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50
50화 – ep20 격동의 사계 (1)
***
삼각형 모양의 유리판을 들어 바라보았다. 내 모습이 깨끗하게 비쳐 보였다.
이건 이 유적 전체를 덮었던 돔 모양의 방호벽이었다.
혹시, 이걸 다시 전개할 수도 있는 건가?
“좋을 거 같긴 한데······.”
너무 과하게 거창하다.
나한테 이런 능력이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팔아야 하나? 또 근데 팔기에는 아까운데··· 이런 경우에는 한 가지 다른 선택지가 남아있다.
“이건 콜렉션이다.”
수집 취미는 한 번 빠지면 진짜 못 참거든.
이계는 수집 취미를 병행하기가 아주 좋은 곳이다. 이런 것들을 동기부여 삼아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뒤 가방 속에 대충 쑤셔 넣는데, 난데없이 엘프 놈들이 대가리를 박았다.
“저희가 명가의 후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맥락도 없이 태세 변환이 너무 빠른 거 같지만, 이제는 나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사람 사이의 일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 정도로 겪어보면 감이 안 올 수가 없잖아?
리리를 팔꿈치로 툭툭 찌르며 말했다.
“내가 지배자의 뭐시기라 이러는 거지?”
그런데, 이번에도 내가 잘못 짚은 모양이었다. 리리가 고개를 가로저었으니까.
“반만 맞아.”
“···반만?”
“당신이 명가에 관계된 사람일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
명가라.
그러니까, 이름난 가문을 말하는 거겠지.
“내가 이 숲에 해코지를 할까 봐?”
“아마도.”
그러니까, 지배자는 명가와 관련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고, 명가는 맘에 안 드는 놈을 가만히 두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 엘프들은 이 일로 인해서 본인들에게 보복이 가해질 걸 두려워하고 있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남쪽 마을의 신도도 내가 어디 명가의 후손이냐는 것부터 물어봤다.
모든 지배자가 명가는 아니지만, 확실히 명가로부터 비롯된 지배자가 많은 모양이지. 당장 리리도 그렇다니까.
하지만 난 명가가 아니다.
진주강씨 관헌공파 28대손이 명가라고 우긴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들이 말하는 게 이런 건 아닐 테니까.
하지만, 이놈들이 날 명가라고 착각해서 귀찮은 게 사라진다면 구태여 진실을 떠벌릴 이유는 뭔데?
“큼, 흠.”
목을 가다듬었다.
“이 유적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이곳은 엘프의 성좌, 엘신의 가호를 받은 성역입니다. 그 외에는 모릅니다. 저희는 그저 수도를 위해 이 숲을 방문한 변방의 부족 출신인지라···.”
그렇구만.
쓸모가 없네.
“다만.”
대장 엘시니가 고개를 슬쩍 들었다.
“다만?”
“최근에 명가로 추정되는 몇 무리가 이 숲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수색보다는 사전 정찰로 느껴졌는데···.”
“아까 말한 인간 침입자가 그들이었나?”
“아닙니다. 인간은 다른 이들이었습니다.”
명가의 무리라.
오히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더 기대가 차올랐다.
그만큼 가치가 있는 유적이라는 말이잖아?
“가라. 내가 허락할 때까지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저, 혹시, 저희를 용서······.”
“용서를 생각한 건 아니지만, 따로 조처하진 않겠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그저 수도승일 뿐입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들은 그런 말을 남기고 빠르게 물러났다.
나는 리리를 바라보았다.
“어때.”
리리는 ‘하’ 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럴듯했어.”
“나중에도 쓸 데가 많으려나?”
“여기가 변방이라 가능한 거야. 엘프들은, 특히 수도승들은 바깥의 이야기를 잘 모르니까.”
“그래?”
“어딜 가든 명가라고 대접받았다면 내가 방랑하던 시절에 그 고생을 할 일도 없었겠지. 오히려 배척하는 곳도 있어. 특히 대륙 북쪽이 그래.”
리리는 전란에서 탈출한 이후 꽤 오랜 시간을 방랑하며 시간을 보낸 모양이었다.
구체적으로 듣진 못했지만 고생을 좀 한 모양인데.
엘프들이 떠나는 걸 본 뒤 고개를 돌렸다.
“중요한 건 이거잖아?”
리리와 나는 전방에 펼쳐진 유적을 올려다보았다.
넓게 둘린 외벽, 다채롭게 장식된 곧은 기둥과 그 위에 얹혀 있는 아치 구조의 통로들, 돔 형태의 지붕들.
사람의 손길을 닿지 않은 지 얼마나 지난 걸까?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은 지 얼마나 지난 걸까?
차마 발을 들이기도 주저된다. 맨 처음 만난 미지의 무언가는 항상 이런 느낌을 준다.
리리도 나와 같은 기분인 모양이었다.
“고대 도시의 문명이야.”
“본 적 있어?”
“가끔 건물 한 채 정도. 우리 지난번에 발견했던 그 지하 사원 같은 것들.”
또각—
바닥은 포장되어 있었다 그렇게 크지도 않은 이 유적에마저 도로가 깔려있다는 건, 그만큼 거대한 문명의 잔재라는 걸 의미한다.
“몇 년이나 되었을까?”
“이 시대에 관련된 모든 것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숲 한가운데에 있는 유적에는 해가 내리쬐고 있었다.
밀실로 느껴질 정도로 울창한 숲 한가운데, 뻥 뚫린 하늘에 고개를 치켜세우고 양껏 햇빛을 받아내는 유적.
위에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어쨌거나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명확했다.
첫 번째로 이곳이 룬 문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
두 번째로 이곳에 황금의 유물이 묻혀 있다는 것.
하나씩 차근차근 조사해보기로 했다. 조급해할 거 없었으니.
“이곳은 무슨 용도였을까?”
리리도 호기심이 동한 듯, 이곳저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3층에서 4층 정도 높이의 첨탑이 여기저기에 보였고, 유적 가운데에는 10층도 훌쩍 넘어갈 높이의 피라미드 모양 탑이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았다.
“1층짜리 건물들은 아마도 상가였던 거 같아. 민간 거주지라고 치기에는 창이 크네.”
“그렇다면, 여기는 마을이었을까?”
“거주 구역이라 생각하기에는 또 규모가 애매한데.”
유적 중앙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다. 넓은 공간에 화단으로 보이는 것들이 대칭 형태로 놓여 있었고, 바닥을 이루는 벽돌은 다른 것보다 훨씬 더 정교했다.
이곳이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걸 의미했다.
“흐음.”
광장 가운데에 섰다. 나와 탑 사이에는 허리보다 조금 더 높은 크기의 제단이 있었다. 사람 둘은 누울 수 있을 정도로 크고 판판한 형태의 제단.
10층 크기의 피라미드형 탑을 올려다보았다.
예전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상상했다. 그들은 언젠가 이곳에 서서 나와 같이 저 풍경을 바라봤으리라.
첨탑에는 작은 구멍 같은 게 여러 개 뚫려 있었는데, 딱히 어떤 규칙성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은 아닌 거 같은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릎을 굽혀 땅에 손바닥을 데 보았다.
“카츠kaahz.”
카츠kaahz는 문자의 시동어. 법칙은 간단하다. 룬 문자의 정 가운데에 내 신체 일부를 접촉하는 것.
신체 일부라면 심지어 오래되지 않은 피여도 가능하다.
이곳은 유적 전체가 룬 문자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번 해본 거다.
“···안 되네.”
리리가 내심 아쉬워했다.
그럴 만했다. 지도로 봤을 때 이 유적은 룬 문자의 형태를 띠고 있을 뿐 완성된 형태는 아니었다. 과거 언젠가 투석기를 맞고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황금 지침은 빠르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유물은 어찌 되었든 이곳에 있다는 거지.
“어떻게 하지?”
리리는 고민에 빠졌다.
“저 삼각탑,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왔는데 입구가 없었어. 무너진 게 아니라, 아예 입구가 없었어. 그렇다면 애초에 출입을 생각하지 않고 만든 건물이란 건가?”
그렇게 말하며 제단에 다가갔다.
“제단 위에 모래가 쌓여 있네.”
그 말을 들은 나도 다가가 보았다.
말 그대로 모래가 정갈하게 깔려있었다.
처음에는 풍화의 흔적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까 인위적으로 위에 깔아둔 것처럼 보였다.
어떤 광석을 갈아서 만든, 투명하고 입자가 고운 모래였다.
“왜 모래가 이렇게 쌓여 있지? 이유가 있을까?”
계속해서 중얼거리던 리리는 오래되지 않아 내 시선을 눈치챘다.
“왜 그렇게 봐?”
“너도 이제 꽤 몰입하는 거 같아서.”
“당연하잖아. 두 번째 유물을 찾아야 하니까.”
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제단 위에 걸터 앉았다.
“구경이나 좀 하지 뭐. 밥 먹을까? 아직 선짓국 하나 남았는데.”
리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급할 필요 없잖아.”
리리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내 옆에 앉았다.
“당신은 여유로워서 좋겠네.”
“내기할까?”
“무슨 내기.”
“너도 조만간 나처럼 된다.”
“그럴 리가.”
리리와 나는 그렇게 앉아서 식사를 마친 뒤 휴식을 취했다.
몸이 근질거렸는지, 리리는 다시 일어나서 이곳저곳을 쏘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제단 위에 쌓인 모래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던 중 뒤쪽으로 갔다 온 리리가 쪼르르 달려왔다.
“이것 봐.”
묘하게 텐션이 높아 보여서 살짝 갸웃했는데, 그 품속에는 먼지투성이의 무언가가 하나 안겨져 있었다.
“뭔데?”
리리가 내민 건 이런저런 기계 장치로 이루어진···.
고양이였다.
양쪽 눈은 뭔지 모를 보석으로 되어 있었고, 가슴에는 초록색의 섬세하게 세공된 보석이 박혀 있었다.
인형이라기보단 로봇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 것 같은 생김새. 당연히도 작동은 하지 않는 상태였다.
리리는 그걸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귀여워.”
“취향 독특하네.”
은근히 저런 걸 좋아한단 말이지. 나는 다시 제단을 내려다보았다.
모래라. 왜 이곳에 모래가 있을까?
고대의 문명에서 종교적인 의식을 했다고 쳤을 때, 거기에서 모래가 필요한 일이 뭐가 있었을까?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리리.”
“응?”
“룬 언어는 고대의 문명에서 만든 걸까?”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확히는 몰라. 하지만, 룬 언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 명사 중에 고대의 문명을 암시하는 게 많아. 그래서 마법사들은 고대 문명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을 미는 중이야.”
룬 언어가 고대의 문명에서 비롯된 언어라면.
고대의 문명에서 행해진 의식에서도 룬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룬 언어 중에서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 같은 문장.
실용적인 효과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문장.
난 그런 문장을 하나 알고 있었다.
제단 위 모래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수직으로 곧은 선을 길게 그었다.
모래는 내 손가락에 담긴 의도를 완벽하게 존중했다. 처음부터 무언가가 그려지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리리도 다가와서 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건 내가 아는 룬 문장 중에 처음 배운 것.
어쩌면, 날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준 문장.
이계에서 조난당한 내 정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나의 동앗줄이 되어준 문장.
『신에게 버림받은 황금의 왕국, 나는 그곳에 왕의 검을 묻었도다.』
『왕의 검을 손에 쥔 자.』
『영원한 왕좌에 앉으리라.』
“카츠kaahz.”
모래가 일렁이더니 도시의 형태가 된다.
열두 개의 구슬이 그 도시를 감싸고, 종국에는 검 하나가 수직으로 떠오른다.
항상 보던 모습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걸 바라볼 때마다 두근거림을 느낀다.
열두 개의 구슬 중 두 개가 빛나고 있었다.
하나는 내 문신과 공명하고, 다른 하나는 리리의 문신과 공명한다.
리리는 내 곁에 서서 빤히 바라보다가 마찬가지로 모래 위에 룬 문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카츠kaahz.”
리리가 만든 문자는 하나의 산이 된다.
마찬가지로 열두 개의 구슬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딸깍—.
제단 안쪽에서 스위치가 눌리는 소리가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가슴 속에는 기대감이 들어찼다. 몽글몽글한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머리로 올라왔다.
고개를 들어 삼각탑을 바라보았다.
“······.”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보통 이럴 때는 ‘위이이잉’ 한다든가 ‘쿠구구궁’ 한다든가, 뭔가 극적인 반응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그 순간.
폴짝—
무언가 제단 위로 뛰어올랐다.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해서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고양이가···.”
리리가 안고 있었던 기계 고양이가 그 다관절 꼬리를 휘적이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뜬금없는 상황을 나는 그저 바라보았다.
이거, 방금까지만 해도 작동하지 않았던 그 고양이 로봇이잖아?
“···하.”
헛웃음이 나왔다. 무언가 비밀을 풀어낸 결과가 겨우 이 고양이의 가동이라고?
“재밌네. 대체 누가 만든 유적인진 모르겠지만.”
리리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그런데, 잠깐.
“···가동을 중지한 기계 고양이가 가동했다고?”
이거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사소하지만, 잠들었던 유적 일부가 깨어났다는 의미가 되잖아?
그렇게 생각한 순간.
“미야앙!”
고양이가 경쾌한 표정으로 울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고양이의 두 눈에서는 또렷한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모든 건 그걸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구구구구—
유적의 벽이 땅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진동은 점점 더 커졌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인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느릿하지만 확실하고 거대한 움직임이었다.
눈을 감았다.
“탐-탓사Tham-tatha.”
이 유적 위를 비행하는 맹금류의 시선을 빌렸다. 그들의 시야는 너무나 또렷하고 넓게 이 유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삐—익!”
솟아난 벽은 모자란 부분을 채운다.
문자가 되지 못한, 허나 가능성을 품었던 거대한 마법의 부족한 영역을 잇는다.
눈을 뜨자 제 모습을 찾아가는 삼각탑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 시절의 로망을 책임져줬던 변신 로봇처럼 탑은 분주하게 재조립된다.
문자의 필요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리리가 내 옷깃을 잡는 게 느껴졌다. 예고 없는 거대한 변화에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나는 신중하게 단어를 내뱉었다.
“카츠kaahz.”
거대한 룬 문자의 정 중앙에 선 채 읊조린 시동어는 그 역할을 다한다.
탑에서 시작된 빛줄기가 하늘을 꿰뚫을 듯 솟아올랐다.
***
진서연과 정지훈은 출장 업무를 위해서 베이스캠프에 대기하고 있었다. 한 달에도 몇 번이나 있는 일이었기에 별생각 없이 여관에서 커피를 한 잔씩 하고 있었다.
“에효. 출장 업무 진짜 귀찮아.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그 사람이 출발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가네요.”
“강선후 말하는 거지?”
정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시킨 커피는 이미 다 식어 있었다. 카페인도 안 받으면서 커피를 시키는 걸까? 진서연은 항상 그게 의문이었다.
“내가 목적지에 대해서 좀 들었는데, 한 달은 무슨 왕복 세 달은 걸릴 거리더라. 숲도 엄청 컸는데···. 걱정은 안 한다마는 이계가 워낙 말도 안 되는 곳이잖아?”
“그렇죠.”
“그 사람이 이계 전역을 돌아다녀 본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신경이 안 쓰이진 않더라고.”
“어느 정도 쓰십니까?”
“음··· 이십 퍼센트 정도?”
“나머지는 뭡니까?”
“기대.”
정지훈의 미소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때.
“뭐야?”
“뭐···야. 저게?”
“폭발인가?”
“위성 공격 아냐? OWIC이 또 우리 몰래 이계에 위성 띄운 거 아냐?”
“넌 마 조용히 좀 해 봐라.”
여관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안쪽까지 들려왔다.
대체 무슨 소란일까.
진서연과 정지훈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칫 나쁜 일의 징조라도 된다면, 한시라도 빨리 대처해야 했기에 정지훈의 걸음걸이는 조금 더 빨랐다.
그렇기에, 그 표정이 멍해지는 것도 진서연보다 조금 더 빨랐다.
“왜 그래?”
진서연도 곧 같은 표정이 되었다.
“뭐야. 저거.”
이곳에서 동쪽, 정확히는 버뮤다 숲 방향.
아니, 더 정확히는 산맥 너머의 장벽 건너.
한낮에도 정확히 볼 수 있을 정도의 빛기둥이 보였다.
정지훈과 진서연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둘 다 저 일을 벌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
또르르르—
서울의 어딘가.
정지훈이 마련해준 임시 거처에서 머무는 서지아는 형광등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서 커피를 따르고 있었다.
한동안은 이곳에 조용히 머물러야만 했다. 서지아에게 무슨 소동이 일어났다는 건 하운드 업계에 싹 퍼져 있을 테니까.
“······.”
강선후와 리리에 대해서 생각했다.
두 명의 지배자가 한자리에 모인 건 절대로 가벼운 사건이 아니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정체된 이 시대에 생긴, 사소하지만 확실한 변화였으니까.
모든 건 신카 소왕국의 멸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신카의 멸망 이전부터 암시된 이야기였을 수도 있었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뎅—
종소리가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뎅—
서지아는 찻잔을 내던지다시피 내려놓은 뒤,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걷었다.
뎅—
서울 한복판에서 들릴 리가 없는 종소리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 아래,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 모두가 자리에 멈춰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뎅—
서지아는 이 종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엘 로크라 벨라el rokra bella.”
황금의 시대가 재림하리라 선언하는 전설의 종.
자격을 가진 이가 그 종을 울렸다.
모험과 영웅, 신화가 풍화되어 빛바랜 이 시대.
그 시대의 끝을 알리는 계절이 도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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