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ep70. 신의 묘지 (1)
강선후는 서둘러 배 아래로 뛰어내렸다. 몸이 가벼운 엘신과 리리가 그 뒤를 따랐고, 한 박자 늦게 아르고가 밧줄을 붙잡고 내려왔다.
“렐릭시나!”
에드워드가 램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 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배 역시 정령의 일부였기에 그랬다.
배의 갑판 아래에서 조용히 머물고 있었던 와일드헌트의 사냥마이자 범의 영혼은 제 주인의 부름을 듣고 순식간에 갑판 위로 올라가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자신의 차례가 왔다는 걸 알았는지 벌써 흥분하며 콧김을 뿜어내며 앞발을 구르는 렐릭시나. 강선후는 애마의 고삐를 붙잡고 올라탔다. 그 뒤를 리리가 따랐고, 아르고는 그 모습을 그저 올려다보며 쭈뼛거리고 있었다.
“뭐 해요? 빨리 타요.”
“제가…… 타도 되겠습니까?”
갈기와 발굽이 푸른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는 흑마. 차마 손을 댈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영웅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르고는 그렇기에 더는 주저하지 않았다.
다른 말보다 유독 덩치가 컸기에, 세 명이 올라타기에는 충분했다. 강선후는 벌써 앞발을 들썩거리기 시작하는 렐릭시나 위에서 왕의 무덤을 바라보고 있는 엘신을 내려다보았다.
“엘신까지는 못 탈 텐데. 다시 별로 변해서 날아가거나 그럴 수는 없는 거죠?”
“네.”
살짝 아쉬웠다.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하지만 엘신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승천자가 품게 되는 초월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표정이었다.
아쉬움도 두려움도, 걱정도 없는 표정. 하늘을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에는 하늘을 뒤덮은 어둠, 그리고 그곳을 가로지르는 푸른 혜성과 그 뒤를 따르는 별이 비춰 보였다.
그 반짝임에 강선후도, 리리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엘신이 입을 연 건 그때부터였다.
“그거 아시나요? 성좌는 혼자서 하늘로 올라가는 법이 잘 없답니다.”
“……기사왕의 흑성.”
리리가 중얼거렸고 강선후도 기억해 놨다. 과거, 태양탑에 있었던 흑성.
그녀가 승천한 순간 따라 올라갔던 수많은 영혼들이 있었다.
“승천은 스스로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수행자를 사랑했던 이들, 수행자가 사랑했던 이들, 그들이 없었다면 그 누구도 쉬이 승천할 수 없었을 테니.”
하늘에 희미한 별자리가 떴다. 그 모습 그대로 땅을 비추어 그림을 만들어 냈다.
그림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현실이 되었고, 그건 하얀 말이 되었다.
렐릭시나와 대비된 새하얀색, 고요한 숨소리, 제 주인을 바라보는 표정.
말은 고개를 숙여, 엘신을 코앞에 두고 바라보았다. 엘신은 가만히 선 채 평생을 함께한 말을 올려다보았다.
강선후는 그 모습을 보며 신비로움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내심 어이없음을 느꼈다.
“야, 저게 주인과 말의 관계라는 거야. 보고 있어?”
“크릉?”
“……아무것도 아니야. 엘신?”
강선후는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기며 출발 준비 신호를 보냈다.
“따라올 수 있겠어요? 렐릭시나는 만만한 말이 아니라서요.”
엘신은 말 위에 올라타면서 미소를 지었다.
“별을 따라 하늘에 올라갔던 말이랍니다?”
온화한 목소리 속에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최초로 승천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강선후가 보기에 그게 재밌었다.
“……그럼 한번 볼까요?”
강선후는 말머리를 돌렸다. 앞발을 크게 들며, 왕의 무덤이 있는 곳을, 황금빛 뒤로 거대한 흑성이 위협적으로 떠올라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다시 엘프가 된 엘신과 영혼을 연결한 나무는 대지 신의 정기를 흡수하여 저 멀리, 왕국이 존재할 미답의 땅을 향해 끊임없이 가지를 뻗고 있었다.
세계의 끝과 왕국을 연결하는 다리.
어째서 왕국이 이렇게나 세상과 격리되었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왕국 뒤편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흑성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강선후는 저곳으로 가고 싶었다.
애초에 그냥 먹고 살아도 부족함 없는 삶 속에서, 굳이 이계로 다시 뛰어든 이유.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 그였으나, 이것만큼은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미지. 이제는 어느 구석에도 인간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지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으니까.
“……가자.”
뒤에서 자신의 허리를 잡는 리리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푸른 혜성은 흑성과 왕국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별을 인도하고 있는 것처럼, 강선후 역시 인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강선후는 혜성을 따라 달려나갔다. 공기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달려! 렐릭시나!”
“크르르아악!”
렐릭시나는 울부짖었고, 그 뒤를 따라 고요하게 침묵하는 백마가 제 주인을 태우고 따라나섰다.
바람마저 추월할 듯한 속도로 달리는 렐릭시나. 푸른 불꽃이 유성의 꼬리처럼 이어졌고, 그 꼬리를 따라 백마가 하얀 갈기를 휘날리며 따라갔다. 아르고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뱀파이어를 부여잡았다.
왕의 무덤에서 나오는 빛은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둠은 끝없이 이어지며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강선후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거기에 저항하는 듯 암흑이 더 거세지는 모습이었다.
전방 조금 더 가까운 곳에는 에베레스트만큼이나 높아 보이는 비석이 있었다. 신의 묘지에 세워진 묘비였다.
강선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혜성은 자신을 앞질러서 저 앞으로 가고 있었다.
혜성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왕의 무덤은 분명 황금의 왕국이 있는 땅 위에 있을 터,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왕의 무덤까지는 빛의 속도로 3초랬는데.”
왕복 3초인지, 편도로 3초인지는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1초만 되더라도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와 필적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엘신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성좌는 시간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렇기에 시간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 않게 돼요.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다르군요.”
어느새 강선후의 옆까지 따라잡은 엘신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까요?”
“……아뇨.”
리리는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늦는다고? 그렇게 멀어?”
“이렇게 달리는 것만으로는 영원히 도착할 수 없을 거야.”
물론 과장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리리는 이제 불안해하지 않았다.
분명 이 남자는 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었다.
강선후는 양손에 낀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오른손을 전방으로 뻗었다.
리리는 이 여정이 시작되기 전에 강선후가 심혈을 기울여 손등에 룬을 새겼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리리로서는 읽을 수 없었지만 어딘가 익숙했던 문자.
분명 본 적이 있는 문자였다.
‘언제였지? 아.’
기억해 냈다.
강선후를 처음 만난 날.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낸 유적에서 엘 로크라 벨라el rokra bella를 울린 그날.
강선후가 모래 위에 썼던 문자였다.
강선후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온갖 고난을 견뎌 내게 해 주었던 동기가 된 문자였다고, 그는 설명했었다.
리리는 조용히 기억을 더듬었고, 강선후가 과거 설명해 주었던 그 문자의 내용을 떠올렸다.
“……신에게 버림받은 황금의 왕국, 나는 그곳에 왕의 검을 묻었도다.”
“……왕의 검을 손에 쥔 자.”
“……영원한 왕좌에 앉으리라.”
왼손의 송곳니 문신이 주홍빛 빛을 발했다.
룬이 적혀 있는 오른손등 위에서 왕국의 형상이 올라오고, 그 위에 검의 형상이 세로로 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떠오르는 열두 개의 보석.
과거 보았던, 이 모든 여정을 시작하게 만들었던 하나의 불가사의했던 마법.
이제는 더 이상 불가사의한 무언가가 아닌, 명확한 목적이 되었다.
“리리.”
“…….”
“이게 룬의 비밀이야.”
리리는 강선후의 영혼이 그 어떤 때보다 정순해짐을 보았다.
제 천성을 억눌러 영혼마저 봉인했던 그는, 이제는 영혼을 해방한 순간마저 정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는지도.
“룬은 소망의 실현이야. 목적이 선명할수록, 그걸 바라보는 감정이 뜨거울수록, 더 거대한 힘을 발휘해.”
“……룬은 기도랑 같았던 거야?”
“신이 대상이 아닌 기도.”
강선후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기도. 그게 룬의 본질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사람들이 룬을 잘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도 이거였던 거지.”
목적이 선명하지 않았기에, 그걸 바라보는 눈이 뜨겁지 않았기에.
시대는 별을 잃어버리듯, 룬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밀라milla.”
강선후는 시공간을 통제하는 룬, 검은 태양의 룬을 외었다. 검은 태양의 머스켓에 의존하지 않았음에도,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
마지막 단어는 듣지 못했다. 엘신도, 리리도, 아르고도.
키호테의 진명을 듣지 못하는 이유, 디오네의 진명을 듣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건 룬의 넘어선 영역에 존재하는 언어였으니.
강선후는 머스켓을 건네준 늙은 노인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는 머스켓을 주며 그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라고 했었다.
그 의미는, 곧 주신의, 검은 태양의 진명이었다.
네피리아NEPHIRIA.
쉼 없이 달려나가는 강선후. 그 앞에 그와 같은 속도로 달려나가는 어떤 아지랑이가 펼쳐졌다. 아지랑이는 곧 왜곡을 만들었고, 왜곡은 균열을 만들었다.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 균열이 아니었다. 균열에서 출발한 바람은 공간 자체에 해류를 만들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해류가 전방 신의 묘비를 넘어서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공간의 바람에 들어간 그 순간, 순풍과 해류를 타기 시작한 배가 되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검은 태양의 룬을 통해 빛이 되었다.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 렐릭시나는 자신의 한계를 돌파한 흥분감에 요동쳤다. 말의 심장 박동이 다리를 타고 넘어왔다.
그러다, 멈춰 섰다.
신의 묘비가 있는 지점이었다.
거대한 충격이 앞을 강타했다. 조금만 빨랐어도 그대로 짓뭉개질 수 있을 상황. 강선후는 멈춰 서며 룬을 외었다.
“바크vakk!”
충격파가 엘신의 앞에서 터졌다. 그 신호 덕분에 엘신도 늦지 않게 멈출 수 있었다. 눈앞에는 어마어마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충격이 나무줄기로 이루어진 다리를 덮쳤다.
그건,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이었다. 너무나 거대해서 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크기. 그런 금속 벽이 하늘에서 난데없이 떨어졌다.
강선후는 주변을 둘러보자마자 벽의 정체를 바로 간파해 냈다.
“……그렇지. 없을 리가 없지.”
“대, 대, 대체 이게 뭡니까!”
“삽이에요.”
“삽? 삽이요? 땅 파는 데 쓰는 삽…… 말씀하시는……?”
아르고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아무렇게나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곧, 이 철판 위에 끝없이 높게 솟아오르는 나무 막대기를 볼 수 있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게 이해할 수 없는 규모의 삽이라는 걸.
“왕의 군대 묘지에도 거인 묘지기가 있는데, 여기는 신의 묘지라면서?”
강선후는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끝없는 어둠만 있을 뿐이라,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곳인데, 그곳에 무언가 있다는 걸 이미 파악한 듯 또렷하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럼 그만한 묘지기가 있을 수밖에 없지.”
한기는 갑작스럽게 몰려왔다. 어느새 입김은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눈가의 눈물마저 얼어붙는 걸 느끼며, 리리는 서둘러 렐릭시나의 등에서 내려왔다.
한기는 가까이 다가왔고, 곧이어 그 주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인간의 이목구비가 달려 있어야 할 것 같은 거대한 머리.
하지만 그곳에는 눈도, 코도, 입도 없었다.
유리처럼 깨진 얼굴 안에는 검은 우주가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얼어붙은 태양이 홀로 자전하고 있었다.
“……묘지기.”
엘신은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얼어붙은 별. 헤이마heima.”
“헤이마……?”
리리는 중얼거렸다.
“……겨울이라는 뜻이잖아요. 고대어로.”
엘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시체가 차갑게 식고, 그 냉기에 닿은 별은 세상의 겨울이 되었으니까요.”
* * *
헤이마는 고개를 들었다. 삽을 뽑아냈다.
신의 무덤을 지키는 자는 이들에게 어떤 악감정도 없었다.
그저 무덤의 침입자를, 신의 묘지를 능욕하는 자를 처단하고자 할 뿐이다.
그는 감정도, 이성도, 사고도 가지지 않은 존재였다. 그저 존재보다는 현상에 가까운 이였다.
침입자를 처단한다. 첫 번째는 빗나갔으니 다시 내려칠 뿐이다.
그렇게 삽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삽 뒤편에서 어떤 강대한 영혼이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그 영혼은 침입자 인간을 감싸 돌았다. 그것보다 훨씬 거대할 터인 자신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강선후는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늑대를 바라보았다. 불렀던 적이 없는데, 왜 여기 있는 거지? 하지만 방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반가운 얼굴이었으니까.
“……존슨? 부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이렇게? 기특하네.”
강선후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친구였던 강아지가 현세에서는 사라진 설산 계곡의 늑대이자, 가장 위대한 습격자이며 바람의 추종자.
그리고 그 어떤 죽은 자보다도 오래 살아온, 이론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인 영혼이라는 걸.
엘더 스피릿.
죽은 모든 이들의 우두머리.
“아우우우우—!”
엘더 스피릿이 명령을 내렸고, 죽은 짐승의 영혼들은 제 주인의 명령을 따라 세상에 올라왔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