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0
40화 ep15. 산요정 (3)
***
“광인께서 지배자의 핏줄을 타고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핏줄?
나는 진주강씨 관헌공파 28대손인데. 지배자의 핏줄 같은 게 아니라.
“그,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 명가의 후계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신도 중 하나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키가 작고 몸집이 다부진 걸 보니 아마 드워프인 것 같았다. 이계의 실상은 내 편견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으니 어디까지나 ‘아마도 드워프’.
엘프, 드워프, 인간이 다 모여 사는 마을이라니. 생각해보면 이것도 좀 특별한 거 아냐?
그나저나, 명가의 후손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놈! 감히 광인께 무슨 무례를 범하는 것이냐! 뒤로 돌아온다! 실시!”
“쩝.”
“실!시!”
“실시!”
‘···그러고 보면 리리도 어디 공작가의 후손인 것 같았지.’
우리 세상으로 치면 소왕국 정도인 것 같았다. 대공, 혹은 공왕가라는 거지.
리리도 지배자 중 하나잖아? 즉, 리리는 명가의 후손에 해당된다는 거다.
“···지배자는 보통 핏줄을 타고나는 거야.”
리리가 내 의문을 느꼈는지, 넌지시 말했다.
“당신이 어떤 출생 신분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묻지 않을게.”
배려해주는 건가.
리리 본인이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으니, 어쩌면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동굴로 진입한 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내가 이전에 답사를 완료한 곳까지는 큰 장애물 없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아직은 넓지 않은 공간이라서 나와 리리가 앞장섰고, 신도들은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백 명이나 되는 터라 행렬은 꽤 길었다.
“동굴은 별로 들어와 본 적이 없는데. 신기한 기분이네.”
“당신 성격에? 의외인데.”
“탐험할만한 동굴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동굴은 대부분 허가를 받아야 했거든.”
물론 지구 이야기다. 조난 생활을 했을 때는, 애초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당장 살기 힘든데 뭣 하러 위험을 무릅써?
“허가?”
리리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말했듯, 동굴 탐험은 꽤 로망을 자극했으나 지구에서는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이계다. 발을 들이지 않은 거대한 규모의 지하 공동이 한두 개가 아니겠지.
게다가, 이계의 거대 동굴은 특별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산의 뿌리에 직접 들어가는 건 처음이야.”
주변을 둘러보는 리리는 살짝 위축된 모습이었다.
“우리 왕국에는 산의 뿌리를 탐사하는 왕실 탐사대가 있었어.”
“왕실에서 직접 탐사대까지 꾸렸다고?”
“산의 뿌리에는 희귀한 광석이 풍부해. 지하 지도를 만드는 건 중요하지. 게다가 산의 정기가 이동하는 곳이니, 그 에너지를 이용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할 수 있었거든.”
“대표적으로?”
“음, 농사? 탐사대 소속 연금술사들이 주머니풀에 정기를 담아서 오면, 매 해 봄마다 농부들에게 나눠줬거든. 아버지가 직접 관리할 정도로 중요한 업무였어.”
이계의 신비는 자연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있었다. 자연은 좀 알았지만, 문화에 대해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사소한 것부터 큰 부분까지 인식과 지식이 많이 달랐다.
리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관심은 더욱 증폭되어 갔다.
이곳은 어떤 세상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신도들의 지원을 받기로 결심했던 공동에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조금 더 걸어야 했다.
걸으면서 문뜩, 리리가 했던 말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지도?”
“응?”
“너네 왕국은 산의 뿌리 내부를 지도로 만들었다고?”
“광맥에 접근하려면 지도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잖아?”
어제 그 채광 회사 직원은 분명 이곳의 형태가 바뀌었다고 했는데?
지형이 바뀌는데 지도를 어떻게 만들어?
그리고, 이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스프리건의 정신 공격까지 받고 내쫓겼다.
이 시점에서, 리리가 아는 것과 내가 아는 게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이 미로, 지형이 바뀐다고 했거든?”
“바뀐다고?”
“중간에 형태가 바뀌어서 탐사를 포기했었대. 지난번에 온 사람이 한 말이었어.”
리리가 멈춰선 건 그 시점이었다.
“···산의 뿌리가 형태를 변형한다고?”
리리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절대로 가벼운 변화는 아닌 듯했다.
“산의 뿌리가 형태를 변형하는 경우는 하나뿐이야.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라고 하면?”
“···공격받았을 때.”
“음.”
원래 계획은 스프리건의 위치를 찾아내는 거였다.
하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리리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혹시, 스프리건이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대?”
내가 그렇다고 하자, 리리는 확신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확실해. 스프리건은 절대로 공격적인 정령이 아니야. 자신의 터전인 뿌리에 문제가 생긴 거야. 그래서 예민해진 거지.”
충격적인 반전이구만.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곧이어 공동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
“여기가 산의 뿌리···.”
“사제님, 저 무서워요.”
“조용!”
이곳이 산의 뿌리의 시작점이었다.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공동.
단순히 거대하기만 한 것 뿐은 아니었다.
“길이 끊겨 있습니다. 광인님.”
우리가 밟아온 길은 이 공동으로 진입하며 끊겼다. 그리고 낭떠러지가 이어졌다. 빛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은 낭떠러지.
바닥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 아래로 떨어트려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딱.
“뭐 하는 거야?”
“잠깐. 계산 중이야.”
정확할 필요는 없다. 정확하게 계산하는 건 불가능하기도 하고.
“대충 백이십 미터 정도 되겠네.”
“응?”
“저 바닥까지 거리가 내 키의 65배 정도 된다는 뜻이야.”
물론 중력이 지구와 완전히 같다는 전제하에 그렇긴 한데, 딱히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그런 것도 계산할 수 있어?”
“높이 계산법은 필수로 알아야지.”
탐험하려면.
리리는 날 신기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생각보다 지적이네. 흐음···.”
“생각보다?”
“응.”
“대답이 너무 단호한 거 아냐?”
리리가 훗 하고 웃었다.
“이제 어떻게 하려고? 길이 끊겼는데, 당신 밧줄 안 챙겨 왔잖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황금 지침에서 녹색 보석을 꺼냈다.
방랑자의 활.
“오오···.”
“지배자의 증명······.”
조금씩 사용함에 따라서 숙련도도 증가했다.
이제는 화살이 생길 때까지 구태여 기다리지 않았다. 왼손을 먼저 활시위에 건다.
그러면 화살이 생성되는 것과 활시위가 당겨지는 게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왜 갑자기 활을···. 어?”
그리고, 내가 고민을 하면 할수록 이 활이 가진 가능성은 더더욱 늘어난다.
이번에 만든 화살은 실제로는 없을 가능성이 컸다.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거든.
앞으로 자주 쓸 거니까 이름을 따로 붙여주기로 했다. 대충, 그래플링 애로우(grappling arrow).
4개의 거대한 갈퀴, 튼튼하고 짧은 화살대, 그리고 뒤쪽에 달린 튼튼한 밧줄. 내 생각이 맞다면 200m가 훨씬 넘는다.
이 시점에서 신도들은 내가 뭘 할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사제는 벌써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다들 봤지! 팔에 힘 빡 주고 대기해라! 광인의 명령을 기다린다!”
눈치가 빠른 사제 덕에 이야기가 빨랐다.
나는 가까운 벽에 뚫려있는 구멍을 향해서 그래플링 애로우를 쏘았다. 안전에 확신이 들기까지, 다시 쏘고 또 쐈다.
그렇게 완성된 세 줄의 로프라인.
그리고 잠시 대기했다. 이전에 화살은 1~2분 후에 사라졌었는데, 신도들이 넘어가다가 사라지면 보통 문제가 아니잖아?
그래서 잠시 기다리려고 했는데.
“괜찮을 거야.”
리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배자의 증명은 사용자의 의도와 공명해. 활은 당신이 뭘 할지 알고 있을 거야.”
“음, 안 위험할까?”
“위험할 거면 애초에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거야. 이 화살이 만들어졌다는 건 애초에 당신의 의도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렇단 말이지.
그래도 혹시 몰라서 조금 대기했는데, 리리의 말대로 화살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사제님.”
“네!”
“신도분들을 잘 분배해서 밧줄을 타고 벽 쪽 구멍으로 넘어가세요.”
“광인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는 아래로 갑니다.”
***
여기서부턴 나도 처음 오는 곳이었다.
이제는 놀랍지 않지만, 리리는 밧줄을 능숙하게 타며 따라왔다. 생각보다도 빨리 바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철퍽—
축축함이 느껴졌다.
단순한 물이 아니라 양분과 에너지가 가득한 수액처럼 느껴졌다. 점성이 있었고, 동굴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달콤한 냄새가 은근하게 올라왔다.
“이게 정기라는 거구나.”
“이건 정기를 머금은 물이야. 정기는 공기와 같아. 눈에 안 보이거든.”
그러면서 리리가 내 옷깃을 잡는 게 느껴졌다.
“어두워.”
“모스mohs.”
불꽃을 최대한 크게 만들었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황색을 비추며 모습을 드러냈다.
“평평하네.”
대리석을 깎은 것 같은 평평한 바닥. 그런데 인조적이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다.
여기저기에는 종유석이 솟아나 있었는데, 보통의 동굴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수정처럼 투명했다.
“산의 정기가 쌓여서 만들어진 수정이야.”
그러면서, 그 끄트머리를 똑 따서 입에 넣는 리리.
“너 왜 돌 먹어? 너 사실 뱀파이어 아니지? 선짓국 먹을 때부터 그럴 줄 알았······.”
“이거, 맛있어.”
그리고는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당신도 먹어 봐.”
받아서 입에 넣어보았다.
단데, 설탕의 단맛이 아니었다. 꿀과 비슷한데 조금은 우유의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느낌?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고, 의외로 마냥 딱딱한 식감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맛있었다. 나는 맛 표현 같은 거 잘 못 해.
“먹을 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산은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그 이유가 바로 정기에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리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 이거 되게 좋아했어. 어렸을 때, 탐사대가 출발하기 전날 밤 탐사대장님한테 가져와달라고 졸라댈 정도로. 대장님은 어머니를 통해서 밤에 나한테 이 수정을 건네줬었고.”
“어머니를 통해서?”
“아버지는 이런 거에는 엄격하셨거든. 좋은 분이셨지만.”
리리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들어줬다.
“가자. 내가 괜히 시간 뺏었네.”
“아니, 꽤 재밌는 얘기였어.”
“···다행이야.”
***
우리가 가는 방향은 가파르게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가파른 내리막, 소형 절벽, 그리고 조금 긴 복도가 이어지는 듯한 구조의 동굴이었다.
처음에는 어마어마하게 넓었던 공간이지만, 가면 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상대적일 뿐, 여전히 천장은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그만큼 충분히 넓은 공간의 연속이었다.
그 순조로움과는 별개로 우리의 표정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다.
“···리리.”
“응.”
“네 말이 맞는 거 같은데.”
“응···. 이거 뭔가 이상해.”
산의 정기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즉, 많은 에너지와 많은 양분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초반부에는 그럴만한 곳이라고 여겼다. 리리가 좋아하는 달콤한 종유석도 여기저기에 달려 있었고, 공기는 좋은 향기를 품고 있었다. 깊이 들어왔는데 산소가 부족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좀 더 들어오자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리리가 벽을 쓰다듬으며 돌을 하나 떼 보았다.
후드득—
거친 소리를 내며 땅으로 쏟아지는 ‘모래’.
“메말랐어.”
불꽃을 하나 더 소환하며 시야를 넓혔다.
좋은 냄새는 어느샌가 퀴퀴한 공기로 바뀌어 있었다.
벽은 갈라져 있었고, 바닥은 밟을 때마다 푹푹 들어갔다.
리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러니 스프리건이 포악해질 수밖에 없지.”
“···조금 더 가보자.”
들어갈수록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공간은 오히려 넓어졌다. 이제 곧 다음 거대 공동이 나온다는 의미 같은데.
벽을 눌러보자 푸우욱— 들어갔다. 내 팔꿈치까지 들어갈 정도라 처음에는 빨려 들어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늪이 아니라 스펀지 같은 느낌이다. 속이 텅텅 빈 스펀지.
“······.”
그리고, 이 시점에서 뭔가 피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리리. 이거 안 느껴져?”
내 말에 리리는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했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아무것도. 왜?”
“찌릿찌릿해.”
이건 분명 전기였다.
“찌릿? 전기 말하는 거야? 나는 안 느껴지는데···.”
“···땅 속, 전기.”
리리가 벽을 부스러트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이곳에 정기가 흐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기가 통하지 않는 산의 뿌리.”
나는 산의 뿌리를 송유관에 비유했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자, 기억 속에 있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송유관?”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서 몰래 기름을 빼가다가 적발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송유관에 기름이 흐르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누가 기름을 중간에 빼가는 거잖아.”
땅속에 살며, 산의 뿌리가 통째로 망가질 정도로 정기를 빼먹는 탐욕스러운 생물.
그리고, 전기를 뿜어내는 생물.
내가 아는 생물인데?
답을 찾아내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파밍 웜!”
내 말을 듣자마자 리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그, 있잖아! 땅속에 돌아다니면서 전기 기관으로 주변을 탐지하는 동물!”
“아, 당신은 그걸 파밍 웜이라 불러?”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파밍 웜이 이 모든 일의 범인이었다.
리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어쨌든, 그게 있으면 엄청난 일이잖아.”
“그렇지.”
예전에 지구에서 잡았던 파밍 웜의 전기 신호는 미약했다.
하지만, 그건 새끼였기 때문이었다.
“···그거, 엄청나게 크잖아.”
나도 본 적 있다.
내가 본 건 3층짜리 상가건물에 비견될 정도의 크기였지.
“돌아가는 게 낫겠어. 당신네 마을에도 병력이 있잖아? 알리는 게 먼저···.”
“가자!”
지금은 리리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
존나 큰 파밍 웜.
전기 기관도 존나 크겠지.
“안 그래도 사무소에 전기가 아쉬운 상황이었거든!”
“당신, 잠깐! 기다려 봐. 우리 얘기 좀···. 미친 놈아!”
매번 이야기하지만 모험은 자살과 동의어가 아니야.
내가 이성을 잃어서 그걸 잊어버릴 아마추어도 아니고.
“나 그거 잡아본 적 있어!”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는 법.
제대로 된 자가 발전기를 구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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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파밍웜입니다. 산의 정기를 빨아먹는 괴물이죠. 하지만 지금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