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4
44화 – 생명의 정령 (2)
스프리건의 말은 룬 언어가 아니었다. 나도 알아듣고 리리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들렸던 노래는 확실한 룬 언어였다.
룬 언어는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법칙은 그들의 노래에도 적용되었다.
스프리건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건 리리와 처음 영혼 연결을 했을 때와 흡사한 느낌이었다. 관련이 없었던 두 개의 영혼이 맺어지는 순간.
암실처럼 어두운 이 공간에서 한 아름의 구름이 뿜어내는 은은한 푸른 빛. 그건 그 자체로 마법이었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스프리건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포근하게 감싸 안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뜨면서 말했다.
“뭐라고 불러야 할까?”
「셀피 인델라니- 아르메실라.」
“그게 네 이름이야?”
「오래전 황금의 왕이 이 산에 붙인 이름이에요. 이 시대의 언어로는 고요한 시작의 대지. 산의 이름은 곧 우리의 이름이 된답니다.」
“신기하네.”
오래전 이 산에 붙은 이름이라.
스프리건은 이곳이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일까?
「우리가 당신의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명령을 내려달라는 말이야.”
옆에서 듣고 있었던 리리가 덧붙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내 앞에서 일렁이는 푸른 구름을 바라보았다.
명령이라.
“···얘기나 좀 할까?”
「당신께서 원하는 대로.」
스프리건은 빛줄기가 되어 솟아오르더니, 이곳 전체에 낮게 깔리는 거대한 안개의 형태로 다시 내려앉았다.
형태가 없고 추상적인 장면이었지만, 왠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기대에 찬 얼굴로 의자에 앉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도 바닥에 대충 앉았고, 리리도 따라 앉았다.
솔직히 생각했던 이미지가 아니었다.
정령이라는 거, 신비하고 낯선 존재일 줄 알았다.
물론 신비하지만, 낯선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친숙하고 편안했다.
“셀피. 그렇게 불러도 되지?”
「당신께서 원하는 대로.」
현대 지구식 계약서에 익숙한 나로서는 어느 정도 감성을 빼고 확답을 받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이계의 의식으로 치러진 계약이라는 거, 조금은 붕 뜬 감이 있는 사실이잖아?
“네가 나를 섬긴다는 건 이해했어. 혹시 내가 너한테 해줘야 할 게 있나?”
「그저, 우리가 기댈 수 있도록 그 자리에 계속 계셔주시면 충분해요.」
“언제까지? 혹시 기한 같은 게 있을까?”
「우리의 진실된 왕이 군림할 때까지.」
“그게 언제인데?”
「황금의 왕좌, 그 주인이 결정될 때. 혹은 그대가 그 자리에 앉을 때.」
황금의 왕국과 그 왕에 대해서는 지속해서 들은 이야기다. 리리도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는 의무를 졌다고 했지.
정령들이 섬기는 왕이란 바로 그 자리를 의미하는 듯했다.
“정령들에게 왕이 그렇게 중요해?”
「우리의 유일한 의미니까요.」
정령은 누군가를 섬기는 데 집착한다. 그 자리가 공백이면 욕구 불만에 시달릴 정도란다.
보통은 오히려 반대 아닌가? 자신의 위에 누군가 군림한다는 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잖아?
그렇게 생각했다.
“너희한테 왕이 무슨 의미인데?”
「우리가 헌신할 수 있는 존재. 마음을 바치고, 거기에 보람과 의미를 느낄 가치가 있는 존재.
그를 위해서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 우리의 빛. 그게 바로 왕이에요.」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되는 감정이라.”
「아뇨. 당신은 이해하고 있어요. 당신에게도 왕이 있지 않나요?」
나는 리리와 눈을 마주쳤다.
리리도 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표정.
“나한테도 왕이 있다고?”
「이곳에 충만한 생명의 기운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을 저는 보았어요. 다시 태어나는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감격이 담겨 있었어요. 그때 당신의 표정은 정말로 아름다웠어요.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은 우리가 왕을 바라보는 감정과 같아요.」
낮게 깔린 푸른 안개가 살짝 요동쳤다.
그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즐거움이었다.
「당신도 가지고 있어요. 목숨마저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뜨거운 빛.」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빛이라.
“···생각해본 적 없는데.”
「생각나지 않아도 당신은 알고 있어요. 깨닫는 과정 역시 당신의 즐거움일 거예요.」
가만히 듣고 있었던 리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셀피 인델라니- 아르메실라. 나 역시 지배자니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습니다.”
「지배자라서가 아니라 우리 주인의 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셀피가 마음에 들어요.」
“···셀피. 그대는 황금의 왕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는 대로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우리는 반드시 그곳을 찾아야 합니다.”
리리는 이 순간에도 인도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의 주인께서 지배자의 운명을 따르고자 한다면, 우리 역시 성심을 다해서 헌신할 거예요. 하지만, 왕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건 대가 끊긴 이야기니까요.」
“······.”
「하지만 우리의 주인께서는 오히려 이쪽을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네요.」
리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미소짓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셀피의 말이 맞았다.
나는 밝혀진 무언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미지를 밝혀내는 쪽에 더 두근거림을 느끼니까.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방금 셀피가 한 대답이 꽤 마음에 들었다.
대화는 이 정도면 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감상에서 벗어나 일로 돌아갈 때였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한 묶음의 풀을 꺼내 내밀었다.
주머니 풀이었다.
리리의 왕국에서 정기를 담는 데에 사용했다는 식물.
나는 여기에 정기를 담아 파밍 웜의 장기에 주입해볼 생각이었다. 영구적이진 않더라도, 일시적으로 부패를 막아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어쩌면 더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셀피, 너는 정기가 모여서 만들어진 생명이잖아? 그럼, 이 풀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셀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짙은 안개에서 솜사탕 같은 조각 하나가 떨어져나왔다. 그리고, 제집을 찾아가는 꿀벌 무리처럼 식물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라면.”
해볼 만 하지 않나?
그냥 정기가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잖아?
희미하게 빛나는 주머니 풀을 잠시 바라보다가 안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셀피, 부탁 하나 더 해도 될까?”
「그건 우리의 기쁨입니다.」
“너는 산의 뿌리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다고 들었어. 만약에 그게 맞다면, 네가 가능한 영역 전체의 지도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 공간에 퍼졌던 안개가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놀랄 정도였다.
한 점으로 모인 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다.
빛은 빛줄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가지가 많은 나무의 형태가 되었다.
나와 리리는 정령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나무는 수천의 나비가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고요했다. 그 날갯짓이 이 공간을 가득 채웠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곳으로 이어지는 모든 통로를 향해 날아가는 나비가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밖으로 나오니 해가 조금씩 뜨고 있었다.
저 안에서 꽤 오랜 시간을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산에서 태어난 스프리건, 셀피는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떠났다. 얼마나 걸리려나?
급할 건 없다. 조난 생활을 하던 때와는 다르다.
지금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으니까.
리리와 나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은 붕 떠 있었다.
“···솔직히 내가 정령을 무시했던 거 같아.”
“나도 마찬가지네.”
리리가 동감했다. 나는 손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송곳니의 문신이 그려져 있는 곳이었다. 특정 룬 문자만 쓰면 언제든지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지.
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모습을 바라보는 리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 드디어 당신 신분의 무게감을 체감했어?”
‘···아니?”
“응?”
“저 밑에서 한 경험이 진짜 멋졌다는 거. 그거 하나만 중요한 거 아냐? 그리고 그런 곳의 입장권이 이 문신인 거잖아?”
“당신한테는 그게 중요한 거야? 진짜 좀··· 어이없어.”
이거 말고 뭐가 중요하겠어?
나는 다시 손을 내리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저 멀리 내 오두막이 보였다.
“···왕이라.”
정령이 말하는 왕의 의미가 뭔지, 이거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볼 가치가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할 일이 있으니, 답은 나중에 찾아도 상관없는 일이다.
급하지 않으니까.
리리와 나는 오두막에 다가갔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리리는 흠칫하고 놀랐다.
OWIC의 연구원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당신네 마을 사람들이야.”
“무서워?”
“무서운 건 아니야! 그렇지만···.”
리리는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했다.
그런데 나는 매번 이렇게 생각했다. ‘상관없는 일 아닌가?’
마을에는 명확한 룰이 있고, 그 룰을 어기지 않으면 제재할 근거가 없다.
대놓고 못된 짓을 하는 놈들도 제재 근거가 없어서 방치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굳이 리리가지고 문제로 삼을 것 같진 않았다.
실제로 경비대장도 그랬잖아?
“괜찮을 거야.”
언제까지고 숨어다니게 할 수는 없었다. 꿀릴 것도 없고.
그렇게 설득하자 리리도 납득했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이전에 마을에서 쫓겨난 경험이 꽤나 트라우마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해를 등지고 있어서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고, 그래서 사람들은 내 접근을 일찍 알아챘다.
“아니, 이건 대체···.”
“이렇게 손상이 적은 파밍 웜 사체는 처음 아니야?”
“이건 진짜 그냥 못 넘어가겠는데.”
“아, 저기 온다!”
웅성대던 연구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건들지만 않으면 구경은 자유다. 나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 아니니까.
내 생각대로 사람들은 리리에 대해서 딱히 신경 쓰지도 않았다. 이 사람들은 이계의 주민을 크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선후 씨!”
“와, 씨. 깜짝이야.”
“어? 놀랐어요? 미안해요.”
“파밍 웜이 다시 살아난 줄 알았어요.”
“그럼 더 좋고요!”
진서연이었다. 연구 가운을 그대로 입고 나온 걸 보니 엔간히 급한 모양이었다.
이유는 알 거 같았다.
“아니, 그, 지난번에 기생체 때는 우리 좀 덜 친했죠? 회사에서 선후 씨한테 잘못도 좀 했고···.”
“······.”
“근데 지금은 솔직히 우리 좀 친하죠? 안 그래요?”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이 사람의 진짜 성격이 뭔지 이제 난 모르겠다.
“뭘 원하세요? 무서워 죽겠네.”
“이거, 우리한테 팔아요!”
“싫어요.”
“아아아! 그렇게 대답할 줄은 알았는데! 으으.”
파밍 웜을 올려다보았다.
추락하는 바람에 좀 손상이 되긴 했지만, 대체로 멀쩡했다. 우선 내부 기관이 대부분 거의 보존되어 있는 게 컸다.
진서연이 침을 흘리는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이건 진짜 어떻게 안 될까요? 안 그래도 제가 이번에 쓰고 있는 보고서 중에서··· 보자. 32번 프로젝트! 그게 이 파밍 웜 관련 자료가 좀 있어야 해서···.”
“미안합니다. 저도 쓸 데가 있어서요.”
“우우.”
나는 오두막으로 들어가서 짐을 정리한 뒤, 희미하게 빛나는 주머니 초 하나와 콜드 포레스트만 챙겼다.
침대에 퍼질러 자고 있는 차소희를 잠시 바라보았다.
깨울 필요는 없었으니, 리리도 안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조심스레 밖으로 나갔다.
“해볼까.”
이런저런 부품은 오늘 저녁 정지훈이 가져다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전기 기관 세팅은 해놔야겠지.
“흠.”
거대한 파밍 웜의 시체를 올려다보니 살짝 막연한 기분이긴 했다.
여기서 나오는 전기 기관의 크기는 SUV 트렁크에 가득 찰 정도겠지?
예전에 조난 생활을 할 때는 그림의 떡이었다. 애초에 파밍 웜을 많이 만나지도 못했고, 전기 기관을 애써 꺼내봤자 딱히 쓸 데가 없었다. 썩는 것에 대해 대처도 할 수 없었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건 충분히 할 만했다.
처음 칼을 대기 전 문뜩 고개를 돌려보니, 뒤에서 연구원들이 한데 모여서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안절부절못한 게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서연 씨.”
“네, 네! 네! 무슨 일이세요?”
“옆에서 같이 지켜보는 것 정도는 허락해줄게요. 녹화도요.”
“······다들 들었죠!”
이 정도 못 해줄 정도로 까다로운 사람 아니다.
***
세 명의 연구원이 액션 캠 하나씩, 그리고 네 개의 스탠드 캠코더가 파밍 웜 해체 쇼를 촬영하기 위해서 설치되었다.
그와 동시에 칼이 처음으로 파밍 웜의 안으로 들어갔다.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이 지렁이는 주름을 따라 내부에 막이 있어요. 그걸 함부로 끊어버리면 내장이 아무렇게나 쏟아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다 망쳐버릴 수도 있어요.”
강선후는 단순히 녹화를 허락하는 것뿐만 아니라, 틈틈이 자신의 지식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진서연이 아는 것도 있었지만, 모르거나 미처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게 훨씬 많았다.
강선후의 지식은 거칠었다. 연구원의 시선이 아니라 생존 전문가의 시선이었다. 뭐가 위험하고, 어떤 부위를 쓸 수 있고, 뭘 버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진서연은 그 지식의 필요 여부를 생각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메모했다.
“이걸 만질 때는 조심하셔야 해요.”
“···변압 기관인가요?”
“정확했어요. 이 부분에서 가끔씩 발작이 일어날 때가 있는데, 새끼 파밍 웜은 느껴지지도 않는 수준이지만 성체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거든요. 감전될 수도 있어요.”
“발작 조건은요?”
“이게 근육이거든요? 이쪽 보면 섬유 보이죠?”
“신경을 건드는 게 조건이겠네요. 기전이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이건, 가지고 가셔도 돼요.”
“어? 정말요? 저기, 샘플용 봉투 좀 가져와 주세요! 큰 거로! 아이스박스도!”
강선후는 어느새 연구원의 일원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초조했던 진서연의 표정도 어느새 진지함이 감돌았다.
강선후는 이계에서 살던 기간에 무슨 일을 겪은 걸까? 진서연은 그 진중한 지식에 매번 감탄했다.
어느새 파밍 웜의 장기는 하나하나 해체되었다.
그리고, 몸통 중앙에서 살짝 꼬리 쪽.
그곳을 절개하는 강선후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꺼낸 건 새하얗고 단단한, 그리고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기관이었다.
“···다들 떨어져요. 진짜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 말에 사람들은 뒤로 떨어졌다. 가슴까지 오는 하얀 공 모양의 기관.
살짝 울퉁불퉁했고, 그 내부에 복잡하게 얽힌 근섬유가 보였다.
“이게······.”
“전기 생성 기관.”
“온전하게는 처음 봐요.”
강선후가 이걸로 발전 기관을 만들 생각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쨌거나 바이오 에너지의 한 종류일 뿐이었다. 지구에서도 다르지 않은 개념이 있었고, 이미 비슷한 시도가 차원문이 열리기 10년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화석 연료와 원자력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옆에서 연구원이 몰래 말했다. 진서연도 거기에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저건 살아있는 생물의 기관이다. 즉, 생물에서 분리되면 죽는다.
“···어거지로 살려놓는다고 쳐도.”
에너지는 창조되는 게 아니라 순환되는 거다. 즉, 양분 공급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건 다분히 비효율적일 게 뻔했다. 공급을 대체 어떻게 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OWIC은 그걸 가능하게 할 기술이 있었지만, 할 이유가 없었다. 석유 발전기 대신 이걸 쓸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강선후는 처음 보는 풀을 들어 올렸다.
마치 방울꽃처럼 생긴 식물이었는데, 각각의 주머니 안에서 스며 나오는 푸른 빛이 인상적이었다.
강선후는 그 꽃을 조심스럽게, 전기 기관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흘러나온 푸른 가루가 비상하며 전기 기관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들 물러나세요.”
위이잉——
기계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내부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직- 파지직—!
“으어······.”
안쪽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저 주먹 크기도 안 되는 풀에서 나온 푸른 빛이, 이 거대한 전기 기관을 가동시킬 정도의 에너지를 공급해준 거다.
진서연은 이것만으로도 놀랐다. 이계에 이 정도의 에너지를 담은 식물이 있다고?
이런 식물을 재배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에너지 문제를 통째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 아닌가?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전기 기관을 바라보는 강선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안녕.”
“네? 방금 뭐라고······.”
정확히 듣진 못했다.
강선후는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듯했으나, 어쩌면 진서연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우리의 주인.」
전기 기관 내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그녀는 들고 있었던 펜을 떨어트렸다.
“이, 게···. 뭐예요?”
“뭐가요?”
“방금, 분명 목소리가······. 뭘 넣으신 건지 괜찮으시다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미지의 것을 눈 앞에 두고, 진서연은 오히려 한층 더 진중해졌다. 강선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AI요.”
“···네?”
“AI취급은 너무 심했나?”
진서연은 여전히 강선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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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8. 탐험가, 그리고 스폰서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