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58
58화 ep22. 시대를 대하는 모험가의 자세 (1)
서지아는 와일드 헌트가 경로를 급하게 튼 걸 똑똑히 보았다.
와일드 헌트의 행렬은 강선후를 덮치지 못했다. U 자를 그리며 강선후의 머리맡을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강선후는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를 딱히 확인하지도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냥터에서 사냥꾼은 오만할 자격이 있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돌이켜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순백(純白)의 맹수는 강선후를 감싸며 으르렁대었다. 그 입에는 지옥의 사냥마를 타고 있었던 해골 사냥꾼이 물려 있었다. 송곳니가 그 외투를 관통하여 부정한 심장을 꿰뚫었다.
그 맹수는 강선후를 한 폭의 하얀 천처럼 감싸 돌았다. 그 거대한 몸집은 한 정령이 품은 보호 의지의 상징이었다.
그 육중한 몸이 방패였다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은 지배자의 적을 향하는 검이었다.
“히히힝—!”
큰 충격을 몸으로 받은 지옥의 사냥마는 땅에 처박힌 채 몸을 비틀었다.
와일드 헌트의 행렬은 빨랐으며, 그 충격을 몸으로 받은 그 말의 상태가 성할 리가 없었다.
중요한 건, 와일드 헌트의 행렬이 어째서 강선후를 피했냐는 것.
선두가 당한 게 피할 이유가 될 리는 없었다. 장군이 화살에 맞더라도 병사는 진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상대는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와일드 헌트는 그 인간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한 인간에 입에서 나온 단어가 바로 왕의 언어였으니까.
왕의 언어는 그 자체로 권위의 상징이었고, 부정한 존재마저 예상치 못한 권위의 증거 앞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행렬의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그건 강선후가 원하는 결과였다. 강선후는 바닥에 손바닥을 댄 자세를 유지하며 시동어를 외었다.
“카츠kaahz.”
그와 동시에 이곳에 그린 룬 문자가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
여기저기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주먹보다 조금 작은, 별 볼 일 없는 화염이었으나, 그건 강선후가 미리 설치해 둔 연금술의 결과물과 반응하여, 하나의 거대한 푸른 불꽃이 되었다.
신성력을 품은 불꽃이 강선후의 머리맡 위에 화염의 함정을 만들었고.
“크어어어—!”
와일드 헌트는 미처 방향을 바꾸지 못한 채, 그대로 불꽃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을 담은 불꽃을 관통한 행렬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들을 받치고 있었던 검은 구름이 불타며 수십의 망령이 땅으로 떨어져 굴렀다.
“크르릉—!”
순백의 맹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배자의 적을 죽이는 검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땅에 떨어진 와일드 헌트들에게 달려들어 기꺼이 발톱을 내밀었다.
망령의 행렬은 그대로 하늘로 치솟아 크게 선회했다.
강선후의 입에서 나온 건 분명 왕의 언어.
그것에 당황한 나머지 공격의 기회를 잃어버렸지만, 와일드 헌트는 알고 있었다.
저자가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두 번은 통하지 않았다. 와일드 헌트는 격노했다.
다음의 습격은 필히 강선후를 덮칠 게 분명했다.
“……와일드 헌트는 자연재해야.”
강선후는 중얼거렸다. 이 목소리는 유일하게 엘프인 서지아의 귀에만 들렸다.
“와일드 헌트는 파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셀피.”
강선후는 셀피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를 나눌 여유가 있다니.
서지아는 그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대자연의 흐름을 이기려는 건 멍청한 짓이더라고, 그건 죽기 딱 좋은 태도라서.”
그러면서 강선후는 등에 멘 가방을 벗어들었다.
와일드 헌트는 크게 선회했다. 그 선두는 정확히 강선후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 셀피.”
「듣고 있습니다.」
“부탁할게.”
「주인께서 바라는 바가 있다면, 저는 그걸 행합니다.」
“크르르릉—!”
순백의 맹수는 강선후 앞에 선 채 와일드 헌트와 대적했다.
강선후는 뒤로 돌았다. 그곳에는 쓰러진 사냥마가 다리를 휘저으며 일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아공간 가방.
영혼이 있는 것들은 넣을 수 없는 그 가방에, 강선후는 사냥마를 그대로 쑤셔 박아 버렸다.
배수구에 빨려 들어가는 거품처럼, 사냥마의 몸이 구겨지며 그 안으로 쑤셔 들어갔다.
가방이 덜컹거렸다. 강선후는 무릎으로 짓누르며 가방의 입구를 단단하게 봉했다.
그리고, 그걸 짊어진 채 순식간에 마을 쪽으로 달려왔다.
와일드 헌트는 그런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피, 바람, 전쟁, 역사.]“크오오오—!”
와일드 헌트가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자, 강선후는 반지를 낀 손으로 순백의 맹수를 가리켰다. 맹수의 털 위로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외쳤다.
“마르카마 투 마르크, 마 테리marlkaama to marlk mha teri.”
조금 전에 공중에 생긴 거대하고 푸른 불꽃은 명령을 받고 맹수에게 달려들었다.
곧이어, 신성한 불을 온몸에 두른 맹수가 와일드 헌트에게 달려들었다.
강선후는 그대로, 방호벽 안으로 몸을 던졌다.
“…….”
리리와 서지아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선후는 흙투성이가 된 바지를 툭툭 털며, 땅에 던져진 가방을 바라보았다.
서지아는 이제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애초에 강선후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와일드 헌트에게 달려든 게 아니었다. 그런 자살행위를 이유 없이 행할 만큼 어리석은 이가 아니었다.
강선후의 목적은 그저 탈것뿐이었고, 그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투사가 아니라 사냥꾼이었다.
“두 마리 잡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이 정도만 해도 괜찮으니까.”
“미친놈.”
서지아의 간단한 평가였다.
* * *
하얀 호랑이와 와일드 헌트의 투쟁은 그 자체로 굉장한 장관이다.
시간이 지나 운데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와일드 헌트는 다급하게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땅에 떨어진 시체는 그 신성한 빛을 받으며 천천히 증발했다.
뒤를 바라보니, 애초에 관람객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와일드 헌트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금 궁금했는데, 아쉽게 되었다.
하긴, 아무리 허세를 부리더라도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을 버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이곳에는 서지아와 나, 리리뿐이었다.
모든 상황이 끝난 후, 한동안 나는 OWIC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물론, 그게 딱히 나쁜 이유는 아니었다.
“……저희가 대체 어떤 보상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정지훈은 조금 더 솔직해졌다. 그의 표정이 저렇게 다채롭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보상이야 뭐……. 솔직히 이번 건 크게 부담 가지지 마세요.”
이것도 진심이었다.
마을 병동에 남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고, 마을이 폐허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건 내 입장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였으니까.
“그래도 원하는 걸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그럼, 음…….”
하나 떠오른 게 있다.
지금 나도 가능하지만,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것.
“저 사무소나 좀 확장해 주세요. 2층짜리 건물로. 가능할까요?”
정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심지어 어렵지도 않은 요구입니다.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네. 뭐.”
어차피 정지훈은 평소에도 내 부탁은 웬만하면 들어 주고는 했다.
지금 당장 있는 거 없는 거 다 뽑아 먹을 필요는 없지.
탐험가 길드 사무소의 건물이 확장된다니.
처음에는 여기까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다시 작은 삼각형 거울이 된 방호벽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이번에는 이걸 팔라고 안 하시네요?”
“네?”
“평소에 제가 신기한 거 보여 주기만 하면 본인들한테 팔라고 성화 부리지 않았나요? 솔직히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던 건데.”
정지훈은 내가 들고 있는 거울 방호벽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미 사실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방호벽이 있다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게 어마어마하게 많아질 테니. 그리고, 연구 목적으로도 굉장히 가치가 있는 물건이니까요.”
“근데 왜 말도 안 꺼내세요?”
정지훈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 회사에서 그 물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정지훈이 떠난 뒤, 이번에는 서지아가 날 찾아왔다.
“피곤해 보이네.”
“요즘 충격적인 경험을 연속적으로 했더니, 잠을 잘 수가 없더라고.”
서지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와일드 헌트와 대적한 그 순간에 대해서 생각하는 듯했다.
“……어떻게 한 거야?”
서지아가 물었다.
“뭘?”
“왕의 언어로 와일드 헌트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그리고, 왕의 언어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왕의 언어라…….”
지난번에 리리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같은 룬 언어에도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건 나로서도 잘 모르는 일이었다.
“그냥, 예전에 알아낸 거야. 이 단어를 말하면 와일드 헌트가 당황하더라고.”
“……그게 다야? 이유는 몰라?”
“몰라.”
“그 단어 뜻은?”
“몰라.”
서지아는 이제 설명하기 힘든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겠는데.
“이유가 중요해? 내가 그걸 할 줄 알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를 알고, 그 결과가 나한테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그거면 다라고 생각하거든.”
“……스프리건하고 와일드 헌트가 왜 싸우는지는 알아?”
“몰라?”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이유는 모르지만, 결과는 안다 이건가?”
“그렇다고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야. 근데 이제 거기서부터는 흥미의 영역이잖아. 구분하는 건 중요하다고.”
서지아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뭔가……. 그런 면에서는 포식자답네.”
어깨를 으쓱했다. 포식자다운 게 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리리도 내게 그런 면모를 봤다는데…… 그게 대체 뭘까.
어쨌거나 중요한 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이 안에, 그러니까 이 안에 와일드 헌트의 사냥마가 들어 있는 거야?”
리리가 겁먹은 얼굴로 뒷걸음질 치며 가방을 가리켰다.
가방을 들어 보았는데, 굉장히 묵직했다. 아니 묵직한 수준이 아니라 용 써야 들리는 수준이다.
가방이 원래 무게에서 3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고 생각했을 때,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리리는 조금은 창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생각은 대체 언제 했어?”
“……와일드 헌트가 영혼이 없는 존재라는 걸 알고, 이 가방에는 생물을 넣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실험해 봤다.
어디까지가 생물이고 어디까지가 무생물인지.
그리고 그걸 구분하는 기준이 뭔지도.
“셀피가 단서를 줬어. 아마 생물 무생물을 구분하는 물건이 있다면, 그 기준은 영혼일 거라고.”
“…….”
서지아는 가방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의문을 하나 던졌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려고? 이 가방 안에서 나오자마자 운데라의 빛을 받고는 사라질 거야.”
저 말이 맞았다.
애초에 와일드 헌트는 운데라가 가려졌을 때 일시적으로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다.
그렇기에, 운데라가 뻔히 지상을 바라보고 있는 평소에는 이곳에 있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셀피.”
「듣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
“수술 준비하자.”
리리와 서지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는 분위기였다. 당연하다. 나랑 셀피는 이미 끝난 이야기라 굳이 부연 설명을 할 필요가 없거든.
“리리.”
“응.”
“스프리건은 생명을 창조하고 다루는 정령이잖아?”
“응.”
“그렇다면, 이미 준비된 그릇 안에 영혼을 넣는 작업은 더 쉽지 않을까?”
“…….”
사실 이미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상황이었지.
사냥마에 영혼을 주입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백호의 영혼이 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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