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2
42화 – ep16. 파밍 웜입니다. 산의 정기를 빨아먹는 괴물이죠. 하지만 지금은··· (2)
***
사제와 신도들이 흩어졌던 사람들을 모아오겠다며 떠났다.
지형도 복잡하고, 여기까진 거리도 좀 있었으니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동안 우리는 이곳에서 휴식을 조금 취하기로 했다.
급조폭발물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챙겨왔던 화합물.
메두사가 만들어내는 특수한 금속, 그리고 여러 연금 재료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간단한 물건이었다. 폭발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여러 개를 한 번에 터트리면 파밍 웜의 외피 정도는 간단하게 찢을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이었다.
휴대용 고체 연료와 그 화합물을 섞어서 즉석 모닥불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파밍 웜의 피와 고기를 익혀서 먹었다.
“리리.”
“응.”
“이거 맛, 어떻게 생각해?”
익어서 굳어버린 피를 리리는 조금 맛봤다. 그 표정이 굉장히 볼만했다.
“···이상해.”
“맛없어?”
“맛없는데, 맛있어.”
이상한 표현이지만 정확했다.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나는 지렁이를 먹어본 적 있었다. 지구에서도 조난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고, 그렇기에 생존을 위해 비위를 포기하는 건 익숙했으니까.
딱 그 맛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달콤하고 기분 좋은 맛도 퍼진다.
“···이 파밍 웜이 정기를 먹어서 그런가 봐.”
정기가 모여 만들어진 수정이 맛있는 것처럼, 그 성분이 파밍 웜의 살 속에 배어 있는 셈이었다. 얼마나 처먹었으면 살에서도 이런 맛이 나는 걸까.
어쨌든, 우리는 단순히 미식을 경험하기 위해서 이걸 먹은 건 아니었다.
뱀파이어의 능력.
피를 섭취한 대상의 강함을 닮아간다.
여기에 기대를 했을 뿐이었다. 메두사의 피는 그 자체로 맹독이라 기회가 없었지만, 파밍 웜은 먹는 게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아무 변화도 못 느끼겠는데?”
내 말에 리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생체의 피를 먹었을 때는 미약하게나마 그 능력이 확실히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건 아무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
“기생체는 그 자체로 엄청나게 강한 생명이야. 그 영혼이 강대하니 섭취했을 때 얻는 것도 크겠지. 하지만 파밍 웜은··· 몸집이 크지만 어쨌거나 미물이니까.”
그렇구만.
전기로 주변을 인지하는 감각 능력이라도 생길 줄 알았는데, 아쉽게 되었다.
“하긴, 그게 생긴다는 건 몸에 장기가 새로 돋아난다는 뜻이 되는 거잖아?”
기생체와는 달리, 전기 신호를 뿜어내는 기관은 명확하게 몸속에 존재하는 거였으니까.
이것도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긴 하네. 돌연변이가 되고 싶은 건 아니기에 납득했다.
지렁이 고기를 깨작거리는 리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옮기는 건 다섯 시간 뒤일 거니까, 지금 좀 더 먹어 둬.”
“뭐? 왜?”
“모든 생물은 죽고 나면 근육이 풀어지면서 흐물흐물한 상태가 돼. 이 상태로 옮기는 건 힘들 거야.”
“···그렇구나.”
“파밍 웜은 뼈가 없으니까 지금 옮기면 이리저리 흐느적거릴 거고, 내부 기관이 손상될 수 있어.”
“다섯 시간 뒤면 뭐가 달라져?”
“그 뒤에는 사후 경직이 시작되니까.”
“···당신 가끔은 자연 철학자처럼 말해.”
“그건 칭찬?”
“난 자연 철학 수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지루했거든. 그래도, 똑똑한 건 좋다고 생각해.”
나는 파밍 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섯 시간으로 되면 다행인데.”
사후 경직은 몸집이 클수록 오래 걸린다. 저 정도 되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될 대로 되라지.”
급한 것도 아니고, 급하지 않은 부분에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니다.
“나 잔다. 사람들 오면 깨워.”
“시체 옆에서 잠이 와?”
“안에서 잔 적도 있어.”
“···으.”
몇 시간 정도 지났을까? 사람들이 모였고, 나는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인이시여! 명을 받들러 이렇게 모였습니다!”
기지개를 켜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약 백 명의 장정.
이 정도면 옮기는 게 힘들진 않겠지.
“가볼까요.”
미리 만들어놓은 수십 개의 밧줄 화살. 그걸로 파밍 웜을 단단히 묶어놓았다. 다행히 사후 경직은 충분한 수준이었고, 파밍 웜은 크기에 비해서 가벼운 편이라 생각보다는 수월했다.
“하나, 둘!”
“읏차!”
“생각보다 가벼운데?”
“다들 젖 빨던 힘까지 다 쥐어 짜내라! 내일 해가 뜨기 전에 지상까지 옮긴다!”
“으아아아!”
다들 파이팅이 넘치는 구만.
나도 밧줄 하나를 붙잡았고, 리리도 군말 없이 힘을 보탰다.
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고생 좀 하겠구만.”
“···근데 당신, 이거 오두막까지 끌고 갈 생각 아니었어?”
리리가 속삭이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지상이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했어?”
“의욕 떨어지잖아. 벌써 거기까지 이야기하면. 사람은 본디 목표가 할 만할 때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법.”
“악질이네. 당신.”
“그거 우리 마을에서는 칭찬이야.”
“들을수록 이상한 마을이야. 진짜.”
***
오늘로 이계 출장 이틀째인 차소희는 아예 베이스캠프의 여관에서 묵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저녁 오두막을 찾아왔는데, 며칠째 강선후도, 리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체 또 어딜 간 거야?”
오두막의 문은 굳게 잠겨 있을 뿐이었다.
‘만약에 서울로 간 거라면 핸드폰 연락을 받았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가 절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애초에 연락이 잘 안 되는 놈이긴 하니까.”
연락 좀 받으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이제는 포기했다. 천성이 그런 녀석이었고, 강선후는 자신의 천성을 바꾸기 위해서 딱히 노력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강선후는 사회에 자신을 맞추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살아가는 데에 문제가 없다는 걸 몸소 증명한 친구였다.
하지만 그런 삶이 가능했던 이유는 세속적인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 열정은 한 방향으로 더욱 강하게 향하고 있었다.
차소희는 그런 모습에 간혹 동경을 느끼고는 했다.
“···밥이나 먹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몸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달콤한 향기가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
차소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처음 맡는 냄새였다. 달콤하고 기분이 좋은 냄새.
이런 냄새가 나는 음식이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냄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차!’
귀를 기울여보니 함성 같은 게 울려왔다.
해가 넘어가서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지평선.
차소희는 그곳으로 시선을 옮긴 뒤 눈을 크게 떴다.
‘···차! ···차!’
뭔가, 기합을 주는 소리 같은데,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었다.
이계의 언어 같았다.
차소희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불빛이 다가올수록 구체적인 모습을 조금씩 분간해낼 수 있었다.
사람이었다.
아주 많은 사람.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거대한··· 무언가. 그게 뭔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자신을 망상 전문가라 자처했던 차소희는, 순식간에 수천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떠올렸다.
저렇게 대규모의 조사대가 복귀한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었다.
게다가, 지구인이 쓸 리가 없는 횃불.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거대한··· 생명체. 저건 아마 생명체였다.
거대한 생명체를 이끌고 몰려오는 인파.
그게 지구인이 아니라면?
차소희의 망상은 여기에서 끝났다. 결론이 난 상황이었으니까.
“침략이다!”
차소희의 망상은 항상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고는 했다.
“치, 침략! 경비대장님!”
이 외침이 베이스캠프에 닿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쯤 베이스캠프에서도 이 모습을 보았을 터, 분명 비상이 터졌을 게 분명했다.
물론 이계에서는 온갖 일이 다 일어나기 때문에 정말로 습격이라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선제공격을 가하는 경우가 없었다. 대부분 OWIC이 나서서 조용히 처리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게 안심하고 우두커니 서 있을 이유가 되어주진 않았다.
차소희는 베이스캠프 안으로 달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차소희!”
“···?”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몸을 돌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잘못 들은 걸까?
“차소희! 나야!”
아니었다. 이건 분명 강선후의 목소리였다.
시간이 지나며 인파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그 광경을 구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백 명이 조금 안 되어 보이는 이계의 사람들.
그들이 하나씩 부여잡고 있는 밧줄.
스으으윽—
거기에 끌려오는 거대 괴수의 사체.
그 선두에 채 걸어오는 두 명. 차소희가 아는 얼굴이었다.
“···강선후? 리리?”
강선후는 손을 올려 보이며 차소희에게 인사를 건넸다. 리리는 그 옆에 서서 조용히 발을 맞춰 걷고 있었다.
그때, 마을 쪽에서 호루라기 소리와 고함이 들려왔다.
“대응팀 1조는 근처 민간인이 있는지 수색한 뒤 대피시켜라! 강선후가 오두막에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네!”
경비대장이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그들은 다급하게 차소희의 팔을 붙잡았다.
“장벽 안쪽으로! 서둘러 이동하셔야 합니다!”
“저, 잠시만요.”
경비팀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건 베이스캠프에서 죄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팔을 잡은 경비대장은 강선후가 누군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저기···.”
경비대장은 차소희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랜만이에요!”
경비대장은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그 얼굴이 누군지를 알아보았다.
“······.”
경비대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온갖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나는 이계였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지구인이 일으킨 것이었다.
그 사실이 경비대장의 머리를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이계의 주민, 그 선봉으로 서 있는 지구인.
이계인이 지구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
이계인들이 지구인에게 절을 하고, 물러나는 모습.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이 일이 끝난 후 상부에 어떤 식으로 보고해야 할지도 감이 잘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강선후 씨. 맞습니까?”
“아이고, 허리야. 네. 맞죠. 저거 아무런 문제 없는 거죠? 저 규정 다 지켰거든요.”
경비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벽 안으로 허가 없이 이계인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계인에게 지구에 대한 정보만 넘기지 않는다면, 교류 자체에는 특별한 제재가 없었다.
어차피 이계와 지구인 사이에 대화가 통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게 룰이 느슨한 이유였다.
그런데, 조금 전 그 장면은.
“저 사람들이···. 강선후 씨에게 절을 한 겁니까?”
“네. 그렇게 됐네요.”
강선후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이계인들에게 숭배를 받고 신경을 쓰지 않다니.
‘이 사람, 이계에서 살다 왔다고 했지.’
2년이라고 했다. 길다면 길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시간이다.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을 겪었던 걸까.
혹시, 사이비 교주를 자처했던 걸까?
‘그렇게 군중을 잘 선동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아는 강선후는 인간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의문은 쌓여갈 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 집중해야 하는 건 강선후의 신도들이 끌고 온 아주 거대한 시체였다.
“이건, 뭐죠?”
“발전기요.”
“···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체를 올려다보는 저 뿌듯한 표정. 강선후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의미했다.
***
습격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기에, 경비대장은 기본적인 확인만 하고 돌아갔다. 리리를 힐끗 바라봤지만, 따로 문제 삼지는 않는 듯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오두막의 바깥은 왁자지껄했다.
마을에 있었던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서 파밍 웜의 시체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말소리가 창문을 넘어서 내 귀에까지 들렸다.
“···이걸 강선후가 잡아 왔다고?”
“그렇대.”
“왜?”
“···그, 채광 회사 쪽에서 의뢰했다는데.”
“그거 조사 의뢰였다면서? 사냥 의뢰가 아니라.”
저런 내용들도 전부 소문이 나는구나.
“조사하라고 했더니, 토벌을 해왔다고?”
“혹시 OWIC에서 총기 지급했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총도 없이 이걸 혼자 잡아 온 거?”
“나 만져볼래! 히히!”
“저기, 너무 가까이 다가가진 말아 주세요!”
차소희가 고맙게도 몰려든 인파를 컨트롤해주고 있었다.
그 동안, 나와 리리는 오두막 안에 짐을 풀고 잠시 앉아 있었다.
황금 지침을 꺼내서 바라보았다.
지침은 다음 유물이 있는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동쪽. 버뮤다 숲이 있는 방향이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던 리리가 입을 열었다.
“당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우선은 스프리건을 찾으러 가야지. 오는 길에 마을의 드워프가 말해줬거든. 스프리건이 있을 법한 위치에 대해서.”
사제가 내게 건넨 약도를 바라보았다.
이제 파밍 웜도 사라졌으니 지형이 변할 일도 없겠지.
이 약도를 따라가면 스프리건의 위치를 찾는 건 그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스프리건을 어떻게 이용할 생각인데?”
“산의 뿌리를 타고 근방을 돌아다니는 정찰꾼이랬잖아?”
“그렇지만···. 이곳은 딱히 전시 상황도 아닌 거 같아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
“리리.”
“응.”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아?”
“···아니.”
리리도 지도 없이 긴 시간을 떠돌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는 게 거의 없다고 했었지.
지구본에서 서울의 위치를 찍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뉴욕으로 가기 위해서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면, 실제로 가능한지를 떠나서 대답이 불가능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계라는 거대한 세계에서 베이스캠프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건 내 계획의 커다란 맹점이었다. 시작 지점이 어딘지 모르니, 다음 탐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생각하기도 힘들다. OWIC도 남쪽 외에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걸 알아낼 시간이야.”
“알아내?”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낼 생각이었다.
“지도를 만들게 시킬 거야. 이 근방의 지도.”
그렇다면, 이 지침이 가리키는 동쪽에 뭐가 있는지를 미리 알 수 있겠지.
다음의 내 목적지를 결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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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7. 생명의 정령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