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ep67. 별의 희망, 스텔라리움 (3)
우리는 짐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통조림 몇 개와 보존 처리한 고기 등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하지만 리리의 먹을거리는 떨어진 지 오래되었지.
“필요하다면 내 피를 줄 수도 있네만.”
“아뇨. 그건 이 녀석이 거절할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맛없어 보이나?”
“솔직히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긴 힘들죠.”
“하, 녹색 곰팡이들도 날 보고 그런 생각을 하나 보지?”
“아니 오크라고 무조건 사람 먹는 거 아니라니까! 그거 종족 차별이야!”
“먹는 놈들도 있단 말이잖어?”
나쉬르와 쉴쿨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리리는 눈을 감고 조용히 내 피를 섭취했다.
리리가 내 피를 얻어먹는 짓은 죽어도 안 하겠다는 고집을 버린 지 얼마 안 되어서 이제야 알았는데, 리리는 꽤 소식가였다. 그냥 배고픔을 참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피를 먹는 종족은 육체가 아닌 영혼의 에너지를 채운다나. 뭐,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반지에 담긴 지식을 조사하는 안토니오와 그 제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토니오의 의지를 따르는 듯 기록관의 반지 안의 스텔라리움은 평면도처럼 전개되어 오묘한 모양이 되었다.
그건 허공에 별빛으로 그려진 한 폭의 복잡한 그림 같았다. 언뜻 보면 룬 문자 같기도 했지만, 룬과는 완전히 그 형태가 달랐다. 처음 보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언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걸 바라보는 안토니오는 꽤 신중했다. 그가 만약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식은땀이 줄줄 흐를 것 같은 느낌. 폭탄을 해제하는 특수 요원 같은 분위기마저 풍겼다.
스텔라리움의 지식이 필멸자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저 모습만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잘못 쳐다보면 미쳐버리는 게 지식이야? 코즈믹 호러도 아니고.”
“너무 많은 양을 먹으면 체하는 거지. 뱃속도 그렇고 머리도 그렇고.”
나쉬르가 육포를 우물거리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비유가 맞는 건가.
반지에서 벗어난 스텔라리움은 안토니오가 만든 어떤 장치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스텔라리움에서 실처럼 뽑힌 지식 한 조각은 룬 문자의 형태가 되어 반지의 보석에 스며들었다.
안토니오는 내게 반지를 건넸다.
“네가 원한 왕국으로 가는 길이다.”
“지도가 아니네요?”
“지도보다 확실한 정보지. 지도는 여행자를 언제나 함정에 빠트리는 물건 아니냐.”
이 세계는 지도법이 완벽하지 않은 면이 있긴 하다. 당장 제대로 된 나침반이 없으니까. 저 말은 어느 정도 자조적인 농담의 뉘앙스가 있었다.
반지를 받아 들었다. 다섯 개의 보석 중에서 하나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안에 담겨 있는 룬은 황금의 왕국으로 가는 지도였다.
집에 돌아가서 천천히 연구해 보면 답이 나오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리리의 질문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평소에는 저런 기대감,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만족스러운 답변이 될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황금의 왕국.”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쉬르와 쉴쿨의 눈빛도 반짝반짝 빛났다.
“……잘 가게. 나는 지금부터 다시 바빠질 예정이니.”
안토니오는 내가 떠날 기미가 보이자 간단한 인사말만 남기고 지하실 아래로 내려갔다. 부끄러움을 타는 것처럼.
* * *
우리는 별의 무덤으로 돌아갔다. 은하 위를 항해하는 조각배 위에서 노 젓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문뜩 품속에서 황금 지침을 꺼내 들었다.
아홉 개의 보석, 황금의 유물이 꽂혀 있는 유물. 아직 세 자리가 비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 유물이 다 모여야 황금의 왕국으로 향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길은 이미 알아냈으니 더 이상 지침에 의존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제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배자의 유물로 향했었기 때문에 이 공백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유물은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내 여정을 이끌어 왔는데 말이지.
안토니오의 제자는 노를 저으며 내가 들고 있는 황금 지침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신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황금 지침이었다.
“……이걸 가지고 있었어요?”
“스승님의 물건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모든 지배자의 상이 가지고 있었던 평범한 물건이니까요.”
……지금은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하긴, 최소 수만 년이 흘렀다는데 아직도 남아 있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일 수도 있다. 유물 제자리에서 벗어나 온 세상에 막 퍼져 있었으니까.
제자는 내 지침 뒤편에 박힌 보석을 바라보았다.
“아홉 개를 모으셨군요. 어차피 나머지는 인간의 여정으로는 찾을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제자가 말하는 사이에 우리는 별의 무덤에 도착했다. 리리는 배에서 내려 작은 천체에 발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인간의 여정으로는 찾을 수 없는 물건이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나는 고개를 들어 안토니오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신은, 인간의 여정을 초월하셨잖습니까?”
제자는 손을 펼쳐 별의 무덤 풍경 전체를 가리켰다.
“별의 여정에 도달하였으니까요.”
나는 순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황금 지침을 바라봤을 때, 정말 오랜만에 생각을 멈추고 그저 지침만을 바라보았다.
두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아주 작은 별이, 보석의 크기로 맞춤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단 한 자리만 뺀 열한 번째의 위치까지.
“…….”
“쌍성입니다. 별의 위치에 도달한 평범한 자에게 별이 하사하는 선물.”
“황금의 유물을 별이 하사했다고요?”
“왕께서 그러라 부탁했고, 별은 왕을 존중했으니까요.”
별과 사람이 서로의 목소리를 듣던 그 시대, 별이 꺼질 걸 알고 있었던 왕이 그들을 위해 하사한 열 번째와 열한 번째 황금의 유물.
『쌍성』
“……효과가 뭐예요?”
“별빛을 냅니다.”
“뭐야. 그게 다야?”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었던 쉴쿨이 저도 모르게 내뱉고 놀랐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안토니오의 제자는 그저 힐끗 웃을 뿐이었다.
“별빛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이 세계에서 별빛이란 그저 밤하늘을 장식하는 반짝이가 아니다.
사실 우리 세계에서도 그렇다.
이세계의 사람들이든 우리 세계의 사람들이든, 그 사실을 잊으며 살 뿐이지
“먹구름의 짐승이 별빛을 가리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리리가 내 생각에 의견을 보탰다.
우리는 별의 무덤의 남쪽으로 향했다. 저 아래 멀리 희미하게 우리의 땅이 보였다.
“별로 있지도 않았는데 거의 십 년은 지난 기분이네.”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닐 겁니다.”
안토니오의 제자가 말했다.
“이곳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르니.”
“…….”
조금 불안한 말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우리 모두가 렐릭시나에게 매달렸고, 렐릭시나는 당장이라도 도약할 기세로 허벅지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대의 황금을 찾을 수 있기를.”
“황금의 시대 인사말인가요?”
제자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게 이 시대의 인사말이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건 마음에 드네요.”
나도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하늘을, 우리의 땅을 바라보았다.
“렐릭시나.”
“크르릉—.”
“가자.”
순식간에 느껴지는 압력, 손이 벌게질 정도로 움켜쥐어야 견딜 수 있는 가속력.
별의 무덤의 중력권에서 벗어난 우리는 다시 익숙한 땅으로 떨어졌다.
* * *
우리는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이거, 실례라서 어쩌죠.”
낙법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쉴쿨은 이번 낙하 때 다리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렐릭시나의 등을 빌려주었다.
사실 애초에 손해 볼 건 없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말이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말 위에 타든 말든 인간 도보의 속도로만 이동했으니까.
그리고 사실 나는 아무래도 걷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 말 위에 타면 편하긴 한데 가끔은 너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책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여정은 계속되었다. 별들의 영역이라는 남극점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저 먹구름 말이야.”
밤에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사라지지 않는 짙은 구름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하늘에 있는 게 아닌 거 같지?”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별을 바라보는 탓에 눈이 좋은 쉴쿨과 나쉬르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우주에 있군.”
먹구름은 우주에 있었다.
수증기와 전하로 가득 찬, 우리가 평소에 보는 그런 구름이 아니었다.
어둡고 부정한 기운을 잔뜩 품은 성운(星雲)으로 이루어진,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구름이었다.
아마 이제까진 별들이 저 구름을 막아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게 안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제는 알고 있다.
『기록관의 반지』
반지에 담겨 있는, 안토니오가 선별한 지식을 살짝 더듬었다. 아주 조금의 양인데도 머리가 당길 정도였지만 소화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별들이 죽어 가고 있어.”
“그 이유를 아시겠소?”
나쉬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맞아. 우리는 그 이유를 이제까지 몰랐었다.
하지만 별들은 비로소 그 지식을 내게 선사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은요. 당신들의 열정과 의지를 연료 삼아서 빛났대요. 황금의 시대 이전, 엘신이 승천하기 전까지 별이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거든요. 애초에 승천을 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렇다면 엘신께서 그 포문을 여신 거겠군.”
맞다.
황금의 시대와 엘신의 승천은 시간상으로는 꽤 멀리 있었다.
하지만 엘신의 승천이 황금의 시대의 개막을 알린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
“……이제 다시 세상에 황금이 사라진 거지. 그 시대 이전으로 돌아간 거야.”
별빛을 지탱하는 열정과 의지는 더 이상 없다.
갈등도 잘 없고, 이 세상은 기만에 흔들리면서도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살던 대로 사는 것에 큰 불만이 없고, 한계가 있다면 그대로 받아들인 이들의 시대.
그 시대가 별빛을 꺼트리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었던 리리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는 황금의 시대 재림을 원한 거야. 왕좌의 주인이 나오면,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생존 욕구라는 거지.
하지만 그게 정말 옳은 방식일까?
왕좌의 주인이 나오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이 시대가 황금의 시대로 변해?
이계의 전설을 이성적으로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에는 커다란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답지 않게 생각이 너무 많네?”
“무슨 소리야. 당신은 언제나 생각이 많았어.”
리리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우리는 그렇게, 바뀐 하늘을 바라보는 매일 밤을 지내다가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그리고, 베이스 캠프가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갖 불길한 현상이 현대의 과학 기술로 하나씩 입증되고, 마을이 공격받는 빈도수가 너무 높아졌다는 게 주 이유라고 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