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ep68. 시대의 끝 (1)
“폐쇄한다고요?”
지난번 방문 때는 바빠서 얼굴을 보지 못했던 정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뭔가 OWIC 쪽에 문제가 크긴 한가 보네요. 지난번에 대충 듣긴 했는데.”
“문제가 크죠. 사실 이제까지 구멍 메우는 식으로 수습해 온 게 한계에 달했다는 생각도 합니다. 회사에서 이런 말 했다가는 짤리겠지만.”
“도청 장치 있잖아요?”
“이 정도 뒷담은 봐주니까요. 아시잖습니까.”
“고생이 많으시네요. 지훈 씨도 그렇고, OWIC도 그렇고.”
정지훈은 내 말을 듣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크서클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 안쓰러움은 여전했다.
“어느새부터 선후 님께서 우리 회사를 걱정해 주고 있으시네요. 별로 안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좋아하진 않았죠.”
그래도 OWIC의 대변인으로서 이런저런 내 편의를 봐주는 남자라 인간적인 교류를 많이 하진 않았어도 정이 붙는 게 사실이었다.
OWIC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정치니 뒷공작이니 내 알 바 아니기도 하고, 최소한 내게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최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첫인상은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후의 노력까지 폄하하는 건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정지훈은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떴다. 폐쇄 어쩌구 때문인지 마을의 풍경은 한산했다.
그래도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거 보니까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가진 않은 모양이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나쉬르와 쉴쿨은 내게 양해를 구하고 오두막의 남은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나는 그동안 1층에서 이제까지의 일들을 정리하고, 다음 탐험을 위한 사전 준비에 바로 돌입했다.
“이번에도 급하게 움직이네.”
리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그렇지만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창밖에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새 먹구름이 심해졌어.”
하늘을 덮는 부정한 성운은 점점 더 별빛을 가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밤에는 보이지 않던 그 구름이, 이제는 석양이 질쯤부터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낼 정도였으니까.
해가 완전히 질 때쯤 소식을 들은 진서연과 서지아, 차소희가 내게 찾아왔다. 그들은 날 보고 크게 반가워했지만, 그 표정 뒤편에 서려 있는 고민을 숨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
조금 뒤늦게 서지아 뒤를 따라고는 낯선 남자를 발견했다. 노움이었는데, 엘리엇은 아니었다.
익숙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 복장은 익숙했다.
“……탐험가 연맹이 여긴 왜 왔지.”
“알아봐 주시는군요! 귀인, 영광이에요!”
젊은 활기가 느껴지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더욱 의문을 품었다.
“아니, 제국에서 온 거예요?”
“네!”
“제국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두어 달은 걸릴 텐데?”
그 말에, 연맹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네. 사막을 우회해서 오느라 두어 달 정도 걸렸는데요. 무슨 문제라도?”
“…….”
안토니오의 제자가 말했던 시간의 왜곡이 이렇게 느껴지네. 날짜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는데…… 내가 별의 무덤에 있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세상에서는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다.
연맹원은 자신이 전령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먹구름의 짐승이 제국 본성을 포위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했습니다.”
“……심각해요?”
연맹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그럴 기미만 보일 뿐입니다. 문제는 시민들이 그만큼 불안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시장과 농사가 마비되었고, 치안률이 떨어져 가죠.”
세상의 멸망은 진실을 아는 우리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짐승이 지진을 예측하듯,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음으로 다가올 암울한 시대를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한테 온 이유는?”
“섭정께서는 백 년 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직접 목소리를 내셨어요. 그분께서는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 황금의 시대가 곧 올 것이고, 그 영웅의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알렸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여정에 희망을 느꼈어요.”
“…….”
아마 그랬겠지. 섭정은 예언자고,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에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섭정은 그다음 미래도 알고 있을 텐데.”
예언자라면, 이 모든 일의 결론이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초대 예언자는 그만큼이나 강력했으니까.
하지만 노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섭정께서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 전해 달라 하시더라구요.”
“여기까지?”
“방금 귀인께서 그 질문을 던지는 이 순간까지만, 알고 계셨어요.”
“…….”
리리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한 표정이었다.
이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예언자가 볼 수 있는 미래는 여기까지였다.
섭정은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예언에 의존한 대화도 여기서 끝이었다.
“마지막 원반에서 나온 섭정의 말씀은 이랬습니다.”
「
믿음이란 내게 굉장히 낯선 감정이라네. 믿음이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감정이고, 모든 걸 알고 있었던 내게는 그 감정을 이해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 마지막 말을 기록하는 지금, 내 삶의 끝에 달한 지금에서야 그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왔다네.
나는 그대를 믿어 보고 싶다네.
예언자의 상은 대대로 황금이 없는 공허한 삶을 살지만,
이 감정을 내 황금이라 여기고 싶으니.」
나는 이 시대의 예언자의 상, 벨라 비바치시모를 떠올렸다.
그 별의 자손 역시 자신의 황금 없이 그저 신의 장기말로 살아가는 운명을 가졌었지.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저항했잖아.”
대악마 가롯 앞에서 자신은 신의 장기말이 아니라고 외치던 신의 대변인, 성녀.
그 당당했던 모습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예언자의 상이 황금이 없다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전해 줘요.”
노움은 그저 지그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예언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섭정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 * *
나는 진서연에게 베이스 캠프 폐쇄 결정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천문학자들이 이 세상 우주에서 이상 반응을 감지했어요.”
“천문학자들이요?”
진서연은 베이스캠프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마탑으로 위장된 통신탑을 가리켰다.
“저거, 통신탑이긴 한데 밤에는 천체 망원경이기도 하거든요. 전파 망원경. 천문학자들이 득달같이 들러붙었지. 제 분야는 아니라 전 신경 안 쓰긴 했지만요.”
“그 사람들이 본 게 뭔데요?”
“이 우주가 가지고 있는 배경 복사가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감소하고 있대요. 그러니까 최초 우주 탄생 때 발생한 에너지가 열평형 상태에서 벗어나며…….”
“이해하기 쉽게……!”
진서연이 시동 걸리는 걸 간신히 막아 냈다. 소파에 앉은 채 발을 까딱거리던 진서연도 게슴츠레하게 떴던 눈을 번쩍이며 고개를 휘저었다.
“배경 복사가 우리 우주에 비해서 너무 선명했기 때문에 감소 추이를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었어요. 쉽게 설명하자면, 우주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다 사라지면?”
“식겠죠?”
“온 우주가 얼음 덩어리나 다름없어지는 거예요. 빛도, 열도, 질량도 없는 어둠. 우리 우주의 멸망 가설 중에도 있는 이야기예요.”
전설 속에서 퍼져 있던 이야기와 완전히 같다.
차이가 있다면, 전설은 그저 전설일 뿐이지만, 이건 완전히 입증된 실제 상황이라는 거겠지.
과학으로 설명되기 시작한 전설.
우리 세상에서 모험이 사라지기 시작한 때가 그랬다.
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 사이에 진서연은 말을 이어 나갔다.
“문제는 우리가 이제까지 차원문을 닫는 연구는 진행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베이스캠프가 폐쇄되더라도, 이 세계와 우리 세계는 여전히 이어져 있잖아요. 그 미래가 실제로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각오는 했어야죠?”
진서연이 힐끗, 나를 올려다보았다.
“탐욕스러운 건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하지만 탐욕적으로 행동할 때는 그만한 각오가 같이 있었어야 하는 거죠. 이제까지 이 세상으로 이것저것 하려고 했으면서, 그 위험이 넘어올 때의 생각은 못 하셨나 보네요.”
“인정해요. 우리가 틀렸어요. 항상 그렇지만.”
진서연은 쿨하게 인정했다. 사실 그럴 걸 알고 일부러 한 말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지.
어쨌든 OWIC은 더 이상 힘을 잃었고, 여러 거짓말들이 들통나며 여론과 정치권이 완전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베이스 캠프를 유지할 명분이 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가만히 듣고 있었던 차소희가 입을 열었다.
“네 영향이야.”
슬쩍 고개를 돌려 차소희를 바라보았다.
내가 없는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활기차게 웃는 듯한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피곤함이 많이 엿보였다.
“네가 이계에도 사람이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했어. 진짜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진서연이 살짝 한숨기 섞인 목소리로 차소희의 말에 덧붙였다.
“강압적이고 기만적인 방식으로 이계에 진출하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이 생겼어요. 매우 강하게. 그 여론이 OWIC을 무너뜨리고 있는 수백 가지 카테고리 중 가장 강력한 하나예요.”
“그래 봤자 뭐 해요? 위험을 걱정하는 처지에.”
“다 들었어요. 제국 쪽 사람들에게. 애초에 선후 씨가 찍어 온 영상에도 다 담겨 있잖아요.”
진서연도, 서지아도, 차소희도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 일을 막아 낼 영웅이라면서? 뭐, 제국 쪽 사람들 방식으로 말하면.”
“…….”
할 말이 없어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등에 룬 문자를 그렸다. 강한 충격을 주는 복합 룬 문자. 그리고 장갑을 껴서 지워지지 않게 했다.
차소희 아버지가 만들어 준 재킷을 다시 입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오랜만에 인사나 드리러 가 봐야지.
가슴 쪽 포켓에 검집을 단단히 끼워 넣고 고정했다.
연금술사의 시약병에는 태양빛을 담았다. 태양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
그리고 이전부터 담겨 있었던 ‘은하수 한 방울’을 잠시 바라보다가 집어넣었다.
이제는 손에 익어 버린 탐험 준비 과정. 리리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기.”
리리는 무언가 말하려더니, 주저하다가는 그대로 삼켜버렸다.
“아니야. 아무것도.”
하지만 얘가 매번 잊는 게 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눈과 코로 감정을 읽는 능력이 생겨 버렸다는 거지. 간혹 이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걸 알게 해 준다.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신경 쓰지 마. 뭘 또 땅굴을 파냐? 내가 그러지 말랬지?”
“……당신은 부담 가지고 강제로 뭐 하는 거 싫어하잖아.”
“그게 너 때문이야?”
“…….”
나는 그런 리리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쳤다.
“사실, 티 안 내려고 했는데, 지금 기분 꽤 좋아.”
“……왜?”
나는 섭정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이 시대가 바뀌는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아? 난 궁금해서 죽을 거 같은데.”
그건, 이제까지 했던 모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구경거리일 테니까.
짐을 다 꾸린 뒤,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언제 나갔는지 모를 서지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
서지아는 자신의 활을 건넸다.
내가 준 엘신의 활.
“그거, 네 거…….”
“네 거야.”
“내가 분명 너 준 거…….”
“네 거야.”
서지아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번 여행이 끝날 때만큼은, 네 거야. 그렇게 정했으니까 반박은 안 받아.”
나는 피식 웃으며 그 활을 받았다.
활을 만지는 순간, 막대한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 그건 정제된 세계수의 기운이었다.
서지아가 세계수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싱그러운 기운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짐을 싣는 순간에 셀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우리의 주인.」
“……황금의 시대가 오면 넌 자유로워진다고 했나?”
「왕을 섬기게 될 뿐입니다.」
“아, 그랬나?”
「그건 지금과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지요.」
“……설레발이 많이 늘었어.”
「주인의 친구들은 대체로 이렇더군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얘도 많이 능글맞아졌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