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ep79. 이제 시작되는 노래. 이렇게 시작됐던 이야기(完)
강선후는 왕좌에는 관심이 없다.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누군가는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저런 말을 들었을 때 거기에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강선후라는 인물을 아는 자라면, 그가 왕좌에 관심이 없을 거라는 사실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그게 지금 이 뱀파이어의 행동에 대한 변호가 되진 않았다.
“그저 보고 싶었을 뿐이잖아? 이곳이, 이 세상이. 왕국이, 왕이. 당신의 과거가 궁금했을 뿐이고, 새로운 세상이 궁금했을 뿐이고…….”
뱀파이어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다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강선후에게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듯했다.
“그럼 이제 된 거야. 그렇지 않아? 후회는 없을 테니까. 당신은 그런 성격이고…… 나도 당신을 위해서 최대한 헌신하려고 노력했어. 그게 충분했는지 확신은 못 하겠지만.”
그렇게 조금 작게 얼버무리듯 중얼거렸다.
“난 노력했다고. 거기까진 내 숙명이 맞았으니까. 진심이었어. 같이 있었을 때 내가 했던 것들은…… 보여 줬던 것들은. 빠짐없이 전부.”
뱀파이어는 열린 문의 안쪽을 슬쩍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들어 강선후의 머리 위쪽을 바라보았다.
강선후가 아니라 그 위에 떠 있는 것.
피의 귀족만 볼 수 있는 것.
더 이상은 감출 수조차 없는 위대한 영혼을 바라봤다.
“여정에 성공한 영혼은 필연적으로 왕의 자격자가 돼. 그 여정이 그를 그렇게 만들고, 그렇게 될 수 있는 자만이 여정에 성공하니까. 그리고…… 당신도 알잖아? 로얄 블러드는 상대의 영혼을 내 걸로 만들 수 있는 거.”
조건은, 그의 피를 탐하는 것. 더 나아가 생명을 탐하는 것.
“……그게 신카의 숙명. 그게 나의…… 맞아. 나의 황금. 여정의…… 주체를 보좌하고, 그렇게 완성된, 완성된 영혼을 탐하고. 왕좌를, 왕좌를 찬탈하는 거…… 그게 찬탈자의 상이 가진 숙명. 그, 숙명, 그게 나의…….내가 평생을 바친…….”
강선후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레베카는 오히려 지금 강선후 때문에 더욱 경악하고 있었다. 전사인 터라 상대의 눈빛을 잘 읽을 수 있는 레베카의 눈으로 보기에 강선후가 가지고 있는 감정 중에서 동요와 불안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강선후는 그저 자신에게 손톱을 내민 흡혈귀의 상태를 살피는 것 같았다. 연민마저 느껴졌다. 대체 왜?
강선후는 손을 뻗었다. 뱀파이어는 심하게 움찔거렸다. 그 순간 레베카는 하마터면 앞으로 튀어 나갈 뻔했다. 그건 자신뿐만이 아니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곧, 검을 잡았던 손의 힘이 풀렸다.
강선후의 손이 뱀파이어에게 다가가고 있는데도 뱀파이어 가 내민 혈술의 칼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딸깍-
가면이 치워졌다. 그건 천천히 흘러내리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모든 감정을 소거하여 죄책감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황금의 유물.
그 뒤에 있는 얼굴은.
“나의, 나의…… 나의 황금…… 이게 내 황금인데…….”
눈물범벅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잔뜩 엉긴 검은 머리카락. 새빨개진 광대와 뺨. 코. 잔뜩 깨문 입술. 간헐적으로 들썩이는 어깨는 이제 억누르지 못했다. 피가 흐를 듯 새빨간 눈동자로 강선후의 영혼이 아닌, 오직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공은 붉지 않았다. 영혼 따위에는 처음부터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언제나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던 리리는 가장 어른이기로 다짐한 순간에 아이가 되었다. 그 눈빛은 강선후의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무슨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본인조차 모름에도 그랬다.
그저 도망치고 싶었는데 도망칠 곳이 없었고, 그게 마냥 두려웠고, 그저 누구라도 다가와 감싸 줬으면 싶었다. 어린 이는 그렇게 울며, 의지 받았고 의지를 주었던 이에게 끊임없이 눈으로 도움을 갈구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무너졌다. 소중한 이가 자신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서, 도울 리가 없다는 사실에서 도망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어깨에 숙명을 짊어진 아이는 종국에 무너져 내렸다.
“못 해. 난 못 해. 없어. 나는…… 없어. 이제…… 내가 배워 왔던 모든, 모든 거! 꿈꿨던 모든 거…… 하나도 없어. 없다고. 처음부터 없었고…… 얻었던 것도 다 잃어버렸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 있었는데. 저지르지도 못했고, 멈추지도 못했어!”
구슬을 채워 가던 빛이 일시에 꺼졌다.
바위 문은 세차게 닫혔다. 쾅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리리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심하게 움찔거렸다.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내 황금이…….”
황금의 왕국은 황금이 없는 이가 발을 들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새 시대를 열고자 하는 빛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야 하는 자리에서, 빛나지 못하는 이는 허락되지 않았다.
리리가 숙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
그건 삶 전반을 숙명을 위해 바쳤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황금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엉망진창인 얼굴로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흑성의 어둠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시대의 갈림길에서 가장 중요한 이 순간 이 모든 걸 망치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총명한 아이였기에 리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사실도 금방 받아들였다.
오히려 쉬웠다. 소중한 이에게 발톱을 들이밀었던 방금 전보다 이게 훨씬 더.
품속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자신의 목젖을 겨냥했다. 친구를 올려다보지 못했다. 그저 허리를 굽히고 웅크려 땅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이성적 판단은 한 방울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몰려 있는 아이는 어둠이 몰려오는 세상이 자기 탓인 걸 버티지 못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차가운 기운이 목에 닿았다. 떠나기 직전 마차 안에서 늦기 전에 작별 인사를 내뱉듯, 리리는 성급하게, 뭉개지는 발음으로 너무 빠르게 말했다.
“이제까지 쌓아왔던 모든 걸, 빛도, 숙명도. 이제 싫어. 나는, 나는…….”
외치며 생각했다.
이미 칼날이 목젖을 파고든 걸까.
“나의 황금을…… 포기해.”
당신을 위해서.
감고 있는 눈.
눈꺼풀 사이를 파고드는 빛.
이미 난 명계에 와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 빛은 뭐지?
리리는 고개를 들었다. 강선후는 리리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그 손으로 나이프를 잡고 있는 손목에 멍이 들도록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강선후는 그렇게 앉은 채 문을 바라보고, 들고 있는 구슬을 바라보았다.
구슬은 빛을 되찾았다.
그 전보다 더욱 빛나고 있었다.
왕의 무덤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같은 찬란함이었다.
명백한 황금빛이었다.
리리는 입을 열었다.
아마도 유일하게 이 세계에서 황금 때문에 매일 밤을 고통 속에서 잠들었던 영혼이 말했다.
“……그게 나의 황금.”
내가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뜨거운 빛.
찬란하게 빛나는 구슬은 황금 지침의 열두 번째 자리에 들어갔다.
열두 번째 지배자의 유물.
「현자의 돌」
황금의 마지막 재료.
지침은 황금이 되었으며, 황금은 왕국의 문을 열었다.
문 안쪽은 더 이상 텅 빈 공터가 아니었다.
그 가운데에는 드높은 왕좌가 하나 있었다.
강선후는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리는 그 위에 떨리는 손을 얹었다.
뱀파이어가 잡기에 그 손은 너무나 뜨거웠다.
* * *
지배자의 상은 왕좌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실제로 그랬다. 이건 마약과 같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 집어치우고 이걸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그런 충동이 강선후를 덮쳐 왔다.
왕좌가 앞에 있었다.
전설은 언제나 마주하면 기대만큼의 만족감을 주진 않는 법이었다. 강선후는 그런 사실에 익숙했다. 이미 많은 전설을 마주했었기에 그랬다.
그렇기에 만족하는 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강선후는 나름대로, 그런 마음가짐이야말로 자기가 가진 가장 훌륭한 노하우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왕좌를 앞에 둔 강선후는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상황이 좀 급하다고 해도 이 정도의 여유는 부려도 되지 않을까.
“……여기까지 개고생했는데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모두가 했던 말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염원하고 있는 말들을 찬찬히 더듬었다.
사실 이 왕좌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에 안 드는 것들투성이였다. 강선후가 생각하기에 그다지 멋진 전설도 아니었다.
왕좌의 주인이 나오면 황금의 시대가 열린다.
그래야 별들이 빛을 되찾고 신이 다시금 지상을 내려다보며, 이 세상 사람들이 멸망이라 말하는 위대한 암흑시대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게 진짜 황금의 시대야?”
리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죄책감에 멀찍이 떨어진 채 이곳에서 펼쳐질 모든 영광이 그의 몫이 되기를 바라는 듯 행동했다.
강선후는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원하는 황금의 시대가 이거야? 군림하는 왕을 만민이 올려다보는 시대?”
리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선후는 그렇게 잠시, 다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흥미가 동한 듯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계속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내가 생각하는 황금의 시대는 그게 아니더라고.”
“그럼…….”
“예전에 물어본 적 있잖아? 내 황금이 뭐냐고.”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솔직히 내가 이쪽 사람도 아니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사람들은 내가 열정적으로 산다고 하지만…… 글쎄,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하고 싶은 걸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사람이랑 하기 싫음에도 몸 비틀면서 억지로 해내는 사람.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열정적인 걸까?”
리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전자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면…… 사실 모르겠더라고. 그냥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했었어. 그게 열정적인 거야?”
“……자유로운 거야.”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봤는데, 맞아. 자유. 거기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해 봤거든? 자유롭다는 게 뭘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웃음을 터트렸다. 리리는 진지했다. 물론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선후가 내놓은 답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욕망에 휘둘리는 거야. 화내고 눈물 흘리는 건 감정에 휘둘리는 거고. 결국 순수한 내 의지가 아니라는 거 아냐? 내가 생각하는 진짜 자유로운 건.”
강선후는 바지춤에 꽂아두었던 도끼를 꺼냈다.
수정 도끼였다.
이 모든 여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 여정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와 함께하던 친구와 같았다. 이걸로 야생에서 살아남았고, 명계왕에게서 이겨 영혼을 각성했었다.
“타의는 물론이고, 감정에도 욕망에도 휘둘리지 않고. 모든 것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내리는 선택.”
지금 이 순간, 지배자의 영혼이 왕좌를 소유하라 울부짖고 있고, 욕망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손해 보는 것도 아니었고 불명예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이 자리에 앉으면 모두가 그에게 감사할 거고, 그의 이야기는 책으로 쓰여서 온 세상의 도서관 가장 좋은 자리에 꽂히겠지.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내가 지금, 나를 휘두르는 이 모든 것들에서 휘둘리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내 자유의지가 증명돼. 이제까지 한 번도, 날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자유로운 게 맞다고 대답할 수 없었어.”
도끼를 치켜들었다.
“나는 이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자유롭게 살았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야.”
강선후는 도끼를 얌전히,
“나는 왕좌를 포기해. 내 황금을 위해서.”
왕좌 위에 내려놓았다.
“나중에 이걸 보고 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겠지? 이 동네는 영원히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리리는 그런 강선후와 왕좌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럼 난 영원히 사는 거야.”
이로써 증명되는 내 자유의지.
그게 나의 황금.
그 순간, 누군가 뛰쳐 들어왔다. 모두가 밖에서 기다리는 상황에서 홀로 무모하게 행동한 이는 아르고였다.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돌아간다면! 돌아간다면 음유시인이 될 거예요!”
강선후는 미소를 지었다.
“그거 별의 노래를 듣는…… 뭐, 선택받은 뭐시기만 될 수 있다는데요? 그게 아니면 불가능하다는데.”
“불가능은 제 알 바가 아니에요! 해 보겠습니다! 제가 반드시 당신의 노래를 만들 거예요! 반드시!”
강선후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르고의 말에 순수하게 즐거워했다.
그 순간, 왕좌에 룬이 그려졌다.
리리는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왕좌에 숨겨진 룬이 발동되는 그런 사소한 사건이 아니었다.
이 룬은 지금, 강선후에 의해 그려지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이 룬은
왕의 언어였다.
“맞아요. 그게 내가 생각하는…….”
— 황금의 시대el dorado.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그 모든 게 별빛이었다.
이게 황금의 시대였고, 왕이 원하는 시대였다.
왕의 시대가 아니라, 황금을 품은 이들의 시대.
이제 와서야 비로소 강선후는 만족감을 느꼈다.
* * *
고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에 한 인간 청년이 있었다. 평범하게 꿈을 꾸었고, 평범하게 타협했고, 평범하게 세상을 받아들였고, 그런 자신에게 평범하게 실망했던 청년이었다.
그는 도전했고, 그렇게 대단치 못한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며 실패했다.
방황하는 그는 어느새 이 숲에 들어와 있었다.
모두가 위험하다고 말하는 그런 끝을 알 수 없는 숲이었다.
그곳에서 청년은 한 남자를 만났다.
이미 많은 소문이 나 있는 광인이라 불리는 자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청년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광인과 같이 지냈다고 했다. 그 안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어느 날 밤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언제였을까? 청년이 광인에게 작별을 고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여러 번의 비극으로 몰락한 먼 왕국으로 가 보겠단 말을 남겼다는 것 같았다. 전부 뜬소문일 뿐이라 믿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바람을 타고 노래가 떠돌기 시작했다.
저 멀리, 척박한 땅 위에서 새 왕이 나타났다고.
그가 새 시대를 선포했다고.
어렸을 때에는 그저 떠돌던 미천한 출신이었다더라고.
그런 노래가 구름 아래에서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 소문을 듣고 광인은 청년이 출발한 방향을 더듬어 길을 나섰다.
이게 그 옛날, 첫 번째로 기록된 광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