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
24화 ep9. 사냥개 서지아 (3)
***
메두사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육체적인 능력도 꽤 강한 동물이지만, 금속을 부식시키는 능력이 있다면 사실상 절대우위에 있는 셈이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끌려가 줬다.
음식이 자신의 목을 노릴 거라 생각하는 동물은 없었고, 그렇게 메두사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었다.
안쪽에서 금속을 천천히 부식시키고 몰래 다가간 뒤 급소를 슥삭.
간단한 일이었다.
벽에 대충 기대어놓은 포대기를 바라보았다.
“···아깝네.”
메두사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아주 조금만 내 것으로 만들어도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 녀석들의 혈액은 맹독이라서 먹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필요한 건 얻을 수 있겠지.
“리리. 다 모았어?”
“풀이나 주우러 다니는 신세가 되다니.”
아직 죽지 않은 나뭇잎, 벌레 등을 천 주머니에 담아 오는 리리. 난데없이 벌레를 잡아달라 하니까 불평은 조금 했는데, 그래도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잘 따르는 게 기특했다.
나는 서쪽 폐광에서 가져온 포대기를 조심스럽게 펼치며 말했다.
“좀 징그러우니까. 보기 싫으면 눈 돌려.”
리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는지 목을 슬쩍 빼서 바라보았다.
“읏!”
그리고는 서둘러 몸을 뒤로 빼내는 리리.
징그러워서가 아니라, 이 안에 들어있는 녀석들의 눈빛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아는 탓이었다.
“대체 어디 가서 무슨 짓을···.”
“동화석 필요하다며?”
한 편에 놓여 있는 네 개의 칼날 발톱을 가리켰다.
“저걸로 장비 만들려면 동화석 있어야 한다며?”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주머니의 가장 위쪽에 있는 머리를 꺼내며 말했다.
“이게 동화석 만드는 메두사야.”
“당신 진짜 이상해.”
리리가 아주 학을 떼며 말했다.
“동화석이 필요하다고 이 괴물을 잡아 오는 인간은 당신밖에 없을 거야.”
나는 그저 웃고는 대가리 하나를 꺼내서 나뭇잎과 곤충 무더기를 바라보게 했다.
메두사의 대가리는 잘려도 바로 죽지 않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특수 효과가 그대로 남아 있는 독종이다. 실제로 뱀은 목이 잘려도 무언가를 계속 무는 습성이 있는데 그거랑 비슷한 이치라고 볼 수 있지.
그렇게 고르곤의 핏발 세운 시선이 벌레들을 향했고.
가각, 가가각—
귀에 살짝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벌레들이 동화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거지? 동화석.”
빛의 방향에 따라 오색으로 빛나는, 돌과 금속의 중간 정도 원석을 바라보았다. 벌레의 모양인데, 이렇게 반짝반짝하니 꽤 예쁘게 느껴졌다.
“이게 기생체의 발톱을 제련하는 재료라는 거지?”
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질이 다른 두 금속 사이의 어그러트려 하나로 만들어준대. 나도 정확히는 몰라.”
“이제 이거 전부 들고 버뮤다 숲으로 가면 되는 거네?”
다음 차례는 칼날 발톱과 동화석을 들고 버뮤다 숲으로 가는 일이었다.
숲의 힘이 있어야 이 작업을 끝낼 수 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니 한 편에 놓여 있는 등신대 동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정확히 말하면 동상이 아니었다.
“서지아라고 했던가?”
맨 처음부터 수상하게 다가왔고, 내가 무시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미행을 하던 사람이었다.
서지아는 지금 매우 정교한 동상이 되어 있었다. 경악한 표정, 흩날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헤드폰까지 전부 광택 나는 이계의 금속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니, 동물 귀 헤드폰이라니.”
내가 이계로 끌려가기 전, 그러니까 현실 세계 기준으로 2년 전에 저걸 끼고 다니는 사람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센스가 좀 독특한 사람이려나?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었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머리 부분을 양손으로 감싼 뒤 정신을 집중했다.
오 분 정도 지났을까? 부식되어 약해진 금속이 빠각하고 부서지며 땅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허억!”
서지아의 머리가 자유로워졌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서지아. 끝내 그 시선은 내 얼굴에 도달했는데, 동시에 독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뭐 하는 거예요?”
“······.”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질문에 순순히 답해주면 풀어줄까 말까 생각은 해볼게.”
“이거 범죄인 거 모르세요? 지금 선후 씨가 뭘 하고 있는 지···.”
“너 하운드잖아. 왜 자꾸 발뺌하는 거지?”
“···.”
서지아의 순간적인 표정 변화를 눈치챘다.
이 정도로 포커페이스를 할 줄 알다니, 보통 선수가 아닌 모양인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왜 날 하운드라고 생각하는······.”
말을 다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 얼굴에 메두사의 머리를 들이밀었다.
“으아아! 무슨, 자, 잠깐!”
서지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의 동상이 되었다.
***
챙강—!
서지아는 눈에 확 들어온 빛에 얼굴을 찡그렸다.
다시 껍데기가 깨진 것.
“이제 정신 좀 들었어?”
아까 전의 자세 그대로, 강선후는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잠깐만요. 우리 얘기부터······.”
카각, 카가가각—
서지아는 애써 미소 짓는 동상이 되었다.
***
챙강—
“허억—!”
“정신이 들었어?”
“이 개새끼야! 장난쳐? 사람 말을 우선 듣고······.”
카각, 카가가각—
서지아는 분노로 가득 찬 동상이 되었다.
***
챙강—
“허억!”
서지아는 심호흡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상의 안은 정말로 미칠 것만 같았다. 앞도 보이지 않고,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건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
서지아는 그제야 자신이 무언가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장작이 놓여 있었다.
“예전부터 진짜 궁금했던 게 있었어. 메두사한테 당한 동물은 외부 피해에 완전 면역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오히려 방어력은 최고가 되는 셈인데, 그게 열기도 막을 수 있으려나 싶어서.”
“자, 잠깐······.”
서지아는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메두사의 대가리를 들어 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카각, 카가가각—
잘못 걸렸다.
이 새끼 미친놈이다.
***
물론 진짜로 불에 태워볼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나는 싸이코가 아니다. 나름대로 인도주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동상이 되었을 때 이곳저곳을 살피며 소지품을 확인했다. 동상 상태는 굉장히 정교해서 그 상태로 주머니 안쪽도 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이프가 발견된 시점에서 하운드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내 이름이 강선후라는 건 OWIC밖에 모른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나를 분명 강선후라고 불렀지.
뭔가 정보통이 있다는 뜻이고, 보통 사람이 절대로 아니라는 의미가 되며, 그렇다면 내게 접근한 의도도 굉장히 불순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제 정신 좀 차렸으려나? 다시 머리 부분의 금속을 제거했다.
“허억!”
“정신 좀 차렸어?”
서지아가 독기를 가득 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이런 눈을 할 수 있나?
욕지거리를 하려나? 침을 뱉으려나?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협조할게요!”
“······.”
“다 알려줄게요! 그리고 앞으로도 자기한테 협조할게요! 맹세합니다!”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이건 넘겨짚은 거긴 한데, 네가 나한테 부하들 보낸 그 하운드 두목 맞지?”
“나는 상품을 찾아오라고 한 것뿐, 습격하라고 한 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이젠 포기했어요!”
“꽃은 네가 보낸 거잖아.”
“잠드는 꽃이잖아요! 몰래 가져오라고 한 거예요. 이 업계에서 소란 피우면 장사 오래 못하니 애초에 그런 짓 못 해요! 애들이 시키지도 않은 짓 멋대로 했던 거고.”
“의도가 아니었으니 입 닦고 없던 일로 해달라?”
반응을 보고 싶어서 약간의 협박을 해보았는데, 의외로 서지아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협조한다고 했잖아요. 하운드 협회, 알죠? 거기가 이계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얼마나 꿀통인지 들었을 거고요.”
하운드 협회에 이런저런 비밀 정보가 많이 오간다는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폐쇄적인 조직이라는데.
“그래서 다른 사람들 못 오게 꿀벌들이 지키고 있잖아? 나는 쏘이는 거 안 좋아해서 벌집은 쑤시기 싫어.”
“내가 꺼내올 수 있어요.”
서지아의 눈빛이 꽤나 반짝였다.
“하운드 협회가 가지고 있는 정보, 그 안에서 나도는 이야기를 전부 얘기해줄 수 있어요.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쭉.”
“···내가 뭘 믿고 널 풀어줘? 뒤통수에 칼질해도 안 이상할 텐데.”
“뭐야. 모르는 건가?”
오히려 서지아가 내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뭘 모르는데?”
“하운드는 이제 자기 못 건드려요. 애초에 나도 건드릴 생각으로 접근한 게 아니었고. 건들기 전에 썰리든, 건든 다음에 썰리든, 건들기만 해도 OWIC한테 소리소문없이 썰릴 텐데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어떻게 그래요?”
“무슨 소리야? 설명해.”
“OWIC이 하운드 씬에 지금 으름장을 놨어요. 자기 건들다가 걸리면 팔다리 다 잘라놓겠다고.”
“······.”
표현이 퍽 거칠지만,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알 거 같았다.
왠지 지난번 이후로 사무소 주변이 좀 조용해진 것 같았는데, OWIC 쪽이 뒷세계에 힘을 썼던 모양이었다. 약속을 지킨 거지.
“어떤 식으로 협조할 건데? 그쪽이 나한테 도움이 될 거라는 보장이 있어?”
“······.”
서지아는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베이스캠프 남쪽으로 OWIC이 조사 사업하는 것 정도는 알죠?”
“알지. 북동서 다 막혀서 남쪽이 유일한 활로라며.”
“그쪽으로 도보로 일주일 정도 거리.”
서지아가 입술을 핥았다.
“거기에 이계인들의 마을이 있어요.”
“···계속 설명해 봐.”
“OWIC이 숨기고 있어요. 그놈들이 숨기는 게 이거 하나만 있는 건 아니긴 하지만.”
“OWIC은 비밀이 많나 보네?”
서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들은 몰라요. 그놈들이 얼마나 거대하고 비밀이 많은 놈들인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남들보다는 잘 알아.”
비밀이 많은 기업이라.
생각해보니 차소희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이거다 싶었는지 서지아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대신에 콩고물 떨어지는 것만 적당히 주면, 나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으니까. 응?”
생각을 해보았다.
적당히 잡정보 수집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흠.”
나쁘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내가 본격적으로 이계 활동을 시작하면 그만큼 지구에 관련된 건 신경 쓰기 힘들어질 테니까. 손발은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다.
지출이 좀 생길 거 같긴 한데 조금 더 신경 써서 돈을 벌면 충분히 해볼 만한 투자라고 여겼다.
“대신에, 조건.”
“응, 응.”
“만약에, 네가 단 한 번,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나한테 손톱 들이밀면······.”
“죽인다고? 알겠어요. 나도 눈치가 꽤 있거든. 그리고 내가 자기를 왜 건드려? 어떤 방식이든 거래처 하나 더 있는 건 나한테도 이득인데.”
죽인다는 말은 솔직히 하기 힘들다. 가능하면 사람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서지아 쪽이 이런 상황에 더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서지아를 둘러싼 금속을 완전히 부숴줬고, 서지아는 기지개를 켜며 조금 신음하더니 말을 이었다.
“허리아파···. 사실, 애초에 내 목적은 자기랑 일하는 거였는데.”
“왜 나랑?”
“다른 떨거지들이랑은 다른 거 같았으니까요. OWIC에서 침 흘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하긴 하지만.”
그러더니, 여유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고는 헤드폰의 버튼을 누르더니 손바닥을 까딱 흔들었다.
“자기. 다음에 봐. 아, 맞다. 첫 거래 서비스로 이야기하는데······.”
서지아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남쪽 마을은 어떤 종교가 있대.”
“종교?”
“그, 천공의 부유자 ‘윌슨’을 섬기는 종교집단이라는데, 꽤 괴팍하다네.”
···윌슨?
***
“어디갔다 오셨습니까?”
만 하루동안 자리를 비운 서지아에게 부하가 다가왔다.
“잠깐 일이 있어서.”
“무슨 일입니까? 새 계약 받아오신 겁니까? 그런 건 애들 시켜도 되는데······.”
서지아가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부하를 바라보았다. 그 냉철한 눈빛이 부하를 쏘아보고 있었다.
“당신들한테 맡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죄송합니다. 애들 교육 다시 하겠습니다.”
“됐으니까 지금 맡은 일들이나 문제 없이 처리해요. 혹시 모를까봐 이야기하는데, 우리 OWIC한테 찍힌 상황이니까 내가 다시 얘기할 때까지 적당히 몸 사리고.”
“몸 사리겠습니다.”
“나 샤워할 테니까 들어오지 마요?”
“알겠습니다.”
땀과 금속가루로 범벅이 된 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상처도 많이 생긴 상황이었다. 허리춤에서 욱신거림이 느껴졌다.
서지아는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 뒤, 옷을 벗었다. 땀투성이가 되어 들러붙은 옷감의 느낌이 굉장히 불쾌했다.
그렇게 속옷만 입은 채 거울을 바라보았다.
“···꼴이 이게 뭐야.”
전혀 다른 사회에 와서도 순식간에 적응한 뒤 사업을 펼칠 정도의 수완.
서지아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토록이나 당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실패에 연연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내 이득을 만들 수 있으면, 그걸로 된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샤워기에 물을 틀고, 잠시 거울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리는 그 순간.
“···?”
다시 거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옆구리의 글자.
“뭐야?”
읽을 수 없는 문자가 옆구리에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얼마 전에 사무실을 불태웠던 종잇조각에 그려져 있는 것과 흡사한 모양이었다.
그때 그 종잇조각.
그것도 정황상 강선후가 보낸 거였을 텐데.
“······.”
엄습해오는 찜찜함을 애써 외면했다.
***
숲에서 조난당해서 살던 시절, 벌들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게 무슨 대수냐 싶을 수도 있다. 숲속에서 벌한테 몇 방 쏘이는 건 대단한 일도 아닐 테니까.
문제는, 그 벌의 크기가 내 무릎까지 닿을 정도라는 거였지.
나는 필사적으로 싸웠고, 그 녀석들이 생각보다 강하지도, 똑똑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녀석들은 오는 족족 트랩에 걸리며 식량과 도구의 재료가 되어줬다.
그때 떠올린 발상이 이거다.
“한 마리를 일부러 놓쳐주는 거야.”
“일부러 놓쳐준다고?”
리리는 의문을 품었다.
“벌들은 계속해서 지원을 요청하는 습성이 있었거든. 도망치는 녀석의 허리에 은근슬쩍 실을 묶는 거지. 그러면 녀석들의 둥지가 어딘지 쉽게 찾을 수 있었어.”
“그래서?”
“그다음에는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거야. 계속해서 황금알을 낳게 할 수도, 급하면 그 배를 갈라서 한 번에 많은 알을 얻을 수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대한 비유는 리리에게는 알맞지 않았다. 얘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어쨌든 그랬다. 서지아는 황금알을 한 개씩 주는 거위일 수도 있고, 배를 가르면 수십 개의 알을 뱉어내는 금고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 급하게 단정 지을 필요가 없다. 마르크marlk를 새겨두었으니까.
허가 시험을 볼 때 숲의 심장을 추적한 것처럼, 서지아를 추적할 수 있게 된 거다.
서지아는 지금 실이 묶인 채 둥지로 귀환한 벌이 된 셈이지
대화는 나누는 동안 헬륨을 채운 풍선을 만들어서 리리에게 내밀었다.
“리리, 이게 뭐야?”
“풍선.”
너무나 당연하게 대답하는 리리.
“너네들도 이걸 풍선이라고 불러?”
“···이렇게 생기진 않았어. 어련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보통 뭐로 만드는데?”
“동물 내장. 보통 방광.”
“용도는?”
“연금술사들이 기체를 보관할 때 써.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계에도 풍선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우리가 아는 모양과 용도의 그것은 아니었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서 풍선을 날려보았다.
하늘 높이 날아가는 풍선.
원래 같았으면 얼마 가지 않아서 펑 하고 터져버려야 정상이다. 아니면 바람이 빠져서 땅에 떨어진 뒤 환경오염에 기여하든가.
“···천공의 부유자라니.”
그날 하늘로 날아간 윌슨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
ep10. 나이프와 망토, 덧옷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