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ep69. 세계의 끝 (3)
재앙을 예언하는 붉은 혜성.
희망을 노래하는 푸른 혜성.
천 년마다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찾아오는 우주 저편의 매.
죽어 대지가 된 신.
명계와 현실을 가르는 은총의 달빛. 운데라.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변덕스러운 여행자. 라 시마.
두 개의 태양, 그리고 하나의 검은 태양.
이 세계를 구성하는 아홉 신.
의심의 여지 없이 드높은 곳에서 온 우주를 내려다보시는 분들.
아르고는 문뜩 생각했다.
아홉 주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하늘 아래에 있는 모두가 자신과 같으리라고 확신했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이 그와 다를 바가 전혀 없을 테니까.
어촌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청년은 그렇게 확신했고, 그건 누가 들어도 틀린 판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아르고는 생각했다.
신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우리는, 정작 신의 권능을 본 적이 있긴 했었나?
아니었다. 그저 있다고 했기에 있다고 믿었다. 의심도 하지 않았고 증명해 보려 노력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신에게 뭔가를 기대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게 있든 없든,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기에.
그렇기에 방금 전, 영웅께서 선수에 선 채 해적 정령에게 내린 명령이 다시 한번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영웅은 세계의 끝, 바다의 막대한 물이 흘러 우주로 떨어지는 끝없는 나락을 향해 항해를 명령했고, 해적은 그 명령에 한 치의 주저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죽을 게 뻔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이는 신의 도움을 믿지 않은 아르고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가 틀렸다는 사실을 신이 증명했다.
영웅이 세계의 끝을 향해 전진하라 명령한 순간, 아르고는 정말 아무 대책 없는 용기라고 생각했다. 그게 영웅의 덕목이었을까? 그저 객기라고 생각했고, 그것 때문에 이제 곧 죽으리라 체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앙을 예언하는 혜성이 자신의 붉은빛을 스스로 소멸시키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노래하는 푸른 혜성이 어둠을 가르고 별의 행진 선봉에 선 모습을 보며 알았다.
영웅께서는 객기를 부리는 것도, 아집을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신을 믿었고, 그 믿음이 상황을 바꾸리라고 확신해서 나온 행동이었다.
세계의 끝, 바다의 폭포. 물안개가 설산처럼 피어오르는 그 경계선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영웅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르고는 영웅을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기에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영웅이 공포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이유만큼은 이제 알 거 같았다.
그는 세상이 자신의 바람대로 움직이리라 굳게 믿는 자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한 최선과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 것이라 믿는 자였다.
우리 세상은 그런 자들을 동화 속에서 바보로 묘사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야기꾼도 바보가 세계의 끝에서 신과 성좌의 비호를 받으며 전진한다는 걸 상상하지는 못했다.
“에드워드! 나 믿고 계속 전진!”
선수에서 온몸으로 물을 맞으면서도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강선후가 외쳤다.
「이젠 진짜 한계인 거 알지 이놈아! 내가 죽으면 명계에서 거열형을 집행할 것이다!」
“명계에서 사형당하는 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네. 그리고 정령이 죽기도 해요?”
그 말을 들은 에드워드가 폭풍 속에서도 껄껄 웃었다.
이제는 그 웃음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바다가 나락 아래로 떨어지는 굉음은 고막을 찢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소리를 듣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했다.
몰려온 어둠에 뒤덮인 하늘과 저 멀리 세계의 끝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흑성.
그리고 그 흑성을 향해 하늘을 내달리는 주신, 푸른 혜성.
그 뒤를 따라 행군하는 별의 군대.
목숨이 떨어져 나가기 직전의 상황인데도 아르고는 비정상적인 감정을 느꼈다.
“예쁘죠?”
굉음을 뚫고 귀에 꽂히는 목소리의 주인은 강선후였다.
아르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순간 배가 앞으로 기울었다.
파도 때문이었을까? 아니었다.
물보라를 뚫어 내던 해적선은 어느새 세계의 끝 가장자리에 있었다. 더 이상 땅도, 바다도 이어지지 않는 곳.
“으읏……!”
리리가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아 내며 난간을 부여잡고 버텼다. 갑판 위에 있던 각종 물자들이 거칠게 선수를 향해 굴러갔다.
아르고는 기둥을 부여잡았다. 배는 기울어지고, 곧 바다가 떨어지는 나락이 보였다.
세계가 끝나는 지점. 그 아래에 있는 건.
“…….”
아르고는 정신을 잃을 뻔했다. 추락한다는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저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거대한 손이 하나 있었다.
하늘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 자신의 결정에 대한 후회가 담긴 채 그대로 굳어 버린 거대한 손.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추락해 대지가 된 신.”
뱀파이어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신성을 눈앞에 목도한 환희와 공포도 잠시, 이들은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는 앞으로 기우는 게 아니라 몸이 붕 뜨는 감각이 느껴지는 수준까지 왔기 때문이었다.
“으아…….”
속이 울렁거리고 눈이 돌아갈 거 같았다. 죽음을 의심하기 힘든 상황에 절망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신과 성좌를 봤지만 인간은 죽음 앞에서 기적을 잘 보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러다 영웅과 함께하는 뱀파이어를 보았다. 역시 공포에 일그러져 있었지만, 휘날리는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는 날카롭다고 느낄 만큼 총명했다.
뱀파이어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영웅의 다음 행동에 발맞춰 움직일 준비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희미한 푸른빛이 세상을 밝혔다. 아르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희망을 노래하는 푸른 혜성은 어둠으로 뒤덮인 하늘 가로지르고 있었고, 별들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때 다시 떠올렸다. 방금 맨 앞에서 신을 따라가던 푸른 별 하나가 그 행렬을 이탈했었다는 사실을.
그러자 비로소 보였다.
흑성이 뿜어내는 이 어둠을 밝히기에는 미약한 별 하나가 촛불처럼 깜빡이며 하늘의 중앙으로 날아오는 모습이.
별은 천구의 중앙에서 갑작스레 멈춰 섰다.
그리고 별자리가 되었다. 한 명의 아름답고 초라한 엘프가 활의 시위를 당기는 모습이었다.
별자리는 시위를 놓았고, 화살은 나락을 향해 떨어졌다.
유성, 성좌가 지상에 자신의 성물을 내릴 때 일어나는 현상.
그게 바로 눈앞에 떨어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최소한 아르고가 알기로는 그랬다.
화살은 세계의 끝 나락 아래로 떨어져 신의 손바닥 정 중앙에 박혔다.
그리고 보았다.
화살이 신의 사체 위에 뿌리내리는 모습을.
그리고 급속도로 자라나는 모습을.
서로 얽혀가며 솟아오르는 줄기. 솜이 부풀어 오르듯 돋아나는 수많은 나뭇잎들.
산의 뿌리가 닿지 않아 정기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그 모든 사실을 부정하듯 올라오는 수많은 분홍색 꽃봉오리.
일시에 만개하며 황금빛으로 빛나는 암술과 수술이 왕의 무덤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반사했다.
이곳에는 정기가 없었다. 아르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뱀파이어가 말했다.
“……정기는 죽은 신에서 흘러나오는 신성이니까.”
그러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이 허락만 한다면…… 싹을 피울 수 있어.”
“그리고 그 싹과 영혼을 연결할 엘프의 격에 따라서.”
강선후는 끊임없이 자라나는 줄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싹은 세계수가 될 수도 있겠지.”
줄기는 어느새 떨어지는 배를 감싸 안았다.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뒤늦게 깨달았다.
궁수자리의 성좌가 이곳에 강림하기 위해 낙성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거대한 빛줄기가 갑판을 강타했다. 눈을 뜰 수 없었으나 뜨겁지 않았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상의 위대함에 비해서 극도로 고요한 탓은, 눈앞의 성좌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빛줄기가 사라지고, 스스로 별이기를 포기한 성좌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한번, 대자연이 침묵했다.
땅에 닿을 정도의 금발, 감고 있다시피 한 눈. 그 안에 있는 푸른 눈동자.
낡디낡은 사제복.
성좌이기를 다시 한번 포기했기에, 이제 막 태어난 엘프가 영웅에게 슬며시 손을 들었다.
“다시 만났네요.”
엘프는 미소를 지었다. 강선후가 웃으며 화답했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네요.”
“엘프는 반드시 빚을 갚는 종족이니까요.”
“당신이 저한테 무슨 빚이 있어요?”
엘신은 눈을 감았다.
“말했잖아요. 그대가 내 첫 번째 스승이었다고.”
* * *
아르고는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뭘 배울 수 있을지 궁금했기에 영웅의 여정에 따라나섰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르고는 생각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그 이유는 단순하고 너무나 세속적이라, 차마 입 밖에 꺼내기에도 부끄러운 것이었다.
강선후는 그런 아르고의 심정을 간파하고 물었다.
“말해 봐요.”
아르고는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 갑판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다가 일어나며 말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부끄러움은 이내 사라졌다. 영웅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랬다.
“마을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바로 그거예요.”
영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 걸고 개고생한 보답은 받아야지. 그렇지?”
영웅은 뱀파이어를 보며 그렇게 말했고, 뱀파이어는 그런 영웅을 올려다보다가 한 템포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에 모험을 하는 거니까.”
그렇게 말하고 강선후는 엘프를 바라보았다. 엘프는 우두커니 선 채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있었다. 바닷물에 흠뻑 젖었음에도, 낡아 찢어질 것 같은 사제복 하나만을 입었음에도 품위는 하늘에 닿을 듯한 모습이었다.
“엘신.”
“……엘신?”
최초의 성좌의 이름을 듣자마자 아르고는 엘프를 바라보았다.
“부탁해요.”
“부탁하지 마세요.”
엘신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세계를 향한 당신의 헌신에 한소끔의 소금을 올리는 것뿐이니까.”
이제 막 태어난 엘프도 없었고, 엘프의 영혼 연결 의식에 필요한 물건도, 그에 걸맞은 장소도, 대모도 없었다.
하지만 엘프는 새싹과 자신의 영혼을 연결했다.
다시는 하늘로 올라갈 수 없는 선택임에도 마땅히 그랬다.
그저 그러고 싶었으니까. 그게 자신의 황금과 멀어지는 선택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세계수를 품었던 엘프의 영혼과 연결된 새싹은 세계수가 되었다.
떨어져 시체가 된 신은 기꺼이 신성을 허락하여 자신의 정기를 나누어 주었다.
쿠그그그그그—
나락 아래로 떨어지던 배는 세계수에 몸을 싣고 다시 위로 솟아올랐다.
세계수의 가지는 세계가 끝나는 지점과 왕의 무덤이 존재하는 땅으로 가지를 뻗었다.
그리고 끝내 다리가 되었다.
강선후는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배는 움직일 수 없었다. 물은 물론이고 모래 위조차 항해할 수 있는 배였지만 나뭇가지 위에서는 그럴 수 없었으니.
「눈치 보지 말고 가라! 내 역할은 여기서 끝…… 으아아아아!」
그 순간, 강선후는 에드워드의 램프를 비볐다. 정령은 순식간에 램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필요하다면 썩은 고기도 이용해 먹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친구를 나무 위에 두고 가는 놈은 아니에요.”
그러고는 허리춤에 매달았다.
그 뒤,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혜성을 따라가던 붉은 별 하나가 그 말에 화답하듯 반짝거렸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