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ep68. 시대의 끝 (5)
「출항이다!」
닻을 올리고 돛을 펼쳤다. 에드워드는 키를 격하게 돌렸다. 배는 이런 식으로 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콰지지지직—
“이거 괜찮은 거지!?”
요란한 소리 사이에서 리리가 난간을 붙잡으며 소리 질렀다.
「나와 함께한 동료를 믿지 못하는 거냐 고얀 꼬마 놈아!」
“아니, 그게 아니라! 함께한 동료라면 좀 부드럽게 다루라고요! 배 다 부서지겠어!”
에드워드의 배는 항구를 긁어가며 뱃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아랫부분이 바위에 긁히는 소리가 수면을 뚫고 올라왔다.
「이 정도로 징징댈 녀석이라면 애초에 동료 취급하지도 않았어!」
나무와 철판이 바위에 갈리는 소리, 그러다가는 순식간에 파도를 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배. 선수의 방향이 잡히자마자 코너를 벗어난 레이서처럼 순식간에 속도를 높여 항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떠나는 우리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항구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게 있지 말고! 우선 안전한 곳으로 떠나요! 다음에 다시 봐요!”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그렇게 외쳤다. 그러고는 뒤로 돌아 선수로 향했다. 갑판 위에서 반쯤 몸을 낮춘 채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아르고와 눈을 마주쳤다.
“왜요?”
“아니, 의외라서…….”
“뭐가요?”
“영웅께서는 우리 마을의 사람들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게 아닌가요?”
무슨 말인진 알 거 같다. 과거 지구에서 살 때도 비슷한 질문을 꽤 받아봤으니까.
“소나기 내릴 때 하늘에 대고 화내요? 뭐, 한두 번 그럴 수도 있지만…… 진짜 하늘이 싫어지거나 하고 막 그래요?”
“그건, 물론 아닙니다.”
“비슷해요. 짜증 난 건 짜증 난 거고, 저 사람들이 좋고 싫고는 다른 이야기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그 사람에게 화를 내는 어렸을 적의 시절은 지났다.
선수에 선 채 정면에서 몰아치는 바람을 느꼈다. 우리가 직행하고 있는 저 방향에는 수평선이 있었다. 황금 지침은 이제 필요 없었다.
“풍화의 시대가 맘에 들지 않았던 거 아니었어?”
리리가 옆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본 채 말했다.
“반반이야.”
이건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감정과 판단을 뭉뚱그리는 것. 그건 밀림에서 생존할 때 치명적인 독이 되기 마련이니까.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만 탓하는 건 물론 옳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마냥 틀린 소리만은 아니잖아? 우리는 적지 않게 그런 것들에 등을 떠밀리고는 하니까.
“시대는 싫지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해가 가는 면이 있거든.”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배가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소리를 뚫어 내며 여기까지 닿는 목소리들.
뒤를 돌아보자 멀어져 가는 항구 사람들의 외침이 닿았다.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황금의 왕좌를 부디!”
“몰려오는 암흑시대를 막을 황금을 재림시켜 주십시오!”
그 말이 끝나고 메아리가 사그라들 때까지 멀어지는 항구를 잠시 바라보다가 수평선으로 시선을 옮겼다.
풍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왕좌의 주인이 나오길 바란다. 섭정이 내 여정을 사람들에게 발표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거다.
왕좌의 주인이 나오면 황금의 시대가 올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희망을 품을 수 있었을 테니까. 몰려오는 공포를 조금이나마 희석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의문이 든다. 황금의 시대는 왕이 있었기에 존재했던 시대였을까?
왕좌의 주인이 나오면, 하루아침에 풍화의 시대가 황금의 시대로 나아가는 걸까?
* * *
바다. 아무리 이계지만 이 거대한 곳은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계는 이계라고 확실히 우리 세상과 다른 풍경이 하나 있었는데.
“……저 산맥. 진짜 안 끝나는 거야?”
육지의 영역이 끝나고 바다의 영역이 시작되는데도, 저놈의 노미나 산맥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서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말했잖아. 이 세상을 남북으로 가르는 산맥이라고.”
바다에서도 여전히 위용을 과시하는 산맥이라.
이계는 이계구나.
우리는 며칠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인원이 부족했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아가면서 선실에서 수면을 취했다.
“저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겠…….”
“괜찮으니까 들어가서 자요. 비몽사몽하게 있다가 시키는 거 못하면 그게 더 민폐야.”
애초에 일손으로 쓰자고 태운 것도 아니잖아.
에드워드도, 리리도 내가 아르고를 태운 사실에 대해서 문제 삼거나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 사람들도 나에 대해서 조금 이해하고 있는 탓이었다.
우리는 몇 날 며칠을 수평선을 향해 나아갔다. 내가 챙겨 온 식량은 다 떨어져 갔기에, 우리는 배 위에 있는 낡은 그물과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물건들을 사용해서 물고기를 낚았다.
파지지지직—
낚시에는 자신이 있다며 달려들었던 아르고가 급조 낚싯대를 손에 든 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
던지면 전류가 흐르는 그물로 펼쳐지는 구형 물체.
예전 파도치는 사막에서 몰락하고 탈락한 지배자의 상이 내게 사용했던 물건이다. 그 녀석 이름도 기억 안 나긴 한다. 이제는 덫 대신 중소 동물 사냥에 쓰는 좋은 도구가 되었지.
어쨌든 그때부터 이 물건을 쓸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거 낚시에 쓰면 대박 아냐? 사냥에서도 토끼 같은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잡으니까.
라고 상상만 했던 건데 실전에서 증명된 순간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불법이겠지만.”
감전된 물고기가 얽힌 그물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아르고가 내 눈치를 봤다.
“저기, 그건…… 대체…….”
“고대 유적의 유물 중 하나예요. 뭔가를 포획하는 용으로 썼던 거 같은데. 리리!”
“어, 응?”
선실에서 잠시 쉬다가 나오는 리리가 눈을 비비다가 문뜩 고개를 돌렸다.
“불 피울 준비 하자.”
“불? 나무는…… 가방에 숯 있겠구나. 알겠어.”
「야 이놈들아!」
지루한 듯 키를 잡고 있었던 에드워드가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입속에 주먹 두 개는 들어갈 정도로 벌어진 그 턱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배 위에서 불을 피우는 몰상식한 놈들이 어디 있냐! 대갈통을 프로펠러에 매달아 줄까!」
“에이, 그럼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를 생으로 뜯어먹어요? 세계의 끝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탈 나서 내가 끝나겠네.”
「빠진 놈들 같으니라고!」
에드워드가 와락대는 동안 나는 여행용 화로를 잘 고정하고 쌓인 숲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물론 나도 이런 나무배 위에서 불을 피우는 게 위험한 짓이라는 걸 잘 안다.
“모스, 모로스mohs, moros.”
불꽃을 화로 안에 고정한다. 그리고.
“씨르, 모로스thir, moros.”
반대로, 숯 근처에 물줄기를 하나 만든 다음 고정했다. 그 뒤, 옆에 룬 문자로 숯이 쓰러지면 바로 허공에 고정된 물이 쏟아져 내리도록 명령어를 만들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센서를 설치한 화재용 스프링쿨러 와 비슷한 느낌.
배 위에서 불을 피우는 게 위험한 이유는 배 위가 의외로 많은 물을 구하기 힘들고 잔뜩 흔들리는 탓에 제때 대처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걱정이 없는 거지.
이것저것을 엮어 만들어 낸 간이 석쇠로 잡은 고기를 굽고, 남은 게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건조 처리를 한다. 바다 위를 달리는 배 위에서 훈제를 하는 건 시도해 보니 넌센스였다.
내가 건조대를 엮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르고는 눈치를 보다가 슬쩍 손을 거들었다. 뭘 만드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
보통 이렇게 있으면 먼저 말을 걸기 마련인데, 아르고는 배 위에서 꽤 같이 지냈음에도 여전히 내 눈치를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눈치를 본다기보단 많이 어려워하는 느낌.
온 세상에서 영웅이라고 부르는 모르는 남자와 한 자리에 있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러니 어렵게 느끼는 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저기.”
“아, 네! 혹시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자대에 막 배치된 신병의 느낌이었다.
“어때요?”
“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것이…….”
“읏차.”
잠시 허리를 폈다.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리리는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를 항해 하게 된 후, 리리는 저렇게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처음 보는 바다가 신기해서 저런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들어 계속 보여 줬던 고뇌에 빠진 모습의 연장선 같기도 했다.
나는 그런 리리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다가 그대로 입을 열었다.
“같이 있어 보니까요? 그 영웅이라는 사람이랑.”
내 목소리를 들은 리리가 뒤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는 본인 입으로 영웅이라고 하고 있네.”
아르고는 잠시 손을 멈춘 채 나를 올려다보다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뭔가, 제가 예상했던 거와는 다릅니다.”
“어떤 부분이요?”
“인간임에도 룬을 사용하시는 모습은 제가 생각하는 영웅과 같았어요. 하지만…….”
아르고는 잠시 생각을 잠겼다.
“왕좌를 향하는 마지막 여정, 시대에 황금을 재림할 영웅의 여정은…… 신화 속 신에게 도전하는 군단장이나 전사를 생각했었습니다. 조금 더 대단하고, 웅장하고, 뭔가 신화적인…….”
“저건 나도 그랬는데.”
난간에 턱을 괴고 있었던 리리가 피식 웃었다.
그는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바다 쪽에 눈을 고정하다가는 나와 리리를 바라보았다. 질문을 받고 보니 오히려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그런 느낌은 아니네요.”
“좀 실망하셨나?”
나는 피식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비꼬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냥 저런 순수한 감상평이 재밌기도 하고, 내심 유쾌하게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뇨. 오히려…… 이건 이거 나름대로 좋습니다. 아니, 생각보다도 더요.”
“기대한 게 아니더라도 좋다는 거. 난 그 느낌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면서 리리를 바라보았다.
“넌 어때?”
“……부정하지 않아. 아르고가 한 말.”
“나랑 예전에 내기한 거 기억나?”
“무슨 내기?”
“조만간 너도 나처럼 된다는 거.”
“…….”
리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엘 로크라 벨라el rokra bella를 울린 날 나한테 했던 말이네?”
“너 기억력 진짜 좋다.”
우리가 맨 처음 유적에 도착한 날. 이 모든 여정의 시작을 알렸던 시대의 종을 울린 그날, 나는 리리에게 저런 말을 했었다.
너도 나처럼 될 거라고.
“내가 이겼지?”
“…….”
리리는 붉은 눈동자로 나를 힐끗 바라보다가 다시 난간 건너 바다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이거든.”
“하, 버텨 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데. 꼭 그렇게 고집부리다가 두 배로 맞고 뽀찌도 못 먹고 후회하면 늦는 거야.”
리리는 바다 저편을 바라보면서 슬며시 웃고 있었다. 이제는 숨기려고 하지도 않네.
그래. 요즘 자주 보이는 고민에 시달리는 표정보다야 저게 훨씬 낫지.
우리는 그렇게, 어부들의 터전이자 밭이었던 필멸자의 바다를 가로질러 서쪽의 수평선으로 끊임없이 나아갔다.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필멸자의 바다라 불리는 영역이 짧은 걸까?
아니, 내 생각에는 모래를 헤쳐 나가도록 만들어진 에드워드의 배는 물 위에서는 힘이 남아돌 지경이라 내가 차마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전진한 탓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저게 대체 뭐예요! 아르고?”
어마어마한 폭풍 소리 사이를 비집고 리리의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돛을 접어라! 당장 움직여! 잘못하면 배가 뒤집혀 버리고 만다! 상어 밥이 되기 싫은 만큼 빠르게 발을 놀려!」
에드워드는 몇 안 되는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느라 바빴다. 이제 막 흔들리기 시작한 배에서 네발로 기듯 돛으로 다가가 밧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빵빵해져서 터질 것 같은 돛이 빠르게 올라갔다.
짠기 가득한 물보라 사이에서, 나도 거기에 거들었다.
“저게! 뭐냐구요!”
선수에서 전방을 정찰하는 리리가 재차 외쳤다. 아르고는 그제야 리리의 목소리를 들은 듯 말했다.
“무풍지대의 경계입니다! 저도!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무풍지대라면서요!”
“네!”
“그런데 대체!”
리리는 전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저 폭풍은 대체 뭐냐구요!”
전방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있었다. 우회해서 간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소용돌이.
‘산악지대’가 눈앞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는 바다였는데도 말이다.
전방에 보이는 저건 물로 이루어진 산맥이었다.
“저건 폭풍이 아니라 그저 소용돌이입니다!”
태풍이나 토네이도, 용오름. 그렇게 불릴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저건 바람이 아니라 정말로 소용돌이였다.
너무나 거대하고 강력한 힘의 회전이라 제힘을 이기지 못하고 봉긋하게 솟아오른 소용돌이.
그게 우리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자연 현상의 정체였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 한 점 없었다. 새파랗고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는 소용돌이의 언덕은 이질적이었고, 그만큼 소름 돋았다.
우리가 저걸 발견했을 때는 운이 나빴는지, 이곳의 기상 상황이 원래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물안개로 인해 시야가 짧아진 상황이었고,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대처할 수 없는 속도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 힘에 치솟아 오른 물방울들이 비처럼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소금기를 가득 머금은 비에 눈조차 뜨기 힘든 상황.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그 거대한 소용돌이의 언덕에 어느새 매혹된 듯,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선장!」
뒤에서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하겠나!」
선장이 부선장의 의도를 물어보는 건 퍽 재밌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건 질문이 아니었다.
그저 내 의도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한 형식상의 절차였을 뿐.
“에드워드.”
나는 조타를 잡고 있는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시선을 선수 쪽에 둔 채 입을 열었다.
“할 수 있죠?”
「그럼! 이 배가 무어라 생각하는 거냐! 전설 속 크라켄에게 승리한! 배란! 말이다!」
에드워드는 잔뜩 흥분한 채 소리 질렀다. 저게 공포나 다급함이 아니라, 거대한 적 앞에 오히려 더욱 세차게 불타는 해적의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저, 저걸 넘어간단 말씀이십니까?”
아르고는 당황한 듯 중얼거렸고.
“……이 씨.”
리리는 욕설 직전까지 가며 허리에 매단 밧줄을 풀어헤쳐 기둥에 제 몸을 단단히 묶었다.
“여기서 죽으면 명계에서 영원히 잔소리할 줄 알아.”
“그건 거기 가서 얘기하고! 에드워드!”
「듣고 있다, 살덩이 녀석아!」
“전속력으로! 주저하면 바로 뒤집히는 거야!”
스릉—!
에드워드가 곡도를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베어 버릴 참이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