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ep72. 왕의 무덤(1)
다시 공간의 흐름을 탄 순간, 이윽고 주변의 풍경이 빛으로 감싸지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기 전 강선후는 뒤를 돌아보았다.
비현실적으로 먼 거리를 돌파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 바람길은 우리 세계의 끝과 왕의 무덤까지를 일직선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쓰러져 아래로 떨어지는 신의 묘지기 헤이마. 그 존재는 디오네의 창에 꿰뚫려 나락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강선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저 앞에는 왕의 무덤이 뿜고 있는 희미한 빛이 있었고, 그 뒤편에 하늘 절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흑성이 흉흉하게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명성.”
엘신도 흑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별을 아세요?”
최초로 별이 되었던 엘프는 저 앞에 있는 존재가 뭔지 아는 듯했다.
강선후의 질문에 엘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존재는 별이 아니에요.”
“별이 아니었던 흑성이라는 말씀이세요?”
리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엘신.
“처음부터 흑성이었던 존재. 저보다도 먼저 하늘에 있었던 존재. 이름이라는 개념보다도 먼저 있어 왔던 존재. 그 과거는 누구도 몰라요.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도,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답니다. 하지만 하늘에 오래 있으면서 이거 하나는 알게 되었어요.”
흑성을 바라보는 엘신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헤이마와 맞서면서도 보여 준 적 없는 얼굴이었다.
“신에게 죽음의 아름다움을 속삭여 그 호기심을 자극한 당사자.”
“대지신이 투신한 이유가 그럼…….”
리리는 고개를 올려 강선후 어깨너머로 보이는 검은 구멍을 바라보았다.
저 존재가 성좌였던 적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엘신보다도 훨씬 전에 하늘에 존재해 온 무언가라는 사실을 자각하자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신을 유혹한 무언가가 있다는 건 어떤 신화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전방을 바라보던 강선후가 몸을 낮췄다.
“옛날이야기들도 좋지만, 어쨌든 저 검은 구멍이 다음 시대를 암흑 시대로 만드는 장본인이다.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는 이야기네요.”
“네.”
“그걸로 됐어.”
강선후가 듣기에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허구가 아닌 신화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큼이나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를 음미하며 하늘을 올려다볼 시간은 없었다. 즐거움은 모든 일이 끝난 뒤로 미루기로 했다.
강선후는 고삐를 잡아당겼고 렐릭시나는 기다렸다는 듯 견고한 바닥을 발로 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공간의 바람길 속에서 강선후와 그 일행은 빛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삐이이익—!”
번쩍이며 지나가는 풍경 사이로 불의 새가 어두운 창공을 가르며 강선후의 머리 위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불사조가 흩뿌리는 불꽃의 비행운은 제 기사를 인도하듯 어둠 저편으로 이어졌다.
공간의 바람을 타고 빠르게 나아가는 건 강선후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뒤를 따라 걷고자 하는 이들 역시 이 길로 인해 왕국으로 인도받을 수 있을지도.
* * *
빛의 속도로 3초. 편도인지 왕복인지와는 관계없이 어마어마하게 먼 거리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는 거리.
엘신의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 역시 왕의 무덤까지 이어지는 아득한 공허를 전부 채우진 못했다. 나무줄기는 점점 얇아졌고, 종국에는 사라졌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을 돌파한 뒤에도 달려나갔다. 렐릭시나와 엘신의 백마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박찰 수 있었다. 그들을 감싸고 앞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바람 덕분이었다.
“으으…….”
등 뒤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맨 뒤에 타고 있는 아르고가 두려움에 질려 있는 소리였다. 이제는 멈추면 끝없는 공허 아래로 떨어질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때, 강선후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램프가 연기를 뿜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연기였다.
「이 겁쟁이 놈아! 조용히 안 해!」
“오, 깨어났네요?”
강선후의 능청스러운 말에 에드워드는 소리를 꽥 질렀다.
「그래 이 자식아! 예고도 없이 그 지랄을 한 바람에 정신을 잃었지 뭐냐! 그래도 네놈이 멀대만 한 거인 녀석과 싸우는 건 똑똑히 보았다! 잘 싸우더만!」
“용케 참고 안 나오셨네요.”
「해적은 낄 자리를 살피고 결정하는 법이지!」
“그 해적의 법칙이라는 거 너무 편리한 거 아니에요? 뭔 다 해적이면 된…….”
강선후가 이 순간에도 에드워드에게 능청스러운 농담이나 건넬 때, 거기에 에드워드가 와락 성을 내려고 할 때. 내내 앞에서 희미하게 뿜어지던 황금의 빛은 갑작스럽게 밝아졌다. 그 현상에 모두 입을 다물고 전방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던 빛은 어느 순간 눈앞에 있었다.
“……이제, 드디어.”
리리가 중얼거렸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기대와 고뇌, 온갖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긍정적인 감정은 이 긴 여정의 종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리고 눈앞에 우리 앞을 달려나가던 모든 비밀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대감이었고 부정적인 감정의 정체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당신들이 만들어 낸 빛은 너무나 찬란합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엘신의 감상에 리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의 빛이 아니에요. 우리는 이 빛이 있었던 시대의 사람이 아니니까.”
“제 입장에서는 당신들의 빛이랍니다. 저는 이 모든 시대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엘프니까요.”
엘신은 자신이 살던 시절 다음 세대의 사람들을 모두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건 순전히 엘신이 너무 오래된 사람이어서일까?
아니면 이 오래된 엘프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후의 모든 시대가 같은 시대로 보이기 때문이었을까?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금방 고뇌에서 벗어난 강선후는 시야를 가득 채우는 황금색 빛을 주시했다.
충분히 밝아졌다고 생각했는데도 끝을 모르고 더더욱 밝아지는 빛.
태양이 꺼지는 순간마다 온 세상에 빛을 흩뿌리던 등대.
그 찬란함이 세상을 가득 메우는 공간 속에서 흑성이 뿜어내는 암흑마저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황금이라 불리우는 시대의 찬란함을 처음으로 엿보았다.
턱—
고요 속에서 말발굽이 땅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강선후도, 리리도, 아르고도 이제야 깨달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말이 무언가를 박차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방금 들린 이 소리는 이질적이었고, 모두의 마음을 환기시킬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치이이익—!
렐릭시나가 멈춰 섰다. 백마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지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제까지는 이렇게 서 있다가는 아래로 떨어지는 공허의 위를 내달려왔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니었다.
눈앞을 새하얗게 물들이던 빛. 영원히 눈을 멀게 할 것 같았던 빛도 조금씩 눈에 익숙해지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보이던 끝이 없을 것 같았던 공허가 아니었다.
바람은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자연은 대수림과 세계수, 그리고 신으로부터 비롯된 정기의 흐름으로 만들어졌다.
낡고 오래된 냄새가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시대의 공기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 시대로부터 분리된 고대의 향기였다.
그 모든 게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는 바람도 없었고 하늘도 없었다. 우주마저 이 공간은 품지 않은 듯했다. 세상이란 곳에서 분리된 곳처럼 느껴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뿜어지는 황금 광채. 온 세상을 밝히던 그 빛은 눈앞에서 생각만큼 시리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눈을 크게 뜰 수 있었고 모든 게 채도를 올린 듯 과하게 선명했다.
“……당신 먼저 내려.”
뒤에서 리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리는 무심코 말에서 내리려다가 다시 올라타며 그렇게 말했다. 강선후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턱—
땅은 푸석푸석했다. 마치 두꺼운 부츠의 밑창 너머로 잔뜩 흩뿌려진 유리 가루를 밟는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강선후는 전방을 살피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공허가 보였다. 출발지였던 세계의 끝은 어둠 속에 뒤덮여 있었고, 그 너머에서 여기까지 공간의 바람이 이어져 있었다.
이번에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황동색으로 반짝이는 투명한 조각들이 사부작거리며 밀려났다. 아주 오랫동안 어떤 변화도 없는 땅 위에 비로소 발자국이 찍혔다.
오래 신지도 않았는데 밑창이 갈려 있는 부츠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 곳에서 아마도 영원히 남을 이 시대의 첫 번째 발자국.
신대륙 항해사, 미발견 동굴로 들어가는 탐험가, 우주 비행사.
어떤 세상을 모험하는 모든 모험가들의 꿈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이번에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찬란한 황금빛으로 모든 사람들을 인도하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황금을 잊지 않도록 해 준 모든 세상이 이 앞에 있었다.
지평선 너머에는 어둠이 있었다. 지평선 아래로 몸을 반쯤 가리고 있음에도 하늘을 한가득 가리는 흑성은 여전히 일렁이며 이쪽으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하늘은 검었다. 저 멀리 푸른 혜성이 별들을 이끌고 여전히 세상을 횡단하고 있었다. 강선후가 모은 열 번째, 열한 번째 황금의 유물인 『쌍성』은 창공의 중앙에서 서로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눈앞에는 모두를 인도한 빛의 정체가 있었다.
“와, 왕의, 왕의…… 왕의…….”
아르고의 심호흡이나 다름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가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걸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앞에는 무덤이 있었다.
모두가 무덤이라 부르는 형태는 아니었다.
거대한 원형의 제단. 그곳에 허리 높이 만큼이나 쌓여 있는 하얀 조화(弔花)들은 이 무덤의 주인이 생전에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증명했다.
그럴 자격이 있는 이였다.
그리고 그 인물은.
“서 있습니다.”
원형의 제단 정 중앙에 선 채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과 자세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생전 어떤 태도로 이 세상을 대해 왔는지를 증명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소박했으나, 왕실의 주인임을 충분히 증명했다. 그 위에 수놓은 금빛의 자수는 마치 발동된 룬 문자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세상을 밝히는 등대의 빛은 그 몸에서 나오고 있었다.
리리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혼이 보이지 않아.”
리리가 목이 멜 정도로 놀란 건 이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손을 앞으로 모은 채, 한때 위대했던 존재를 올려다보는 엘프는 말했다.
“인간이로군요.”
“……왕은 인간이었던 거야?”
그 어떤 것도 타고나지 않고 수명마저 짧은, 신에게 버림받아 어떤 가호도 없고 성좌의 눈길마저 받지 못하며 룬마저도 쓸 수 없는 그런 종족.
왕의 일생은 그 태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대체, 왜, 왜 자신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이렇게 서서…….”
그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변화를 눈치챈 건 강선후였다. 강선후는 순식간에 머스킷과 단검을 뽑으며 뒤로 물러났다.
“삐이이익—!”
하늘을 회전하던 불사조가 그 자리에 멈춰 서며 땅을 주시했다. 제 기사의 위험을 느낀 탓이었다.
그다음으로는 리리였다. 강대한 영혼이 이 땅 아래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걸 보았다.
엘신은 언제나처럼 동요하지 않았으나 약간 찌푸려진 그 미간으로 모든 위기를 표현했다.
“악마!”
“……악마는 감정을 가진 존재로부터 비롯됩니다. 명계의 기운이 감정으로 빚어져 세상에 현신하는 거죠.”
엘신은 어깨에 걸쳤던 활을 뽑았다. 그리고, 상대가 나오기 전부터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이제까지는 보여 주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대지신이 죽는 순간 그 비명에서 첫 번째 악마가 태어났고, 검은 태양의 사랑을 질투한 어떤 뒤틀린 이로부터 대악마가 태어났고, 죽음을 선택한 불멸의 존재가 최후에 품은 후회가 그를 악마로 만들었듯이요.”
그 순간 리리는 깨달았다. 악마의 영혼은 저 수많은 조화(弔花)들에게서 피어올라 하나가 되고 있었다.
조화는 왕의 시대가 끝날 때, 그 시대원들의 슬픔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땅에서 서서히 솟아오르는 몇 개의 거대한 몸뚱어리를 바라보았다.
“……시대가 끝난 순간, 그 슬픔에서 태어난 악마.”
리리는 본능적으로 악마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감정이 얼마나 강대할지 쉽게 예상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지금 눈앞에 현신하는 악마의 힘을 의미할 거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