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1
41화 – ep16. 파밍웜입니다. 산의 정기를 빨아먹는 괴물이죠. 하지만 지금은······. (1)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갈림길이 나왔다. 우선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내 뒤를 따라온 리리가 조금 당황스러워했다.
“당신, 정말로 지금 그 생물을 잡으려고?”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있는 거야?”
지금 리리가 한 말은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같았다.
손상된 산의 뿌리에 접근하는 데에 성공했고, 느껴지지 않았던 찌릿찌릿함이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다는 건 이쪽 방향이 맞긴 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여기는 미로처럼 얽힌 산의 뿌리니까.
예전에 조난당하던 시절, 파밍 웜 성체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그때 죽도록 싸웠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떨리는 팔다리의 근육이 끊어지도록 힘을 주었다.
당시에 나는 그 파밍 웜이 날 공격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알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공격당했으니 살기 위해서는 싸워야 했을 뿐.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지금의 나에게 무기가 되어 준다.
눈을 감고 피부에 미세하게 흐르는 전류의 느낌을 느꼈다. 전류라고 말하기도 미묘하다. 그저 털이 곤두서는 듯한 정전기 수준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곳은 파밍 웜의 감지 영역이라는 점이다.
파밍 웜은 우리를 인지하고 있다.
우선, 하나씩 차근차근 해본다.
사냥은 철저한 탐색과 준비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매번 끊임없이 되뇌는 말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내 삶을 끝내버릴 수도 있으니까. 마음이 가볍더라도, 단 한 번도 장난으로 접근한 적은 없었다.
이건 일종의 명상이자 일에 들어가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었다.
잠시 흥분했던 심장이 조금씩 차분해지는 걸 느끼자 머리가 차가워졌다.
***
리리의 동공이 희미한 흑적색을 띠었다. 영혼의 상을 보는 로얄 블러드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였다.
즉, 그녀는 지금 영혼의 상을 보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고, 이 시점에서 조금 더 강선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강선후가 전투 상황에 흥분한 결과가 바로 ‘포식자의 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의 곁에서 있어 본 결과, 전혀 반대라는 사실을 지금 깨달았다.
‘오히려, 차분해지는 거야.’
최초의 예상과는 다르게 강선후는 현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었다. 쉽게 즐거워하고, 흥미가 떨어지는 일은 쉽게 질려 했다.
열심히 일하다가도 며칠 내내 침대 위에 누워서 잠만 잘 때도 있었다.
살고 싶은 대로 사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는 사냥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히려 차분해졌다.
감정을 강제로 소거하기까지 한 듯한, 처절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차분함.
차분하지 않으면 죽는 세상에서 살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지배자는 대부분 핏줄을 타고난다.
강선후는 어떤 명가의 후손이며, 어떤 과거를 보냈던 걸까?
리리의 머릿속에는 대책 없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그 사이에 강선후는 룬 언어 하나를 읊조렸다.
“탐-탓사Tham-tatha.”
주변 미물의 감각을 빌리는 룬 언어.
리리는 혹여 자신이 방해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때?”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던 강선후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근방에 있는 생물들은 전부 흙 속에 있어서, 뭐가 뭔지 분간이 안 되네.”
감각을 빌려올 뿐이었다. 시야가 없는 생물의 시야를 빌려올 수는 없었고, 땅속의 생물은 대부분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파밍 웜의 감각은 느껴졌어?”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범위 바깥인가 봐.”
“조금 곤란하네. 그럼 어떻게 찾아?”
“범위 바깥에 있다는 걸 알았잖아? 오히려 하나를 더 알게 된 거야.”
강선후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랐다.
“리리.”
“응.”
“조금 떨어져 봐.”
“뭐 하려고···.”
“위험한 건 아니야.”
리리는 두세 걸음 물러났다. 강선후는 손가락을 살짝 뻗었다.
그리고, 읊조렸다.
“테르마tterma.”
치직, 치지지직—
마공학자의 실험실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강선후의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플라즈마가 여기저기로 뻗어 나가며 점멸했다.
강선후는 약간의 통증을 느끼는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것마저도 놀라웠다. 저걸 견딜 수 있다니.
그리고, 곧 강선후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거 같은데.”
“정답.”
강선후의 손가락에서 튀어나와 벽을 두드리고는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전류.
그 전류는 지향성을 띠고 있었다. 즉,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방향은.
“파밍웜은 저쪽에 있어.”
리리는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강선후가 어떻게 저 방법까지 알고 있는지 의문일 뿐.
저건, 도시의 고급 교육 과정에서나 배울 수 있는 자연철학의 지식이지 않은가?
야인의 삶을 사는 줄 알았던 강선후는 철학자의 고귀한 지혜마저 너무나 당연하게 응용하고 있었다.
‘···정말로 명가의 후계였던 건가?’
귀족의 교육을 받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룬 언어를 쓰는 인간은 그 자체로 신앙의 모순인데, 고등 지식인의 교육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야인의 삶을 살다니.
게다가 그 삶에 만족하기까지 하다니.
대체 뭐 하는 사람인 걸까?
***
이건 플라즈마 구슬에 손바닥을 대본 경험에서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물론 구체적인 원리를 알 리가 없었다. 그냥 시도해봤을 뿐.
근데 아무래도 이게 정답인 모양이었다. 테르마tterma의 전류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게 파밍 웜의 전기 기관에 반응한 결과라는 건 쉽게 추론할 수 있었다.
대략적인 방향을 알았다. 전류는 좌측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리리도 내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왔다.
피부에서 느껴지는 전류가 조금씩 강해졌다.
“찌릿한 거, 나도 느끼기 시작했어.”
리리가 한 말은 우리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뜻했다.
파밍 웜의 위치를 아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위치만 알아서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보물을 찾아가는 건 아니잖아?
목적지에 있는 건 산의 뿌리 한 줄을 통째로 말려 죽이고 있는 녀석. 살아있는 건물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죽음의 지렁이다.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전기를 일으켜 방향을 측정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플라즈마의 지향성은 더 명확해졌으며, 길을 찾는 건 점점 더 쉬워졌다.
“···흣.”
리리가 움찔거렸다. 그 정도로 이제는 전류의 느낌이 강해졌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가끔은 찌릿할 정도의 느낌.
하여간 엄청 큰 녀석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큰 몸집은 원래 감추기 어렵기 마련이었다.
거대한 공동에 진입했다.
산의 뿌리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큰 공간을 만나게 된다.
원래 같았으면 뿌리를 흐르는 정기가 잠시 머무는, 일종의 양분 저장고 같은 역할을 할 곳이겠지만.
푸스스스—
지금은 디디는 바닥마다 스펀지처럼 푹푹 들어갈 뿐이었다.
휘이이이이이이잉—
어마어마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최소한 지하 200m는 될 텐데, 이런 바람이 불어 들어올 리가 없다.
자연적으로는 말이다..
리리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두커니 서서 위를 올려다보는 우리 둘의 모습은 누가 보면 바보 같다고 느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리리는 저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모스, 트릿 포마mohs, turit foma.”
불덩어리가 발생해 내가 설정한 방향 일직선으로 쭉 이동하기 시작한다.
원래 지상에 있을 땐 임의로 멈출 수 없기에 잘 쓰지 않는 문장 구성이었다. 예상치 못한 화재 원인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지하다. 불에 탈 건 없다.
그렇게 쭉쭉 올라가는 불덩어리는 어느새 천장에 닿았다.
그리고, 어떤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그 구멍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흉측하고 징그럽게 꿈틀거리는지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미친. 개 못생겼네. 진짜.”
절로 이 소리가 나왔다.
“동감이야.”
자동차는 물론이고 원룸 한 층 정도는 충분히 삼킬 거 같은 거대한 구멍이 천장에 뚫려 있었다.
그 안쪽에서 무수히 많은 주름이 요동쳤으며, 구멍 가장자리로는 몇 겹이나 되는 가시가 잘그락거리면서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파밍 웜은 이 공동으로 주둥이만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공동에 들어오는 정기를 있는 대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송유관에 구멍을 낸 녀석을 검거하는 순간이었다.
“리리.”
“응.”
“저걸 큰 손상 없이 사냥하는 방법이 뭘까?”
“손상 없이?”
리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손상을 감수하면, 잡을 방법이 있어?”
“당장 떠오르는 건 두 가지 정도.”
“······.”
리리는 조금 어이없다는 듯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한테 물어봤자, 당신이 더 잘 알 거 같은데···. 룬 언어 중에 좀 괜찮은 거 있으려나.”
“어? 그거 좋은 제안이야.”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배낭을 풀어서 땅에 내려놓았다. 배낭에서 미리 챙겨뒀던 화합물 병을 땅에 놓았다. 그리고, 나이프로 땅에 룬 문장을 새겼다.
천장을 바라보며, 위치를 섬세하게 조절했다.
그렇게 땅에 덫을 하나둘 깔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화합물 병이었고, 병 하나당 룬 문장 하나를 세트로 구성했다.
“천장에서 입만 내미는 녀석인데, 여기에 함정을 깔아?”
리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랑자의 활을 꺼내서 밧줄 화살을 소환했다.
“···당신 설마.”
괜히 리리에게 들키면 잔소리 들을 거 같아서 순식간에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피이잉—!
화살은 그대로 비행해서 파밍 웜의 입안에 정확히 들어왔고.
쿠그그그그——
갑작스러운 이물질의 습격에 잠깐 놀란 파밍웜이 움찔거렸다.
“리리?”
“잠깐, 이거 너무 무모······.”
“저거 여기로 떨어질 거니까, 미리 비켜 있어.”
나는 밧줄을 붙잡았다.
“테르마tterma.”
「전기가 잘 통하는 재질의 밧줄 화살.」
이라는 생각으로도 가능할까 싶었다. 만약에 안 되면 그냥 이대로 밧줄을 타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파지지지직—
아마 제대로 된 듯했다. 내가 견딜 수 있는 최대 출력의 전기를 생성했고, 그건 밧줄을 타고 올라가 파밍 웜을 감전시켰다.
이 녀석이 전기에 유독 예민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잖아?
“쿠오오오오—!”
녀석이 처음으로 내뱉은 비명은 이 공동의 벽에 부딪혀 어마어마한 메아리를 만들어냈다.
구멍 틈새를 부여잡던 녀석의 중심이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흘러나와 바닥으로 떨어지듯.
쿠우우우웅—!
녀석의 신체는 땅으로 떨어졌다.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겠지. 당황을 유도한 게 제대로 먹혀들어간 셈이었다.
낙하의 거대한 충격에 녀석의 몸 여기저기가 터져나갔다.
“마르카마 투 마르크 데 모스marlkaama to marlk de mohs.”
불씨가 허공에서 발생해, 이전에 새겨놨던 룬 문자를 향해 이동했다.
그 끝에는 화합물 병이 놓여 있었고.
콰가가강-!
불이 붙은 병은 폭발했다. 녀석의 턱이 조각났고, 그 입 주변에 달린 가위 모양의 이빨이 부서지며 흩날렸다.
“쿠오오오오오!”
하지만 이걸로 죽을 녀석이 아니었다.
***
쿠우우웅—!
쿵······!
“이건······.”
남쪽 마을의 사제는 벽을 타고 들려오는 굉음에 주목했다.
그는 엘프였고, 훌륭한 사냥꾼이었다. 엘프 사냥꾼에게 예리한 감각은 필수 요소였다.
그렇기에 그 주름진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 소리는······.”
“촌장님.”
“사제라 부르거라!”
“아, 뭐, 사제님. 이 소리···. 폭발음 아닙니까?”
“뭔가 거대한 게 떨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요.”
단 한 번만 들린 것도 아니었다. 연속적으로 거대한 굉음이 반복되었다. 미세하지만 진동도 느껴졌다.
촌장은 성좌의 계시를 받은 이후로 직감에 크게 의존하는 성격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그의 직감에.
“···광인께 무언가 문제가 생겼도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모두, 광인의 신변을 보호한다!”
촌장은 자신을 따르던 스무 명의 장정을 데리고 밧줄을 타고 귀환했다. 강선후가 내려가는 데에 쓴 밧줄은 아직도 길게 늘어져 있었고, 덕분에 이동은 빠르게 할 수 있었다.
바닥에는 리리와 강선후가 지나갔던 발자국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그걸 따라가면 갈수록 메마른 풍경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해했다.
“오오···. 대체 산의 뿌리에 무슨 일이.”
“광인이시여···!”
그리고 그 길 끝에 닿은 순간.
“······.”
그들은 광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광인···?”
“어.”
광인은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모닥불에 고기와 피를 익히고 있었다.
사제는 그 뒤에 쓰러져 있는 거대한 시체를 올려다보았다.
“이건, 대체······.”
“마침 잘 왔어요.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그 거대한 시체는 수십 개의 밧줄이 고정되어 있었다.
“이거 같이 옮겨야 할 거 같거든요?”
“옮긴단 말씀이십니까. 예, 어디까지 옮겨야 합니까?”
강선후는 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지상까지요.”
“······.”
“······.”
사제 뒤에 서 있었던 마을 장정들은 순식간에 새하얀 얼굴로, 불안한 표정으로 사제를 바라보았다.
사제는 얼굴은 결연함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전투 운반 작전을 시작한다. 흩어져있는 마을 신도들을 모두 모아오도록.”
“······.”
“실시!”
“······.”
“실!시!”
“시, 실시!”
“좀, 미안하네. 나 군대 때 생각나기도 하고.”
“군대?”
리리가 물었다.
“높은 사람이 언덕이 맘에 안 든다고 흘리듯 말하고 가면, 그날 병사들이 삽 들고 모여서 언덕을 통째로 깎아버리고 그랬거든.”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군대가 어딨어?”
“그러게.”
강선후는 멋쩍게 웃으며 일사불란 움직이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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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 파밍웜입니다. 산의 정기를 빨아먹는 괴물이죠. 하지만 지금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