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ep69. 세계의 끝 (2)
어둠.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던 그것.
항구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검은 성운이 별을 가리고, 세계의 끝에서부터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신화에 무지한 이들조차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리리가 가지고 있는 공포는 훨씬 컸다.
이 모든 일이 별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일이고, 그 죽음의 이유는 풍화의 시대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 별을 유지하는 불꽃이 사그라졌기 때문이고, 그 죽은 별들이 모두 흑성이 되며, 우리 다음 시대가 「위대한 암흑시대」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 시대의 ‘습격’이 이런 식일 거라는 상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시대의 변화. 그 경계선. 그 시간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불멸자들의 기억조차 로크 벨라rok bellla로 인해 지워졌으니까.
왕의 무덤, 엘 네르키오el nercio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악마가 태양의 눈을 가린 그때, 그때 태양 대신 우리를 비쳐준, 필멸자의 등대이자 황금의 증명.
왕의 무덤은 몰려오는 거대한 어둠 사이에서 다시금 세상에 희망을 비추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 희미한 빛.
그 빛으로 인해 드러난 것이 이곳이 어째서 무풍지대인지 알게 해 주었다.
저 멀리, 바다가 끝나는 지점의 까마득한 낭떠러지.
그곳에서 솟아오른 하나의 거대한 묘비가 있었다. 그 묘비는 노미나 산맥의 꼭대기보다도 높았다.
이곳은 왜 무풍지대였던 건가?
무풍지대란 파도쳐야 하고, 바람이 불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은 곳.
즉, 자연이 침묵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닫면 자연은 언제 침묵하는가?
불멸자이자 군주, 키호테가 우주로 향하려는 그 순간, 자연은 침묵했다.
강선후가 처음으로 생명의 정령 셀피와 계약한 순간에도 그랬다.
끝없는 어둠 저 편에서 천 년마다 날아오는 매가 당도했을 때도 그랬다.
대자연은, 거대한 무언가를 존중해야 하는 그 순간에 침묵했다.
그렇다면.
“……이래서 무풍지대였구나.”
“신의 묘지.”
묘비의 주인은 신이었다.
아홉 신 중, 모종의 이유로 투신자살하여 죽음의 개념을 세상에 만들어 낸 신.
제 첫 번째 자식, 가롯이라는 용에게 죽음이 무엇인가라는 호기심을 들게 만들어 돌이킬 수 없게 만든 신.
그 끝에 대지가 되어 세상의 기둥이 된 신.
죽은 뒤에 신성력을 온 세상에 정기의 형태로 흩뿌린 신.
온갖 부정적인 것의 아버지였으나, 동시에 생명의 요람이 된 신.
대지의 뿌리를 지탱하는 죽은 신의 묘비였다.
무풍지대란, 그 죽음을 애도하는 대자연의 묵념이 만들어 낸 지역이었다.
* * *
강선후 일행의 배는 시시각각, 바다가 끝나는 세계의 끝을 향해 휩쓸리고 있었다. 빠른 건 아니었으나 거스를 수는 없는 강대한 해류였다.
저 멀리 왕의 무덤은 빛을 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까마득한 먼 거리였으나 그 감정이 느껴지는 듯 빛은 떨렸다.
하지만 힘겨워 보였다. 시대를 상징하는 어둠은 절대적이었다. 위대한 암흑시대는 암흑이어야 했고, 그게 그 시대를 통제할 우주의 필연적인 법칙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리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도 보이지 않고, 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세계의 끝으로 떨어지는 막대한 바닷물 폭포 건너 왕의 무덤반 깜빡거리는 빛을 낼 뿐.
아무리 별이 꺼진다고 해도.
아무리 암흑시대의 전조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아직은 빛이 있는데, 아직은 신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아직은 별빛이 반짝였는데!
“……당신이 황금의 왕국을 향해 가고 있는데! 이건 말이 안 되잖아!”
강선후는 손에 닿았던 강선후의 옷깃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그리고 정말 희미하게만 보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삶을 희생해서 황금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그 숙명을 향한 희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면 안 되잖아! 그게, 그게 황금의 시대라며!”
무의미한 숙명.
무의미한 희생.
리리가 극심하게 거부하고 불쾌해 했던 것들이었다. 강선후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가문의 숙명에 몸 담고, 뱀파이어 가 소중히 여기는 일생에 한 번 뿐인 영혼 연결의 기회마저 숙명 하나만을 위해 처음 만난 강선후란 인간에게 소비해 버렸다.
리리는 숙명을 위해서 살아가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살았다. 그렇기에, 보상을 바랐다. 그 끝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결말에 당도한 이들이 자신이 미래가 될까 두려워서, 그랬다.
그게 신카의 숙명을 타고난 아이의 역린이었다.
강선후는 자신의 옷깃을 부여잡은, 너무 강하게 움켜쥐어 덜덜 떨리기까지 하는 리리의 손등에 손을 올려놓았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강한 온기.
이 차가운 어둠 속에서, 그것만이 리리를 안심시켰다.
리리는 강선후를 올려다보았다. 강선후의 시선은 왕의 무덤을 향해 있다가, 조금 내려와 손에 들려 있는 무언가로 이동했다.
“……모든 건 이유가 있잖아?”
평온한 말투였다. 강선후는 전혀 흥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뒤에서 바라보던 아르고는 그 침착함에 소름마저 돋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리리는 볼 수 있었다. 강선후 머리 위에 떠오른, 불타는 맹수 형태의 영혼을.
포식자의 상.
오직 야성만을 가지고 있으며, 힘의 논리가 아니라 인과를 주무르는 통제력으로 세상을 사냥한다는 광인의 영혼의 상.
그 상을 가지고 있는 강선후의 눈은 모순적이에도 초이성적인 빛을 띄고 있었다.
완벽한 통제.
이 또한 군림할 포식자가 가져야 할 격(格)이었으니.
그렇기에 포식자의 시선은 현상이 아닌 인과를 바라보고, 꿰뚫는다.
강선후는 검은 태양이 준 머스킷 피스톨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검은 태양의 신성력이 총구를 향해 뿜어져 나갔다. 강선후는 그 마력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며 외었다.
“루디나ludina.”
빛을 버린 신의 힘은, 룬 안에서 반죽되어 어둠을 찢는 빛이 되었다.
왕의 무덤은 그 빛을 추진력 삼아 스스로를 더욱 불태웠다.
황금의 등대가 밝아지고,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왕의 무덤, 그보다도 훨씬 더 멀리 있는, 하늘과 땅의 경계선.
그곳에 반쯤 몸을 걸친 구 형태의 검은 구멍을.
“저게, 무, 무, 무슨…….”
아르고는 제가 본 것을 믿지 못했다.
영웅의 신화적 여정이라는 것에 걸맞은, 영웅을 가로막는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신화적 여정, 그걸 기대한 건 맞지만.
저토록이나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걸 기대하진 않았다.
땅의 경계선에 몸을 반쯤 가렸는데도, 나머지 절반이 하늘의 반절은 차지하는 것 같은 크기.
그 검은 구멍.
“……저런 흑성이 있다고?”
밤하늘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하나의 흑성.
그건 필멸자들의 이야기 속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존재였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힘의 매개가 무엇인지를 목도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붉은빛이 일렁였다.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 하늘에서 유일하게 일어난 빛. 그건 희망이었을까?
하늘을 가로지르는, 긴 꼬리가 달린 붉은 성(星)을 바라보는 리리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 턱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홉 주신 중 하나네?”
강선후도 기억하는 듯했다.
혜성.
혜성이란 세상에 예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두 명의 신.
그 중에서 붉은 혜성.
“……재앙을 경고하는 붉은 혜성.”
절대적으로 찾아올 재앙을 상징했다.
아르고는 무릎을 꿇었다.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충분한 빛이 없었으나, 그는 울고 있을지도 몰랐다.
“제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게…….”
빠아악—!
“어억!”
앞으로 쓰러진 아르고의 뒤에는 에드워드가 서 있었다.
「머저리 같은 놈! 네놈은 열두 살짜리 꼬마보다도 못한 놈구나! 부끄러운 줄 알아라! 병신 새끼!」
“여, 열두 살……?”
에드워드는 다시 뒤로 가서 키를 부여잡았다.
「크라켄에게 용맹하게 달려들었던, 나를 만들어 낸 놈의 이야기다! 네놈이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그만한 용기를 보여 준다면!」
촤르르르륵—! 에드워드는 키를 격하게 꺽었다.
「포상으로, 그 녀석의 집을 구경시켜 주지!」
그 순간, 리리는 고개를 돌렸다. 강선후가 낄낄댔기 때문이었다.
“그 집, 완성 됐어요? 벌써?”
「그럼! 이 대해적의 혜안이 아주 멋들어진 배를 완성시켰지! 거인놈의 땅을 빼앗은 당당한 상징이다! 네놈도 구경하는 영광을 주마!」
“그거 듣고나니까.”
강선후는 품속에서 황금 지침을 꺼냈다.
“반드시 살아가야겠네요. 그렇지?”
강선후는 리리를 바라보았고, 리리는 그 눈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선후는 리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외쳤다.
“에드워드!”
「출력을 더 높이라는 말은 하지 마라! 이미 최대 출력이고 그래도 이 개 같은 폭포로 휩쓸리는 건 막을 수…….」
“출력 방향을, 선수로.”
에드워드는 강선후를 바라보며 눈을 꿈벅거렸다.
「…… 진심이냐?」
“최대로, 왕의 무덤을 향해서.”
아르고가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달싹거렸다.
“저, 그, 영웅이시여, 외람된 말이지만 저곳이 바다가 끝나는 폭포로 이어진다는 건 아시고 판단하신…….”
「출력 최대로! 돛을 펼쳐라! 아, 의미없지! 그래도 펼쳐! 해적선이 폼 안나게 돛을 접고 갈 수는 없으니까!」
리리는 군말 없이 돛의 매듭을 풀었다. 강선후는 선수로 이동했다.
아르고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재앙의 예언자, 주신 붉은 혜성을 바라보다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서 화포의 포탄을 장전했다.
손은 떨렸지만, 다행히 포탄의 무게로 억누를 수 있었다.
선수로 달려간 강선후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왼손에는 황금 지침이, 오른 쪽 손가락에는 기록관의 반지가 꽂혀 있었다.
기록관의 반지에는 안토니오가 선별한, 왕국의 땅을 밟을 수 있는 방법이 룬의 형태로 들어가 있었다.
리리가 물었다.
“왕국으로 가는 방법이 대체 뭐야?”
강선후는 대답했다.
“믿음.”
“…….”
“배신당할지도 모르는 믿음이지만, 그거 없이는 나아갈 수 없대.”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며, 지침의 뒷편에 꽂혀 있는 보석 중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는 두 개를 바라보았다.
“저 어둠에 가려져 있지만, 여전히 빛나는 게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돼.”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별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어둠은 그저 가릴 뿐이니까.
강선후가 지침을 들어 올리자, 지침의 뒷편에 박혀 있었던 두 개의 별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배자 쌍성』 필멸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별.
그 별이 세상을 비추는 순간, 왕의 무덤의 황금 빛이 더 밝아지기도 전에.
하늘에서 두 번째 혜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희망을 노래하는 푸른 혜성.
푸른 혜성은 붉은 혜성과 나란히 달렸고, 붉은 혜성은 기꺼이, 자신의 몸을 푸른 혜성에게 내주었다.
하나가 되어, 청백색으로 빛나는 혜성은 어둠을 갈랐다.
그 뒤를 조금 늦게, 따라오는 푸른 점들이 있었다.
별들이었다.
신화를 공부해 온 리리도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희망을 노래하는 푸른 혜성의 다른 이명.
별의 목자.
강선후는 혜성을 뒤따르는 별의 선두에 선 가장 오래되고 밝은 별이 궤도를 이탈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알고 있는 별이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