근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저게 대체 뭡니까, 스승님!”
“내가 아냐!”
“노래꾼이 별에 대해 모르면 자격 박탈이라고 그랬잖아요!”
“말대꾸?”
“이 상황에서 그게 할 말이냐! 진짜 근육이 뇌를 먹어치웠나 보네!”
다시 싸우기 시작한 둘을 우선 무시한 채,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낙하하면서도 하얀색에 가까운 하늘색 빛깔의 찬란한 빛줄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열기가 느껴졌다. 그 빛줄기는 그저 조금 밝은 빛이 아니었다. 뜨거운 기운을 품고 있는 게 명백해졌다.
만약에 저것에 휩쓸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리리는 어느새 엄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혈술로 저걸 막을 수 있을까? 가면을 쓴다면 가능성이 좀 높아질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면.
“시도해 봐야 해.”
리리가 어금니에 힘을 준 그 순간이었다.
강선후는 자신의 가슴에 달린 배지를 슬쩍 바라보았다.
불사조의 둥지지기를 상징하는 기사의 휘장.
불사조는 강선후에게 굳이 찾아와서 이 휘장을 건넸었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휘장은 그저 상징일 뿐인가?
그렇다면 강선후는 왜 저 휘장을 가슴에 매단 거지?
“……당신은 상징물 같은 건 그냥 내팽개치고 다녔잖아.”
‘쌀 한 톨 무게도 줄일 수 있으면 줄여야 하는 게 탐험인데 그런 걸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건 쓸데없는 짓이야.’
항상 이렇게 말했던 게 강선후란 사람이었다.
그런데 강선후는 저 배지를 그렇게 치부하지 않았었다.
단순히 불사조와의 관계를 존중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 강선후는 존중을 저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상징보다는 행동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뿐이다.
“……그 배지에 담긴 힘이 뭐야?”
떨어지면서 말했다. 강선후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신중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빛줄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천지가 요동치는 소리가 점점 거대해지고, 빛줄기가 바로 곁에까지 다가온 그 순간,
피부가 다 타 버릴 듯한 열기가 느껴진 것 같았던 찰나의 순간.
강선후의 배지에서 새빨간 불꽃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꽃은 구형으로 펼쳐져 소용돌이쳤다. 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줄기의 한가운데에 들어갔지만, 그들의 몸에 닿는 건 없었다.
빛줄기는 미끄러지듯 그들의 몸을 피해 갔다.
불사조는 생명의 힘을 상징하는 생물이었고, 생명의 힘이란 불꽃이었다.
불사조는 제 기사에게 불꽃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게 기사와 불사조의 서약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아슬아슬했어.”
“……대체 왜 말 안 한 거야?”
“뭐가?”
“그런 힘이 있었다는 거.”
강선후는 이제 바로 앞까지 다가온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
“굳이 자랑할 필요 없잖아.”
“그건 자랑이 아니라…….”
“다들 충격에 대비!”
땅에 닿기 직전, 리리는 몸을 돌려 가볍게 착지했다. 강선후는 조금 둔탁하게 떨어진 뒤 낙법으로 충격을 흡수했다. 어느새 몸에 두른 기생체의 가죽 망토가 효과적으로 그를 보호했다.
나쉬르는 땅에 내팽개쳐서 그대로 굴렀다.
“으아악!”
오크 특유의 단단함을 믿은 듯했다.
쿠우웅—!
나쉬르는 그저 땅에 두 발을 대었다. 무릎을 조금 굽혔을 뿐이었다.
“……괜찮아요?”
“시인은 떨어져 죽지 않는다.”
“그렇게 착지하면 무릎 아작 나요. 낙법이라도 배워두는 게 어때요?”
“시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또 그만큼 단단한 부위가 바로 무릎이라고 할 수 있지.”
“순 억지네.”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리리는 위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빛의 기둥이 끊임없이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천체의 표면 부근은 저 영향에서 자유로웠다.
리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은 빛줄기를 제외하면 새까만 풍경과 하늘을 수놓은 별들뿐이었다. 우리 세상도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숨은 쉴 수 있었다. 모든 현상이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다른 차원에 들어와 있다는 가정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다.
리리는 고개를 내려 땅을 바라보았다.
“……유리.”
리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흔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이 천체의 표면 전체가 유리나 얼음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끄러운 형태였다. 주변의 사물을 모두 반사하는 게 거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강선후는 몸을 낮춰 바닥에 손을 대보았다.
“금속 종류인 것 같은데. 내가 이 부분 지식이 많이 없다 보니 자세히는 모르겠네.”
두 바드는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이 공간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느끼고 있었다.
“별의 무덤. 모든 시인들의 꿈.”
“제가, 살아생전에 이곳에 올 거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 본 적 없는데 말이에요.”
쉴쿨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오크가 저런 표정을 지으니 살짝 부담스러워져 리리는 강선후에게 조금 더 집중했다. 강선후는 어느새 몸을 일으켜 지평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 보자.”
강선후를 선두로, 일행은 천체의 적도를 지나 북극점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향하기 시작했다.
강선후는 낯선 환경에 불안한 기색을 보이는 렐릭시나를 달래면서 천천히 진행했다.
이상한 점은 금방 발견되었다.
“이게 다 뭐지?”
나쉬르가 먼저 궁금증을 표했다.
맨 처음에는 그저 깨끗한 거울인 줄 알았던 천체의 표면은 적도 부근으로 갈수록 울퉁불퉁해졌다.
땅에서 무언가 솟아오른 모습이 아니라, 위에서 떨어진 무언가의 잔해가 이 표면에 잔뜩 존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들 중 하나로 다가가 보았다.
“……이상하군.”
“알 껍질 같은데요.”
“용의 알이 아니면 이 크기가 설명이 되냐?”
주변의 잔해 중에서 그나마 원본의 형태가 많이 남아 있는 건 둘로 쪼개진 알 껍질의 형태였다.
하지만 나쉬르의 말대로 그건 너무 컸다. 지름이 사람의 키보다 최소 1.5배는 되는 듯한 크기.
“재질이 뭐지? 돌인 거 같은데 내부는 또 맨들맨들하네요.”
“……운철.”
리리가 대답했다.
“운철이야. 가끔 떨어지는 운석을 쪼개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철. 그걸로 만든 날붙이는 성능이 압도적이어서 성좌의 성물이라고 불리곤 했는데.”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였다.
강선후는 말했다.
“……이건 성좌잖아. 그럼.”
성좌 그 자체일 리는 없다. 하지만 최소 그 일부, 어쩌면 잔해.
어쩌면.
“……사체.”
그 누구도 입 밖으로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강선후가 대신했다.
별의 무덤.
시인들은 이 말에 로망을 느끼고는 했었다. 성좌가 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성좌는 필멸자가 불멸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건 많은 필멸자들의 환상과 희망이었기에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별의 무덤이라는 전설 속 지역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 이름은 상징적일 거라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도 낭만적인 어떤 비유일 것이라고 이 세상의 모두가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이 자리에서 냉정한 결론을 내리는 자는 오직 강선후 뿐이었다.
강선후는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잔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성좌들이 이렇게 많이 죽었다니.”
그러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빛이 약해지니 언젠가 성좌들이 죽을 수 있을 거라는 걱정은 조금 틀렸네요.”
나쉬르는 강선후에게 동조할 수도, 그렇다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이미 죽고 있었네. 생각보다 많은 별들이.”
“……하지만, 이상한 점이 많잖아.”
그나마 침착함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던 리리가 입을 열었다.
“성좌가 죽으면 흑성이 된다고 했어. 만약에 하늘에 올라간 성좌가 뒤늦게 흑성이 되었다면, 우리 모두가 그걸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흑성이니까.”
강선후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떤 빛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아니 어쩌면 주변의 빛마저 빨아들일 정도로 완벽한 어둠이잖아.”
리리는 예전에 보았던 흑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말이 맞았다.
공간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주변을 왜곡시키는 어둠.
그게 흑성의 정체성이었으니까.
강선후는 하늘을 계속해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르지. 저 위에 흑성이 얼마나 있는지.”
“…….”
“하나일 수도 있고, 둘일 수도 있고.”
열일 수도, 백일 수도.
어쩌면 수천에 이를 수도.
별과 별 사이에 존재하는 어둠.
그곳에 뭐가 있는지 생각해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곳에 무언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가 보자. 우리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잖아.”
다시 움직이려는 찰나.
별의 무덤의 북극점을 향해 몸을 다시 돌린 그 순간, 저 멀리 누군가 서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나쉬르는 등 뒤에서 이미 도끼를 뽑은 상황이었다. 무기를 들지 않은 건 강선후가 유일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낡은 아마포 망토를 뒤집어쓰고, 수염이 듬성듬성 난 중년 남성의 턱.
망토 후드를 뒤집어쓴 채 지팡이와 지팡이에 달린 등불을 이리저리 흔들며 다가오는 남성.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다가오더니 멋대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의외로, 쾌활했다.
“오!”
“…….”
“그 해골이 한 말이 진짜 사실이었군. 별의 무덤에 진짜 사람이 찾아오다니. 아마 처음이지 않나? 황금의 시대가 끝난 이후로.”
“……?”
일부러 들으라는 듯 말하는 그에게 강선후가 물었다.
“누구세요?”
“스승님의 제자입니다.”
“……그 스승님이 누군데요?”
그자는 오히려 이 질문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이 누구에게로 가는 길인지 다 알고 온 것 아니었습니까?”
그 순간, 일행은 이제까지 뭘 따라왔는지 깨달았다.
남극성.
최초의 기록관, 안토니오 슈거의 별.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