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ep75. 신앙, 자유
악마의 영혼이 본질적으로 명계의 태생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건 평소에 명계의 기운에 스며들어 있기에, 필멸자의 감정에 반응하여 한 자리로 뭉칠 때 자연스럽게 심장을 형성했고, 그것을 자신의 존재 증명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심장을 파괴하면 사라지고는 했다. 본질적으로 죽는 게 아니라 다시 원래의 형태로 흩뿌려지는 것에 가까웠다.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는 그 심장을 파괴해야 한다.’라는 법칙이 지상에 널리 퍼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시도할 수 없는 영역일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악마의 육체가 붕괴되었다. 하지만 그 영혼은 온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애초에 악마의 심장은 저 멀리, 벌써 황금의 왕국 근처까지 다가간 걸로 보이는 두 머리가 달린 본체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법칙 따위.
“……죽음의 주인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제 입으로 말한 ‘명계의 법칙’마저 상습적으로 깨는 사람이니까. 갑자기 웃음이 나오는 걸 강선후는 간신히 참았다. 지금 웃으면 분명 엄청 삐치겠지?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명계왕이 현세에 관여한 건 그저 한쪽 손뿐이었다.
그것으로 차고 넘쳤다. 명계왕은 그대로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악마의 육체는 이미 붕괴되어 가고 있었기에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손아귀가 부여잡은 건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었다.
악마의 영혼. 그중에서 광대가 차지한 영역.
애초에 하나의 영혼일 터였다. 하나의 영혼이 둘이 될 수는 없는 법이었으나.
법칙 따위, 죽음의 주인 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주신도, 우주도 존중해 본 적도 없고 존중의 필요성은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존재였다.
그야말로 위대한 분탕충.
강선후는 그렇게 혼자 상상하다가 다시 웃음을 참았다.
악마의 영혼을 움켜쥔 손아귀는 그대로 영혼을 찢어 버렸다.
시대의 악마 영혼이 그렇게 천 쪼가리가 찢어지는 것처럼 뜯겨 나갔다.
「키으아어어어어—」
소름 끼치는, 누구도 처음 듣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누구도 찢겨진 영혼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끔찍했다.
손아귀는 그렇게 처참하게 찢어발긴 영혼 조각을 움켜쥔 채 천천히 땅 아래로 다시 내려갔다.
미답의 땅에 남은 거대한 구멍만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모두가 여겨 왔던 ‘명계왕의 이승 개입’의 증거로 남았다.
강선후는 그곳으로 다가가 아래를 바라보았다. 이미 너무나 어두웠기에 그 뻥 뚫린 구멍 아래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지 눈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강선후는 목소리를 그 안에 던져넣을 뿐이었다.
“고마워요. 반드시 갚아요. 약속할게.”
강선후가 다시 뒤로 도는 그 순간.
「다음에 올 때는 진짜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맨입으로 해 주는 게 아니니깐!」
「그리고 너. 애초에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거지! 이 자식아! 너 기절한 척하면서 웃는 거 내가 다 봤다!」
“들켰네.”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계획이었다고?”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리리의 얼굴. 그렁그렁 고이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 내는 모습을 강선후는 일부러 외면했다.
“……제발, 부탁하는데, 진짜로 말 좀…… 해! 제발!”
“재밌잖아.”
“이 와중에도 재미를 찾으시나요.”
“그러는 엘신도 웃고 있잖아요?”
“……그리운 감각이네요. 속세의 감정은.”
“싫은 느낌이에요?”
엘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리리를 감쌀 때의 촉박한 느낌, 그리고 악마를 다시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강렬한…… 복수심.
그 모든 게 너무나 오래전 잊었던 감정들.
낯설지만, 그래서 너무나 강하게 느껴지는 단맛.
“그냥 위험하다고 느낄 뿐이에요.”
그렇기에 가볍게 내뱉는 감상. 강선후는 그 모습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말에 올라탔다. 잠시 여유를 부렸지만 진짜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악마는 약화되었겠지만 여전히 남아 있었다. 명계왕은 거기까지는 개입하지 않고자 했다. 그 말마따나, 명계에는 명계의 법칙이 있는 법이었으니.
출발하려는 강선후의 등 뒤로, 다시 한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까진 들을 수 없었던, 정말로 낮게 깔리고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이 순간, 처음으로 죽음의 주인이 가진 품격이 느껴졌다.
「정말로, 다음을 기대해선 안 될 것이다.」
저건 진심이었다. 빈말이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다음은 없겠지.
하지만 강선후는 걱정하지 않았다.
다음이 필요하진 않을 테니까.
“가자, 렐릭시나.”
렐릭시나는 다시 한번, 황동색의 모래와 흙을 밟고 내달렸다. 출발하는 그 순간, 강선후는 뒤를 힐끗 바라보고 말했다.
“아르고, 리리.”
“…….”
“네, 아, 네!!”
아르고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놀라야 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감격받아야 하는지.
사람이 감상을 느낄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일을 계속해서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잘 버텨 줘서 고마워요.”
“황송합니다! 이 신화적 여정에 저를 허락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너무나, 너무나!”
그래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 * *
셀 수 없는 시간.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상상해 보려고 해도 제대로 상상할 수 없는 먼 과거. 황금의 시대가 존재했었고, 끝났다.
왕은 모종의 이유로 왕국을 세상에서 분리시켰고 시대의 슬픔에서 태어난 악마 때문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렇게 누구도 이 땅에 발을 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정기조차 닿지 않는 곳이었기에 바람 한 점 없었고, 세계수가 부재했기에 생명이 발생하는 일도 없었다.
너무나 오래 지속된 고요.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땅.
그 땅에 지금 구멍이 생겼고, 수많은 핏자국과 발자국, 그리고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균열이 생겼다.
강선후는 빠르게 달려 악마가 만들었던 균열을 넘어갔다. 다행히 크지 않았기에 훌쩍 뛰어갈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긴 거리를 주파했다. 빛나는 왕의 무덤이 이제는 저 뒤편에서 다시 점광원으로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긴 거리였다.
그 사이에 강선후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침묵을 유지했다.
강선후가 직시하는 건 지금 왕국에 가깝게 다가간 악마였다. 저 악마가 왕국을 부수지 않을까 걱정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왕국은, 시대의 슬픔에서 태어난 악마마저 섣부르게 건들 수 없는 존재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시대가 끝난 슬픔에서 악마가 그 시대의 상징을 부술 리는 없겠죠.”
엘신의 말대로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왕국. 드높은 방벽과 그보다도 더 높게 솟아 올라와 있는 건 둥근 지붕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위에 추가로 첨탑이 뾰족하게 올라와 있는 형태였다. 어쩌면 의외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으나 꽤 익숙한 모양이었다.
“……솔라.”
제국의 수도, 솔라. 그 도시에서 저것과 흡사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었다.
풍화의 시대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을 만드는 법이 잘 없었다. 그저, 아주 오래전 사라져 버린 영광의 흔적을 영위할 뿐이었고 그걸로 삶에 문제는 없었으며, 그렇기에 더 욕심부리지 않았다.
그들은 황금의 시대가 다시 오기를 바랐다. 그러지 않으면, 위대한 암흑시대가 도래한다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왕국 뒤편의 지평선에는 흑성이 떠올라 있었다.
이미 어둠은 세상을 대부분 집어삼켰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흑성이 뿜어내는 어둠은 빛마저 점점 사그라들 정도로 짙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끝을 모르고 짙어져 갔으니까.
시간이 없었다. 왕국과 강선후 사이를 가로막는 저 악마가 무슨 짓을 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죽치고 앉아 그 의도가 파악될 때까지 몸을 낮추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선택지는 하나였고, 강선후는 언제나 빠르게 납득했다. 그렇기에 멈추는 일은 없었고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그저 시야만이 흔들리지 않고 악마를 계속해서 주시했다.
처음에는 새하얬던 악마는 갑작스럽게 검은빛을 띠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어둡게 물들었다. 이제는 평범한 다른 악마와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존재. 그 존재는 빛보다는 암흑에 어울렸다.
“악마는 감정에서 태어난다고 했잖아.”
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악마를 만들어 낸 감정이 정말로 슬픔 하나뿐이었을까?”
강선후가 던진 의문은 갑작스러웠다.
위대한 시대가 끝나고 앞으로 쇠퇴만이 남은 그 순간.
그 시대의 끝에서 사람들이 느낀 부정적인 감정은 뭐가 있었을까?
슬픔 하나뿐이었을까?
그 순간이었다. 악마가 움직였다.
마치 의문에 화답하는 듯. 보여 주겠다는 듯.
악마의 몸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좌우로 전개되었다. 끝을 모르고 어둠 저편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더니 종국에는 하나의 벽이 되었다.
벽. 무언가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악마는 그 형상이 되었다. 필멸자 한 무리가 왕국에 접근하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그런 일을 없게 하려는 듯한 노골적인 의도가 느껴졌다.
악마의 움직임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떤 빛도 반사하지 않을 것 같은 검은 벽이 갑자기 투명해지는 듯하더니 거대한 거울의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기분 탓이었을 뿐이었다. 자세히 바라보자 그게 거울이 아니라는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안에 비춘 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었다. 황금의 시대를 보여 주려는 걸까? 리리는 고개를 치켜들어, 동공을 붉게 물들이면서까지 그 형상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건 황금의 시대 사람들이 아니잖아.”
황금의 시대에 대해서 전혀 모르더라도 그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숨을 들이켜는 듯한 소리. 아르고의 것이었다. 아르고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저건, 우리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아르고의 판단은 정확했다. 어느새 악마를 직시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진 영혼을 가지게 된 아르고. 이 여정의 짧은 시간 동안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그는 악마가 띤 형상의 본질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했다.
모두가 어깨와 허리를 굽히고, 땅을 바라보며, 그저 누군가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있었다.
그 모습은 풍화의 시대를 상징했다.
그 각각의 인물이 가진 모든 표정. 이 먼 거리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그 얼굴들이 말하는 공통적인 단 하나의 감정.
그건 불가능이었다.
황금의 시대 끝에서 태어난 악마의 본질은 슬픔이 아니었다.
이 시대 이후에, 시대를 지배하게 될 거대한 하나.
불가능.
사람들은 그걸 두려워했고, 그게 악마가 되었다.
불가능은 종국에 왕국을 다시 여는 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 되었다.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이가 있다면.
그를 압도할 정도로 거대한 하나의 해일마저 될 수 있었다.
악마의 법칙은 그러했다. 그들의 힘은 정해지는 게 아니었다.
존재하는 이유를 충족하기 위해 힘이 필요하다면, 그런 힘을 품을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벽 안 화면에서 출발한 거대한 검은 해일.
그 해일은 짐승의 형상과 창을 든 압도적인 형상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며 몰아닥쳤다.
“…….”
강선후는 멈추지 않았다.
이곳에서 멈춘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을 때.
그는 그것에 대해서 의심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뭔가를 시도하려고 하는 걸까? 그 의도가 밝혀지기도 전.
강선후 머리 위, 허공이 거대하게 갈라졌다.
검은 광선이 차원을 찢으며 해일에게 쇄도했다.
불가능의 악마를 잠시나마 멈추기에는 충분한 힘이었으며, 광선의 역할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 강선후가 신의 이름을 빌려 구현해 낸 ‘차원의 바람길.’
그 완벽한 형태가 다리처럼 놓아졌다.
그 길을 타고 빛무리 하나가 도착했다. 이제까지 미답의 땅을 밟은 이는 외로운 넷이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반가운 얼굴을 보고, 강선후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주신교의 사제단과 그 수호기사단.
“얼굴이 좋아 보이네요.”
그리고 그들의 총대주교.
악마를 짊어진 침묵의 예언자.
성녀, 벨라 비바치시모.
성녀는 강선후를 빤히 바라보다가 뒤를 바라보았다.
왕의 무덤의 빛이 그 별빛 눈에 반사되었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