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6
46화 – ep18 탐험가, 그리고 스폰서들 (2)
오두막 안은 어두웠다. 책상 바로 위, 밧줄에 매달려 좌우로 흔들리는 전구 하나만이 지도를 밝히는 유일한 광원이었다.
진서연은 전구를 잡아 지도 바로 위까지 끌어내렸다.
“이건 분명······.”
강선후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으나, 진서연이 탐구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었다.
이 지도를 대체 어디서 얻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만들었다곤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만들었다면 강선후는 지도에 표시된 것의 정체를 알 터였다. 허나 그러지 않았으니, 강선후가 이 지도를 만든 게 아니라 얻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건 확실히 룬 문자예요. 이거, 혹시 따로 메모해두신 건 아니죠?”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이런 지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밖에 안 되지 않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보여드린 거예요. 많이 당황했거든요.”
그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강선후의 표정은 평안했다.
“···지형이 룬 문자의 형태를 하고 있다니.”
“회사에서는 룬 문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요?”
“일종의··· 기술이요. 이계 고유의 법칙을 이용해서 개발된 기술이라고 가정하고 접근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쪽 담당이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지도에 정신이 팔렸다.
이 정도로 되는 고급 자료를 얻어본 게 대체 얼마만일까?
강선후와 같이 하기로 결정한 지 불과 5분 만에 진서연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에까지 도달했다.
“···이계에 우리 상식을 적용할 수 없지만, 인공적인 조형이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아요.”
“유적이겠죠. 아마도.”
강선후는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서연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도에서 알 수 있는 건 이게 인공적인 지형이고 룬 문자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강선후는 그걸로 만족하는 듯했다.
“저, 여기 가볼 예정이에요.”
“네?”
진서연은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이곳은 동쪽 장벽을 건너가야 해요. 그리고 동쪽 장벽은 굉장히 위험해요.”
“독기로 이루어진 장벽이라고 했죠? 가까이만 다가가도 피부가 녹을 정도로요.”
강선후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진서연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사람, 이계에서 최소 7년 동안 살았던 사람이었지.
“하지만, 서지아는 그 장벽을 넘어온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렇죠···.”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원래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진서연은 지금 강선후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
독기의 장벽은 그 누구도 넘어갈 수 없었다. 최소한 회사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그 장벽을 넘어온 한 명의 엘프가 지구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의문이긴 했으나, 애초에 이계에 대해서 전부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무언가 방법이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저 우리가 그걸 모를 뿐.
“의문이긴 했어요. 그래서 저희도 알아보고 있었고요. 서지아한테 물어본 적은 있는데···.”
본인도 넘어온 기억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정확히 그렇게 말했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 장벽은 독기가 아니라 환각 성분일 거예요.”
그는 지도를 접으며 말을 이었다.
“장벽의 정체는 간단해요. 이 땅에서 흐르던 마력이 균열에 모였다가 뿜어져 나오면서 만들어지는 벽이에요. 일종의 대규모 간헐천이죠. 이계 마력의 간헐천.”
“······.”
“그리고 그건 각 지역마다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에요. 땅의 성질이 각지마다 다르거든요.”
진서연은 강선후가 하는 말을 뇌에 새길 각오로 귀담아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장벽의 효과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가본 적도 없는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땅의 기운을 먹고 자라는 게 뭘까요?”
“···숲이요?”
“맞아요. 버뮤다 숲이 자신을 지킬 때 주로 쓰던 공격이 뭐던가요? 왜 그 숲에는 ‘버뮤다’라는 이름이 붙었죠?”
진서연의 생각은 길지 않았다.
“···환각.”
“정답. 자생하는 식물들의 주성분을 알면 그 땅이 품은 마력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거든요. 특히 버뮤다 숲은 장벽과 가까이에 있잖아요? 분명 그 장벽은 환각 가스로 이루어져 있을 겁니다.”
“······.”
“근데, 왜 회사는 당신들한테 거짓말을 했을까요?”
진서연은 생각했다.
이건 분명 3등급 기밀이다.
기밀 자료실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감춰둔 진실을 적어두는 곳이다.
그런데 거기에 적힌 것마저 거짓말이라고?
“···이상하긴 해요. 단순하게 짙은 독기가 있는 곳이라면 굳이 특수 기밀등급까지 지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오히려 밝히는 쪽이 관리에 수월했을 테니까요. 이전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거긴 한데, 선후 씨 말을 듣고 보니까 확실히 뭔가 이상해요.”
“이건 답례로 알려드린 거예요. 서연 씨가 저한테 먼저 호의를 보였으니 이 정도는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저, 돌아가 볼게요. 생각할 게 좀 있을 것 같아요.”
“너무 맘 급하게 먹진 마세요.”
강선후는 차분하고, 평온했다.
하지만 그가 진서연에게 던진 숙제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역시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네요.”
진서연은 이 시점에서 완전히 확신했다. 이전에도 의심하지 않았으나,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듯한 확신이었다.
회사를 향한 미약한 신뢰의 근간은 오히려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
평소에 생각했던 거다. 내 입장에서는 딱히 새로울 법한 이야기도 없었다.
지구에서 차원문이 처음 열린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이런저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갈등, 그리고 선점한 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의문점투성이인 그 배경.
이런 분위기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었다. 예전에도 이런 건 재미 없다고 느낄 뿐이었으니까.
“리리.”
의자에 앉아서 약초차를 마시다가 텃밭을 가꾸고 있는 리리를 불렀다.
“응.”
“넌 왕실 출신이라고 했지?”
“응.”
“너네 왕실도 막 국민들 속이고 그랬어?”
“음······.”
꽤 예민한 질문일 수 있는데, 리리는 의외로 초연했다.
“난 그때 어렸으니까 정치는 잘 몰랐어. 그래도, 그러지 않았다고는 말 못 하겠는데.”
스윽—
리리는 이제 고개를 많이 내민 새싹 주변의 흙을 조심스런 손길로 꾹꾹 눌렀다.
“질서를 위해서라면 가끔 진실보다 거짓말이 유용할 때가 있으니까.”
“오랜만에 그럴 듯했어.”
“흥.”
텃밭을 가꾸는 동안 리리는 평소보다 더 온순해진다. 내가 농담삼아 던진 말에도 그저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리리마저 저렇게 생각하는데, 그보다 더 악독하면 악독할 지구 사람들이 안 그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장 한 달 전에도 정지훈이 음모론을 역이용한 전적이 있잖아?
하지만··· 뭐든 간에 내 알 바 아니다.
지도를 펼쳤다.
“이번 목적지는 여기야.”
“이번에는 진짜로 본격적이네. 룬 문장의 형태를 한 유적이라니.”
“재밌지 않겠어?”
“···지루하진 않겠네.”
“여기에는 분명 그럴싸한 보물이 있을 거야.”
뭣 하러 저쪽에 신경 써?
저들끼리 알아서 쿵짝하라지.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우리는 지도를 펼치고 토론에 매진했다. 이번에는 거리도 멀고, 지형도 굉장히 복잡했으며 장애물도 많았다. 그냥 무작정 방향을 알았다고 출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침을 지도 옆에 두고 방향을 정확히 맞췄다. 이 지침이 가리키는 곳이 유적지일 거라 가정하고 나침반 삼기로 했다.
경로에는 몇 가지의 경유 지점이 있었다.
순서대로 버뮤다 숲을 지나 산맥을 넘으면, 장벽을 만나게 된다.
그 뒤에는 이름 모를 거대한 숲이 평야를 따라 펼쳐진다. 그 내부에 바로 목적지인 유적이 있었다.
대충 봐도 도보로 한 달은 걸릴 거리였다.
“셀피, 혹시 이곳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을까?”
「그 지도에 표시된 지형보다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산의 뿌리를 통해서 방문했을 뿐이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지도 외에는 의존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었다.
“장벽은 어떻게 하려고? 그건 당신이 뭘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어. 신이 이 땅에 그어놓은 경계니까.”
리리의 문화에서는 그게 신의 뜻으로 통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세계를 방랑하며 여러 장벽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는 그걸 통과하는 법을 알아.”
정확히는, 배웠다.
내가 머물렀던 도시의 외벽은 저 ‘장벽’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
요즘 차소희는 올 때마다 해먹에 누워서 흔들거리기 바빴다.
“그게 그렇게 좋냐?”
“나 이거 어렸을 때부터 로망이었거든. 괜히 티비에서 보면 로망 생기는 거 있지 않아?”
모르진 않지. 정작 직접 경험해보면 별 거 아닌데, 로망만 가득 차는 거.
“나는 그거였어. 내장 볶음. 막상 먹어보니 입에 안 맞더라.”
“텔레토비 보면서 스마일 쿠키 먹어보고 싶다는 거랑 비슷한 거지.”
“···너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긴 했네.”
“뭐? 왜?”
“요즘 애들 그거 모를걸.”
“헐, 요즘 애들이 ‘순수 재미’를 모르고 자랐네. 안쓰러워라~.”
“너 진짜 어디 가서 그런 얘기하지마. 쪽팔려 죽겠네.”
“아, 뭐! 즐!”
차소희가 대놓고 깝죽거리기 시작하면 이쯤에서 그만둬야 한다.
물론 둘둘 마는 것도 잊지 않았다.
“풀어줘어어어!”
멀어져가는 그 외침을 애써 무시하며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연금술 연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니 가열 온도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할 수 있는 작업이 많아졌다.
“···집을 넓혀야겠네.”
별거 안 한 거 같은데, 통장에 들어있는 돈이 2억 후반대였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아무리 물욕이 없어도 이 정도의 돈이 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대 사회에서 돈은 더 많은 기회를 의미하니까.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이번에는 물약을 많이 만들어갈 거야.”
텃밭을 일군 노력이 드디어 결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각종 연금술 재료로 만들어내는 기상천외한 물약들.
“들고 다니기 무겁겠네.”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던 리리가 넌지시 말했고, 나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엄청 무겁긴 할 거야. 그래도 뭐 별수 없다. 몸 좀 힘든 게 나중에 문제 생기는 것보단 나으니까.
“이제 좀 쉬자. 밥 먹을까?”
“응. 나 이번엔 매운 걸로.”
“···먹다 보니 입에 붙었나 보네.”
국밥은 못 참긴 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여유나 부리려고 했는데.
“···인간!”
밖에서 익숙하면서도 그러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나중에 먹자.”
“응.”
밖으로 나가보니, 차소희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고, 그 시선이 닿는 방향에는 내가 아는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정지훈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이 사람도 나한테 협조한다고 했었지? 진서연이 분명 그랬는데, 실제로 방문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안 죽었네?”
“우리 목숨은 뒤지게 질기거든.”
서지아였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다리에는 붕대, 얼굴도 절반은 붕대로 감싸져 있었다. 귀를 감싼 건 아마 감추고 싶은 게 있어서일 것 같은데.
목발을 짚은 채 내 앞에 있는 서지아는 그 부상에도 불구하고 눈빛 하나는 살아 있었다.
“···왜 왔어? 이제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하면서 정지훈 쪽을 바라보았다.
“저, 죄송합니다. 이 자가 그······.”
“우리는 빚을 절대로 잊지 않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선후 씨를 도와준다고 하는데 굳이 말릴 이유도 없어서··· 제가 대동해서 왔습니다.”
서지아가 나한테 도움을 준다고?
“너, 동쪽으로 가려는 거야?”
그러고 보니 서지아는 동쪽에서 장벽을 건너온 유일한 엘프라고 했다.
아마 그 부분에서 할 말이 있는 모양인데.
“장벽 때문이면, 나 그거 넘는 법 알고 있는······.”
“아니, 너 그대로 동쪽으로 가면 죽어. 장벽이 아니라 그 너머가 문제야.”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아서 의자에 앉았다. 서지아는 키가 큰 편이라 그 앞에 앉으니 그늘이 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여유로운 손길로 약초를 엮으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할 말이 많긴 한데 우선 본론부터, 성좌의 선택을 받지 않은 자는 장벽 너머에 있는 거대 숲에 들어갈 수 없어. 들어가자마자 저주를 받을 거야.”
성좌?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단어인데.
대답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갑자기 생각이 많아져서 뇌에 부하가 온 탓이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그 끝에 내가 던진 질문은 이거였다.
“···만약에 받았다면?”
서지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럴 리 없잖아? 인간이 성좌의 가호를 받았다고? 신의 외면을 받은 종족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세상에는 절대라는 게 없잖아. 지구에 사는 네가 그걸 증명하기도 하고.”
“어떤 미친 성좌가 인간을 가호해?”
“어떤 미친 엘프님은 지구에서 사시던데?”
“······내가 도와줄게. 엘프는 종족의 성좌가 존재하니까,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조금 더 회복하면 그때 같이 가자.”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은 귀찮아질 거 같아서 확실하게 말하기 위해 서지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말을 끊고 멍하니 있자, 서지아도 제법 당황했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마, 날 바라보는 그 시선은 퍽 이상하겠지.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손가락을 간신히 들어 서지아의 어깨너머,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저 하늘 멀리 점처럼 작게 떠다니는 부유체.
“얘기하는데 어디에 정신이 팔려 있는 거야?”
“저······.”
“저?”
저 풍선, 저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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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8. 탐험가, 그리고 스폰서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