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ep71. 지키는 자의 창, 나아가는 자의 불꽃 (2)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눈을 감자 디오네의 감정이 느껴졌다. 심장이란 감정을 연주하는 악보와 같아서 그 흐름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해가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강선후는 디오네의 영혼을 느끼지 못함에도 그녀와 충분히 공감했다. 그렇기에 웃을 수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묘지기의 얼굴에서는 불꽃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그 힘을 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다음 단계로 갈 차례였다.
강선후는 미소를 지었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극한까지 긴장했던 아르고는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맥이 빠질 지경이었다.
“어떤 게 그렇게 즐거우십니까?”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례를 걱정하여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강선후는 그런 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지금의 감정을 공유할 동료가 있다는 데에 순수하게 기뻐할 뿐이었다.
“제대로 된 목적지로 가고 있겠구나 싶어서요.”
“목적지…… 말씀이십니까?”
“황금의 왕국.”
강선후는 그 단어를 입에 올리며 웃었다.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거기로 가는 길이 간단할 리가 없잖아요. 초입부터 이런 장애물이라는 건, 그만큼 멋진 곳이라는 의미겠지. 그게 못 참는 부분 아니에요?”
궤변이었다. 조금만 머리가 차도 그 말이 모순 덩어리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강선후의 표정은 모순이고 궤변이고 아무 상관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저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것. 거기에 이론과 논리 따위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외치는 듯했다.
감상은 잠시였다. 유희를 즐기더라도 행동을 미루지 않는다는 철칙에 따라 강선후는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보여 줬던 어린아이 같은 얼굴은 씻겨 내려간 듯 사라졌다.
“엘신. 밧줄이 필요해요.”
엘신은 백마 위에서 묘지기를 올려다보았다. 이제까진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보인 적이 없었으나, 지금만큼은 불사조에 휘말려 선명하게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엘신은 되묻는 법이 없었다. 본질을 파악하는 심안으로 별의 영역까지 닿았던 이였기에 그저 저 요구를 이뤄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가늠할 뿐이었다.
“제 능력이 거기에 닿을까요?”
“해 보는 거죠.”
강선후는 말머리를 돌려 엘신의 옆으로 다가갔다.
“제가 도와줄 테니까.”
엘신은 되묻지 않았다. 필요 이상의 생각에 잠기는 법도 없었다.
그저 눈을 감고 자신의 영혼과 연결된 어린 영혼과 교감할 뿐이었다.
얼어붙고 손상되었던 기나긴 나무다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제 막 태어났어도, 아무리 경험이 없더라도, 신의 사체에 뿌리를 내렸으며 가장 위대한 엘프의 영혼과 연결된 나무였다.
몇 개의 줄기가 제자리를 이탈하여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는 묘지기의 팔과 허리를 휘감았다.
헤이마는 위협을 느꼈다. 이리저리 팔을 휘둘렀다. 다시 한번 온 세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나무를 끌어안고 있었던 헤이마의 주먹이 휘적이다가 묘비에 닿았다. 단순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충격은 거대했다. 주먹의 유리 조각이 비산했으며, 곧 떨어졌다.
그들에게 거대한 유리 파편이 날아들었다. 아르고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사색이 되었다. 도망쳐야 했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쿠웅—!
붉은 증기가 모이나 싶더니 상공에 구름처럼 산개했다. 유리 파편은 허공에서 잘게 찢어졌다. 아르고는 고개를 돌려 뱀파이어를 바라보았다.
“……?”
뱀파이어는 무표정한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모든 감정을 소거한 느낌마저 들었다.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휘적이는 머리에서 냉기가 다시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틀어막힌 빈틈 작은 구멍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냉기는 칼처럼 날카롭게 닿는 모든 것을 베어 냈다. 헤이마의 몸을 타고 오르던 거대한 줄기 몇 개가 순식간에 잘려 신의 시체가 있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헤이마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락 아래로 떨어졌었던 삽을 주워 올렸으며, 그걸 머리 앞으로 올려 냉기를 쬐었다.
차가움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부족한 냉기가 삽 머리 거대한 금속을 극한까지 식혔다. 새파랗고 흉흉한 빛이 뿜어질 정도였다.
헤이마는 그대로 삽을 짧게 잡은 뒤 나무 자체를 죽여 버리겠다는 심산으로 내리쳤다.
닿기 직전에 줄기 하나가 간신히 솟아올라 삽과 팔을 묶었다.
다리는 더 이상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 견고했던 줄기들은 전부 헤이마와 맞서기 위해 몸부림치거나 잘려 나가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줄기의 잔해, 그리고 유리 조각, 혹한의 냉기가 사방에 몰아닥쳤다.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다. 엘신과 눈을 마주친 리리는 백마 위에 올라탔다. 강선후는 앞으로 달려나가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르고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스치기만 해도 목숨이 위험한 잔해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엘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부족해요!”
강선후는 그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허공에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빛의 조각이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룬의 현상으로 또 다른 룬을 그린다.
마법사들의 꿈을 그는 자연스럽게 깨우쳤다.
완성된 문자는 아래로 향했다. 줄기에 닿은 문자는 시동어를 외지 않아도 그대로 작동했다. 룬에 시동어 자체를 삽입했기 때문이었다.
「몰드란moldran.」
식물의 생장을 촉진하는 연금술사의 언어.
세상을 조작하는 명령어는 줄기에 스며들어 수많은 수관을 따라 뿌리 쪽으로 이동했다.
간단한 언어였다. 하지만 그게 이 상황을 해결할 핵심이었다. 순식간에 새로 솟아난 수십의 가지가 일제히 헤이마에게 달려들었다. 허리가 묶이고, 어깨가 봉쇄당하고, 삽을 놓치고, 팔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르고는 말 위에서 강선후의 허리를 붙잡은 채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어쩌시려는, 어,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다.
저 봉쇄가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이 잠깐 행동을 봉쇄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 쓴 이 순간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이어진 강선후의 외침은 그 의문을 관통했다.
“여기예요!”
그 외침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게 아니었다.
옷깃에 달려 있었던 배지가 다시금 붉은빛을 발했다. 뜨겁게 달궈진 배지는 둥지지기의 상징이었고, 둥지지기의 의지는 곧이어 불사조에게 전해졌다.
콰아아아—!
브레스가 뿜어지듯 헤이마의 얼굴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불사조는 스스로 헤이마의 냉기 봉쇄를 풀어 버렸다. 아마도 강선후의 명령이었을 터. 다시금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한 혹한의 격풍이 느껴졌다.
잠시 새의 형상으로 돌아왔던 불꽃은 다시금 한데 뭉쳐졌다. 본래의 크기에 비해서 한없이 작아졌지만 그렇기에 태양처럼 찬란해졌다.
눈조차 뜨기 힘든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네 번째 태양이 되고자 하는 듯, 새는 스스로를 극한으로 불살랐다.
강선후는 다시 한번 외쳤다.
“이쪽이야! 준비는 끝났어!”
그다음 이름을, 아르고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 번 들었던 리리마저 간신히 무슨 발음인지 유추할 뿐이었다.
“디오네DIONE.”
심장 박동 소리가 멈췄다.
멈춘 그 순간, 마지막으로 들린 ‘쿵’ 소리는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아마도 헤이마마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리리는 찬란하게 빛나는 불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이건 과녁이자, 좌표였다.
세상의 정반대 편에서도 보일 정도로 찬란한 빛이었다.
* * *
엘프는 높은 곳에서 내려오며 비틀거리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서지아는 그대로 굴렀다. 무릎 관절이 엇나가 있는 탓이었다.
부들거리는 팔로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피투성이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잡았다. 이를 악물었다.
뚜둑—!
“으윽……!”
신음은 잠시뿐이었다. 서지아는 서둘러 몸을 일으킨 뒤 땅을 굴러다니는 낡은 나무 활을 주워들었다.
하늘에서 내려왔던 거대한 검은 염소의 사체가 그 옆에 있었다. 염소를 둘러싼 어두운 안개는 씻은 듯 사라졌다.
서지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한쪽 눈이 떠지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수지타산에 맞는 거래이지 않은가?
……그 녀석이 이걸 봤다면 꽤 인정해 줬을 텐데.
이 순간에도 사소한 아쉬움을 품는 자신을 돌아보며 피식 웃어 버렸다. 그리고 더욱 가까워진 검은 무리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방벽을 바라보다가는 다시 정면에 시선을 두고 발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지금 도망칠 생각 따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서지아는 눈을 감았다.
곧 하늘에서 꽃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세계수의 꽃이 흔들거리는 게 보였다.
세계수의 꽃가루는 새 생명의 씨앗이었다. 땅에 떨어진 꽃가루는 급속도로 자라나 작은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일제히 터지며 온 사방에 분진을 뿌렸다.
서지아는 그곳으로 화살을 쏘았다. 금속 촉이 분진과 부딪치며 불씨를 튀기다가는 끝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솟아오르는 연기. 서지아는 서둘러 몸을 돌려 방벽으로 향했다. 급한 대로 처방한 무릎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방벽 입구에 닿을 쯤에는 궤멸된 선두를 뒤이은 짐승의 이빨이 그녀의 등 뒤 직전까지 닿았다.
타아앙—!
방벽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서지아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한 손에는 휴대폰을, 다른 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는 정지훈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지훈은 서지아와 잠시 마주 보다가 휴대폰에 대고 말을 이었다.
“……잠시 실례했습니다. 네. 습격이 시작된 상황입니다. 제 권한으로 발포 허가를 내렸습니다. 계속 말씀하십시오.”
“멀티태스킹이 잘 되는 인간이네.”
서지아는 정지훈이 내민 손을 잡고 방벽 위로 올라왔다.
“그 좆같은 회사에서 이쁨받는 이유가 있어.”
정지훈은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이제는 아마 아니게 될 거 같군요. 성공 좀 해 보겠다고 별짓을 다 했었는데…… 이제 막 세 분째 밉보인 차입니다.”
“그거 굉장히 좋은 소식인데.”
“진짜 좋은 소식이 있길 바라야죠.”
전화를 끊은 정지훈, 그리고 서지아는 동시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정말로 지척까지 다가온 먹구름의 짐승 무리.
자진해서 남기를 택했던 몇 경비병들이 굳은 얼굴로 기관총을 잡고 있었다.
지구의 병기는 단순한 경계용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잘 알고 있는 서지아였기에 저걸로는 턱도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쿵, 쿵, 쿵.
하늘에서 검은빛이 땅을 비추고 그 경로를 따라 무언가 떨어졌다.
평소였다면 기적으로 삼았을 이 세상을 향한 별의 간섭.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 주체가 검은 별이었다.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흙먼지들, 그 사이에서 고개를 드는 거대한 짐승들.
전방 황무지를 빼곡하게 채우고 달려오는 흑성의 종자들을 바라보며 서지아는 욕설을 내뱉었다.
“다 들어와. 미간을 꿰매 줄 테니…….”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훨씬 가까운 곳에서 다시 한번 흙먼지가 솟아올랐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흙먼지는 이제까지 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드높게 치솟았다. 땅 밑에서 무언가 폭발한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쿠우웅—!
무언가 기어오르며 땅을 짚었다.
쿠우우우웅—!
단순히 그 행위만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지하에서 기어 올라온 자는 몸을 일으켰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흙먼지 속에서 그보다 더 덩치가 큰 거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김 씨?”
예상치 못한 상황에 서지아는 그 별명을 불렀다. 묘지기는 굽은 등에 넝마를 뒤집어쓴 머리를 뒤로 돌려 서지아를 바라보았다.
「반갑다. 인간의 귀 큰 친구.」
“네가 왜……?”
「배우기 위해서.」
무엇을?
이라고 묻고 싶었으나 서지아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이유 따위가 뭐든 중요하지 않았기에.
중요한 건 단 하나.
저 거인이 이제까지 보았던 낡디낡은 삽이 아니라 무식하리만치 거대하고 제대로 제련조차 되지 않은 검을 쥐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무언가를 지킨다는 의미.」
거인은 검을 역수로 쥐었다.
「인간이 생각해 보라 했음.」
“강선후가?”
거인은 왼손바닥을 펴 꼭 쥐고 있었던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강선후가 건네준 지팡이였다.
오랜 옛날 그가 산사태에서 구해 준 장미는 이 시대가 되어 끝내 지팡이가 되었다.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직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해 보기로 했다. 생각.」
“……지금부터? 걔가 떠난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긴 해?”
거인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역수로 쥔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지금부터, 생각을 시작한다.」
콰아앙—!
무딘 검날이라 하더라도 불멸자의 완력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땅을 찍으며 깊게 박히는 검날.
그 강대한 힘은 효시가 되었고
수천의 영혼이 고대의 무구를 들고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대체.”
왕의 군단.
왕은 이 군단이 후세를 지키는 무리가 되길 바랐으며.
묘지기가 그들의 군단장이 되기를 바랐다.
묘지기는 처음부터 무언가를 지키는 존재로서 세상에 남겨졌다.
서지아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자신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활을 부술 듯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기분을 느껴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고양감.
서지아는 저 앞에 보이는 세계수를 잠시 바라본 뒤 활시위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귀가 멀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정지훈도, 진서연도, 차소희도 동시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그림자가 온 세상을 덮었다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들 모두가 이 순간 붉게 달궈진, 단 하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이 세상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창이 지나간 자리에 후폭풍이 몰려왔다.
“으윽……!”
나무가 기울고 가지가 부러져 날았다. 내려앉았던 모래 먼지가 일제히 위로 솟아올라 안개 같이 깔리다가 소용돌이치며 일대를 뒤덮었다.
막대한 폭풍 속에서, 서지아는 실눈을 뜨고 창이 날아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불사조가 날아간 방향이었다.
* * *
리리는 환각을 느꼈다.
이 세상에서 소리를 내는 모든 것이 침묵하는 듯한 절대적인 고요.
이곳에는 여전히 냉기가 몰아치고 있었고, 불사조는 작은 태양이 되어 맹렬한 불꽃을 뿜고 있었으며, 헤이마를 포박한 거대한 줄기들이 발버둥을 견뎌 내며 내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음에도 그랬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이는 환각이 아니었다.
훨씬 더 거대한 소리에 주변의 소음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는 현상일 뿐이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의식하지 못했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무언가 떨리는 소리였다. 뭐가 떨려야 이토록이나 거대한 소리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공기가 떨리거나 땅이 떨린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이런 소리는 단 한 번도 느껴본 본 적이 없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날카로워졌다. 소리마저 찢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저 멀리 불사조의 불빛을 희미하게 반사한 작은 점이었다.
그건 눈을 깜빡인 순간 눈앞에서 거대한 창이 되었다.
창은 작은 태양을 꿰뚫었다. 태양은 다시 불꽃이 되어 창끝을 감싸 안았다. 불꽃을 머금은 창은 헤이마의 머리를 꿰뚫었다. 불꽃은 그 어느 때보다 깊숙하게 겨울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콰아앙—!
그 몸 절반을 이루는 유리 파편이 일시에 깨져 허공에 산발했다. 충격파가 퍼져나갔고 일행들은 심하게 뒤로 밀려났다. 단단한 목질의 다리가 출렁이며 부러지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멈췄다.
헤이마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창은 헤이마를 관통했고, 관통된 뒤편으로 불사조가 날아 나왔다. 불사조의 입에는 얼어붙은 별이 물려 있었다.
“삐이이익—!”
겨울에게 대적한 불꽃은 승리를 선언했다.
거대한 유리 조각 수천, 수만 개가 그대로 강선후와 일행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깐의 고요였다.
창을 따라온 폭풍은 뒤늦게 도착했다. 소리보다도 먼저 도착한 폭풍이 신의 묘지를 헤집었다.
떨어지는 파편들도, 헤이마가 뿜어내는 냉기도, 폭풍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저도시의 수호자, 거인왕의 딸.
파도치는 사막의 인도적인 지도자가 친구를 위해 던진 창은 세상을 횡단하여 세계의 끝을 넘어, 신의 묘지에 다다라 모험가의 길을 열었다.
창에 딸려온 굉음이 사그라들 즈음 마지막으로 작은 속삭임이 뒤따라 흘러왔다.
「약속을 지켰습니다.」
“지키지 않을 거라 의심한 적 없어요.”
강선후는 창을 따라온 폭풍을 순풍 삼아 공간의 흐름에 몸을 실었다.
다시 빛이 되어, 왕의 무덤, 그 등대를 향해 달려나갔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