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5
45화 – ep. 18. 탐험가, 그리고 스폰서들 (1)
***
“선임님! 휴게실에 계시나요?”
“네에······.”
휴게실로 들어온 연구원은 진서연의 몰골을 보고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또 밤새셨어요? 벌써 며칠째예요?”
“어젯밤은 샐 수밖에 없었어요.”
“맨날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진서연은 네 번째 에너지 드링크의 캔을 따고 있었다.
저게 왜 몸에 나쁜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거기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연구원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어제 파밍 웜 연구 파견 나가셨죠?”
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밤사이에 모든 보고서를 완성했다. 경쟁 이계 연구 회사에서 무리하게 파밍 웜을 지구로 끌고 오려는 명분에 반박하는 보고서였다.
그녀의 서른두 번째 프로젝트는 하루아침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강선후 덕분이었다.
진서연은 어젯밤에 본 장면을 떠올렸다.
“어, 선임님?”
어느새 깊게 생각이 잠긴 진서연을, 연구원은 조심스럽게 불렀다. 진서연은 갑자기 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기, 저 의견 하나 여쭤볼게요.”
“네. 얼마든지요.”
그 얼굴에 통째로 물음표가 박혀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동물의 내장이 말하는 거 들어본 적 있어요?”
“···이계에서 보신 건가요?”
“아니면, 인공지능을 주입하는 식물에 대해서는?”
“글··· 쎄요. 솔직히 이계니까 차마 없다고는 말 못 하겠는데.”
연구원은 주저했다.
이계는 뭐든지 확신해서 말할 수 없는 곳이다. 확신이 오답이 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한 세상이었으니까.
“그런 게 있다면 어쩌시겠어요?”
“어··· 있는 거겠죠? 돈이 되려나?”
“멋진 거 아닌가요!”
또 이런다.
연구원은 그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세상이 저기, 바로 저기에 있는데 사람들은 다 돈으로밖에 보지 않아요! 혹시, 회사 기밀 중에서 관련 내용이 있지 않을까요?”
“선임님 접근 권한이 저보다 더 높잖아요. 최소한 제가 열람한 것 중에는 없었어요”
“저도 그런 거 듣도 보도 못했거든요!”
진서연은 훌륭한 연구원이었다. 누군가는 논문을 붙잡고 씨름할 나이에 선임 자리에 오를 정도로.
대학원생 시절부터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좋은 쪽으로도, 안 좋은 쪽으로도.
이런 부류의 사람이 그렇듯, 어딘가 이상하거나 일말의 광기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진서연은 평소에 차갑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만, 간혹 트리거가 눌리면 이런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안 되겠어. 지금 당장 2급 자료실에······.”
“지난번에도 그러다 징계 먹으셨잖아요! 진정 좀 하세요!”
“연구를 위해서라면 징계 한 번 정도는···!”
“원장님이 한 번만 더 그러시면 진짜 그냥 안 넘어가신대요!”
“으아아아! 강선후라면 사실 다 알고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을 회유해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근데 꿈쩍도 안 할 사람이던데? 방법이 없잖아!”
연구원은 그 시점부터 그저 뒷걸음질 쳤다.
같은 곳에 있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저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혼자 이러고 끝내면 알 바 아니지만, 사고라도 치면 불똥이 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기에 연구원은 가볍게 제안했다.
“강선후는 기브 앤 테이크에 확실하다고 들었는데요.”
“어···?”
“뭔가를 제공하면, 그만큼 보답을 하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조금씩 시동이 걸리던 진서연이 얌전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먹힌 모양이었다.
***
차소희는 아침이 되자마자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떠났다. 사람들이 몰려와 있는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얘는 출장을 나와 있는 상태였으니 신경 쓸 겨를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 뒤, 바로 OW리소스의 직원이 다시 방문했다.
나는 적당히 서쪽 상황에 관해서 이야기해줬다. 물론 스프리건이나 산의 뿌리, 그리고 정기에 대해서는 딱히 떠들지 않았다.
인간들이 그걸 알게 되면 무슨 짓을 할지, 조금 나쁜 상상이 드는 건 사실이었거든.
그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으니까.
“이게 서쪽 폐광에 살던 괴물이군요. 오기 전에 소문으로는 들었는데······.”
파밍 웜의 거대한 시체를 올려다보면서, 그는 손을 떨었다.
“저, 그, 죄송합니다.”
“네?”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는데.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이런 괴물이 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본사에서는 위험도를 철저하게 분석한 뒤, 이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인데 실책이 있었던 듯합니다. 사죄드립니다.”
“······.”
아무래도 멋대로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착각은 자유, 거기에 굳이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서쪽 폐광에 이런 괴물이 산다면, 아무래도 개발은 좀 많이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괴물이 너무 튀어나오네요.”
사람들 입장에선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을 거다.
실제로 사실이기도 하다. 저렇게나 양분이 많은 곳에 아무 것도 살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분명 파고들다보면 별 해괴한 게 다 튀어나오겠지.
“오히려 방어선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건들지만 않으면 아마 괜찮을 거예요. 그런데, 더 이상 사람이 다치기 싫으면 그쪽으론 접근 안 하시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하긴 하네요.”
“정부 허가를 다 받아놨는데 이럴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정말 수고해주셨습니다. 진짜 소문대로 대단하십니다. 아니, 소문보다 더한 분 같습니다.”
“어쨌든, 회사에서는 이제 어떻게 할 건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확답을 받고 싶었다. 솔직히 서쪽은 산의 뿌리로 진입하는 입구잖아? 한둘 접근하는 거야 큰 문제 없겠지만, 무리해서 개발한다면 셀피에게 다시 피해가 갈 가능성이 없지 않았거든.
“남쪽 산맥에 추진 중인 광산이 있습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철도가 아니라면 운송이 힘든 곳이라 차선책을 찾고 있었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으니 그곳을 계속 추진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큰 인명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잔금은 오늘 내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끝인가요?”
“네. 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측에서 성의를 다하겠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혼자 결론을 내리더니 꾸벅 인사한다.
근데 그 결론이 내 입장에서 거리낄 게 없어서 그냥 놔뒀다.
착각은 자유고, 그걸 깨우치게 할 의무는 내게 없다.
직원이 떠난 뒤 바로 발전기 작업에 착수했다. 원리 자체는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니었다. 생체 발전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부터 틈틈이 책이나 유튜브 등에서 찾아보았다.
조난 생활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온갖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짠!”
“이게 뭐야?”
“설계도.”
“···룬 문자인 줄 알았는데.”
리리의 반응대로,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은 아니었다. 설계도라고는 하지만 내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대충 그려놓은 것뿐이었다.
정지훈에게 부탁한 부품들도 전부 도착했고, 내가 할 건 그저 부품대로 선을 연결하는 것뿐이었다.
“셀피. 부탁할게.”
「위험할 수 있으니 떨어져 주세요.」
거의 가사 상태에 들어갔던 발전 기관이 다시 가동한다. 기어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와 심장의 두근거림이 뒤섞인 희한한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왔고, 곧이어 내 성과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치직, 치직, 칙, 칙.
미리 여기저기에 설치해놓은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는 이른 아침, 일렁이는 불꽃에만 의지하던 이곳에 환하고 안정적인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흐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조금은 조잡하지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데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리리의 표정이 궁금해서 고개를 돌렸다. 여전한 무표정으로 전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리리.
“어때?”
“···전기를 이런 식으로 써? 아니, 정령을 이런 식으로 쓴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어.”
“너희는 전기를 안 써?”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왕국에서는 연금술사하고 자연공학자들 연구소에서만 썼었어. 종교적인 이유가 컸지. 먼 곳의 어떤 도시에서는 더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지만······.”
내 예상대로, 이계는 완전 야만적인 곳은 아니었다.
정작 내가 머물렀던 곳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
“그런데, 마을 단위에서 독자적으로 운용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어. 아무리 영토 간 문화 격차가 크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리리의 입장에서는 불가사의 그 자체일 테지. 핸드폰이나 컴퓨터 보면 그냥 마법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을 거다.
일은 끝났으니, 이제는 셀피가 지도를 완성해서 가져다주기까진 시간이 남았다.
오랜만에 황금 지침을 꺼내 보았다.
화살표는 정확히 버뮤다 숲 쪽을 향하고 있었다. 다음 황금의 유물 위치겠지.
녹색 보석이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이제 빈 홈의 개수는 열한 개였다.
방랑자의 활 같은 보물이 열한 개나 더 남았다는 뜻이었다.
“···다 모으면 거의 아이언맨 될 거 같은데?”
“뭐가 된다고?”
“그, 있어. 강철 갑옷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백만장자.”
“···? 천공의 기사 말하는 거야?”
“뭐야. 너희 동네에도 그런 캐릭터가 있어?”
“전설 속에만 있어. 천구를 따라 흐르는 거대한 섬에서 내려와 죄인을 벌하는 기사에 관한 이야기. 백만장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비슷하네.”
리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슬쩍 웃으며 다시 지침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딜 가리키는 걸까? 숲은 아니던데.”
시간이 났을 때 버뮤다 숲에 방문했었다. 그런데 지침은 꿈쩍도 하지 않더라.
여기보다 훨씬 더 동쪽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정지훈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지금 인류가 유일하게 진출할 수 있는 구역은 남쪽이라고.
서쪽은 황무지가 너무 넓어서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했다지? 그런데 나머지 방향에 대해서는 정확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거부터 들어볼까?”
OWIC, 최소한 정지훈은 최근 내가 부탁하는 건 다 들어주고 있었다.
이건 좀 예민한 비밀일지도 모르지만, 물어봐서 나쁠 거 없다고 여겼다.
“셀피.”
「듣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
“그 안에 있는 거 불편하지 않아?”
「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곳이 안식처로 무리가 없다는 의미가 돼요. 물론, 정기는 계속해서 필요하지만요.」
“정기를 꾸준히 공급해줘야 할까?”
「이 아래로 지나가는 산의 뿌리에서 잔뿌리를 하나 끌어왔어요. 걱정하실 필요 없답니다.」
그것참 편리하네.
잔뿌리에 흐를 정기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쓰고 남으면 나도 좀 쓸 수 있지 않을까?
“지도를 받으려면 다시 뿌리 안으로 들어가야 하려나? 너는 어쨌거나 본체가 아니라 떨어져나온 일부잖아?”
왕복 몇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다.
조금은 번거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일지라도, 뿌리에 연결만 되어 있다면 떠난 아이들은 이곳을 찾아올 거랍니다. 당신께서 직접 우리를 위해 움직여주실 필요는 없어요.」
“오, 혹시 언제 완성될지도 알 수 있을까?”
「지금이라고 하네요.」
“···?”
그 대답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주변 땅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위협적이라고도 볼 수 있었으나, 나와 리리는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산의 뿌리에서 맡았던 그 향기가 동시에 피어올랐으니까.
“생각보다 장난기가 있네.”
「유희를 즐기는 건 어느 생명이든 같답니다. 모두가 거기에서 진리를 배우니까요.」
그와 동시에 눈앞에 이 근방의 지도가 펼쳐졌다.
영화 속에서 보던 홀로그램의 형태로, 실로 엮은 조형물이 드넓은 지형을 표현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큰 가죽을 준비해놓았다. 지도를 받아 그리기 위해서였지.
넓게 퍼졌던 추상적인 모형은 그대로 가죽 속으로 빨려 들어와 하나의 지도가 되었다.
「주인께서 찾던 게 그 안에 있기를 희망합니다.」
***
그날 저녁, 진서연은 반차를 낸 뒤 강선후를 찾아갔다.
최근 들어 이계를 너무 많이 왕복한 터라 몸에 부담이 가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사흘 밤샘 업무를 몬스터 네 캔으로 버텨내는 그녀는 소문난 강골이기도 했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강선후의 오두막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 어?”
“서연 씨? 또 오셨네.”
“이거, 발전기 결국 만드셨네요. 와···.”
여기저기 매달려 있는 전구가 오두막 주변을 적적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나무 사이에 만들어진 투박한 오두막.
여기저기에 매달려 있는 황색의 전구들.
“···예뻐요. 뭔가, 로망을 자극하는데요?”
진서연은 잠시나마 최초의 목적마저 잊은 채, 멍하니 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로 완성되었네요. 저는 솔직히 시행착오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없진 않았죠.”
진서연은 전문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변적일 게 분명한 생체 전압의 한계, 원재료 공급 문제, 유지보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선후는 보란 듯이 발전기에서 나오는 전기를 벌써 사용하고 있었다.
후에 생체 전기가 보편화된다면, 강선후가 보여준 걸 전례로 삼아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삐이이이——
전기 포트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적적한 공기를 흔들었다.
“커피 한잔하실래요?”
“아뇨. 괜찮습니다. 오늘 카페인 오버해서요. 그보다 선후 씨. 저랑 거래하실래요?”
“거래요?”
“제가 좋은 정보를 알려드릴게요.”
“회사 기밀인가요?”
“회사도 모르는 기밀이에요. 저랑 지훈이만 알고 있는 거거든요.”
강선후가 구미를 당겨 한다는 게 느껴졌다.
“원하시는 게 뭔데요?”
“동업이요.”
이게 진서연이 내린 결론이었다.
강선후의 업적을 뒤따라가는 건 그 자체로 벅찼다. 그리고, 매번 이 남자가 가지고 오는 물건에 뒤늦게 침을 흘리며 바라보는 경험도 더는 겪기 싫었다.
그래서 진서연은 정지훈과 토론을 한 끝에 어떤 결론을 내렸다.
우리라도 따로 강선후에게 붙자. 그의 스폰서가 되자.
“솔직히 선후 씨랑 거래 한 번 하겠다고 매번 회사에 허가받고, 신경전하고, 보고서 쓰고···. 그 사이에서 줄 타는 것도 지쳤어요.”
“그래서 제 쪽을 선택한다는 거예요?”
“완전히는 물론 아니에요. 회사는 적당히 직원으로서 다니고, 기대는 선후 씨에게 걸고.”
“···제가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확신해요. 처음부터 그랬어요.”
‘대체 뭘 보고 그러는 걸까?’라는 의문에 빠진 듯, 의자에 앉아 컵을 홀짝거리는 강선후는 잠시 눈알을 굴렸다.
진서연은 그런 강선후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진지한 태도였다.
“제가 이계에 대해서 알 기회를 주세요.”
“이유가 뭐예요? 돈? 아니면 창업?”
“······.”
진서연은 차라리 여기에선 솔직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로망이요. 먹고사는 걸 포기할 용기는 없었지만.”
더 설명하면 너무 구구절절이고,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웃어넘길 게 분명한 단어였다. 진서연이 그저 묵묵하게 연구에만 몰두하게 된 계기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을 기대를 버려서였다.
그녀는 괴짜였다. 그리고 괴짜는 타인에게 공감받을 수 없는 사람을 의미했다.
“신기한 곳이잖아요.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우선 가지고 오신 정보나 들어볼까요?”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강선후는 이 시점부터 더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서지아는 엘프예요.”
“알고 있는 사실이네요.”
“네?”
“계속 들어볼게요.”
“······베이스캠프가 아직 완성되기 전, 우리가 차원문을 틀어막는다는 발상을 하기도 전에 우리 세상으로 넘어왔어요. 중요한 건 서지아가 동쪽에서 온 유일한 방문객이라는 거예요.”
“······.”
진서연은 속으로 ‘됐다!’라고 외쳤다.
이 시점부터 강선후가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우리가 동쪽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버뮤다 숲 때문이 아니에요. 까짓거 그냥 멀리 돌아가면 그만이잖아요? 숲이 무한한 것도 아니고.”
“위험한 곳이라면서요?”
“위험으로 인해서 접근 금지된 건 표면적 사유, 일부러 그곳이 위험한 것처럼 꾸몄어요. 구체적으로, 동쪽에는 장벽이 있어요.”
“장벽이요?”
강선후는 처음으로 진서연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피부가 녹을 정도로 강한 독기로 만들어진 장벽. 이건 AO-3등급 기밀이에요. 서지아는 그걸 넘어왔다고 하더라고요.”
강선후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진서연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
어떤 행동을 앞두고 ‘해도 되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강선후의 잔에 든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사라질 때까지, 강선후는 말없이 잔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끝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두막 안으로 향했다.
“들어오세요. 보여줄 게 있으니까.”
진서연은 한층 더 기대를 올리고 강선후를 따라 들어갔다.
그 안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일부러 꺼둔 전등은 그 적적한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뱀파이어가 자리에 앉아 진서연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한 번 보세요. 이 정도는 보여드려도 괜찮을 거 같아서요.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은 못 해 드리겠지만요.”
진서연은 강선후가 책상에 펼친 큰 가죽 두루마리를 바라보았다.
“지도인가요?”
“이 근방 지도입니다.”
“네? 이 근방 지도요?”
진서연의 눈이 커졌다.
이 근방 지도라니.
한눈에 봐도, OWIC에서 접근하지 못한 곳까지 그려져 있었다.
심지어, 동쪽의 ‘장벽’ 너머마저도.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 지도를 요청한 사람이, 회사조차 만들지 못한 영역의 지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놀랄 시간조차 없었다.
“이거, 어떻게 보이세요?”
강선후가 가리킨 부분. 동쪽 장벽 너머에 있는 하나의 ‘유적지.’
평면적인 지도였으나, 아무리 봐도 유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인위적인 도형이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강선후는 그 유적 자체에 의미를 둔 게 아니었다.
“···선후 씨. 이건······.”
“제가 착각하는 게 아니죠?”
그 유적의 구조는 원형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도형’을 암시하고 있었다.
진서연은 강선후의 의도를 이제야 파악할 수 있었다.
“···룬 문자인가요?”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에서, 유적 전체가 하나의 룬 문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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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8. 탐험가, 그리고 스폰서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