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56
56화 ep21. 와일드 헌트 (3)
탐험은 혼자가 될 일이 많다. 사실 요즘 세상에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나는 고정적인 동료가 없었다. 행선지가 일치할 때 동행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을 뿐.
그렇게 문명과 동떨어져서 돌아다니다 보면, 일상에서는 체감조차 못하던 인류 발명의 위대함이 엿보인다. 그런 걸 깨닫게 되는 것도 탐험의 즐거움 중 하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달력이었다.
시간은 해의 움직임으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지만, 날짜는 아니었다. 하늘에 짙은 구름만 며칠 껴 있어도 헷갈리게 되는 일은 흔했다.
하물며, 비교적 안전하게 여행한 지구 시절에도 그랬는데, 이계에서는 오죽했을까?
“……게다가 나는 독기 때문에 거의 미쳐 있었어. 제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한 기간도 돌이켜보면 정말 제정신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네.”
서지아는 내가 이계에서 조난당했다 돌아온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리는 모르는 일일 테니 대충 설명했다. 물론 지구에 관련된 내용은 빼고 말이다.
“당신한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좀 알 것 같은 게 있어?”
균열이 열리고 사람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아무리 사고가 많은 이계더라도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OWIC이야 애초에 이계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서 그들 입장에서는 그냥 모르는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을 뿐이다. 오히려 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
하지만 리리는 아니었다. 리리는 이계의 주민이잖아?
그래서 뭔가 단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 모르겠는데. 그런 현상은 문헌에서도 본 적 없어.”
“아쉽네.”
다시 준비에 집중했다.
“당신, 신경도 안 쓰여?”
“쓰여. 근데 별수 없잖아? 단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돼. 이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단서를 찾게 되지 않을까?”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럼 더욱더 많이 돌아다녀야겠네?”
서지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는 모든 생각이 다 거기로 통해? 돌아다니는 게 그렇게 좋아?”
“생각해 본 적 없어.”
“진짜 좋아한다는 뜻이네.”
저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딱히 이유가 없는데도 무언가를 한다면, 그건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더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나 목적을 정해 버리면, 오히려 거기에 매몰되어 즐거움이 반감될 테니.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생각할 거리가 하나 더 있네?”
내 말에 리리와 서지아가 목소리를 기울였다.
“뭔데?”
“나 몇 살이야?”
그 말을 듣고 서지아가 빵 터졌다.
“그러네? 오빠네요? 와! 나보다 오빠인 인간! 아하하! 처음 봐.”
“……엘프가 고양이 귀 헤드폰을 쓰고 오빠라고 부르는 장면을 내가 감상해야 해?”
얜 진짜 너무 한국인 된 거 아냐? 아무리 방랑자의 상이 문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재능을 타고났다지만, 이건 좀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기초 준비는 끝냈다. 아직 이틀이라는 제한 시간이 유효하니, 생각보다는 시간이 넉넉하게 있는 셈이었다.
“서지아. 부탁 하나 하자.”
“뭔데?”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순례자들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한테 와일드 헌트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만큼 알아봐 줘. 특히 규모나 방향. 이런 것들.”
나는 몸으로 부딪쳐서 배웠다. 다시 말해서 체계적인 지식이 아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의 지식을 듣는 건 중요했다. 더 구체적으로, 잘 알게 되는 건 굉장히 큰 도움이 되니까.
“자기는?”
“난 서쪽에 볼일이 있어서.”
이 말과 동시에 발전기에서 약간의 푸른 기운이 솟아올랐다.
* * *
서쪽으로 가서 셀피의 본체를 만나 이런저런 부탁을 했다. 스프리건은 이번 계획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예전에 스프리건이랑 뒤지게 싸웠다는 거 얘기했었지?”
텃밭 위에 가림막 작업을 하던 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오히려 와일드 헌트의 습격을 받았을 때, 나는 스프리건 덕분에 목숨을 건졌거든.”
“어떻게? 갑자기 도와주기라도 한 거야?”
리리의 의문에 나는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조금 생각에 잠겼다.
“아니, 스프리건이 와일드 헌트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내가 살 길이 생겼다는 거에 가깝지.”
그래.
이번 작전에는 스프리건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발전기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이제까지 봤던 것 중에서 가장 격렬한 반응이었다.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듯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셀피가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지.
내가 서쪽으로 갔다 온 사이에 서지아는 지구로 복귀했다. 어딜 갔는지 순례단도 캠프를 방치한 채 사라진 상황이었다.
이제 하루 남았다. 사실 하루면 좀 많이 남은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밥이나 먹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두 명의 인기척이 아니었다. 다섯 명이 넘는 사람이 마을 저편에서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어떤 집단에서 내게 방문하는 경우인데, 나는 그들이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다들 이계인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코스프레 같아서 퍽 우스웠지만, 이들로서는 순례단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정지훈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이제 슬슬 올 줄 알았지. 리리.”
“응.”
“오두막 안에 들어가 있어.”
보통 OWIC에서 방문을 하면 정지훈이 혼자 오던데, 왜 우르르 몰려 온 걸까?
게다가 선두가 정지훈이 아니었다. 그 뜻은, 정지훈이 저 무리의 대장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정지훈보다 높은 사람이 행차하셨다는 말이 될 텐데.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얌전한 가르마를 탄 비즈니스맨 그 자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입고 있는 건 이계의 천과 가죽으로 만든 평상복이었지만, 그런데도 낮은 위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게 딱 보일 정도의 인상이었다.
그가 내 앞에 서더니 말했다.
“강선후 길드장님 되십니까.”
……길드장?
나는 의자에 앉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고압적인 것 같은데, 그냥 외모 때문에 내가 착각한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바로 내가 착각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꾸벅, 내게 허리를 굽혔으니까.
“이제 와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좀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하필 길드장님이 귀환 후에 연속적으로 일이 터져서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누구신데요? 제가 볼 사람이 있었나?”
그 사람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정책연구본부장, 최성호라고 합니다.”
본부장이라.
……엄청 높은 직급 아닌가.
“본부장이면, 제가 잘 모르긴 하지만 사장 아래 직급 아닌가요?”
“우리 회사의 구조는 조금 더 복잡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문제는 없습니다.”
이때가 올 줄 알았는데 너무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더 빨리 와도 이상하지 않을 짓을 내가 좀 하기도 했다.
“……최대한 숨죽이고 살고 싶었는데, 그런 게 참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내용물이 넘쳐 나면, 그릇이 아무리 커도 새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낯 뜨거운 말을 들었을 때 능글맞게 넘어가는 편은 못 된다. 그래서 그저 바라보고 있자니 최성호 본부장이 예상대로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번에 파견된 요원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계 순례단이 큰 재난에 대해서 경고하러 왔다고 합니다.”
“네. 그렇죠? 저도 뭐 따로 준비하고 있었고. 대피 계획은 세우셨나요?”
최성호 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후의 방법까지 찾아보고 안 된다면 내일 모든 인원을 대피시킬 계획입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베이스캠프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독기 중독에 걸린 사람이 있나 보네요.”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계 쪽 간이 병동에 입원한 사람들 대부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료되기 때문에 평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지만…….”
그렇지.
독기 중독에 걸린 사람은 오히려 독기 안에서 회복해야 한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순간 심하면 심장이 멈춰 버릴 수도 있다.
대충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뜻이 뭔지 알겠는데 굳이 대화를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베이스캠프를 지켜 달라?”
“무작정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정당한 대가도 약속드립니다. 혹시 길드장께서 알고 있는 방법이 있다면 거기에 기대는 것 말고는 답이 없더군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공간 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이건 다 좋은데, 잘못하면 모서리에 손가락 베일까 봐 걱정이란 말이지.
“갑시다.”
“…….”
“마을로 가자고요.”
본부장, 그리고 정지훈을 포함한 뒤쪽 직원들의 얼굴이 조금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OWIC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무고한 피해자가 있을 거라는 사실에는 조금 관심이 있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이 한 몸 바치고 싶진 않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지나가듯 베풀어 주는 건 문제 없지 않은가.
나는 그대로 마을로 향했다. 사람들이 내 뒤를 따라서 마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슥—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발로 땅에 금을 그었다.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그 금을 밟지 않기 위해 신경 써서 걸었다.
나는 그대로 마을을 가로질러 반대편 끝, 차원문이 있는 쪽에 도착했다.
그리고 차원문 건너에서, 다시 슥 하고 땅에 선을 그었다.
마을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도 그럴 게, OWIC의 고위 직원이 이계에 거주하는 사람 한 명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는 게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기에 그랬다.
나는 그대로 마을 중앙으로 향했다.
“……혹시 저 확성기 쓸 수 있나요?”
“아, 네. 여기.”
정지훈이 달려와서 내게 무전기를 하나 건넸다.
확성기도 무전기로 작동시킬 수 있다니, 베이스캠프의 인프라가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모양이네.
무전기를 받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아—. 아—.」
삐이이잉——
가벼운 잡음이 길게 울려 퍼졌다. 길을 가던 사람들, 흥정하던 사람들, 모두 제자리에 서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낯 뜨겁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이번에 큰 재난이 온다는 거, 다들 들으셨을 겁니다. 뭐, 밖에서 어마어마한 괴물들의 침공이 예견되어 있는데, OWIC 쪽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호언장담했겠지만, 어떻게 방법을 못 찾았나 봐요. 나한테 찾아온 걸 보니.」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OWIC은 이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런저런 달콤한 말을 했었겠지. 어쩌면 아예 재난을 숨겼을 수도 있고.
“앗, 저, 저기…….”
뒤에 있는 직원이 난처해하며 뭔가 말하려고 하는데.
“괜찮다.”
본부장이 직접 그를 막아섰다.
「저는 원래 그런 말 잘 못해서요. 그래서 우선 필요한 말만 빠르게 남기겠습니다.」
나는 가져온 삼각형의 유리 거울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OWIC의 직원들은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 물건에 대해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걸까?
고대 문명의 유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사실인데, 나만 그렇게 느꼈던 게 아닌 모양이었다.
삼각형의 거울에 손바닥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무전기는 계속 입에 대고 있었지만, 지금 내 정신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 그리고 이계의 물건에 접촉한 손가락 끝의 촉각에 집중되어 있었다.
미세한 흐름이 느껴진다.
「다들 그냥 평소대로, 할 거 하시면 됩니다.」
손등에서 느껴지는 아찔한 감각.
눈을 뜨니 보이는 주홍색의 송곳니 문신.
삼각형은 사각형이 되고, 사각형은 육각형이 된다.
그리고 다시 그대로 여섯 개의 삼각형으로 갈라진다.
사실 확신이 없었다. 내가 이 물건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해체하는 거야 간단했지만, 재건하는 건 다른 능력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하루 일찍 시도하는 것도 시험해 보자는 마음이 컸다. 만약에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면,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 봐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고대의 유물은 지배자의 자격을 존중한다.
나도 이제 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가 되었지.
공중으로 튀어 오른 육각형의 은빛 거울은 마을의 정 중앙, 그 꼭대기 허공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찌르르르——
은쟁반에 강철 구슬이 굴러 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호벽이 전개된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이 들린다.
나도 그동안 위를 바라보고 그 장관을 구경했다.
본부장은 입을 꾹 다물고 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으나, 그 눈빛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대체…….”
그 뒤에 서 있는 직원들은 조금은 더 인내심이 부족한 편이었다.
고개를 내리다가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신기하네. 그렇죠?”
“…….”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본부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희가 무슨 대가를 제공하든, 그게 길드장님을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 말도 맞긴 해. 이런 걸 가지고 있는데.
이제 지구산 물건은 영 시시하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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