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
3화
운전석에서 나온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달려들었다.
“그, 그거 놓으세요. 선생님! 잡고 있으면 큰일 나요!”
그러면서 달려들어 파밍 웜을 집어서 땅에 던졌다.
치이익—
“아야야······.”
뜨거운 물에 데인 것처럼 붉어지는 그의 손바닥.
이계의 생물은 독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많았다. 나도 저 느낌 잘 알고 있었다. 해독법을 알아내기 전에는 고기를 먹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었으니.
떠올리니 소름이 끼쳐서 몸을 떨었다.
“으, 괜찮으십니까? 사과드리겠습니다. 다치셨다면 저희 회사에서··· 어?”
손바닥을 보여줬다.
“독기 면역자시군요. 처리해주신 겁니까?”
“저기 옆에 있다가 사고 난 거 보고 깜짝 놀라서요. 얼떨결에 끼어들었네요.”
눈을 커다랗게 커다랗게 뜨는 직원.
“맨손으로··· 말입니까?”
멋쩍어져 딱히 입을 열진 않았다. 나와 파밍 웜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마를 문지르는 직원.
“다행입니다. 땅속으로 파고들었으면 진짜 큰 사고 날 뻔했어요.”
“저걸 가지고 뭘 하려고 하신 거예요?”
“저도 잘은 모릅니다. 그냥 운반원일 뿐이라서···. 듣기로는 뭐 새 농법을 실험한다고 하던데요.”
“농법이요?”
“최근에 뉴스도 뜨지 않았습니까? 파밍 웜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해수 구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뭐, 그런 얘기를 하던데.”
그러더니, 지긋지긋한 표정으로 파밍 웜 시체를 바라본다.
“미친 짓이죠. 아니, 배스나 뉴트리아 같은 놈들도 써보려고 수입해놓고, 지금은 유해생물이잖습니까? 어휴···. 어쨌든 덕분에 살았습니다. 저건 회사 쪽 처리팀에서 가지고 갈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소희 쪽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멀리 떨어져서 본사 측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민간인이 파밍 웜을 대신 처리해줬던 거 같아요···. 스토커 아니냐고요? 그건 저도 잘···. 맨손으로 만지는 걸 보니 독기 면역자는 맞는 거 같아요.”
나를 못 알아보는 듯했다. 거의 단발 수준으로 자라난 머리카락 탓일 수도, 잔뜩 탄 피부 때문일 수도, 아니면 단순히 정신이 없어서 얼굴을 알아볼 겨를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2년 전에는 백수였던 녀석이···.”
저렇게 일하는 걸 보니 기분이 색달랐다.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니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했구나.
“어쨌든, 전 가도 되는 거죠?”
“아, 네네. 혹시 연락처 좀 주시겠습니까?”
그에게 대충 연락처를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차소희가 내 얼굴을 보기 전에.
물론 이건 챙겼지.
<파밍 웜의 감각기관.>
주변에서 생물이 감지되면 미세한 전류 신호를 뿜어내는 기관. 이계에서 살던 시절, 내 목숨을 여러 번 지켜준 물건이었다.
왠지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챙겨뒀지. 이 정도는 받아가도 정당하니까.
충분히 거리를 벌린 뒤 이제 막 개통이 끝난 핸드폰으로 연락을 보냈다.
[나: 야] 1 [나: 야] 1 [나: 야야야야야] 1숫자 1이 없어지는 건, 차소희의 통화가 끝난 거 같은 그 시점이었다.
[차소희: ???] [차소희: ????????????]허둥거릴 차소희를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얼마만의 만남이지? 녀석 입장에서는 2년 만이겠지만 그것도 짧은 기간은 아니다. 대충 군 생활 기간이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보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았다.
이계에 관련된 일을 한다는 거지? 많은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을 거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집에 들러서 쌓인 먼지를 닦고, 퀴퀴한 냄새가 밴 옷에 대충 페브리즈를 뿌리고 나섰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는 그 땡그란 눈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너···.”
차소희가 입을 오물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꼴이 그게 뭐야?”
“20년 지기 친구를 2년 만에 만나서 할 소리야?”
“아니, 그 전에, 우리 아까 만나지 않았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그게 너였다고? 아니, 그 전에, 파밍 웜을 맨손으로 때려잡았다고? 아니, 그보다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
머리를 부여잡고 버럭대는 걸 보니 그 성격 어디 간 건 아니구나 싶었다. 하긴, 2년이란 시간은 사람을 그렇게 많이 바꾸지는 못하니까.
차소희와 근처 술집에 들렀다.
술이라니···. 마지막으로 먹어본 게 언제더라?
맥주 맛은 기가 막혔다. 500cc짜리 한 잔을 단번에 들이켠 뒤 식도를 긁는 시원함을 즐겼다.
“······걱정 많이 했어. 나쁜 새끼.”
“그게 걱정한 사람 표정이야? 나는 울고불고할 줄 알았더니.”
“너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한동안 실없는 대화나 주고받다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가 일하는 그 회사 뭐야? 뭔 괴물을 싣고 다녀. 맨 인 블랙이야?”
“이계 동물 연구하고 전시하는 회사. 우리나라에 꽤 많아. 아시아에 있는 차원문 두 개 중 하나가 서울에 열렸거든.”
“OWIC인가? 그쪽 연구원 만났었는데 비슷한 거야?”
“거기는 정부 산하 기업이나 마찬가지야. 거의 공기업. 나는 그냥 중소기업···. 에휴. 그나마도 이제 잘릴 거 같네.”
“잘린다니?”
“사내정치가 너무 심했어. 나 이번에 이계 탐사 배정받았다?”
이계 안으로 들어간다고?
“독기는?”
“이계 독기에 죽을 정도까진 아닌 사람은 꽤 있어. 좀 부작용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활동하는 데에 지장이 없다면 다 허가돼. 검사기도 진작에 개발됐고.”
당장 독기 문제가 해결 되더라도, OWIC측 연구원 말대로라면 이계는 아직 인간에게 위험했다. 돈에 미친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달려들지 못할 정도라면 말 다 한 거니까.
“요즘 이계 관련 회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퇴사 유도 수법이야. 뒈지든가, 퇴사하든가 결정하라는 거지. 동쪽 버뮤다 숲 외곽 조사인데···. 으.”
“······.”
“일 얘기 그만하자. 분위기 처진다.”
그렇게 말하며 차소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2년이 지난 세상의 규칙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사회생활의 고뇌는 그대로, 아니 오히려 더 기묘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발전된 셈이었다.
“나는 네 이야기가 더 궁금해. 이계에서 2년 동안 살아남았다고?”
“최소 6년이야. 그 두 배, 세 배여도 이상할 거 없고. 왜 지구에서는 2년밖에 안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거기서 뭐 했어?”
강선후는 가지고 온 가방에서 커다랗고 두꺼운 공책을 세 권 꺼냈다.
“하나당 대충 칠백 페이지.”
“이게 뭔데?”
“이계에서 살면서 쓰던 일지.”
턱.
그 말을 듣자마자 녀석이 한 권을 낚아채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처음 부분은 이계 도시에서 지내던 동안 쓴 부분이었다. 거의 이계의 언어를 공부하는 학습 노트의 비중도 컸다. 그게 룬 언어라는 건 이번에 알았지만.
두 번째부터는 본격적으로 야인의 생활이 담겨 있었다.
이계의 동식물에 대한 지식, 생존에 필요한 지식이 대부분이었다.
“이계에서 얻은 물건이야?”
“아니. 끌려가고 보니까 가방 속에 있었어.”
“700페이지 세 권이? 대충 생각해서 6㎏인데? 네가 항상 하던 말 있잖아.”
그램 이즈 킬로그램.
탐험같이 야외로 나도는 사람들에게 퍼져있는 문장이다. 쉽게 말하면 ‘그램 단위라고 무시하지 말고 무조건 줄여라. 들고 다니면 킬로그램처럼 느껴짐. 존내 무거움 ㅇㅇ’이라는 의미 정도가 된다.
“그런 네가 저런 두껍고 무거운 공책을 얼떨결에 챙겨갔다고?”
사실 이계에 있는 동안 나도 품었던 의문이었다. 당장 하루살이 처지에서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공책 마지막 페이지를 채운 순간,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어.”
“그럼 이게···.”
내가 챙긴 물건이 아니라, 날 이계로 보낸 물건일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아직까진 가정일 뿐이었다. 어쨌거나 돌아와 보니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 있었고 이 공책을 가득 채운 정보는···.
“···대박이야. 그리고 아무리 봐도··· 2년 치가 아닌데.”
그래. 저 감상대로 어마어마한 재산인 셈이었다. 차소희는 대충 쭉 훑더니, 다시 1권으로 돌아갔다.
“이거 무슨 언어야? 이계에서 배운 거야?”
“나도 몰랐는데···. 룬 뭐시기인 모양이던데.”
“이게 룬 언어라고? 문자 형태로는 처음 봐. 아니, 이계에서 룬 언어를 배웠어?”
“배운 게 아니라 어떻게든 배워보려고 한 거지. 내가 도착했던 도시에는 모든 사람이 이 언어를 썼거든. 표준어인 줄 알았는데.”
아침의 본 유튜브에서도 그랬다. 이계에서도 잘 사용하지 않는 특별한 언어라고.
“···이거 어디 가서 말하지 마. 밤에 맨 인 블랙들이 쳐들어와서 뺏어갈지도 모르니까.”
“이게 그렇게 중요해?”
“룬 언어는 이계 마법사들이 사용한다고 추측하고 있어. 마법의 비밀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뭐 그런 이야기들을 하던데.”
“아니야?”
“헛소리지. 음이온 옥돌 매트도 아니고···. 이계발 유사과학이야. 언어에 힘이 있다는 게 말이 돼? 막 불이여! 하면 불이 나오고 그르나? 애들 소꿉놀이도 아니고.”
“······.”
“그거 연구하는 기관에 정부가 예산도 할당했어.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니까?”
“음, 그래? 아무도 성공한 사람이 없어?”
“없어. 간단한 논리잖아. 씨르! 씨르! 씨르! 모스! 모스! 안됨. 끝. 수고!”
진지한 척 넘어가려고 했는데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차소희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다시금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첫 1년 동안 악착같이 정리한 모든 단어는 저 일지의 첫 권에 있었다.
“어쨌든, 이게 다 룬 언어라는 거지? 그리고 뒤쪽 내용은··· 이계에 관련된 정보들인 거고?”
“그렇지. 직접 겪은 것들이야.”
“이 많은 걸 직접······.”
차소희는 책을 덮으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녀석은 정신이 꽃밭으로 떠나거나 계략을 짤 때마다 눈동자를 저런 식으로 굴리곤 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전혀 못 하는 타입이었지.
“선후야?”
녀석이 저렇게 살가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이유는 뻔했다.
“그, 나 이번에 이계 탐사 혹시 도와줄······.”
“딜.”
“야! 친구가 지금 모가지가 댕겅할 처지인데 딜? 디일? 극딜 처맞고 싶음?”
“치킨 맛있다 야.”
“···우선 여기는 내가 살게.”
억양만 들어도 뻔하다. 게다가 차소희는 도의적인 문제에 예민한 타입이었다. 멋쩍어서 말은 저렇게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엄청나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죽어도 맨입으로 해달라는 소리는 못 하는 녀석이었지.
“조사 완료 인센티브가 삼백이야. 그거 너 줄게.”
“오.”
“거기에 조사하면 이것저것 가지고 올 수 있겠지?”
“그거 마음대로 챙겨도 돼?”
“안 돼. 근데 이계에는 CCTV가 없잖아?”
“적당히 챙긴다는 거네.”
“다 그래. 회사에서도 알고 눈감아주는 거고. 내 몫 다 너 해. 그게 대충 오십에서, 운 좋으면 백?”
“그게 다야?”
“···술자리 프리패스 1회 쿠폰.”
“장난?”
“야··· 좀 봐주라 진짜. 다 터는 거야.”
당연히 농담이었다. 그곳이 얼마나 위험할지는 모르지만, 민간인 조사가 허가되는 정도라면 나로서는 마실 정도나 다름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위험해도, 이계 야생은 행동 원칙만 고수하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사람들이 그걸 모르니 겁을 먹는 것뿐.
“계획이나 들어볼까? 들어보고 결정하자. 난 아직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녀석이 가방 속에서 태블릿PC를 꺼냈다. 일 얘기를 외면하던 술자리는 어느새 업무 미팅이 되어가고 있었다.
“출발은 다다음 주 월요일. 일정은 사흘 예상. 위치는··· 잠깐만, 회사에서 준 지도가 있거든?”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모든 내용을 보고 들을수록···
“옆에 주의사항하고 사전 보고서 약식본 있으니까 확인해봐.”
내 생각은 전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거 아닌데.”
“응?”
지금 시대의 이계 이해도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형편없었다.
“완전히 착각하고 있어. 너네 회사 대체 뭘 알고 있는 거야?”
생존을 위해서 항상 머릿속에 담아뒀었던, 지금은 잠시 무의식의 책장에 넣어뒀던 이계 지식을 다시 끄집어내었다.
────────────────────────────────────
ep2. 귀환하자마자 돌아갈 줄이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