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
4화
“완전히 착각하고 있다고?”
차소희는 애매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다. 나는 지금 차소희가 건넨 태블릿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으니까.
보고서에는 많은 내용이 있었다. 경유지를 공략하는 법, 목적지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챙겨야 할 물건과 필요한 지식.
꽤 많은 양이었고, 겉보기에는 알찬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 모든 정보가 허무맹랑하게만 보였다.
“차원문이 열리고 얼마나 됐다고?”
“정확히는 2년 반 정도, 반년은 차원문을 파악하고 안정화하고, 이계 쪽에 베이스캠프를 만드는 데 썼어. 그 뒤로 이제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으니까··· 이계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한 건 대충 2년이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고 있단 말이야?”
“······.”
내 말에 차소희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차라리 당황하고 있다는 편이 옳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정보를 믿고 가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쪽이 낫겠네. 아무것도 모르면 차라리 조심하기라도 하지. 이거 믿고 갔다가는 비명횡사하기 딱 좋아.”
“그···정도야?”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계, 그 미지의 세계를 알아본 기한이 2년.
미지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으나,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던 거다.
사실 처음에는 크게 도와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친구여도 회사 사정에 일일이 관여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그래서 돈을 제시했을 때, 차라리 거기에 더 끌렸던 거다. 몇 달 아무 생각 없이 쉬려면 그만한 돈이 필요했고, 지금의 내 통장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니.
“다다음주라고 했지?”
“응.”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아. 술이나 마시면서 섣부르게 정할 건 아닌 거 같네.”
“응······.”
차소희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안 도와준다는 말이 아니니까 걱정 마. 아니, 애초에 목표 자체는 어려운 게 전혀 아니니까.”
어쩌면 나한테는 너무 쉬운 일일 수도 있었다.
삼 백이라는 돈을 이렇게 쉽게 받는 게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응, 고마워.”
차소희의 말투에서 이전의 그 장난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네가 도와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거 같네.”
***
오랜만에 마시는 술은 잘 받지 않았다. 이전에도 소주 한 병 간신히 마시는 알쓰였긴 한데···. 알코올이란 게 뭔지, 내 간덩이가 아예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고, 머리야.”
맥주 몇 잔 마시고 머리 부여잡는 모습이 제법 쪽팔렸다. 어쨌거나, 방 두 개에 작은 거실 하나짜리 내 집에서는 볼 사람도 없었다. 냉장고를 열자 퀴퀴한 냄새가 풍겨왔다.
“바꿔야겠네.”
오래된 냉장고. 음식도 다 상했을 줄 알았는데, 누가 관리를 해준건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낡긴 했어도 여기는 내 자가 주택이다. 누가 들어올 리가 없는데?
“음···.”
사람이 실종되었으니, 수사한다고 경찰이 왔다 갔다 했을 수는 있지. 다른 절차를 내가 아는 것도 아니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중요한 건, 조금씩 사회인의 마인드가 돌아오기 시작하자 돈 들어갈 구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밀려 있는 공과금은··· 우선 정지되어 있었네. 이건 다행이고.”
당장 냉장고도 비실거리고, 옷장에 있는 옷은 대충 입다가 다 버려야 할 거 같았다. 곰팡내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의 내 몸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어깨가 너무 끼어서 입기가 힘들었다.
거울 앞에 서니 흉터로 뒤덮인 몸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내 모습을 자세히 보는 것도 조난된 후 처음 아닌가?
“······.”
뭔가 기분이 복잡해져서 대충 티셔츠를 입고 낡은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정리할 게 조금 있었지?
“돈이라.”
마트에 들러보니 딱히 예전보다 물가가 많이 오른 것도 아니었다.
삼백이라는 돈은 내가 생각하는 그 정도가 맞다는 거다. 그렇다면 어디 개 이름으로 취급할 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일방적으로 차소희를 도와주는 건 아니었다. 차소희가 내게 제시한 보상안은 충분히 나에게도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띡띡띡띡띡-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도어락 건전지도 누가 갈아놨었네.
내 집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지금으로서는 한 명뿐이니 걱정할 건 없었다.
“남의 집에 그렇게 함부로 들어오는 거 아니다.”
“집에 먹을 건 있으세요? 핸드폰은 왜 꺼두고 계세요? 옷은 입고 있으셔서 다행이네요.”
차소희가 봉투를 들어 보였다. 대충 식료품, 냉동이나 레토르트 식품, 그리고 간식거리를 좀 사 온 것 같았다.
“너 통장도 잠겨 있을 거고···. 생각해보니까 뭔가 곤란할 거 같아서 좀 사 왔어.”
“통장 오늘 재개통할 거야. 그리고, 혹시 평소에도 자주 왔었냐?”
“적당히 청소만 했어. 건전지하고 형광등 갈고, 또··· 냉장고 비우고······.”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 퍽 멋쩍은 사이라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대낮인데 회사는? 이렇게 워라밸이 좋은 곳이었어?”
“이계 탐사 배정받은 후엔 거의 휴가나 다름없는 셈이거든. 준비 기간이라 이것저것 자유롭게 준비하라는 뜻이야. 물론 사비로. 시발··· 프라이팬 쓴다?”
엔간한 곳인가 보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일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할 때, 차소희가 달그락거리면서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이계 탐사 안 도와줘도 될 거 같아.”
“어? 왜. 갑자기?”
“오늘 회사에서 몰래 알아봤는데, 허가 없이 외부 도움받으면 안 된대.”
“몰래 따라가면 되는 거 아냐?”
“회사 소속은 차원문 너머에서 한 행동이 전부 기록돼. 누구랑 동행하는지, 누가 언제 어디로 출발했는지. 아무리 철저하게 움직여도 꼬리 잡힐 거야.”
“그럼 어떻게 하려고?”
“패스파인더라고 들어 봤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셰르파랑 비슷한 거야. 쉽게 말하면 여행 가이드인데 활동지가 이계인 사람들. 요즘 장사 잘된다더라.”
“···그런 직업이 있다고?”
“엉. 그쪽을 알아보려고. 그건 규정 위반도 아니니깐.”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않다. 아니, 충분히 있을 법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제공한 정보도 그따위인데, 패스파인더라는 사람들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도움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고마워.”
같이 갈 수는 없다 이건가. 차소희가 달그락거리는 동안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반찬 몇 개 해놨고, 쌀 일 킬로짜리 사뒀으니까 한동안은 대충 해 먹어. 통장 빨리 뚫고. 간다?”
“가?”
“준비는 해야지. 네가 해준 말 생각해서 따로 준비해보려고. 그리고 핸드폰 좀 켜 둬. 너 그거 옛날부터 습관이야.”
그렇게 다시 짐을 싸는 차소희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민의 결론을 꺼내 보았다.
“차소희.”
“왜?”
“같이 가면 안 된다고 했지?”
“응, 그런데?”
“그럼 같이 안 가면 되는 거 아냐?”
“같이··· 안 간다고?”
핸드폰으로 미리 찍어둔, 차소희의 탐사 계획서를 바라보았다.
<목적: 버뮤다 숲 외곽에 서식하는 생물 샘플 3종 채집>
“샘플 3종, 이것만 구해오면 되는 거 아니야?”
“······.”
차소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모양이었다.
“너, 그렇게 날 도와주고 싶은 거야? 좀 감동인데?”
“삼백이면 동남아 여행도 갈 수 있는 돈이야.”
“···삼백은 인정이긴 하지. 오케이, 인정.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나도 좋아. 근데 어떻게 하려고?”
“내가 가서 구해오면 되지.”
샘플 3종, 샘플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막무가내로 3마리 산 채로 잡아 오면 샘플 3종 이상은 되는 거 아냐?
“세 마리라···.”
이계에서 살던 시절에는 하루에 삼십 마리를 잡는 날도 많았었다.
***
생각이 여기까지 닿은 이상, 가만히 누워서 시간 낭비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내 천성은 탐험가가 맞았다. 가만히 있으면 좀처럼 몸이 쑤셔서 참을 수 없었으니까.
“쉬는 건 이 일 끝나고.”
내 통장에 남아있는 돈은 오백이 안 될 거다. 삼백이 더 있으면 휴식의 퀄리티도 그만큼 더 늘어나겠지. 맘도 더 편할 거고.
이계에서 구르다 오긴 했지만, 그래도 눈 딱 감고 한 번 더 움직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무작정 서울에 열렸다는 차원문으로 가려고 했는데···.
“너 지금 그 상태면 수속 절차도 통과 못 해.”
“수속이 있어? 무슨, 공항이야?”
“아무나 들여보내 주진 않으니까. 나름대로 자격시험이 있거든.”
우선 시험을 봐야만 했다. 매 주 시험을 보고, 결과도 바로바로 나온다고 하길래 다행이었지.
시험은 두 종류였다. 탐험 허가증 시험과 방문 허가증 시험.
당연히 내가 필요한 건 탐험 허가증이었다.
<강선후>
[독기 적응: 양성(통과)] [다음 시험: 체력 실기]“실기 테스트 이후에 추가 시험 2차까지?”
“실기에서 80점 이상 받으면 추가는 합격 처리야. 80점 이상은 어려운데, 합격 자체는 막 크게 어렵지 않아. 그래도 조심해서 진지하게 해.”
“어렵지 않다고? 이계에 가는 시험이 안 어려우면 어떻게 해.”
“어디까지나 기초 수준이거든. 이계 넘어간다고 바로 위험하진 않으니까. 위험한 행동을 하려면 이 증서에 추가적인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지.”
그러니까, 이건 그저 이계의 환경에 치여 죽지 않을 수 있는지 정도만 확인하는 시험이라는 거다.
“준비물은 챙겼지?”
···준비물?
<시험감독관이 전달합니다. 금일 실기 시험이 이제 곧 실행될 예정이오니, 접수가 완료된 분들은 시험장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전달합니다. 금일······.>
“어, 나 가본다.”
“어? 야. 준비물은······.”
준비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필요 없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을 뿐이었다.
시험장은 어떤 학교의 강당이었다.
어떠한 기구도 보이지 않는 게 시험장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학습 노트를 들고 저마다 배워온 팁을 읊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다들 손에 어떤 기계를 들고 있었다.
저게 그 준비물이란 거지.
대충 뭔지는 알고 있었으나, 확실히 그 역할을 알고 싶어서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그게 뭐예요?”
“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기기를 들어 보였다. 블랙베리 스마트폰처럼 생긴 물건.
“이거요? 수정 탐지기요.”
“네, 그건 알고 있는데··· 정확히 무슨 기능인 거예요?”
“이계에는 일정 거리마다 색깔 수정 바위가 있거든요. 그걸 감지해서 내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나침반 역할을 해요. 주변 위험을 감지하는 레이더 역할도 겸하고요. 안 가지고 오셨어요?”
“네. 필수 항목에 없더라고요.”
“어, 이게 필수는 아닌데···. 회계사 시험에 계산기 안 들고 오신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보니까 가장 저렴한 것도 100만 원이 넘어가던데.
그런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들 모여주세요!”
감독관에게 다가가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이 어느새 저런 걸 만들었구나.
“다들 사전 통지서를 보셨겠지만, 간단하게 설명 한 번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물건은 균열 발생기입니다. 이계에 있는 특정 구역으로 연결된 문을 여는 물건인데요. 그곳에 미리 시험장을 구성해두었습니다.”
이건 통지서에서 읽은 내용. 인간은 벌써 균열을 제어하는 기계까지 개발한 모양이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장애물에 부딪히게 되실 겁니다. 시험 지역의 독기는 실제 현장의 베이스캠프보다도 훨씬 약한 곳이니, 독기 적응 양성만 받으셨으면 부작용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검은색 수정에 도착한 뒤, 그곳에 열린 균열을 통해서 돌아오면 시험은 완료됩니다. 참가자 간 폭력만 제외하면, 어떤 수단을 써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균열 발생기의 다이얼을 돌렸다.
“그럼 시간 없으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제한시간이 끝나도 안심하세요. 주최 측 대응팀이 여러분을 안전하게 구조할 겁니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전류가 합선된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공간이 갈라진다.
···내가 이계로 끌려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거의 똑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합격을 기원합니다.”
그 말과 함께, 약 백 명 정도 되는 참가자들은 일제히 차원 균열로 달려들었다.
제한시간은 다섯 시간.
정신을 차리자, 내 옆에는 약 셋 정도 되는 사람이 있었다. 들어올 때는 백 명이었는데.
“각자 다른 위치로 이동되는 거구나. 여긴··· 숲?”
내가 떨어진 곳은 울창한 숲의 한복판이었다. 내가 살던 데보다는 좀 더 열대지방에 가까운 느낌.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왠지 익숙했다.
나와 같이 이곳으로 온 셋은 각자 ‘수정 탐지기’라는 걸 꺼내서 바라보았다.
띠— 띠— 띠—
“가장 가까운 수정도 엄청나게 멀리 있네요.”
“하··· 이거 탐지되는 것도 정확한 게 아니라 근방 50m 이러지 않나요?”
“네. 핸드폰 GPS처럼요. 저 이번이 두 번째 시험인데, 대충 표시 범위 100m 안에 수정이 있다. 그런 느낌이에요. 정확하지 않은 거죠.”
“진짜 클났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들 합격하세요.”
한 명씩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끝내 나는 여기 혼자 남았다. 균열은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순식간에 닫혔고, 이곳에는 숲에 어울리지 않는 고요만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은 날 힐끗 보면서, 몰래 중얼거렸다.
[···탐지기도 없이 뭘 어떻게 하려고.]보통 사람이었다면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겠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눈을 감고 청각을 곤두세웠다.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생명의 소리와 이곳을 흐르는 마력의 기운이 고막을 미세하게 때려댔고,
사각사각
찌르르르르
지이이
암실에 쌓인 사진 무더기를 정리하듯, 그것들을 종류별로 분류해서 머릿속에 나열했다.
그러자 그사이에 섞여 있었던 검은 수정의 진동음을 찾아내었다.
마력의 실을 튕기는 듯한 그 특유의 느낌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그 위치를 알아내면 된다.
나는 그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조잡한 수정 탐지기 따위가 필요 없는 건 이 이유 때문이었다.
“마르카마marlkaama”
추적해라.
그리고 여기에 방향성을 부여한다.
방향은, 숲의 심장.
“투 로스토to rosto.”
그리고, 마지막으로 형태를 부여한다.
“데 모스de mohs.”
작은 불씨들이 형태를 갖추고, 요정과 같은 모습으로 옅게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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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귀환하자마자 돌아갈 줄이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