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1
31화 ep12. 선지자요? 내가요? 왜요? (2)
“광인!”
“광인이시여!”
사람들이 호들갑 떠는 걸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대자연을 상대로는 당당한 사람이지만, 사람을 다루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관심이 없는데 능숙할 리도 없다.
내가 당황하는 동안, 오히려 리리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성좌의 계시에 충실하게 따르기로 약조한 여러분들에게 제가 광인을 대신하여 치하를 표합니다.”
“오오—!”
리리는 나보다 조금 더 이계인들을 다룰 줄 아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리리는 이계인이고, 귀족이기까지 했으니까.
“그대들의 충심을 시험할 기회가 곧 있을 겁니다. 그대들은 선지자이신 광인을 실망하게 하지 않으리라 맹세하셨습니까?”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치리라 맹세합니다.”
마치 미리 준비한 예식을 진행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게 이계인들의 문화라는 건가.
리리 덕분에 한숨 돌린 나는 눈앞에 놓인 음식에 이제야 손을 뻗을 여유가 생겼다.
시간이 지나고 분위기가 차분해질 무렵, 어린아이 셋이 사당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금빛 비단에 쌓여 있는 공이 들려 있었다.
연회 중에 받은 공물들도 꽤 값어치 있어 보이는 것들이었으나, 눈앞에 있는 건 차원이 달라 보였다.
사람 머리보다 조금 더 큰 원형 물건.
생각보다 묵직해서 놀랄 정도였다.
“이게 그 성물이란 거죠?”
“천공의 부유자께서 우리 마을에 내리신 물건입니다. 광인께 전해주라고 했기에, 전혀 건들지 않고 마을의 가장 안전한 곳에서 보관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의 눈치를 살짝 보니, 지금 풀어도 된다는 듯한 사인을 보내길래 바로 포장을 풀어보았다.
그곳에는.
“······?”
돌덩이가 하나 들어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냥 돌덩이가 아니었다. 딱 봐도 금속이 많이 함유된 매끈매끈한 돌이었는데, 나는 이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운석···.”
탐험을 하다 보면 아주 희소하게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 지구에서 탐험가로 있던 시절에는 이런 걸 가끔 주워서 용돈벌이를 하고는 했었지.
나는 사제를 바라보았다. 사제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성좌께서 손수 내려주신 가호. 성물은 온전히 선택받은 자만이 그 힘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광인이시여, 그대는 선지자시니 성좌의 선택을 받은 분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계시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했으니···!”
사제의 목소리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사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 깨달았다.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은 거구나.
물론 이 사람들이 내가 선지자라는 걸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선택받은 뭐시기가 아니라는 게 드러나면 저 기대는 거대한 실망으로 바뀌겠지.
첫 만남 때 내밀었던 창끝이 다시금 날 향하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니, 확실히 그럴 게 분명했다. 이런 대접을 받았는데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배신감을 꽤나 느낄 테니까.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리리에게 슬쩍 눈을 돌렸는데, 의외로 얘는 매우 차분한 표정이었다.
얘도 나한테 기대를 하고 있나?
“······.”
별수 없다. 시간을 끄느니 뭐라도 하는 게 덜 이상하다.
나는 무작정 운석에다가 손을 얹어봤다. 안 되면 부수기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맨손으로 운석을 부술 수 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그렇게 생각했는데.
—빠각.
내가 손을 얹음과 동시에, 운석은 반으로 갈라졌다.
“오오···!”
“광인이시여!”
“역시, 성물의 자격을 가지신 분!”
“······.”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고?
이쯤에서 인정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이 성좌라고 부르는 윌슨은 내가 아는 윌슨이 맞고, 그냥 개꿈을 꿔서 미신을 섬기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다시 내게 절을 했다. 내가 성좌가 계시한 사람이 맞다는 최종 증명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으니.
그리고 나 역시 그 안에 들어있는 걸 보고 나름대로 놀라고 있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건 황금색 회중시계였다.
운석 내부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내 빈약한 묘사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회중시계.
표면에는 어떤 도시의 풍경이 그려져 있었는데.
“···황금의 왕국.”
나는 그게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계에서 살던 시절, 룬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매일 밤을 버티고는 했으니까.
시계를 들어 올렸다. 좌측에는 어떤 버튼이 하나 달려 있었는데.
딸깍—.
눌러보니 뚜껑이 열렸고, 이 시점에서 이게 시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나침반이었다. 검은색 바늘이 안쪽에 달려 있었고, 내가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금색 지침이 스프링 튕겨지듯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홉 신이시여.”
오히려 놀라는 건 리리였다.
“이게 뭔지 알아?”
“···이건 이정표야.”
“어딜 가리키는 이정표?”
“······황금의 왕국을 위한 이정표.”
리리의 설명은 간단했다.
이건 황금의 왕국을 그대로 가리키는 물건이 아니다.
황금의 왕국으로 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가리키는 물건.
“나도 여기까지밖에 몰라.”
리리가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은 충분했다.
내가 우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면 되는 거였으니까.
시계의 뒤편에는 열두 개의 홈이 파여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끼우라고 만들어놓은 곳 같았다.
“열두 개라.”
지배자도 열둘이라고 했잖아?
이 숫자가 일치하는 게 우연일까?
“······.”
뚜껑을 닫고 안주머니에 꼼꼼하게 챙겨 넣어 지퍼를 잠갔다.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되는 물건을 얻은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보물을 얻은 느낌.
***
그날 연회는 그렇게 파했다. 보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만에 주파한 터라 리리도, 나도 많이 피곤했다.
사제는 우리에게 기꺼이 방을 내어줬고, 리리는 들어가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다. 나도 짐을 정리한 뒤 잠깐 잠을 청했다.
그리고 돌아온 새벽. 나 혼자만 일어났다.
“세 시간 정도 잤나···.”
시계를 볼 방법은 없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손에 쥐고 있는 ‘콜드 프로스트’를 내려다보았다.
물론 검날은 가죽 검집에 꼼꼼하게 쌓여 있었다.
이렇게 쥐기만 해도 내 몸의 회복력이 가속화된다. 조금밖에 자지 않았는데도 코알라 수면을 취한 것처럼 몸이 개운했다.
바닥에서 침낭 속에 파묻혀 자고 있는 리리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진짜 많이 피곤한 모양이지.
방이 하나밖에 없다길래 리리한테 괜찮냐고 물었더니, ‘원래 영혼 연결을 한 상대와는 같은 방을 쓰는 게 당연하다.’라고 무심코 말하더니 갑자기 얼굴이 벌게지면서 소리를 꽥 질렀었지.
“귀족인데, 잠자리 안 가리는 건 진짜 신기하네.”
원래 이계 귀족은 지구 쪽 편견이랑은 좀 다른가? 모를 일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오늘 베이스캠프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급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복귀에는 열흘 정도 걸릴 테니까.
그렇다면 이 마을에 있을 때 최대한 주변을 정찰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다.
우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연금술 재료를 모으는 일이었다. 오는 길의 산속에서 분명 습지 비스무리한 걸 발견했는데, 그곳에는 분명 발광 버섯이 있을 게 분명했다.
모든 연금술의 근간이 되는 꽃, ‘꿈의 악마’는 이미 내가 가지고 있다. 연금술 재료를 모아서 약물을 만들어 들고 다니는 건 탐험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잠깐 산에 갔다 올게.」
종이에 그렇게 적고는 리리가 깨지 않게 방에서 나왔다.
산에 들린 뒤, 마을로 복귀했을 때는 아침이 지나 한창 하늘이 밝아질 때였다. 예상대로 발광 버섯을 몇 송이 발견했다.
“키울 수 있으려나?”
채취하는 것도 좋지만, 양식에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다.
연금술사의 지하실에는 여러 재료가 자생하는 텃밭이 있는 게 당연하니까.
그렇게 마을 중앙의 사당까지 가는데,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 자리에 서서 머리를 조아리는 풍경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아무렇지 못 본 척 외면하면서 지나갔다.
사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제를 만났다.
밤에 봤을 때는 몰랐는데, 주름진 얼굴에는 꽤 잘생김이 묻어나왔다. 엘프라서 나이를 먹어도 이 정도란 말이지.
엘프가 주름이 생기려면 몇 살 먹어야 하려나.
이런저런 사소한 궁금증을 가지며 지나쳤는데, 사제가 나를 불렀다.
“광인이시여. 당신의 시종에게 소식은 들었으나, 조금은 걱정했습니다.”
“···시종?”
리리를 말하는 건가?
“떠나시려거든 말씀해주십시오. 마지막까지 예를 표하고 싶습니다.”
“네, 뭐, 오늘 오후쯤 해서 출발하려고요.”
사제는 머리를 조아렸다.
“실례가 아니라면, 어딜 갔다 오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나는 작은 가죽 주머니에 넣어둔 버섯을 하나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필요했었거든요. 오는 길에 자생지를 조금 발견한 거 같아서 확인 좀 하려고 갔다 왔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사제의 표정이 이상했다. 어제의 소동이 지나가고 좀 진정했나 싶었는데, 지금 와서야 내가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제가 못난 놈입니다.”
“···네?”
“광인께서 필요하신 게 뭔지도 헤아리지 못하고, 괜한 공물이나 준비한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나를 ‘광인’이라고 부르는 그 호칭이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나는 저 눈빛에서 광기를 보았다.
“···다들 집합!”
“아니, 잠깐······.”
“뭣들 하느냐!! 광인께서 발광 버섯을 원하신다! 다들! 괭이와 낫을 들고 중앙으로 집합하라!”
“잠깐 내 말 좀······.”
“전투 채집 작전에 돌입한다!”
“와아아—!”
***
“광인께서 근처에 습지가 있는지 궁금해하신다! 숲지기 퍼거슨을······.”
“걔는 두 달 전에 죽었는데요. 그, 쇳덩이들한테······.”
“그래, 그렇지, 숲에 제일 잘 아는 자를 대령하라!”
“대령하겠습니다!”
···
“광인께서 책상과 의자를 원하신다! 당장 광인의 체격에 걸맞은 책상을 만들······.”
“아니, 그럴 필욘 없어요!”
“하지 말라 하신다!”
“······.”
미칠 거 같았다.
다짜고짜 충성을 바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수북하게 쌓인 발광 버섯, 그리고 이름은 모르지만 본 적도 있고, 쓰임새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여러 연금술 소재들을 질린 듯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에게 좋은 손발이 생겼네.”
리리의 말이 맞았다.
백 명이 넘어가는 마을이 내게 충성을 바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하, 이거 다 어떻게 들고 가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리리의 가방과 내 가방을 가득 채워도 반도 못 챙긴다.
애초에 이렇게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으니, 사실 다 챙길 필요는 없······.
“광인께서 짐꾼을 원하신다! 당장 체력 시험을 준비하라! 가장 우수한 청년 둘을······.”
“됐어요!”
“관두라신다!”
무슨 말을 못 하겠네.
거의 시종 급으로 항상 옆에서 내 말을 귀담아듣는 사제가 이제는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반만 챙겨가야지. 마을 사람들이 바친 공물과 연금술 재료들을 가방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하는데.
“광인을 몰래 염탐하는 반동분자를 잡아 왔습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길래 고개를 돌려보았다.
“뭐! 광인을 염탐해! 이런 천인공노할! 아홉 신이 능히 저주를 내릴 놈을 봤나!”
“쳐 죽여라!”
“돌로 쳐 죽여라!”
“태워라!”
“불태워라!”
새벽까지만 해도 고즈넉한 마을의 풍경은 무슨 광신도의 집회로 변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를 염탐하고 있었다고?
“어··· 데리고 와주실래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바가 있었다.
피투성이의 사람이 팔다리가 묶인 채, 나무 장대에 매달려 내 앞에 ‘대령’ 되었다.
“······.”
이계인들이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저 머리스타일, 익숙한 투블럭컷을 보자마자 이 사람이 누군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살려주십쇼!”
한국어까지 쓰네.
“오랑캐의 언어! 죽여라! 때려죽여라!”
“불태워라!”
“태워 죽여라!”
“사, 살려주세요! 강선후 님! 살려주십시오!”
OWIC 요원이었다.
그러게, 적당히 따라다니라고 내가 경고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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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선지자요? 내가요? 왜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