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ep69. 세계의 끝 (1)
에드워드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강선후 일행은 점점 격렬해지는 해류 속에서 에드워드의 기다렸다.
「모두, 돛을 잡고 대기해라.」
에드워드답지 않는 진중한 말투에 우리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시시각각 ‘소용돌이의 산맥’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지만, 지금은 믿을 때였다.
해류는 점점 배를 가속한다. 선수와 배가 흘러가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았을 때, 배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배는 앞으로 가는 물체였다. 해류의 방향과 선수의 방향이 완전히 일치한 그 순간 위태로웠던 흔들림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동시에 갑자기 바람이 순풍으로 바뀌었다는 걸 깨달은 그 순간.
에드워드는 높게 쳐들었던 손가락을, 마치 칼로 베어 내듯 내리치며 외쳤다.
「돛을 펼쳐라! 꾸물대는 순간 다 부러질 거니까 이악물고!」
강선후와 일행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칭칭 감았던 돛의 매듭을 풀어냈다. 밧줄은 휘둘러지는 채찍처럼 난동을 부렸다.
“억!”
아르고가 밧줄에 어깨가 부딪치며 넘어졌고, 리리가 서둘러 달려가 그를 부축했고, 강선후는 너무 빠르게 펼쳐지는 밧줄을 손으로 부여잡았다.
치이이이익—!
“으윽…….”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그 너머로 강력한 마찰열이 느껴졌다. 어금니를 깨부술 듯 이를 악물고, 밧줄을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밧줄의 속도는 정상 범주까지 줄어들었고.
펄럭—!
순식간에 순풍을 한아름 안은 돛은 풍선처럼 부풀며 배를 앞으로 밀어냈다.
“으아아아아!”
폭발적인 가속, 그리고 소용돌이의 경사면을 오르기 시작하며 배 자체가 뒤로 기울자 아르고는 그 급격한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다. 속절 없이, 이리저리 부딪치며 뒤로 구르기 시작하는 아르고.
턱—!
리리가 돛의 기둥을 부여잡고, 아르고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파고들었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피가 주르륵 흘렸다.
“이잇……!”
리리는 아르고를 배의 난간 쪽으로 집어던졌다. 아르고는 난간을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르고는 보았다.
“……으아.”
바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소용돌이의 언덕을.
크다고 말할 수 없는 이 배가 그 언덕을 돌파하려 용맹하게 머리를 들이밀었다는 사실을.
용맹한 걸까? 무모한 걸까?
“에드워드!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려요! 뒤질 각오로 프로펠러 돌려!”
「하고 있다 이놈아!」
둘 다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위이이이잉—!
갑판 아래에 있는 엔진의 진동이 배 전체를 울릴 듯 흔들렸다.
하지만 이 배를 탔던 적이 있는 리리와 강선후는 이미 느끼고 있는 불안감이 있었다.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배 힘이 많이 부족해!”
강선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래를 가르며 항해 하던 배다. 물 위에서 이토록이나 빈약해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대로라면! 으윽!”
리리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소용돌이를 따라 회전하는 막대한 해류가 갑판 위를 덮쳤다. 나무 판자에 손가락이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부여잡았다. 피가 주르륵 흘렀다.
“이대로면 휩쓸리고 말 거야! 배가 뒤집힌다고!”
강선후는 버티고 서며 끝까지 선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면 휩쓸리고 만다.
리리의 계산은 강선후가 생각하기에도 맞았다.
배의 출력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낮았다.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 예전의 그 힘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강선후는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받아들이지 말고, 인과를 생각하라.
인과를 통제하는 것. 그게 살아남는 것이고, 승리하는 것이다.
강선후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논리.
이 말이 맞고 틀리고 따위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었다. 옳고 그름은 살아남는데에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인과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인과를 깨닫는다.
바닷물로 잔뜩 젖은 강선후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마력.”
몰아치는 바닷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리리가 실눈을 뜨고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그가 하는 말을 똑똑히 들은 탓이었다.
“마력?”
마력.
이 세계에서는 마법과 전혀 관계가 없는 어떤 에너지.
마력이란, 자연 현상이 일어나며 만들어지는 부산물에 가까웠다. 비유하자면, 톱니바퀴가 돌아가면서 나는 소리와 같았다.
강선후는 파도치는 사막을 떠올렸다.
원래 사막은 파도칠 수 없었다. 이유를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당연한 사실.
그럼에도 그곳이 파도쳤던 이유.
그건 디오네의 강렬한 바람, 바다를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불멸자의 강한 열망은 하나의 에너지가 되었고, 그건 사막을 파도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사막을 항해 하는 이들의 동력이 되었다.
“여기는 그런 동력이 없잖아. 그러니까 애초에 연료가 부족한 거야!”
힐끗 에드워드를 바라보았지만, 에드워드는 이런 사실 따위 모르는 듯했다. 하긴, 기계를 사용하는 이가 기계의 작동 원리를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었을 테지.
강선후의 말을 대강이나마 이해한 리리는 다시 외쳤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공급하면 되지!”
“불멸자의 힘을 대체 무슨 수로…….”
그 순간, 리리는 말을 멈췄다.
바보 같은 지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불멸자의 정도는 되어야 내놓을 수 있는 힘.
강선후가 그게 없을까?
그럴 리 없잖아?
이미 강선후는 새까만 피스톨 머스킷을 손에 들고 있었다.
철컥—
공이를 뒤로 담기자, 작은 어둠이 화약이 있어야 할 곳에 스며들었다.
검은 태양의 마력.
신의 힘.
인간을 위해 떨어졌지만, 인간을 위해 여전히 신으로 남고자 한 어떤 외로운 노인.
“……나중에 꼭 고맙다고 해야겠네.”
그 힘이 인간의 손에 있었다.
강선후는 팔을 쭉 뻗어 아래, 배 쪽을 향해 조준했다.
이 힘을 룬 외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 필요가 없었다.
이 힘의 주인이 이미 그걸 바라고 있을 테니까.
타앙—!
화약이 폭발하듯 총구에서 뿜어져나오는 검은 화염. 그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날아드는 총알이 눈에 보이지 않듯, 그곳에서 발사된 무언가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위이이이이잉—
조금은 불안한 소리가 울려왔다. 이 배를 타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였다.
배의 모든 걸 몸으로 느끼는 에드워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꽉 잡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콰아아아악—!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는 바다를 가르기 시작했다.
배 꼬리를 따라 거대한 파도가 양쪽으로 펴져나갔다. 그저 찰랑임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마치 칼로 잘라 내듯 양쪽으로 퍼져 나가는 파도였다.
아르고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느낀 건, 소용돌이의 정상에 도달하여 그 가속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오른 배.
그 배가 다시 물로 떨어지면서 몰려온 거대한 충격이었다.
* * *
아르고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맨 처음 느낀 건, 죄책감이었다.
영웅이 동행을 허락한 그 날, 아르고는 다짐했다. 절대로 짐이 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건 결국 짐이 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았지만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이대로 있는 그 순간순간이 전부 짐이 되는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렇기에 아르고는 몸을 일으켰다.
주변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직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지만, 위기를 극복한 뒤의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어났어요?”
“저는…….”
“한 한나절? 좀 넘게 기절해 있었어요. 다행히 다친 데는 별로 없더라고. 상처는 치료했고.”
“죄송…….”
“잘했어요.”
자신의 말이 목구멍을 넘어서 나오기도 전에, 영웅은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다.
“돛이 달린 그거, 기둥을 뭐라고 하지? 아무튼 그 기둥에 금이 가 있더라고요. 아르고가 제 때 돛을 접지 않았더라면 부러질 뻔했어. 그럼 진짜 큰일 났겠지.”
「뱃놈답게 움직이더구만!」
에드워드는 그렇게 껄껄댔다.
아르고는 그들을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여기는.”
“축하해요.”
강선후는 한 손에 물고기 꼬치를 든 채, 몸을 일으켜 전방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림을 소개하는 박물관 주인의 제스처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당신이 항구 사람 최초예요.”
검은 태양의 힘을 원동력으로 끊임 없이 나아가고 있는 이곳.
바람 한 점 없는 바다 위.
무풍지대였다.
아르고는 그저 이곳이 단순하게 바람과 파도가 없는 바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공간에 대한 설화는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설은 언제나 왜곡되기 마련이었다.
“방금 일어나자마자 정신 없는 건 이해하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요.”
배는 앞으로 가고 있었다.
그제야 아르고는 깨달았다. 배의 엔진과 프로펠러는 모두 꺼져 있었다.
그런데도 배는 앞으로 가고 있었다.
바람도 한 점 불지 않고, 파도도 없었고, 돛은 애초에 접혀 있고, 프로펠러는 돌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배가 앞으로 가는가?
“…….”
그제야 아르고는 깨달았다.
전방, 저 멀리, 이제는 꽤 가까워진 수평선에 존재하는 거대한 폭포를.
이곳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아니라, 어딘가로 떨어지는 폭포의 시작점이 저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이제는 확실하게 보이는 끝없는 암흑의 구름이 있었다.
화창하고 청명한 눈이 부실 정도의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는 칠흑이 수평선 너머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수평선은 점점 가까워지고.
쿠우우우우—
폭포 소리라고 받아들일 수 없지만, 반박의 여지 없이 폭포 소리인 그것이 점점 귀를 육중한 기세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애드워드! 프로펠러 역방향으로! 하고 있었죠?”
「이미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뒤로 가는 건 무리야!」
강선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재밌다는 듯 웃었다.
“……세계의 끝이 정말 끝을 말하는 줄은 몰랐는데?”
“나도 당신 때문에 정신이 나갔나 봐.”
“무슨 말이야?”
“죽기 일보 직전 상황인 거 같은데.”
리리는 입술을 씹으며, 그렇게 말했다.
“왜 아무런 느낌도 안 들지?”
“그게 재밌는 거거덩.”
「하여간 미친놈들!」
이제는 그 ‘미친’놈의 범위에 자신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리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
하지만 그렇게 웃음으로 위기를 승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강선후의 접근을 누군가 눈치챈 걸까?
수평선…… 아니, 이제는 ‘폭포’ 너머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을 잠식하고 있던 어둠은 순식간에 몰려왔다.
하늘의 빛이 꺼지고, 바로 옆도 보이지 않았다.
“…….”
모두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밀리지 않는 에드워드마저, 갑작스럽게 몰려온 어둠에 빠져들자 당황스러움을 무시하진 못했다.
* * *
리리는 공포에 질렸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손에 닿는 온기를 느꼈다.
그게 강선후라는 걸 깨닫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강선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강선후는 지금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를 믿고 있었다.
그게 뭐지?
그 순간, 전방에서 빛이 보였다.
황금색 빛.
리리는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신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무엇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지, 경험해 봤는데.
오히려 리리는 잊었고, 강선후는 기억하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 빛을 내는 황금의 등대.
황금의 왕국에 존재한다는.
“……엘 네르키오el nercio.”
왕의 무덤이 이제는 가까이에 있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