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8
28화 ep11. 남쪽, 짧은 여정 (2)
***
닷새를 걸었다.
바위산을 우측에 끼고 돌다가, 공기 흐름의 변화를 느껴 수색하니 넓은 공동으로 이루어진 동굴을 하나 발견했다.
그곳을 가로질러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예정된 시간보다도 빨리 숲에 도착할 수 있었지.
거기서 처음 목격한 건 별로 유쾌한 게 아니었다.
인간의 잘린 머리였으니까.
“···당신 동족인데.”
눈도 감지 못하고 잘려나간 인간의 머리.
현대적인 헤어 스타일이 지구인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준비 없이 숲에 들어온 자들의 최후네.”
리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 뒤, 시체에는 신경을 끄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조금 긴장한 듯 몸을 움츠렸다.
“당신을 믿지만, 조금 더 조심하면서 가는 게 좋겠어. 뭐든 간에 이 꼴을 만들어낸 생물이 산다는 의미니까.”
리리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오래된 숲이고, 오래된 숲에는 양분이 많다.
양분이 많다는 건 더 거대한 생태계를 의미하고, 생태계가 거대하다는 건 군림하는 포식자의 힘이 강대하다는 걸 의미한다.
리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지 않는 덤불에서 희미한 냄새가 풍겨왔다. 몸통은 저기에 있는 모양인데?
“이 사람, 덤불 속에 숨어 있었던 모양인데?”
“응?”
“저쪽 덤불에 몸통이 있어.”
리리는 가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으.”
나는 몸을 낮춰 머리를 가까이 바라보았다.
“리리. 생물이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가 언제인지 알아?”
“글쎄, 사냥?”
“먹이를 사냥할 때,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꼈을 때, 그리고 특정 생물에 한에서지만, 번식할 때야.”
물론 백 퍼센트 맞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기상천외한 동물들이 많은 이계에서 이 세 개를 기억하고 있다면 조금 더 명확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두려움에 떠는 것보단 생존 확률이 훨씬 올라가는 거지.
리리는 호기심이 동했는지,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럼 이건 어때 보여?”
“이 남자는 덤불에 숨어 있었어. 투지를 완전히 상실했을 텐데, 굳이 와서 죽인 셈이니 자기방어를 위한 공격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커. 그리고 포식 흔적이 없으니 사냥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들고.”
리리를 위한 탐험 교육이었다. 날 따라다니려면 알아두면 좋은 내용들이니까.
리리도 내 의도를 이해한 듯, 진지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럼···.”
리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 하고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은닉처의 목격자를 완벽하게 없애기 위해 추격해왔을 가능성은?”
“똑똑한 학생이네. 그 말대로, 자기방어일 가능성을 아직 없앨 수는 없지.”
“그렇구나···.”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16개 언어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학구열이 뛰어난 흡혈귀였다.
머리를 기울여 단면을 바라보았다.
“베인 단면이 매끄러운 편. 목을 노렸다는 건 사람의 약점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는 의미고.”
단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금속 가루.”
“···무기에 당한 거야?”
“기생체처럼 생체 금속일 수는 있어. 그런데, 생체 금속은 우리가 쓰는 강철처럼 녹슬지 않잖아?”
눈을 감고 근처를 흐르는 공기를 느꼈다.
그 안에 섞여 있는 수십 가지의 냄새를 분류해본다.
피 냄새, 풀냄새, 그리고···. 퀴퀴한 냄새.
그 안에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건.
“금속 냄새.”
눈앞의 시체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어딘가, 먼 곳에서 흘러오는 퀴퀴한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냄새였다.
무엇을 만들었든, 관리된 금속이나 생체 금속은 이토록이나 심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이건 오래 방치된 금속 냄새야.”
“···당신 정말로 인간 맞는 거지?”
리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아니야. 본인이 이상한 걸 못 느끼니까 내가 할 말이 없네.”
나는 몸을 일으키고는 가죽 덮개를 열고 쿠크리를 뽑아 들었다.
“경계도 한 단계 더 올린다고 생각해. 여기서부턴 위험해질 테니까.”
궁금했지만, 사전 정보가 너무 없었다. 이럴 때는 피해 가는 게 웬만하면 상책이다.
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며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금속 냄새를 실은 바람이 어디서 나오는 지는 오래 지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한 사람씩 들어갈 수 있는 절벽의 틈새였는데, 그곳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
나무에 묶여 있는 끈.
그 끝에는 윌슨이 걸려 있었다.
“···당신 친구 아냐?”
리리도 멍하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당황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
질문. 이계에 고무나 플라스틱으로 된 풍선이 있는가?
답변. 아니오. 이건 나도 확실시하기 위해 리리를 통해서 확인해봤다.
질문. 내가 이곳에 찾아와서 나무에 윌슨 하나를 묶어둔 적이 있는가?
답변. 아니오. 이전에 조난당한 곳은 애초에 이 주변이 아니었다.
질문. 나 말고 다른 지구인이 여기에서 풍선을 매달아 놓았을 가능성은?
답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눈코입.”
이런 식으로 그리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없다.
“······.”
눈코입이 그려진 풍선에 손을 대 보았다. 이건 확실히 풍선이 맞다.
뒤로 돌려보자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는데.
동굴 안을 향하고 있었다.
“···이거 나를 안내해주고 있는 건가?”
화살표로 나를 저 동굴 안으로 들어가라 인도하고 있는 걸까?
나는 풍선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말했다.
“저 죽은 하운드가 나보다 먼저 여기로 왔을 텐데, 왜 이걸 건들지 않은 걸까?”
“저 죽은 인간이 달고 간 거 아냐?”
“먼지가 쌓여 있어. 하루 이틀 여기에 있지는 않았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손이 닿는 위치에 있는데 한 번 만져보지 않았을 리가 없어. 그런데 풍선에 쌓여 있는 먼지가 그대로야. 건드렸으면 손가락 자국 하나라도 났을 텐데.”
“흐음···.”
못 봤나? 아니면 저 하운드가 왔을 때는 이게 없었던 건가?
···윌슨이 정말 남쪽 마을에서 숭배하는 대로 승천한 존재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았다.
그리고, 그 존재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가정까지 도달했다.
“···잡생각 말자.”
고개를 휘저었다.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면, 판단하지 않는 쪽이 더 좋다.
안쪽으로 뚫려 있는 어두운 동굴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구경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그럴 줄 알았어.”
엔간한 위험에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으니 정찰 정도는 지금 해두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안쪽을 확인하고 나면, 최소한 풍선에 쓰여 있는 화살표의 의미가 뭔지 알 수 있으니.
***
“모스mohs. 트릿turit.”
하나의 불씨를 조금 강하게 만들어 날 따라오게 했다.
“데이지 않게 조심해. 이번 건 좀 세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리리의 표정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이런 데까지 들어가야 한다니.”
“재밌지 않아? 두근대는데.”
모스mohs의 불빛에 의지해서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형이 거칠지 않아서 이동이 힘들지는 않았고, 조금 들어가니 안쪽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이 정도는 리리와 내 피지컬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치이이익—
가볍게 미끄러지며 아래쪽에 도착하자, 갑자기 인공적인 지형이 드러났다. 지하에 건설된 어떠한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
“흠.”
그리고 그 방 입구 앞에는 사지가 절단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전반적인 시체 상태가 위에서 본 것과 일치했다. 비슷한 시기에 죽었다는 거고, 동료라는 것을 뜻하겠지.
“첫 습격은 이곳에서 있었어.”
내 말을 듣자마자 리리는 내가 준 사냥용 나이프를 들어 주변을 경계했다.
나도 쿠크리를 단단히 쥐고는 온 신경을 감각에 집중했다. 아직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진 못했다.
그러다가, 눈앞에서 이리저리 분해된 갑옷 조각들을 발견했는데.
“······.”
그 등에는 무언가 적혀 있었다.
“룬···이네.”
리리의 말대로 룬 언어였다.
다가가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손가락 두 개로 그은 것처럼 지워져 있었는데, 이 정도라면 원본이 어땠는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유심히 그것을 관찰했다.
“···혹시 읽을 수 있어?”
리리가 와서 물었다.
“아니. 모르는 거네.”
문장을 이루는 모든 획을 따라가는 눈동자는 쉼 없이 떨리고 있었다.
“···모르면 아무 소용 없잖아. 당신도 알겠지만 룬 언어는 입으로 발음할 때는 그 발음이 정확해야 하고, 글자로 쓸 때는 정해진 모양과 비율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어야 효능이 발휘돼. 알고서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이거잖아.”
철커덕.
“읏···!”
그 순간,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안쪽에서부터 들려왔다.
***
철걱—
철걱—
철걱—
리리는 영혼의 상을 보는 능력에 온 힘을 집중했다.
영혼의 상은 대체로 해당 존재보다 더 큰 형태로 묘사되었다.
이는 단순히 그들의 영혼을 읽는 것 외에도, 숨은 대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이점도 제공해주고 있었다.
전방에 넓게 펼쳐진 방. 반쯤 부러진 기둥과 잔해로 천장을 받치고 있는 그 방은 너무 넓어 모스mohs의 불빛만으로 전부를 밝힐 수는 없었다.
철걱—
리리는 아무리 집중해도 영혼의 상을 볼 수 없었다.
저 안에 있는 존재들은 영혼의 상을 숨길 수 있는 존재들인 건가? 강선후처럼?
그렇게 생각했다가 고개를 옅게 가로저었다.
‘이 사람 말고는 그게 가능한 걸 본 적 없었어.’
리리의 이마에서부터 시작된 땀 한 방울이 광대를 타고 턱 끝에 매달려, 톡.
강선후가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갑주의 등판을 향해 떨어졌다.
턱—
강선후는 보지도 않고 손을 올려 그 땀방울을 막아내었다.
살짝 지워져 효력을 잃은 그 룬 문장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전방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데도, 강선후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온 신경을 그저 문장에만 쏟고 있었다.
“···당신?”
조급해진 리리는 전방에서 시선을 떼지 않도록 노력하며 강선후를 불렀다.
“룬 문장이 당신에게 매력적인 건 알지만, 공부는 완벽한 문장을 앞에 두고 하는 거야. 보고 따라 그려도 발동시키려면 몇 년을 공부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지워져 있는 문장은 아무런 쓸모가 없잖아?”
철걱—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리리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가오는 무언가는 영혼이 없는 존재인가?
‘···시체술사?’
신경에 기생하는 식물을 이용해서 시체를 조종하는 식생술이라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금속 소리는 뭐지?
철걱—
철걱—
철걱—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리리의 판단에, 총 셋.
리리는 강선후가 건넨 사냥용 나이프 하나만을 믿고, 갑작스러운 습격에 대응하기 위해 몸을 낮추고 퇴로를 확인했다.
리리는 너무 많이 긴장했다.
철걱—
그래서 강선후가 뭘 하고 있는지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소리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의 갑옷이 철퇴를 들고 비틀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리빙 메탈···!’
설화 속에만 존재하는 그것. 리빙 메탈.
잃어버린 기술, 죽일 수 없는 경비병은 고대 왕국의 마법사들이 중요한 곳을 지키기 위해 대량으로 운용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긴 그 시절의 유적 중 하나구나. 뭔가를 지켜야 하는 곳이었구나.
리리는 이제서야 모든 사실을 깨달았지만, 학구적 성취를 음미할 때는 아니었다. 리빙 메탈은 이들을 완전히 인지한 듯 속도를 내며 달려들었고.
“카츠kaahz.”
그 순간 강선후는 시동어를 외었다.
“바보야! 지워진 룬 문장에 대고 시동어를 외 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거 몰라? 당신, 문장 사용법은 모르는 거······.”
거대한 소음이 울려 퍼지며 리리의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애초에, 리리는 그 전에 입을 다물었다. 예상하지 못한 소리에 깜짝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릴 뻔한 걸 간신히 참아냈기 때문이었다.
강선후가 손을 올려놓은 갑주을 중심으로 작은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근처의 갑옷 조각들이 빨려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바위, 석판, 기둥의 파편들이 소용돌이에 휩쓸리듯 거칠게 날아오며 모여들었다.
강선후는 진지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를 탐구했다.
그 입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혼 없는 것들이 형태를 취해, 수호를 위해 영원히 존재하는 종이 되리라.”
강선후가 손바닥을 치우자 아까 그 문장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지워진 부분이 나이프로 그은 흠집으로 채워져 있었다.
룬 문장이 발동했다는 것.
그건 강선후가 복구한 부분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바위와 갑옷이 뒤섞여 만들어진 골렘은 제 주인에게 달려드는 적을 양손 검으로 거칠게 베어내었다.
콰아앙—!
리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큰 혼란을 느꼈다.
“···당신, 분명 모르는 문장이라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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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 남쪽, 짧은 여행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