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ep67. 별의 희망, 스텔라리움 (1)
안토니오가 지하실로 내려가는 걸 일행들은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에는 강선후를 바라본 채 그가 어떤 결정을 할지 기다렸다.
강선후는 안토니오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제 스승과는 달리 그저 인간으로 남았는데도 이 공간의 영향 때문인지 나이를 먹지 않은 그 중년은, 제 스승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깨를 살짝 으쓱하고는 강선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올라가실까요?”
강선후는 우선 그의 의견을 따랐다. 리리는 강선후가 타인의 영토에서는 그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따르고 자신의 욕심을 한 수 접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각, 또각.
원형으로 오르는 긴 계단을 오르는 동안 이들은 말이 없었다. 처음 입을 연 건 강선후였다.
“여기가 그럼 스텔라리움이에요?”
별들의 지식 보관소. 스텔라리움.
강선후는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잊지 않았다. 별의 무덤도 인상적이었고 은하로 이루어진 바다도 멋졌지만, 결국 이곳으로 온 목표는 스텔라리움에 담긴 황금 왕국에 대한 지식이었다.
제자는 그런 강선후의 질문에 초연한 기색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스텔라리움은 잠겼습니다.”
“……왜요?”
“스텔라리움은 별들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황금의 시대에서부터 시작된 일종의 ‘프로젝트’입니다. 난해하고 추상적인 별의 지식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숫자와 문자로 재가공한 지식 그 자체입니다. 일종의 책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텍스트 파일이라는 건가.”
강선후의 중얼거림에도 제자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그 지식이 필요하지 않나요?”
리리가 물었다. 제자는 확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 지식은 이 시대의 사람들을 파멸시킬 겁니다. 공포의 구렁텅이로 밀어붙이겠죠.”
“…….”
“이 시대는 지식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이겨 내고자 하는 의지가 희미하니까요. 감당할 수 없는 지식은, 그걸 짊어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나 의미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두렵고, 무겁고, 고통스러운 짐이나 다름이 없으니.”
이야기가 딴 길로 세려고 하자, 강선후는 다시 주제를 바로잡았다.
“그 지식에 황금의 왕국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거잖아요?”
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선은 여전히 저 위의 탑 꼭대기로 향하고 있었다.
“그럼 당신들이 저한테 준다고 한 왕국에 대한 정보는 뭔데요?”
“우리가 그대들에게 전달한 지식은 스텔라리움의 지식이 아닙니다. 기억하길 거부하는 자 안토니오가 차마 희망을 버리지 못한 이들을 존중하기 위해 아는 대로 정리한 내용일 뿐.”
그 내용은 스텔라리움에 담긴 섬세함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의지 있는 자가 황금 왕국에 도달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흠.”
강선후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별의 지식이라는 걸 엿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별들이 당신에게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위대한 기록자 안토니오 슈거께서도, 그 제자인 저도, 당신도 어쩌지 못하는 문제거든요.”
제자의 주장은 단호했다. 일말의 반박을 허용할 수 없다는 듯한 강한 어조가 부드러운 말투 뒤에 담겨 있었다.
“……모든 별들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별들이 안 되는 것도 되게 할 테니까. 하지만 그건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이 한순간 동시에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불가능하단 이야기죠.”
“온 세계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기도를 올린다니. 한 명도 빠짐없이?”
“세 살짜리 갓난아기마저 빠짐없이.”
강선후는 피식 웃었다.
“재밌네요.”
제자도 동의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위대한 기적이 일어나겠지요.”
“그냥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가만히 듣고 있었던 나쉬르가 말했다.
그는 이 모든 대화가 노래로 쓰기에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자는 말을 이었다.
“모든 존재가 동시에 평화를 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이잖습니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그건 정말로 위대한 기적으로 이어질 겁니다.”
헛된 희망, 거기에 헛웃음이 나왔는지 제자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확신하죠.”
* * *
안토니오는 별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의 어둠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기억하길 거부하는 자 안토니오.
하지만 기억이란 해일과 같았다. 아무리 방파제를 쌓고 벽을 올리더라도 결국에는 넘실대며 넘어와 온 대지를 적시는 그런 파도.
안토니오는 그 옛날, 황금의 시대를 살아가던 인물이었다.
그는 역사와 지식에 집착하던 사내였다. 타고난 기억력은 그 대한 탐욕을 지울 수 없는 기질과 숙명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수명조차 부족하다고 느껴, 고대 엘드리치의 마법을 통해 언데드가 되었다.
그는 왕에게 기록관이라는 지위를 받았다. 영광의 역사, 심지어 영광 이전의 역사까지 세세하게 기록하여 후대의 열정과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유지하라는 숙명을 부여받았다.
기록관은 궁극의 지식을 원했다. 그러다가 한 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대에게서 내 모습이 보이는군. 거울처럼 말이야.」
아주 오래전,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는 성좌였다.
그 성좌에게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 멀리 남쪽.
그곳에 존재하는 별들의 무덤과 정보의 바다.
그 너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궁극의 지식, 스텔라리움.
너무나 당연하게도, 안토니오는 제자들과 여행을 떠났다. 왕에게서 하사받은 기록관의 반지도 더 이상 필요가 없다며 자진해서 내려놓았다.
후대에 그 반지는 여행을 떠나는 안토니오의 조각상과 함께 한 유적에 안치되었다.
오랜 여행과 수많은 위기 끝에 그는 별의 무덤에 진입했고, 정보의 바다에 닿았다.
궁극적 지식의 보고 스텔라리움을 제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다.
별빛으로 신비하게 빛나는 정육각형의 도형.
그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별들.
아직 다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완성된다면 자신의 오랜 숙명을 이루게 해 줄 것 같은 그 물건.
안토니오는 환희에 찬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환희는 그걸로 끝이었다.
지식에 담긴 건 거대한 공포였으니까.
그래, 거대한 공포.
과거를 회상하던 안토니오는 뼈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땅에 떨어진 구슬을 기울어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내가 손을 떼면 이 구슬은 아래로 굴러가 다시 땅으로 떨어지겠지.”
우리는 이런 식으로, 충분한 지식이 있다면 미래를 예측해 낼 수 있다.
그 지식이 충분함을 넘어서 궁극적이라면.
세상 모든 걸 수학으로 계산할 수 있고, 그 결과값을 내놓을 수 있다면.
그건 미래를 보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모든 지식을 취합하여 본 미래는 멸망이었다.
모든 별빛이 꺼지고, 위대한 신들이 어둡고 미천한 우리 세상을 찾지 못해 우주를 영원히 방황하는 시대.
위대한 암흑 시대의 도래.
지상의 필멸자들이 추구하는 황금을 연료 삼아 불타던 별들은 황금이 사라지며 꺼지게 되고, 암흑이 도래한다.
풍화의 시대, 의지가 사라진 이 시대는 그 시대를 막아 낼 수 없었다.
황금의 시대가 재림하긴커녕, 어둠이 오는 것조차 막지 못할 것이다.
이 시대에는 그럴 의지도, 열정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
풍화의 시대란 그런 시대니까.
안토니오는 그 공포에 대해 알게 된 뒤 잊으려 애썼다. 기억하길 거부하는 자가 되었다.
이곳에서 영원히, 멸망이 오는 그 날까지 무의미한 지식을 정리하는 데에 몰입했다.
우리는 더 이상 황금의 영광을 볼 수 없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는 그 영광을 영원히…….
그 순간, 지하실 문을 통해 찬란한 빛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탑 꼭대기에서 빛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안토니오는 지하실 밖으로 나가보았다.
별빛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룬 문자들이 은하의 바다로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건 대체.”
안토니오는 서둘러 탑 꼭대기를 향해 올라갔다.
꼭대기에 다가갈수록 찬란함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그에게는 육체적인 눈이 남아 있지 않음에도 그런 기분을 느꼈다.
꼭대기에 도착하고,
“바크vakk!”
반쯤 닫혀 있는 트랩 도어를 부술 듯 열어젖히면서 달려 올라갔을 때, 그가 맨 처음 본 건 입을 벌리고 홀린 듯 전방을 바라보고 있는 제 제자였다.
그 제자의 시선이 닿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별들을 노래하는 바드 둘과, 신카 가문의 뱀파이어.
그리고 한 인간.
인간의 눈앞 허공에 있는 건.
“……풍선?”
풍선에 매달린 채, 화살 한 발이 꿰여 있고, 별빛으로 이루어진 검의 형상이 십자가처럼 뒤쪽에서 장식하고 있는 정육면체의 찬란한 도형.
스텔라리움이었다.
……별들이 스텔라리움을 인간에게 허락했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지배자의 상이더라도, 엘 로크라 벨라를 울렸더라도.
별들은 더 이상 필멸자를 사랑하지 않을 텐데.
그저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일 텐데.
어째서, 이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스텔라리움을…….
성좌가 필멸자를 신뢰하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말해 봐라.”
안토니오가 제자에게 물었다.
제자는 안토니오를 바라보지도 않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짰다.
“세 명의 성좌가 다른 모든 별을 설득했습니다. 그 모습을 스승님께서, 스승님께서 직접 봤어야 했습니다. 모든 별들이 한 곳을 바라보고, 연설을 하듯 세 성좌가 온 우주를 설득하는 모습을…….”
그 순간 안토니오는 기록관의 혜안으로 그 풍경에 담긴 진실을 바라보았다.
세 명의 성좌가 스텔라리움 주변에 당당하게 군림한 채, 강선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별빛에는 의지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세 명의 성좌.
가장 의지가 강한 고대 영웅의 성좌.
가장 오래된 성좌.
그리고…… 가장 친화력이 좋은 장난꾸러기 성좌.
그들이 직접, 강선후에게 별의 지식을 선사하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어떤 준비와 전조도 없이 이루어졌다.
안토니오는 홀린 듯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알았다. 강선후는 지금 스텔라리움의 사용법을 모르고 있었다.
그 영광을 몸으로 받아 낼 자격을 갖추었으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물론 별들은 인내심이 강했다. 영원함이 익숙한 존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안토니오는 아니었다.
안토니오는 당장 앞으로 달려가며 인간에게 말했다.
“그거, 그거 나한테 줘 보시오!”
인간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손에는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아주 오래전 안토니오가 왕에게 하사받았던, 그의 물건.
『기록관의 반지』
강선후는 안토니오에게 반지를 주었고, 황금의 유물은 제 주인의 손가락에서 온전한 힘을 되찾았다.
기록관의 반지, 그곳에 박혀 있었던 작은 보석들 중 하나가 찬란한 별빛으로 빛났다.
스텔라리움의 정육면체 도형은 쌀알의 크기로 작아지더니, 그 보석의 자리로 들어왔다.
작은 보석 위에 은은하게 맴돌고 있는 별빛의 정육면체.
별의 지식이 반지에 담기는 모습을, 기록관은 바라보았다.
그 순간, 기록관은 깨달았다.
모든 걸 기억하길 거부하고자 했건만.
사실 나는 여전히 그 지식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구나.
“……이게 내 황금이었구만.”
허탈한 듯, 기쁜 듯, 어떤 감정인지 모를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