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ep67. 별의 희망, 스텔라리움 (2)
스텔라리움.
정육면체인가? 입방면체인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저 매혹적이었다.
궁극의 지식이라는 게 누군가는 공감할 수 없는 목표일 수 있지만, 최소한 안토니오의 눈에 그 오묘한 빛은 가슴속 깊이 파묻은 미학에 대한 감성마저 고개를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감격스러운 빛을 바라보며, 안토니오는 생각해 봤다.
“멸망과 공포.”
이 안에 담겨 있는 것이었다. 떨어진 구슬이 땅에 닿을 거란 사실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지식이 풍화의 시대가 멸망의 주춧돌이 될 거라는 진리를 명백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바라볼수록, 계산할수록 결론은 선명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황금을 추구하는 길에 공포가 스며든 게 뭐 어때서.
거대하고 완벽한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사이에 미천한 모래알 하나 낀 게 뭐가 어때서.
나는 대체 뭘 두려워 했는가.
안토니오는 뼈밖에 남지 않은 얼굴로 하염없이 스텔라리움을 머금은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인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황금이라는 거.”
안토니오는 고개를 들었다. 제자도, 리리도, 바드들도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추구했던 이유가 뭐예요?”
“······이유?”
“생각해 본 적 있을 거 아니에요? 로크 벨라인지 뭐시기인지가 그걸 자꾸 잊게 만든다고는 하지만요.”
“황금을 추구하는 이유라.”
그런 게 있었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로크 벨라에 유린당한 기억 속에서 그걸 온전하게 끄집어낼 수 있기는 한가?
안토니오는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모르겠어. 그걸 떠올리기에는 난 너무 늙은 노인네니까.”
“기억하기를 거부하시지 않았습니까. 과거의 무엇이든.”
제자의 말에 안토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도 했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나요?”
강선후가 다시 물었다.
안토니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면, 편해지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명예? 숙명? 이계의 사람들은 숙명이라는 거에 목을 매는 경향이 좀 있던데.”
숙명이라.
그 말도 맞았다.
안토니오. 그 자신이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할 수 있는 이유.
그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을까? 편해지기 위해서?
아니면 명예를 위해?
별이 되기 위함도 아니었다. 안토니오는 시간을 뺏길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행을 멀리했으니까.
그렇다면.
지식을 추구했던 이유는.
황금을 추구했던 이유는.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이제까지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던 그 말투에 무게감이 실렸다.
“······.”
“태어난 자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절망한 자가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지식을 추구하는 자가 그 궁극에 닿길 소망하는 데에 어떤 이유가 있겠느냐!”
리리는 안토니오를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강선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황금의 시대를 살아가던 이가 황금을 추구하는 것에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이유도.”
“당연히 없지! 황금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저 그것이 나의 황금이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요.”
질문을 던지는 강선후의 말투는 초연함이 묻어 나왔다.
“여전히 멸망이 두려우세요?”
“두렵지! 하지만, 그게 내 황금과 무슨 상관인가? 지식을 추구한 탓에 멸망이 선명해진다고 해서, 황금의 빛이 사라지나?”
“······선조시여. 저 역시 무례하지만 질문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리리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큰 용기를 내었다. 고대의 선조 앞에서 감히 목소리를 내는 건 그만한 무게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옛 영광의 시대 사람들의 마음가짐이었나요?”
“우리의 시대는 그렇기에 영광스러웠다네.”
리리는 그 말을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을 섬기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 선조의 조언이었다.
리리는 생각했다. 나 역시, 내 숙명을 위해서라면······.
안토니오는 다시 열정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조금은 위험한 유혹에 이끌리는 하이에나의 눈빛으로 스텔라리움을 바라보았다.
“······이건 내 황금이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손가락에서 기록관의 반지를 뽑아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그 너머를 볼 거야. 그곳에 내 뜨거운 빛이 있으니.”
기록관은 강선후에게 자신의 반지를 내밀었다. 내밀기 전, 허공에 손가락으로 어떤 룬을 그렸다. 스텔라리움을 둘러싼 그 룬은 조금 불안정하게 진동하던 정육면체의 표면을 안정시켰다.
“자!”
“설명부터요. 나는 당신처럼 지식인이 아니라니깐.”
“성좌 셋이 온 우주를 설득하게 만든 인간이 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네! 넌 이미 충분히 이걸 이해할 수 있어!”
“······내가 성좌처럼 보여요?”
“스승님이 비교적 최근에 뇌하고 눈이 없어지셔서······.”
“뭐? 이 쌍놈의······.”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다른 의미는 아니었어요.”
안토니오가 제자와 싸우는 사이에 리리가 식은땀을 흘리며 강선후의 무례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이 사람이 좀 멋쩍으면 딴소리를 자꾸 해요. 선조께서 이해를 부탁······.”
안토니오는 마지못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 지식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게다. 별의 지식이란 함부로 필멸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게니까 말이지. 함부로 대하다가는 뇌가 탈 수도, 눈이 멀 수도, 어쩌면 영혼 자체가 불탈 수도 있겠지만······.”
안토니오는 성좌 셋이 이 인간을 위해 온 우주를 설득했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네가 스텔라리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구만.”
“이 안에 황금의 왕국에 대한 정보가 있어요?”
“더 이상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황금의 왕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딱히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니깐. 네가 이제부터 얻을 수 있는 지식은 그 이상의, 세상의 모든 걸 이루어 내고 어쩌면 신격에 닿을 수도 있는 지식, 힘 그 자체······.”
안토니오가 하는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기록관의 반지 보석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별빛의 정육면체를 조금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던 강선후는 기록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지를 다시 내밀었다.
“······?”
“나는 황금의 왕국을 향하는 길만 알면 돼요.”
“왜 이걸 나한테 내미느냐?
“그래도 나보단 기록관님이 더 잘 해석하실 거 아니에요?”
“이건 네 것이다. 이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지식에 대한 권한도 너의 것이니, 해석할 의무 역시 네 것······.”
“나머지는 필요 없어요. 왕국으로 가는 길.”
안토니오는 굽은 등을 억지로 펴며 강선후를 올려다보았다.
“그거 하나만 알려 주세요.”
“······이 물건은 여정의 장애물을 돌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려나?”
“스텔라리움 없이도 모든 걸 이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처음에, 안토니오는 그의 태도가 오만함에서 비롯된 줄 알았다.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가다가 비명횡사할 수도 있죠.”
“그렇다면 거부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이건 내 황금이 아니잖아요?”
안토니오는 다시 한번, 고개를 내려 스텔라리움을 바라보았다.
그 빛은, 당장이라도 반지를 낚아채고 싶다는 충동을 이기기 힘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안토니오가 말을 하지 않자 강선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궁극의 지식 같은 거, 어차피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어요. 라면 끓일 때 설명서도 제대로 안 보는 사람한테 궁극의 지식은 무슨.”
“······.”
“그에 비해서, 기록관의 손안에서 이건 황금이에요.”
안토니오는 반지를 받아 들었다.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손을 빠르게 움직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그러면서 강선후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평범한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저 평온하고 조금은 피곤한 표정의 인간.
하지만 그 눈동자 뒤편의 불꽃은.
“······그리운 빛이구만.”
그 예전, 기억 저편에서 수없이 봐 온 눈들이 품었던 빛이었다.
“······그렇다면 이걸 받아라.”
안토니오는 지하실에서 올라오기 전, 서둘러 품속에 챙겼던 구슬 하나를 건넸다.
빈 구슬이었다.
“뭐예요?”
“열쇠.”
안토니오는 말했다.
“황금의 왕국, 그 왕좌의 마지막 문을 여는 열쇠다. 정확히 말하면 열쇠가 될 잠재력이 있는 그릇.”
강선후는 그 물건을 받아 들었다. 빈 구슬이었다. 안쪽에 뭔가 차 있어야 할 것 같은,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평범해 보이는 구슬.
“······이 안에 뭐가 들어가야 해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김새인데.”
“그건 왕국이 뭘 원하냐에 따라 다르겠지. 내가 지금 답해 줄 수 없는 부분이야.”
아직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강선후는 이 역시 미래를 위한 재밌는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는 재킷의 안주머니에 구슬을 넣으며 계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바로 떠날 거냐?”
“음.”
“그러면 제자 놈을 시켜서 별의 무덤으로 안내하라 하겠다. 그곳에서 돌아가는 방법은 너 역시 잘 알 테니까.”
“아쉽지 않아요?”
“······?”
안토니오는 인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순간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또다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을 뿐.
아주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나며, 이 인간이 할 것 같은 말이 뭔지 먼저 알 수 있었다.
“······나쉬르?”
“······듣고 있소.”
얼이 빠진 것 같은 나쉬르에게, 강선후는 정신 차리라는 듯 이름을 불렀다.
“우리 밥 먹은 지 좀 되지 않았나? 열두 시간은 지난 거 같은데.”
“아, 아마 그 정도 됐겠지.”
강선후는 안토니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같이 밥이나 먹을래요?”
잠시 정적.
이제는 이 정적을 즐기는 것 같은 강선후의 모습을 리리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토니오의 제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스승님이 이가 안 좋으셔서.”
“이는 튼튼하다 이 자식아!”
“뭐, 소화 못 시키는 건 비슷하지 않습니까.”
“······뭐, 그렇지. 내가 뭘 먹는 게 의미 있는 몸뚱어리는 아니니.”
안토니오는 그렇게 말하며 뼛조각을 이어 붙인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하나, 식사 자리를 함께한다는 건 뱃속에 유기물을 쑤셔 넣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건 아직 기억하는구만.”
강선후는 히죽 웃었다.
조금은 단순한 오크 쉴쿨도 드디어 무언가를 먹는다는 생각에 웃었다.
리리는 몸에 가득 차 있었던 긴장이 일시에 빠져나감을 느꼈다. 이 탈력감.
‘역시 적응이 안 돼.’
강선후와 함께 다니며 수 없이 느껴왔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적응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내려가요. 좀 쓸 만한 식탁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없겠습니까.”
“솔직히 없어 보이거든요.”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제자와 강선후의 뒷모습을 안토니오는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사람이 고팠나 보구만.”
“제자분 말씀이십니까?”
리리의 질문에 안토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오랜 시간 이곳에서 수명마저 정지한 채 나를 보필한 놈이었지. 가자. 신카. 이번 세대의 신카가 큰일을 해내는구나.”
“······.”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조금 복잡한 얼굴이었다.
“······기록관께서는 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않으신가요.”
“알다마다.”
“그럼, 저의······.”
“황금을 추구하는 자의 명예는 평등하다. 황금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지.”
안토니오는 계단을 내려갔다.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하지만 이 말이 딱히 진리는 아니야. 그저 내 생각일 뿐. 답은 각자가 내리는 거지.”
“······.”
“내 말에서 배움을 찾지 말고, 스스로 매몰되지도 말게. 네가 믿고 싶은 세상의 지혜를 빌려 마음으로 벼리게. 답은 그 순간에 보일지니. 늙고 오래된 이가 젊고 총명한 이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라네.”
리리의 대답은 긴 생각 뒤에 나왔다.
“네.”
그리고, 뒤늦게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