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59
59화 ep22. 시대를 대하는 모험가의 자세 (2)
* * *
백호에게 가방을 맡겼다. 녀석은 한 번 울고는 그대로 서쪽으로 달려 나갔다.
산의 뿌리에서 모든 작업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미리 이야기를 나눠 놓은 거긴 하지만, 맘에 걸리는 게 있었다.
“셀피.”
「듣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
“저 백호가 죽는 걸까?”
「저 존재는 우리의 일부예요. 저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창조하는 모든 생물이 그렇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권역에서 벗어날 수도 없으며, 죽는 게 아니라 다시 우리의 일부러 돌아오는 것뿐이지요.」
“그렇구나. 신기하네.”
「저 피조물은 다시 태어날 거예요. 우리로부터 자유로운 당신의 애마로.」
“그건 다행이구만.”
서지아는 뒤에서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도 그런 감정을 느껴?”
“나도 사람이야. 필요해서 하는 거랑 좋아해서 하는 거랑은 좀 다르지.”
서지아는 의외로 고민에 빠진 듯한 얼굴이었다.
“진짜 이상하네. 내가 듣기로는 포식자는 절대로……. 아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쨌거나 베이스캠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사실 이렇다 할 혼란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평화가 찾아왔다는 표현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이틀 내내 다음 계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음 유물을 찾아야지.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 거리였다. 지도에 표시해 놓은 예상 목적지를 살펴보았다.
“북쪽이라…….”
지도마저 벗어나는 곳, 그곳에 다음 유물이 있었다.
이건 정말로 장거리 여행이 될 것 같아서 준비할 게 많았다. 아무래도 서울에 들러야만 할 것 같아 차원문을 넘어갔다.
그곳에서 차소희를 부른 뒤, 도착할 때까지 잠시 대기를 하는데.
『정경유착 타도』
당장 차원문 플랫폼 앞 광장에서 이 팻말을 들고 있는 시위대를 만났다.
“이계에서 넘어온 의문의 종소리가 세상 온 천지에 울렸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바로 괴물의 무리가 베이스캠프를 습격했어요. 이 상황에서 OWIC도, 정부도 어디 하나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는 곳이 없습니다.”
“대체 뭘 숨기는 거냐!”
“이계가 진짜 안전한 게 맞나요? 이렇다 할 규제 없이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 겁니까?”
한편에 서서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나쁜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정지훈이 말했었다. 회사에서는 이미 해명을 한 상황이라고.
종소리도, 와일드 헌트도 OWIC과는 관계없는 현상이다. 아무리 그 회사가 숨기는 게 많더라도 이 사건들에 대해서는 억울한 게 좀 있을 거 같은데?
“업보지 뭐.”
그렇게 생각했다. 차소희는 금방 도착했다.
“안녕…….”
“사복 입은 차소희는 오랜만이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어제 밤샜어……. 이계 쪽에서 한동안 난리였잖아. 야간 조사하고 새벽에 퇴근했다…….”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차소희는 뺨을 착착 치더니, 다시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쉬는 날에 늘어져 있을 수는 없지! 너도 탐험복 벗은 거 진짜 오랜만이네? 우리 둘 다 너무 일만 하는 거 아냐?”
“나는 노는 거라니까?”
“……부럽다.”
기운을 내자고 말한 뒤 십 초 만에 늘어지는 차소희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서울에서 쇼핑할 예정이었다. 차소희가 출발할 때 본인도 부르라길래 약속을 지켰을 뿐이었다. 나도 혼자 돌아다니는 것보다야 이쪽이 낫다고 생각하긴 했고.
“뭐 살 거야?”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 몇 벌하고, 식량하고……. 혹시 아버님께 부츠 두 켤레 부탁드릴 수 있을까?”
“어? 할 수 있긴 한데……. 오래 걸릴걸? 우리 아빠 내년 중순까지 예약 밀려 있어서.”
“흠.”
지난번에도 특혜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부탁하는 건 좀 염치가 없게 느껴졌다.
우선 지금 쓸 부츠는 따로 구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다 할 소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해외 배송으로 구해야겠네. 리리 입을 옷 몇 벌 사려고 하는데, 내가 도통 못 고르겠더라고.”
“그거라면 이 몸이 제대로 도와줄 수 있지.”
여자 옷 얘기가 나오니 차소희의 분위기가 한층 올라갔다.
“출발하자.”
그렇게 지하철역으로 향하려고 했는데…….
시위대를 취재하던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이 광장에 흐르는 공기가 그때부터 무언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
기자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혹시, 강선후 씨 되시나요?”
이 말이 나온 순간 난 지금 느끼는 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른 기자들이 이 모습을 보고 서로 웅성거렸다.
“강선후 아니에요?”
“맞는 거 같은데? 이번에 서울로 넘어왔나?”
“……제가 지금 플랫폼에서 상주하는 동료한테 전화해 봤는데……. 강선후가 넘어온 거 같다네요.”
“맞네. 그럼. 야, 따라와.”
하나, 둘. 기자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인파의 시선도 내 쪽으로 끌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뭐야?
“안녕하세요! 강선후 님. 처음 뵙겠습니다! 오디오벅의 최주연 기자입니다! 잠시 말씀 좀…….”
“이번에 ‘와일드 헌트’라는 현상에 대한 경고를 직접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그 현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아실 수 있었는지…….”
“마을을 지키고자 한 건 순수하게 그곳의 사람들을 위해서였나요? OWIC에 이렇다 할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요.”
“뭐, 뭐야? 이거 뭐야?”
오히려 차소희는 나보다 덜 당황하고 있었다.
마치 이 사실을 알고라도 있었다는 듯.
차소희는 내 쪽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고 싶어? 안 하고 싶어.”
“뭘?”
“관심 즐기기.”
“…….”
내 대답은 명확했다.
“절대, 싫어.”
“가자!”
대답을 듣자마자 차소희는 내 손을 붙잡고 달렸다. 소지품에서 마스크를 꺼내 내게 건넸고, 나도 모자를 더 푹 눌러 썼다.
우리는 지하철역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상황을 좀 살핀 후, 안정되었다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는 차소희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갑자기 뭐야? 저게 다 무슨 소리야?”
“역시 모르고 있었네? 너무 당연하게 광장 한복판에 서 있길래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차소희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웃고 있었다. 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퍽 재밌는 모양이었다.
재밌다는 건, 그 기승전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의미도 되겠지.
차소희는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유튜브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는데.
「안녕하세요! 땡땡티비의 김땡땡입니다! 이번에…….」
기억났다.
김땡땡.
어제 와일드 헌트를 콘텐츠 삼겠다고 왔던 미친 유튜버.
“…….”
나는 애초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쓸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이 사람 혼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 기억으로는 대부분이 와일드 헌트가 도착하고 나서 도망쳤었는데…….
이 유튜버는 촬영 장비를 떨어트리고 도망친 모양이다.
그 영상에는 와일드 헌트가 찍혀 있었다.
다행히 내 모습은 안 나오긴 했는데…….
└ 아니…… 베이스 캠프 사람들 지금 살아 있음?
└서울 이계탐사 이제 망한 거임?
└ ㄴㄴㄴ 강선후가 막았다는데? 완전 멀쩡함. 나 오늘도 가서 호떡먹고옴 ㅋㅋ 개꿀
└ ? 또 강선후야? ㅋㅋㅋㅋㅋ
└ 저걸 대체 어떻게 막음? 상상도 안 되는데?
└ 그, 뭐 목격자들 소문으로는 호랑이가 강선후랑 같이 싸우고는 했다는데……. 모르겠다. 제대로 본 사람은 없는 거 같아서.
“요즘 카메라가 이렇게 좋아? 2년 만에 세상 좋아졌네…….”
“너 점점 유명해지고 있어. 해외에도 조금씩 알기 시작하더라? 드루이드 강이래.”
“뭔, 강?”
차소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여 줬다.
[해외 하운드가 강선후를 드루이드라고 의심하는 이유.tmi] [유럽 쪽 차원문 근처에는 아직도 돌파 못한 거대한 숲이 있음. 그곳에 엘프가 사는데, 그 엘프들이 자연을 부리는 기술을 주로 사용한다는 게 목격됨. 그걸 이제 편의상 드루이드라고 하는데,강선후가 이제까지 만든 결과물이 그 드루이드랑 비슷하대.]
└ 아니, 그럼 이번에 마을에 깔았다는 방호벽은 뭔데? 그것도 드루이드로 설명 가능함?
└ ㄴㄴ 그건 아마 최근 탐험에서 얻지 않았을까 추측 중. 남쪽 마을에서 뭘 받아왔다는 소문도 돌고.
└ 그 사람 딱히 장거리 탐사 간 것도 아니잖아. 이 근처에서 그런 걸 발굴해 왔다고? OWIC이 2년 동안 못한걸?
└ OWIC이 줬을 수도 있지.
└ 아니, OWIC이 강선후한테 딱히 특혜 베풀 이유는 또 뭐임?
└ 아니시에이팅 ㅅㅂ 왜 나한테 따져. 강선후가 지금까지 한 게 있잖아. OWIC 입장에선 이제 하운드 백 명보다 강선후가 더 중요할걸.
└ 저 사람 등장한 지 몇 달 안 되지 않았나……. 어디서 온 거여 ㅋㅋ
나는 한동안 지구 쪽 소문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는 사실도 체감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거의 이계에서 의식주를 전부 해결하고 있었으니까.
“…….”
“드루이드 강. 안녕하세요?’
“……이거 얼마나 이러려나?”
“얼마 안 가긴 할걸? 사람들 관심 꺼지면 최소한 인터뷰 요청은 잠잠해질 듯.”
그 정도라면, 뭐 견딜 만하지 않을까?
관심을 받는다는 게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니.
“……우선, 일에 집중하자.”
차소희는 옆에서 계속 키득거렸다.
* * *
오두막으로 돌아오니 서지아는 여전히 이곳에 있었다.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
“나 서울에서는 좀 신경 쓰이는 상황이거든. 차라리 여기가 좋아. 사람도 잘 없고, 안전하고.”
서지아가 쓰고 있는 고양이귀 헤드셋은 진짜 볼 때마다 시선을 강탈한다. 얘가 이런 취향으로 유명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기만 작전이라고 하더라. 헤드폰 모양에 신경 쓰게 하느라 항상 쓰고 다니는 걸 문제 삼는 사람이 덜 나오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나름대로 납득은 가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지는 의문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어느 정도 취향이 들어가 있는 건 맞는 모양인데.
어쨌거나, 내가 지금 신경 쓰고 있는 건 내 오두막을 둘러싼 순례단의 무리였다.
조금 떨어져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딱 봐도 나쁜 짓을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이 사람들 뭐 하는 거야?”
“축복. 망령의 무리가 이곳을 넘보기 어렵게 작업을 해 준대.”
성수 같은 것을 뿌리면서 기도문을 외우는 게, 지구에서 봤던 세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계의 이질적인 문화를 보는 것 같아 신기한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의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순례단의 대표는 내게 다가와 그 그윽한 우주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조금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종족의 특성이라는데 내가 딱히 할 말은 없지.
“한동안 이곳은 망령의 무리에서 안전할 겁니다. 망령의 행렬이 다시 찾아올 가능성은 적지만, 저희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인 게 안타깝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써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요.”
결과를 떠나서 그 의도가 느껴진다. 보통 판타지 세상의 교회라고 하면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거로 곧잘 표현되는데, 이 사람들은 선하고 이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우리한테 위험을 먼저 경고해 주셨잖아요? 그 덕분에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어요.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희도 대피해 있느라 잘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망령 행렬을 극복한 그대의 역량에 놀랐습니다. 황실의 대마법사와 비견될 능력을 가진 이가 이곳에 있는 줄이야. 역시, 세상은 넓군요.”
내 종족이 뭔지는 물어보지 않는다. ‘인간이 룬언어를!?’ 이런 반응도 없다.
순례단의 대표는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종족 전체가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별의 자손.
이들에게 선행이 어떤 의미일까? 조금은 궁금해졌으나 물어볼 자리는 아니었다.
내 질문은 이거였다.
“주신교의 순례단은 북쪽에서 오셨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북쪽의 설원 지대, 그곳에 저희의 총본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자랑인 예언자도 그곳에 있지요.”
주신교의 총본산이라.
뭔가, 황금의 유물이 있을 법한 위치 아닌가?
“제가 그 근처로 가야 하거든요. 혹시…….”
“불가능할 겁니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설원 지대에 진입하기 전, 거대한 용암 지대가 있습니다. 바위가 검게 들끓는 바닥이 넓게 깔린 곳인데……. 깊이는 발목 정도로 얕지만, 그 넓이가 지평선을 넘어갈 정도입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왔는데요?”
“저희는 북쪽에서 온 게 아닙니다. 대륙을 도는 순례단이니까요.”
그렇구나.
“그럼, 가로지르면 얼마나 걸릴까요? 그 설산 지대까지.”
“단순 거리만 놓고 보자면……. 훌륭한 말을 타고 간다면 두 달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설산을 어떻게 돌파하냐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 반 정도 보면 되려나.”
순례단은 난처한 듯 웃었다.
내가 자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헛걸음일 겁니다. 용암 지대는 어떤 방법을 써서도 돌파할 수 없습니다. 발을 디딜 법한 다리나 바위도 존재하지 않아서…….”
나는 될 거 같은데.
나는 지금 순례단이 아니라, 그 어깨너머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셀피는 항상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빠르게 일을 끝내고는 했다.
지도 때도, 백호 때도.
내 시선을 눈치챈 순례단이 뒤를 돌았다.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저건…….”
아마 나, 리리, 그리고 서지아와 비슷한 표정일 거다.
“자기, 저걸 타고 가겠다고?”
칠흑처럼, 아니 칠흑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의 흑마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자체가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았고,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발목과 갈기는……. 푸르게 불타고 있었다.
“히히히힝—!”
녀석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며 크게 울었다. 마치 내 얼굴을 알아보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저거 타고 다닐 수 있는 건 맞아?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지요.」
셀피의 대답이 긍정의 의미라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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