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3
33화 ep13. 참을 인 세 번이면 도리는 지켰다. (1)
***
OWIC의 전략기획본부 정보 2팀 주간 회의 시간.
이후 업무에 대한 대략적인 브리핑이 끝난 뒤, 회의 막간을 이용한 특별 발표가 있었다.
특별 발표라 함은 원래 계획되지 않은 내용이지만 정보팀 차원에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조사 결과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최근 특별 발표는 대부분 강선후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선후는 OWIC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했으며, 그럼에도 그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매번 파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팀장은 경직된 회의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가볍게 말을 던졌다.
“웃기지 않냐? 우리 회사는 정부 부서랑도 기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는데. 무슨 인권 단체 같은 게 아니라 단 한 명한테 끌려다니다니.”
속된 말로 가오가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OWIC은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고, 그렇기에 대외적으로 보이는 권위는 중요한 사항이었다. 대중에게 있어 위엄은 이론보단 감성의 영역이었으니까.
하지만 강선후라는 개인이 지금 그 권위를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중요한 건, 정작 당사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는 점.
OWIC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 OWIC이 흔들린다.
이건 차라리 희극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해당 조사를 담당한 직원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이라 따로 보고서는 작성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특별 보고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었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 해봐. 들어보고 판단해야지.”
팀장의 지시에 직원은 미리 준비해둔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OWIC에서 이계 물품을 옮길 때 쓰는 특수한 가방이었다.
“강선후가 남쪽으로 탐사를 떠났었다는 사실은 모두 아실 겁니다.”
“···그랬지.”
이미 보고를 받은 사항.
이 일은 OWIC에서 중대하게 다뤄지고 있는 사항이었다. 남쪽 마을의 이계인들이 통째로 강선후를 섬기는 정황이 발견되었으니.
그 뿐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분석 1차 결과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 마을 거주자들이 말한 ‘선지자’가 강선후였던 모양이다.”
팀장의 말에 팀원들은 생각에 잠겼다.
이계에서 발생한 토속 신앙.
그 숭배 대상이 지구인, 게다가 이계에서 2년 동안 살다 온 강선후라니.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망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건 도무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보고자는 지금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오늘 오전, 정지훈 주임님의 연락처로 강선후에게 호출이 왔습니다. 탐험에서 복귀한 뒤 바로 연락을 한 정황이라 판단됩니다.”
“왜 연락했다는데?”
“강선후는 이번 탐사에서 획득한 물건들의 감정을 회사에 의뢰했습니다. 제가 파견 나갔었는데······.”
파견 직원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가방을 열어, 조심스럽게 물건을 하나씩 꺼냈다.
“도무지 제 안목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는 물건들이라, 다시 돌려준다고 약속드린 후 잠시 가지고 왔습니다. 이게 그 물건들입니다.”
물건이 하나둘 나열될수록,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 한숨을 쉬거나, 자세를 고쳐앉는 등 반응했다.
제사용 칼, 고대의 갑옷 조각, 그리고 무수히 많은 동상.
“어디서 얻어왔대?”
“출처는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나가다 주웠다.’ 정도였습니다.”
모두가 이게 보통의 가치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이계 물건들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팀장만이 구체적인 첨언을 할 수 있었다.
“···우선 정밀조사를 해보지 않으면 잘 몰라. 개인 감정사 중에는 사짜들도 많으니, 우리 회사에 소속된 감정사에게 의뢰하는 게 제일 좋긴 하지.”
“팀장님에게는 어떻게 보이십니까?”
“······.”
통합정보실의 팀장은 대부분 책상물림이 아닌 현장의 베테랑 출신이었다. 그들은 각종 작전에 참여하며 얻은 현장 전리품을 포상으로 간혹 수여받았고, 이계에서 나오는 물건들의 가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재질에 대해서 알아야겠지만, 유적에서 발견했다는 전제하에 이 제사용 검은.”
집어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는 팀장.
“육천···.”
“헉.”
“부터 시작. 경매에 달릴 테니 그 뒤로는 약간 운일 거야. 누구 취향에 맞냐가 제일 중요할 테니까. 그리고.”
투구와 갑옷 조각을 면밀히 바라보는 팀장. 그러다가 조금은 널찍한 갑옷의 뒤판을 바라보았다.
“이건 상태가 좋네. 이거 하나만 몇백은 받을 수도······.”
그렇게 뒤로 돌려본 정보 2팀장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 커지고 있었다.
직원들은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새끼야.”
팀장은 그 물건을, 마치 목숨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거 뒤에 룬 적혀있잖아! 그것도 온전한 형태로! 이걸 그냥 가방 속에 쳐넣고 와? 실장님에게 연락해! 강선후한테도 연락 준비하고.”
“알겠습니다!”
***
룬이 적혀있는 물건은 그 가치가 어떻든 등급외 취급받았다.
룬을 입으로 읊는 건 생각보다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이계의 정식 마법사는 아니더라도, 마법사를 흉내 내는 이들을 통해서 쉽게 룬 언어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쓰여 있는 건 달랐다. 룬 문장은 OWIC을 포함한 이계의 모든 회사에서 특별품으로 취급되었다.
진서연은 그렇게 설명했다.
그녀는 지금 강선후의 사무소 마당에서, 강선후가 건네준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당신들 중에 그 룬이란 걸로 마법을 써본 사람이 있나요?”
강선후가 물었다. 진서연은 오물거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죠. 사실 룬이란 거, 유사과학이랑 비슷할지도 몰라요. 실체를 정확히 몰라도 사람들의 환상을 자극해서 이목의 집중을 먼저 받는 거죠. 근데 사실 몰라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상부에서 이계의 마법사를 섭외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강선후는 일지를 읽다 말고 진서연을 바라보았다.
“그쪽도 그쪽 회사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으세요?”
“기밀등급별로 접근 권한이 달라요. 제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을걸요? 저는 카테고리 두 개의 3등급까지만 열람할 수 있거든요.”
“···진짜 음침한 회사네.”
“우리 회사, 생각보다 커요. 저는 그래도 열람을 많이 하는 직원에 속해요. 연구원이니까.”
강선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일지를 바라보았다.
진서연은 다 먹은 도시락 쓰레기를 봉투에 넣으며 그런 강선후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꺼내 유튜브를 켰다.
오프라인 전용 영상에 저장된 재생 목록.
지금은 방치하고 있는 강선후의 과거 채널.
그걸 몰래 튼 채 눈앞의 강선후와 비교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자신이 팬이었던 사람을 이렇게 눈앞에서 만나다니.
게다가, 그는 지금 이계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있기까지 했다. 회사 내에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했으나 진서연은 그 누구보다 열렬한 강선후의 지지자였다.
진서연은 그가 활약하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어떻게든, 그를 밀어주리라. 구체적인 방법은 나중에 생각해보고.
“···하아······.”
이상함을 느낀 강선후가 조금은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진서연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때, 누군가 강선후를 찾아왔다.
“선후 님. 남쪽 탐사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강선후도, 진서연도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전략기획본부 통합분석실 정보 1팀의 주임. 정지훈.
“네. 운이 좋았죠.”
그러고는 다시 일지로 시선을 옮기는 강선후. 대체 저게 뭐길래 저렇게 열심히 읽는 걸까? 진서연은 문뜩 그렇게 생각하다가, 아직도 자신이 있는지도 모르는 정지훈을 불렀다.
“우리 지훈이 고생하네.”
“어? 누님. 왜 여기 계십니까?”
“나 휴가.”
“오···. 웬일로 반납 안 하셨습니까? 누님 휴가 반납하는 거로 유명하신데.”
“나도 사람이야. 쉬어야지.”
강선후가 그녀의 마음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정지훈은 알 길이 없었다.
“음··· 우선 저 일부터 해도 되겠습니까?”
“화이팅.”
정지훈은 다시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셨어요? 물건 돌려주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네, 전문 감정사에게 물건을 맡기신 거로 보고 받았습니다. 아무런 손상 없이, 최대한 정확한 감정 결과를 약속드리겠습니다.”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이 많으시네. 중간에 끼어서 여기 불려가고 저기 불려가고.”
“하하,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오늘 선후 씨 일로 위에서 엄청 깨지고 오는 길입니다.”
“저 때문에 위에서 깨졌다고요?”
어쩌다 보니 잡담으로 이어지는 대화 분위기였지만, 정지훈은 그게 싫지 않았다. 어차피 강선후는 사무적인 분위기로 접근하면 더욱 거리감을 느끼는 타입. 이런 식도 나쁘지 않겠지.
“제가 오늘 실장님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십니까? ‘강선후의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많은 기회를 잃었다.’라고 타박하시더군요. 보아하니 실장님도 본부장님한테 제대로 털린 모양인데···.”
“너희 실장이 그랬다고?”
진서연이 픽- 하고 조소를 취했다.
“내가 그렇게 떠들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병신 취급이나 하더니···. 아니, 그리고 너도 나도 몇 번이나 진작에 이야기했는데, 왜 이제 와서 너한테 제대로 안 했다고 지랄이래? 판단 잘못한 건 지들 아냐?”
오히려 본인이 더 흥분하는 진서연의 모습에 정지훈은 살짝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님, 조금은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괜찮아. 이 정도 뒷담은 봐주더라고? 위에서도 아는 거지.”
정지훈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지난번 버뮤다 숲 때 강선후 님이 보여준 모습 이후로, 회사가 좀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남쪽에서도 선지자 취급을 받으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역시 회사는 다 아네요.”
“숨기지 않는 쪽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진지하게 강선후 님과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거든요.”
“당신이 아니라 당신 회사가 그런 거겠죠?”
“맞습니다.”
정지훈은 부정하지 않았다. 강선후를 기만하는 전술을 이제는 아예 버리기로, 팀장을 설득해서 합의를 봤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감정을 맡기신 물건 중 하나에 룬 문장이 적혀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강선후는 여전히 일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한두 푼 받고 팔 생각은 없······.”
“여기서 협상만 된다면, 이억 바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판매가 아니라 6개월 대여를 조건으로.”
강선후는 일지에서 눈을 떼고 정지훈을 바라보았다.
“···일시불 이억?”
“그뿐만이 아닙니다. 강선후 님은 지금 남쪽으로 조금 더 탐사를 진행할 생각이라고 여겨집니다. 맞습니까?”
“그렇죠?”
“우리끼리라서 하는 말입니다만, 지금 회사는 강선후 님을 대하는 태도를 많이 바꾸었습니다. 그 탐사에 대한 정보를 회사에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
강선후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많이 놀랐다.
OWIC에서 이렇게 단번에 태도를 바꿀 줄은 몰랐으니까.
“OWIC 전체의 의견이라는 말씀은 못 드립니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통합분석실의 결정입니다만, 그것만으로도 강선후 님께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강선후는 이 시점에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거기에 적혀있는 룬 언어는 자신의 머릿속에 전부 들어가 있었기에, 그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일 뿐이었다.
게다가.
‘···인간들은 어차피 몸 비틀어도 룬 언어는 절대 못쓴다며.’
룬의 희소가치가 떨어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인간은 절대로 못 쓴다니까. 아홉 신 어쩌구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절대로 못 쓴다는 것.
그러니까 강선후 입장에서는 지금 쓰레기를 이억 주고 빌린다는 말을 듣고 있는 셈이었다.
솔직히 처리하기 귀찮아서 가지고 가도 되는데.
거절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하나를 더 끌어내 보기로 했다.
“남쪽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인데요. 지금 서울에서 하운드 중 하나가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면서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정지훈과 진서연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는 건가? 강선후는 그 분위기를 바로 읽어냈다.
“그거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면······?”
“협상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갑작스럽게 악수를 청하고는 자리에서 뜨는 정지훈.
강선후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서연은 그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정지훈이 충분히 떨어질 때까지.
“···전략기획본부 요원은 이계 파견 시 녹화장치를 반드시 소지하고 있어요.”
“아, 맞네. 그럼 서연 씨는요?”
“저는 휴가 중이잖아요?”
이제야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회사에 알려지면 안 되는 이야기인가보구나.
진서연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입을 열었다.
“서지아. 아세요? 한동안 선후 씨 귀찮게 굴었던 하운드인데.”
“알죠. 얼굴도 봤는데.”
“본론부터 말하면, 보물은 서지아가 가지고 있어요.”
“······.”
“서지아의 본거지는 아무도 몰라요. 의외로 굉장히 폐쇄적인 성격이라서······. 서지아가 여기저기를 숨어다닐 수 있는 이유가 그 보물에 있다는 소문도 돌고요.”
이 시점에서 강선후는 생각했다.
첫 번째는 진서연과 서지아, 그리고 정지훈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다는 예측.
두 번째는 서지아의 옆구리에 몰래 새긴 마르크marlk 룬 문장이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 어디에 있든 추적하기 위해서 새긴 문장.
그 단어가 새겨진 물건은, 어디에 있든 마법을 이용해서 추적할 수 있다. 예전에는 길을 찾을 때 나침반 대용으로 많이 썼던 룬 문자였지.
“···생각보다 일이 쉬워질 수도 있겠는데.”
“네?”
“아니에요. 계속 말씀해보세요.”
그 뒤로 진서연이 무어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강선후는 서지아 본거지를 추적할 계획부터 새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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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참을 인 세 번이면 도리는 지켰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