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ep68. 시대의 끝 (2)
렐릭시나는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 뒤로 단 한 번도 울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를 황금의 왕국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이후부터 이랬던 거 같다.
이 세상에서 ‘황금’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우리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황금’이란 우리 세상에서도 단순히 안정적인 어떤 금속을 뜻하는 단어에서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계의 사람들과 우리 세상의 사람들이 막상 마주쳐도 큰 충돌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황금’이라는 단어가 품은 어떤 열기에 서로 공감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이를 떠나서, 이제까지 이계를 모험하며 깨닫게 된 특별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서연 씨.”
출발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검토 중, 그 모습을 왠지 뿌듯하게 지켜보던 진서연에게 넌지시 내 의견을 꺼냈다.
“이계에서요.”
“네.”
“황금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
지금 내가 말하는 황금은 정말로 비유적인 의미가 아닌 반응성 낮은 금속의 이름을 뜻했다.
진서연은 내 말에 잠시 뜸을 들였다.
“없었네요. 사실 우리도 의문이었어요. 이계의 어떤 문헌이나 떠도는 소문 속에서도 황금이란 단어는 자주 보였거든요. 근데 이 세상은 아무리 찾아봐도 황금이라고 부를 만한 금속이 없어요.”
이계의 금속 주조 기술은 멈춘 지 오래되었다. 제국의 수도라는 솔라에서마저도 금속 주조를 하는 공장이나 큰 대장간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작고 영세한 게 한두 개 보였을 뿐.
모든 것이 멈추고 정체되었으며, 거기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대. 이계의 사람들이 말하는 풍화의 시대에는 황금이란 금속이 없었으며, 그건 고대의 유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선후 씨의 협조 덕분에 노란빛 나는 고대 유물의 금속을 조사한 적이 있잖아요? 그것도 황금은 아니었어요. 그냥 노란빛이 나도록 가공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랬다.
황금이 노래가 되고 전설이 되고 역사가 된 세상에서는 정작 진짜 ‘황금’은 존재하지 않았다.
“…….”
“그래서 황금의 왕국이 특별한 것 아니겠나?”
어느새 오두막 2층에서 내려온 나쉬르가 말했다. 쉴쿨은 그 뒤에서 서서 제 스승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는 이제 떠날 건데, 나쉬르는 어떻게 할 거예요?”
“떠나야지.”
“나랑 같이? 이번에는 배려가 좀 적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나쉬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별을 쫓는 자들이지, 황금을 쫓는 자들이 아니잖나?”
“무덤까지 가 보셨으니 이제 여한이 없으시겠네.”
“무슨 소리야. 지금 이 상황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성운(星雲)이 하늘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하늘에 포함된 구름이 아니라 우주에 포함된 구름은 그 자체로도 거대한 감정을 이끌어 올렸다.
신기한 건, 세상이 좋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임에도 저 모습이 마냥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저 현상 역시 별들의 것. 그게 흑성일지라도, 우리는 그걸 쫓아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이야. 그게 우리의 숙명이니깐.”
평소에는 생긴 것처럼 거칠게 말하는 바바리안이지만, 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만큼은 정말이지 노래꾼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만일에, 정말 만약에 그쪽이 왕국을 찾고 왕좌 앞에 닿게 된다면 말이야.”
나쉬르는 고개를 내렸다. 그 눈빛에는 순수한 궁금증이 담겨 있었다.
“왕이 될 생각인가?”
바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말로 설명하기엔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 확실한 건 내가 대답하지 않고 그저 피식 웃어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나쉬르는 그리고 그 대답만으로 충분히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는 웃은 뒤, 고개를 꾸벅 숙여 예를 표했다.
“남쪽의 길을 뚫어 준 엘드리치el de rich에게, 그리고 바드를 꿈으로 인도해 준 한 명의 인간에게 전 노래꾼을 대표해서 감사를 표하겠소. 그리고, 잊지 않겠소.”
“제가 노래로 만들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그쪽 여정을 저의 노래로 만들 거예요.”
뒤에서 듣고 있던 쉴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짐을 다 실은 뒤, 렐릭시나의 고삐를 잡았다. 여전히 팔짱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진서연이 뒤에서 말했다.
“이번 여행은 응원할게요. OWIC 소속의 강선후 동업자가 아니라, 당신의 팬으로서.”
“팬이요?”
“탐험가 강선후의 탐험 채널부터 봐 온 올드팬으로서요.”
“……?”
저건 내가 지구에서 탐험할 때 만들었던 유튜브 채널인데.
“……언제부터 봤는데요.”
“첫 영상 때부터요. 맨 처음 귀환하셨을 때, 선후 씨 만나고 내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아요? 모른 척하려고 혼났어.”
진서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나는 그 말에 멋쩍은 미소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떠났다. 거창한 배웅은 필요 없었다. 이번 모험 역시 언제나의 여정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으니까.
떠나는 길은 매번 설레고, 매번 기대된다. 그 목적지의 경중과는 전혀 관계없는 감정이다.
우리는 서쪽으로 향했다. 베이스 캠프를 둘러싼 바위산을 빙 둘러 나아갔다.
그 시점에서, 리리는 내가 본격적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어디 들를 곳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정은 출발했지만, 바로 왕의 무덤과 황금의 왕국이 있는 방향으로 떠날 수는 없었다.
내게는 어떤 모험과 마찬가지로 그저 기대되는 여행일 뿐이지만,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큰 의미가 있는 모양이지만.
내 일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할 수 있다면 그들이 이 모험에 가지는 의미를 조금은 존중해 주면 좋겠지.
내가 향한 곳은, 이 바위산 안에 숨겨져 있었던 승강기의 입구였다.
지하 묘지.
묘지기 거인이 잔뜩 파괴하고 있었던, 거대한 지하 무덤으로 가는 길.
우리는 승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급격한 기압 차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빠르고 깊이 내려가는 승강기.
그게 멈추고 문이 열렸다. 이제부터 내가 보게 될 건, 과거 거인 묘지기에게 처참하게 파괴당한 거대한 묘지겠지.
왕의 군대가 잠들어 있는 거대한 묘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문이 열린 순간.
“……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흙과 나무로 지어진 집들. 작은 건 무릎 높이에서, 큰 건 거인의 키만큼이나 하는 묘비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건물들은 불협화음과 같았지만 모순적으로 그래서 멋졌다.
쿵, 쿵—!
거인의 삽질 소리가 들렸다.
과거, 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는 묘지를 파괴하고 영혼들을 고문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묘지를 재건하는 충실한 묘지기의 소리였다.
“묘지기!”
내 목소리에 저 멀리에서 작업 중이던 묘지기가 굽은 목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천천히라곤 하지만 아무래도 거인이라 그 중압감이 대단했다.
「……인간.」
“이런 걸 하고 있었단 말이야?”
자세히 바라보니, 영혼들 역시 그 작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반목하던 영혼과 거인.
그들이 황금의 율법에 따라 서로를 용서하고 힘을 합치는 모습.
보기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 들었음.」
“소문이 빨리 퍼지네.”
「여기는 왜 왔는가.」
나는 묘지기를 바라보며 살짝 생각을 정리했다.
거인.
고대 첫 번째 전쟁에서 아버지 아틀라스를 잃고 영혼에 상처를 입어, 영원한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히게 된 종족.
내가 만난 첫 번째 거인은 크라켄. 그것과 싸울 때까지만 해도 거인은 적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만난 디오네는 자신이 이 세상에 어울릴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있었다.
사실 그때 느꼈다. 거인들은 제 태생적인 한계에 영원히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 녀석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할 말 있는 거야?”
리리가 물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태생적인 한계는 반드시 있어. 나는 운명론을 좋아하진 않지만, 타고난 건 어떨 때는 근성으로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거든. 노력으로 다 된다는 이야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이 말은 리리에게도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게 보였지만, 그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으니까.
“근데, 그게 중요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나, 없나. 어느 쪽이 진실인지가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을까.”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할 수도 있지.
“근데, 그것보다는 그걸 극복하려고 하는 모습 그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을 수도 있어.”
내가 모험을 왜 하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항상 하던 대답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즐거운 거라고.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과정을 폄하할 필요 따위 하나도 없다. 두 개는 따로 판단해도 되는 것들이니까.
그래서 짧은 고민 끝에 이렇게 하기로 했었다.
섭정에게 받은 뒤로 여정 중 요긴하게 쓴 지팡이.
장미 줄기를 엮어 만든 지팡이를 거인에게 건넸다.
“받아.”
「……이게 무엇?」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황금의 시대가 오기도 전에, 어떤 미친놈 하나가 장미 하나를 구하려고 산사태에 뛰어들었대.”
거인의 눈알이 굴러서 지팡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게 바로 그 장미 줄기로 만든 여행용 지팡이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아마 네가 무언가 결정해야 할 날이 올 거야. 아마 그건 먼 미래가 아닐 거고. 그때까지 이 지팡이를 바라보면서 생각해 봐.”
「무엇을?」
“무언가를 지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
거인은 삽을 내려놓고, 몸을 굽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바닥 위에 지팡이를 얹었다.
거인은 다시 몸을 일으켰고, 삽을 들며,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아주 작은 지팡이를 바라보다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수수께끼?」
“뭐라고?”
「이건, 문제인가? 내가, 답을 맞힐지 틀릴지, 시험하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답 같은 건 없어. 그냥, 생각해 보라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다시 탄 승강기 안에서, 리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당신, 무슨 의도였어?”
“아무 의도 없어. 거인이 답을 못 찾아도, 그것도 그것대로 뭐 괜찮지 않나?”
얘는 아직 눈치를 못 챈 거일 수도 있다.
파도치는 사막에서 거인왕의 딸, 디오네가 했던 말.
아주 오래전 장미를 지키기 위해서 산사태 속으로 뛰어들었던 광인.
그게 나였다는 사실을.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그 시절의 미쳐 있었던 내가 찾아낸 답을, 묘지기 녀석이 찾는다면.
“……그건 좀 멋질 거 같아서.”
그냥 그 이유일 뿐이었다.
리리는 모르겠다는 듯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승강장은 다시 지상에 도착했다. 엎드려 있었던 렐릭시나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렐릭시나 위에 올라타며, 이제는 본격적으로 떠나기 전, 리리가 물었다.
“……왕이 될 거야?”
“왕국에 도착할 수 있을지부터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만약에, 도착하게 된다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리도 예상했다는 듯 더 캐묻지 않았다.
그건 지금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그때가 돼서도 대답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그때의 내가 고민할 문제잖아?
이때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왔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