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ep66. 별의 무덤 (4)
일행은 모두 당황했다. 강선후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인간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인간이 맞긴 할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곧 후드를 벗고 맨얼굴을 드러낸 그 모습을 보고 의심을 접었다.
수염이 듬성듬성 난 얼굴과 새치가 나 있는 머리, 그리고 정말이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은 그가 순수한 인간임을 말하고 있었다. 성좌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잠시 생전의 모습으로 찾아왔다는 가정을 차마 내릴 수는 없었다.
“뭐,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여독이 많이 쌓이셨을 텐데, 의외로 얼굴은 좋아 보이는구만요. 이 시대의 사람들답지 않게.”
“당신은 누구죠?”
리리가 다시 한번 물었다.
“말했잖습니까? 스승님의 제자라고.”
“그 스승이 최초의 기록관, 맞나요?”
“아직 그 지위를 기억하는 자가 남아 있었네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전부 황금을 잊었을 텐데.”
제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뒤 돌아 앞장섰다.
“스승님이 찾으십니다. 같이 갑시다.”
모두가 강선후의 선택을 기다렸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던 그는 군말 없이 그 뒤를 따라나섰다.
“크르릉…….”
렐릭시나는 그 제자라는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강선후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냄새가 달라.”
“냄새?”
리리가 옆에서 되물었다. 눈을 감고 코에 신경을 집중해 봤지만 당연하게도 강선후가 말하는 그 냄새를 구분해 낼 수는 없었다.
“이 시대 사람의 냄새가 아니야.”
강선후는 말했다. 그는 이 냄새를 언젠가 맡아 본 적이 있었다.
과거, 천공섬에서 최후의 용이 지키고 있었던 문.
그 문을 열고 밀실 안에 갇혀 있었던 공기가 뿜어져 나올 때 풍겨 왔던 냄새였다.
그건 과거 아주 오래된 시대의 공기가 품고 있던 냄새였다.
강선후는 그 냄새를 ‘영광의 바람’이라고 불렀었다.
그건 황금의 시대에 불었던 바람에게서 느껴지는 냄새였으니까.
그 제자의 주변에는 황금의 시대에 불었던 바람이 여전히 맴돌고 있었다.
그는 황금의 시대 사람이었다.
성좌가 아닌 진짜 사람.
강선후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은 성좌가 아닌 거죠?”
“어휴, 내가 어떻게 그런 게 되겠어요. 아직 학위도 못 땄는데. 이상한 질문이네요. 이 몸이 성좌의 것으로 보입니까? 번쩍이지도 않는데?”
“……안토니오 슈거, 그러니까 초대 기록관도 성좌가 아닌 건가요?”
“스승님이요?”
제자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스승님은 애초에 그런 거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성좌가 되기 위한 수련을 하느니 하나라도 더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 넣자는 양반이니.”
“그럼 우리가 따라왔던 그 별은?”
“스승님이 정보의 바다에 지은 등대의 빛입니다. 안토니오의 등대. 황금의 시대에는 유명했어요.”
그러면서 제자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 시대에는 그 빛에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강선후는 그 순간 느꼈다.
이 사람은 풍화의 시대에 어떠한 큰 원망이나 실망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그게 말투에서 느껴졌다.
더 이상 제자에게 물을 건 없었다. 어차피 이 자가 초대 기록관, 황금의 시대에 살았던 주요 인물 중 하나에게로 데려다준다고 하니 모든 궁금증은 그때 가서 자연스럽게 풀릴 터였다.
별의 무덤은 작은 천체였기에 북극점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북극점은 난데없는 절벽이 시작되어 있었고, 그 너머에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풍경이 지평선 너머로 펼쳐져 있었다.
허공, 우주 한복판에 작은 조각배가 떠 있었다.
거대한 나선 은하가 펼쳐져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은하의 중심은 저 멀리 있었고, 나선팔은 이 절벽까지 쭉 펼쳐져 닿아 있었다.
천천히 자전하는 새하얀색의 별의 집단.
그 은하를 바라보며 모두가 할 말을 잃는 동안, 제자는 그들의 당혹스러움을 즐기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정보의 바다입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별들의 모든 생각, 모든 시간, 모든 공간이 담겨 있는 지식의 집합체.”
“……별들이 만들어 낸 거 아니랄까 봐. 은하네.”
“……은하? 그게 뭐요. 어감이 마음에 드는군.”
“그런 게 있어요.”
그들은 제자의 인도를 받아 은하 위에 떠 있는 조각배에 올라탔다.
* * *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한 번 침묵하면 계속해서 그걸 지키고는 하는 리리는 당연했고, 평소에 말이 많은 나쉬르와 쉴쿨마저 이 풍경 앞에서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촤악, 솨아악—.
노를 젓는 소리는 잔잔한 냇가 위를 떠다니는 낚시꾼의 배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우주 한가운데에서 은하 위를 항해하는 조각배에서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는 큰 이질감을 자아냈고, 함부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에 죄의식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느껴 보았다.
우우웅—
우주를 떠도는 어떤 파동이 잔잔하게 배경음으로 깔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너무나 일상적인 감각이라 자세하게 느끼지 않으면 있다는 것조차 알 수 없는 소리.
“그럼 초대 기록관은 여전히 인간인가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던 리리가 물었다.
“인간이었습니다. 한때는요.”
“……당신들이 성좌가 아니라면, 대체 이곳으로는 어떻게 온 건가요?”
“우리 때는 성좌가 아니어도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때.
황금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저 아래에서 살던 시절에는 승천한 성좌들과 필멸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무덤과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바다. 이 모든 게 그렇게 거창한 비밀이 아니었죠.”
“……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대.”
“그래요. 우리들은 한계가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제자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리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나름대로의 대답을 이끌어 냈다.
“황금의 시대였으니까요.”
제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가 스스로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답은 리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황금의 시대는 어째서 끝났는가.
우리는 왜 풍화되어 가는가.
모두가 그저 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금의 시대를 겪었던 이들을 만나며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그들은 의외로, 왕의 존재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황금의 왕좌를 차지하면 황금의 시대가 재림한다.
모두의 숙명이 연결되어 있는 이 과제는 과연 진실일까?
지배자가 왕좌를 차지하는 것만으로도 풍화의 시대는 옷을 갈아입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로 황금의 시대로 변하기라도 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어느새 은하의 중심에 도착했다.
아주 두껍고 찬란한 빛의 덩어리가 있던 이곳.
가까이 와 보니 그 빛은 어떤 첨탑의 등대에서 뿜어지는 빛이었다.
강선후는 저게 뭔지 알고 있었다.
렌즈로만 볼 수 있었던 안토니오의 별.
그게 바로 저 등대의 빛과 완전히 일치했다.
“도착했습니다. 별이 선택한 이 시대의 유일한 이들이여.”
제자의 목소리는 은하를 타고 흐르는 파도처럼 부드럽고, 또 신비했다. 이전에 보이던 그 추레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별들과 함께 영원히 사는 신비한 지식인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마치 인공섬이라도 되는 것마냥 은하 한가운데에서 둥둥 떠 있는, 100미터도 안 되어 보이는 땅덩어리.
그 위에 부표처럼 길게 올라가 있는 거대한 첨탑.
그 입구에 댄 배 위에서 내리며, 제자는 그렇게 말했다.
첨탑의 유독 낡아 보이는 나무문을 여는 그 순간.
“야이 쌍노무 새끼야!”
빠아아악—!
해골 팔이 튀어나오며 고고한 학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으아아악!”
제자는 뒤통수를 잡고 방방 뛰었다.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강선후는 그 손길에 룬의 마법이 서려 있다는 걸 간파했다.
바크vakk. 벽 등에 충격을 주는 룬 문자가 뒤통수를 때리는 그 순간 발현되었다.
고수준의 룬 구사 능력. 강선후는 한눈에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자를 뒤덮고 있었던 신비로운 분위기는 일시에 사라졌다.
“왜 때려요!”
“내가 열여섯 번째 천년기 문서 제대로 정리하고 가라고 했지?”
“아니 그걸 그 시간 안에 어떻게 다 합니까 천 년 동안 해도 모자라겠네!”
“이놈쉑이 지난번부터 말대꾸를…….”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해골.
모두가 그가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안토니오?”
황금의 시대, 첫 번째 기록관.
지식의 추구자, 위대한 기록자.
안토니오 슈거.
“……조금 더 진중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리리가 말했고.
“제자는 저렇게 키워야지.”
어느새 빠져나간 정신이 돌아온 나쉬르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 * *
안토니오 슈거가 움직일 때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언데드였다. 왜 그렇게 되었냐고 물으니.
“고작 100년 사는 게 싫었거든. 그래서 고대 엘드리치의 룬을 어떻게든 모사해 봤지. 거 엄청난 도전이었는데, 그것도 추억이구만.”
“…….”
강선후와 리리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래, 당신네들이 이번 시대의 별 인도자들이라고?”
“…….”
“엘 로크라 벨라도 당신들이 울렸고?”
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토니오는 리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신카구만. 그쪽이.”
“……알아보시나요?”
“이곳에서 알아보지 못하는 건 없다네. 괜히 정보의 바다겠나? 조금만 검색하면 알 거 모를 거 다 나오거든. 못 볼 꼴도 꽤 많이 보지만 말이야.”
그러면서 안토니오의 시선은 강선후를 향했다.
“……그런데 내가 그쪽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군. 이상한 일이야. 왜 별들이 그쪽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는 거지? 인간이라는 거하고, 우리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거하고…… 이 시간대 저 시간대에 기상천외하게 출몰했다는 사실 뿐이네.”
안토니오는 없는 수염을 쓰다듬으려다가 뒤늦게 멋쩍은 듯 턱을 긁어댔다.
“……뭐, 상관없겠지. 황금의 왕국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 알려고 여기로 온 거지?”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요.”
강선후는 웃으며 말했다. 안토니오 특유의 시원시원한 화법에 깊은 인상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이 탑 꼭대기에 당신네들 오면 주려고 문서로 싹 다 정리해 놨어. 그거 가지고 가. 어이, 버러지!”
“누가 버러지입니까!”
제자가 말했다. 안토니오는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다시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하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들 그거 챙기면 집으로 좀 데려다줘. 돌아가는 길은 알고 왔겠지.”
“알겠습니다.”
너무나 빠른 일 처리.
좋은 의미가 아니라 의문이 가득 남는 속도였다. 안토니오는 그들과 별로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했다.
“잠시만요.”
리리가 다급하게 안토니오를 불러 세웠다. 안토니오는 슬쩍 고개만 돌려 리리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황금의 시대 사람이었잖아요?”
“뭐, 그렇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 엘 로크라 벨라가 울리고 이제 곧 황금의 시대가 재림하는 것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건가요?”
“기대?”
안토니오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리리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적 없나? 별들이 이렇게 죽어 가는데, 이제까지 필멸자의 세상에는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러면서 바드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별들은 우리에게 많은 노래를 알려 주는데, 저 자신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었지.”
이상한 일이었다.
별들과 소통하는 바드들에게마저, 별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왜 그런지 아나?”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들은 이 시대에 실망했기 때문이네. 이 시대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더 이상 믿지 않기 때문이야. 해결할 수도 없으면서 괜히 진실을 알고 공포에 떠느니, 진실을 숨기는 자비를 베푼 것이지.”
“…….”
“나도 마찬가지네. 황금의 시대 재림?”
안토니오의 시선은 다시 지하실로 향했다.
“그 희망에 이제까지 너무 많이 배신당했어.”
최초의 기록관 안토니오.
기억하길 거부하는 자는 그렇게 말하며 지하실로 내려갔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