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57
57화 ep21. 와일드 헌트 (4)
* * *
한동안 베이스캠프에 난리가 났다. 사실 이걸 보고 싶었다. 이계에서 난리가 났을 때, OWIC이 그걸 어떻게 수습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으니까.
내가 안전하다고는 했지만, 이 사람들이 내가 뱉은 말을 그대로 신뢰하고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계는 현대 지구에 있어서 활성화된 하나의 시장이었다. 그곳에 생업이 걸려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니 아무리 안심하라고 해도 불안할 수밖에 없겠지.
“재난이 온다는 게 사실인가요?”
“OWIC은 또 이 사실을 숨겼습니까?”
“안전한 게 확실한가요?”
“영업을 계속해도 되는 겁니까?”
사람들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OWIC 직원들은 난처해하며 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지만,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온 사람들을 한 번에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물론 내 일이 아니라서 나는 팝콘이나 뜯을 요량이었다.
사람들을 속이는 회사. 그 목적이 나쁘지 않더라도 조금은 거슬렸던 게 사실이거든. 이건 그러니까 이 회사의 업보다 이 말이지.
그렇게 적당히 관람하는데, 갑자기 최성호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사람들이 침묵을 지켰다. 딱 봐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앞장서 입을 여니, 주목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저는 OWIC의 전략기획본부장 최성호입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최성호는 계속해서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 사건을 컨트롤하기 위해 회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이유는 확실시된 사항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섣부른 판단은 혼란을 부를 수 있으니 그렇습니다.”
“강선후 님이 말씀하신 대로, 정말 이곳에서 하던 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조금은 진정된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본부장은 짧은 시간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만약에 피해가 있으면 어떻게 하죠?”
“상황을 판단한 뒤, 긴급 대피 계획을 차선책으로 준비할 생각입니다.”
“뭐, 살기야 살더라도, 우리 가게는요? 다 부서지는 거 아닙니까?”
“모든 피해는 OWIC에서 보상해 드린다는 걸 약속드립니다.”
본부장 입에서 나오는 전액 보상 약속.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고객센터 말단 직원이 아니라 본부장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니까.
“제가 약속드립니다.”
이후로 사소한 질문이 몇 번 오갔지만, 사실상 상황이 진정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사람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베이스캠프를 둘러싼 거대한 방호벽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 걷는 모습이 꽤 재밌었다.
본부장은 돌아가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처음에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남은 정지훈에게 물어봤더니, 정지훈은 돌멩이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이계는 현세와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옥상에서 사과를 떨어트리면, 사과는 땅으로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겠죠.”
그러면서 돌을 떨어트리는 정지훈.
“사과를 지키고자 한다면 그 밑에 완충 장치를 해 놓든가, 바닥이 더러워지는 게 싫다면 미리 청소부를 대기시켜 놓을 겁니다. 즉, 사과를 떨어트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기 때문에 대비할 수 있는 겁니다.”
정지훈은 슬쩍 시선을 돌려 마을 바깥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지평선에 걸친 황무지와 이제 떠오르기 시작하는 첫 번째 해가 보였다.
“하지만 이계는 다릅니다. 그 사과가 하늘로 솟구칠 수도, 땅에 떨어질 수도, 땅에 닿자마자 갑자기 괴물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예상하지 않습니다. 직관에 의존하게 되죠.”
“직관이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간혹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누가 보면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애매하게 예상하느니, 직관에 의존한다는 건가.
아예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요?
“본부장님은 강선후 님을 완전히 믿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다른 판단을 할 여지가 없습니다.”
OWIC에서 이제는 완전히 날 믿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된다.
본부장이 직접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흠.”
기분이 오묘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 * *
와일드 헌트가 온다는 당일 저녁.
이제 몇 시간 뒤면 해가 지는 그때, 서지아는 오히려 이계로 향했다.
그렇게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미친놈들.”
OWIC의 본부장이 안전을 호언장담한 건 파급력이 컸다.
이계에 재난이 닥친다고 했음에도, 많은 사람이 오히려 이계에 들어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땡땡티비의 김땡땡입니다! 오늘 이계에서 거대한 악마의 행렬이 관측된다는 소식에 제가 또 빠질 수 없잖습니까? 여러분들이 방 안에서 편하게 보시라고 제가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미친놈들.
서지아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와일드 헌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 사람들이 알 길이 없었다. 강선후가 만들어 낸 이 의문의 방호벽이 과연 그걸 막아 낼 수 있을까?
서지아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안쪽에서 바깥쪽을 바라볼 때는 유리처럼 투명한 방호벽은 온실 안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서 밤을 기다렸다.
와일드 헌트를 기다렸다.
미친놈들.
서지아는 인파를 지나쳤다. 강선후도 방호벽의 영역 안에 리리와 함께 들어와 있었다.
원래 리리는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으나, 이제는 OWIC이 강선후에게 특혜를 베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베이스캠프의 사람 중 그걸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자기, 이거 어떻게 할 거야?”
팔짱을 끼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던 강선후가 뒤를 돌아봤다.
“뭘?”
“이 사람들. 지금 다 미친 거 아냐? 와일드 헌트가 온다는데 그걸 보려고 한다고?”
“지구 사람들이 와일드 헌트가 뭔지나 알겠어? 불꽃놀이라고 생각하지만 않으면 다행 아닐까?”
“그럼 더 문제 아냐?”
“뭐 어때.”
서지아는 저 태도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대체 무슨 지배자일까? 지배자 중에서 이렇게나 초연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존재가 있었는가?
모든 지배자는 숙명에 얽매인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며 그걸 견디지 못하고 풍화된다.
서지아 자신도 그랬고, 대륙 어딘가에 있을 다른 존재들도 그럴 게 뻔했다.
그런데, 이렇게 망나니처럼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인간이 지배자라니.
‘인간’이 지배자라는 사실보다 그 삶의 방식이 서지아 입장에서는 더욱 신비로울 지경이었다.
“자신 있나 보네? 이 방호벽이 어디까지 막아 주는지는 알아?”
“글쎄, 구체적으론 모르는데?”
구체적으로 모르는데 이렇게 당당할 수 있나?
“……몇 시대 동안 도시를 지킨 방벽이라면, 와일드 헌트 정도는 꿀벌 대침공쯤으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서지아는 떠올렸다. 이 사람이 고대의 유적에서 엘 로크라 벨라를 울렸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거기에서 뭔가를 얻어 왔겠구나.
그래서 믿는 구석이 있는 거구나.
그런 결론에 다다르니 조금은 납득할 수 있었다.
리리도 불안한 표정인 건 마찬가지였으나, 서지아보다는 훨씬 더 강선후를 믿고 있다는 게 보였다. 이제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시작됐다. 서지아. 카메라 있냐?”
“왜?”
“찍어 놓자. 기념사진.”
“……하하, 하하하하!”
서지아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 남자의 태도는 주변에 어이없는 유쾌함을 전염시킬 지경이었다.
강선후와 리리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췄고.
두 개의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저, 저!”
“하늘 보세요!”
“하늘?”
“달이요!”
운데라와 라 시마.
큰 달이 지평선을 빠르게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위성이 저렇게나 빨리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공포를 자아냈다.
그 달은, 작고 밝게 빛나는 달이 있는 곳으로 곧장 향했다. 마치, 잡아먹을 것처럼.
곧이어, 큰 달이 작은 달을 잡아먹었다.
구우웅——
작지만, 육중한 소리가 하늘에 미세하게 울려 퍼졌다.
“……멈췄어.”
“달이, 멈췄어.”
큰 달이 움직임을 멈췄다. 멈춘 적이 없었던 달이, 작은 달을 가림과 동시에 멈췄다.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 돌아갈래.”
“야, 이건 진짜 아니야. 가자.”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눈앞에 일어난 광경에 대한 공포심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컸다.
“시작됐어.”
지평선 저편에서 검은 점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검은 점들이 모여 만들어진 구름.
끔찍한 벌레 떼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리리.”
서지아는 리리를 불렀다.
리리는 한 번도 와일드 헌트를 겪어 보지 못했다.
서지아의 마음에는 그게 걸렸다.
“웬만하면 바라보지 마.”
“왜?”
“와일드 헌트는…… 악마들이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공포가 느껴지고, 어쩌면 견디지 못할 수도 있어.”
리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벌써 다리를 후들거리거나, 각자의 방향으로 도망치기까지 하고 있었다.
[피, 바람, 전쟁, 역사.] [피, 바람, 전쟁, 역사.]명계의 언어로 무질서하게 중얼거리는 와일드 헌트의 목소리가 이곳에 닿았다.
와일드 헌트는 그걸 바라보는 이들의 심리까지 뒤흔든다.
심신이 미약한 자가 강제로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면, 어쩌면 완전히 미쳐버릴 수도 있었다.
서지아의 의문이 그것이었다. 강선후는 이런 부분에 대해 경고를 하지 않았다.
마치 그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그리고 지금.
“……너 뭐 하는 거야?
서지아는 확신했다.
강선후는 그 사실에 대해서 모른다.
강선후는 와일드 헌트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지 않는다.
와일드 헌트가 주는 본질적인 공포감에 대해서, 강선후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짜르르르르—.
강선후 바로 앞에 있었던 방호벽에 구멍이 뚫렸다.
강선후는 제 발로 그 보호 바깥으로 나갔다.
리리는 그런 강선후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은 불안과 공포가 가득했지만, 일부러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서지아는 그럴 수가 없었다.
“미쳤어? 내 말 듣고 있어? 당신 와일드 헌트에 대해서 알 거 아냐? 그냥 덫만 설치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짜르르르르—
닫히는 방호벽 사이를 두고, 강선후는 뒤를 돌아 서지아를 바라보았다.
“미끼가 없는데 누가 덫에 달려들겠어.”
강선후는 그 말을 남기고 덫을 설치해 둔 구간으로 다가갔다.
수많은 룬 언어와 알 수 없는 연금술로 만들어진 덫이 있는 곳으로.
와일드 헌트가 다가오고 있는 하늘에 그대로 노출된 채.
[피, 바람, 전쟁, 역사.]“크아아—!”
[피, 바람, 전쟁, 역사.]와일드 헌트는 순식간에 지천까지 다가왔다.
그 무리의 일부가 갈라져 나와 마을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아, 안 되겠어. 나는 못 봐!”
“씨발……. OWIC을 믿는 게 아니었어.”
그나마 인내를 가지고 남았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지직, 지지지지—
방호벽은 마치 생명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와일드 헌트가 달려드는 방향에 문자를 그려 나갔다.
그리고.
터어어엉—!
푸르고 신성한 빛의 파장이 뿜어져 나와 와일드 헌트의 진격을 방해했다.
아니, 방해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와일드 헌트를 구성하는 괴물, 촉수, 해골 전사, 말, 사냥개의 무리를 지탱하던 검은 구름이 흩어지며 그들은 볼품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뭐야…….”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사람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각자 경악과 감탄, 그리고 의문을 뿜어냈다.
[피, 바람, 전쟁, 역사.]“크어 오오—!”
서지아와 리리는 강선후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와일드 헌트의 본대는 강선후에게 곧장 달려 나가고 있었다.
와일드 헌트는 왠지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자신을 바라보고서도 공포에 질리지 않는 평범한 인간.
그걸 보고 자존심이라도 상한 걸까.
강선후는 그저 자신을 달려오는 본대를 똑바로 주시할 뿐이었다.
무리에 맞서는 개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현실적인 장면이 아니었다.
“리리.”
“……응.”
“……포식자야?”
리리는 정면을 바라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는 다시금 발현된,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발현된 포식자의 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지아는 강선후가 어떤 상을 타고났는지 가끔 생각해 봤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포식자를 고려한 적은 없었다.
포식자는 짐승과도 같은 이들이었으니까.
“……포식자가, 저런 성격이라고?”
포식자가 이타적인 행위를 한다고?
포식자가 호전적이지 않다고?
서지아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달랐다.
문헌 속의 포식자는, 그저 인간성을 상실한 야인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했으니까.
“…….”
하지만 감상에 빠져 있을 때는 아니었다.
와일드 헌트는 지척까지 그 앞으로 다가왔다. 명계의 괴물과 사냥개, 사냥마, 그리고 그걸 이끄는 사냥꾼들로 이루어진 괴물의 무리가 강선후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 강선후는 외쳤다.
“셀피!”
「주인의 뜻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그와 동시에 땅속에서 푸른색으로 빛나는 아지랑이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죽음의 기운만이 가득한 이 밤에 스며드는 생명의 상징.
그리고, 땅이 갈라지며 무언가 솟아올랐다.
그건, 하얀 호랑이었다. 강선후가 지은 오두막만큼이나 큰 순백의 맹수가 땅에서 솟아올라, 와일드 헌트 선두를 지휘하던 악마의 목을 물었다.
“……그래서 서쪽으로 간 거였어.”
리리가 말했다.
와일드 헌트는 생명을 부정하는 존재의 행렬.
거기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생명 그 자체가 자아를 품은 존재, 생명의 정령.
강선후는 그 둘의 싸움을 직접 지켜본 유일한 인간이었다.
이곳은 스프리건의 권역.
그건 스프리건이 섬기는 지배자, 강선후의 권역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강선후는 바닥에 손바닥을 얹고 말했다.
“—.”
리리와 서지아에게는 듣는 게 허락되지 않은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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