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
6화
***
“지금 사람들 너 채가려고 난리 났을걸? 여기저기서 침 발라두려고 할 거야.”
“그러려나?”
1시간 21분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갔을 때 차소희가 호들갑 떠는 걸 보고 나서야 이 기록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세 시간 안쪽으로만 들어가도 추가 시험 면제. 그 말 뜻은, 세 시간만으로 다른 자격을 시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믿는다는 뜻이잖아?”
“그렇지?”
“근데 너 한 시간 이십 분이야. 이거 최고기록일걸? 군침을 흘리지 않을 리가.”
“음······.”
내 밋밋한 리액션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차소희가 말을 이었다.
“참고로 그 시험 주관하는 기업, 국가기관 아니야.”
“그래?”
“OWIC, 지난번에 말했지, 정부 투자 받은 기관. 거의 공기업이라고.”
“오윅?”
꽤나 자주 듣는 이름이다. 대충 과장 좀 보태자면 차원문 관련 업계의 삼성전자 포지션인 모양이었다. 국내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원탑이고, 국가의 지원을 받고 그 보답으로 국가사업을 지원하는 관계.
게다가 아직까진 세상 물정 모르는 나도 OWIC이라는 회사와는 제법 연이 있었다.
“나 귀환한 날에 케어해준 사람이 OWIC의 연구원이었는데?”
“아마 그럴 거야. 정부 용역 업체 같은 느낌이거든. 벌써 그쪽에선 어느 정도 너에 대해 알고 있을걸? 만약에 OWIC이 널 스카웃하려고 한다면 어쩔 거야?”
그 당시에 날 챙겨줬던 연구원, 진서연에게도 했던 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지.
“안 들어갈 건데.”
“응? 거기 그래도 대기업··· 인데. 애매하긴 하지만.”
“나중에야 맘이 바뀔 수도 있지. 그런데 지금은 생각 없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차소희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를 잘 알고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어디 얽매이는 거 싫어했지.”
예전부터 난 그랬다. 그리고 오랫동안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온 시절이 나에게 더욱 큰 욕망을 심어줬다.
“쉴 거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쉬는 게 질릴 때까지는.”
“그거 평생 안 질린다?”
“그럼 평생 쉬지 뭐.”
차소희와 나는 낄낄 웃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게 있어.”
“하고 싶은 거? 뭔데?”
“나중에 기회 되면 말해줄게. 설명하기가 복잡해서.”
누워서 천장이나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팽개쳐놓았던 나뭇가지를 들고 왔다. 차소희는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거 뭐야?”
“시험 볼 때 가져왔던 거.”
“이계 나무야? 그거 챙겨올 때 감독관이 뭐라 안 했어?”
“별말 없던데.”
원래는 수거해야 하는데 차마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정신이 없어 보이긴 했다.
뭐, 어쩌면 이런 나뭇가지 하나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
“왜 챙겨왔어?”
“너 탐사 목표가 뭐라고 했지?”
“이계 버뮤다 숲에서 샘플 세 개 가져오기.”
“그중 하나를 이걸로 하면 되겠네.”
“···?”
차소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왔다.
“이번 시험지가 버뮤다 숲이었어? 그럴 리가 없는데?”
“이건 버뮤다 숲에도 있는 나무야. 이계 전역에 이 나무가 없는 곳을 본 적이 없으니까.”
“흐음···.”
차소희는 고민에 빠졌다. 왜 그런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나뭇가지를 버뮤다 숲에서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까진 문제가 아니겠지만, 샘플이란 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잖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모래 먼지 같은 걸 주워온다고 되는 건 아니라서.”
내가 그걸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오는 길에 미리 사둔 라이터를 꺼내서 끄트머리를 살짝 지졌다. 그러자.
“오···?”
마치 스프링클러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물을 뿌린다. 그 양은 적지만 식물이 보이는 반응이라기엔 퍽 격하다.
“이 나무는 숲이 화재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야. 나뭇가지 하나면 그다지 볼품없지만, 이 나무는 거의 아파트 수준까지도 자라니까.”
“몰랐어······. 이런 게 있다고?”
“쉽게 말하면, 숲에 자연적으로 설치된 스프링클러.”
이계의 숲은 단순히 불특정다수의 생명체가 한 데 모여 만들어진 수준이 아니었다.
숲 그 자체가 하나의 인격을 가진 단일 생명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러 시스템을 치밀하게 준비해둔다.
숲에 굳이 ‘심장’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거면 되지?”
“응. 될 거 같아. 아니, 충분해.”
“샘플 하나는 구했네.”
“회사에서도 그렇게 철저하게 따져들진 않을 테니······.”
그렇다면 이제 두 개만 구하면 된다. 그리고 임시 허가 증서까지 손에 쥔 이상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오늘 출발해야지. 나머지 두 개 가지러.”
“어? 벌써?”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어디 있어? 후딱 처리해야지.”
일이 있으면 그것만 생각해서 처리한다. 그리고 빨리 쉰다. 나는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대했다.
바로 짐을 챙기기로 했다. 우선 이 수정 돌도끼. 이계에서 생존게임 찍던 시절, 수년 동안 내 곁에서 있어 준 보물이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현대 장비보다도 월등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건 파밍 웜의 감각기관. 이계에서 들고 온 게 아니라 차소희 처음 만난 날 얻은 거지.
차소희가 거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거 뭐야?”
“도끼.”
“내가 바보야? 지금 들고 있는 거.”
“파밍 웜 감각기관.”
“엥?”
몸을 일으켜 다가오는 차소희.
“지난번 트럭 뒤집힌 그때? 왜 챙겼어?”
“적출한 뒤에도 몇 개월은 작동하거든. 주변에 생명체가 감지되면, 감지된 정도에 따라 전기 신호를 방출해. 이계에 살던 시절엔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목숨을 몇 번이나 살려줬어.”
“전기 신호? 감전되는 거야?”
“기분은 나쁜데 사는 게 먼저니까.”
얘가 왜 이렇게 반응하지? 녀석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너 안 쓰는 핸드폰 있어?”
“아니?”
“그럼, 게임 패드 같은 건?”
“저기 서랍장 안에.”
“안 쓰는 거야?”
“버튼 맛 간 거야. 왜?”
“기다려 봐.”
서랍을 뒤적이더니, 감각기관과 게임 패드를 들고 작업대에 앉는 차소희. 비치된 공구를 이용해서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흥미가 동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됐다!”
“이런 걸 할 줄 알았어?”
“나 기공과 출신이잖아. 팔 줘 봐.”
찍찍이로 탈부착이 가능한 고무밴드를 내 팔에 묶었다.
“너 팔 되게 딴딴해졌네? 여튼, 어때?”
위이잉—
파밍 웜의 감각기관을 넣은 플라스틱 케이스. 전류가 아니라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 방 안에 있는 차소희와 내게 반응하는 신호겠지?
“이제 기분 안 나쁘지?”
“어떻게 한 거야?”
“게임 패드 진동 모듈에 쓸데없는 회로 다 날려버리고 그냥 전류에 비례해서 진동하게 했어. 이쪽에 온오프 스위치 있고 증폭용 건전지 두 개 들어갔고···. 한 달은 쓸걸?”
“···아니, 너 내내 백수 아니었어?”
“뻐큐나 먹어.”
“동질감 느꼈었는데.”
깔깔대더니 다시 한번 감지기를 점검하는 차소희.
“나중에 시간 남으면 제대로 만들어 줄게. 이걸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을 줄은 몰랐네.”
사고방식의 차이지.
나는 모든 지식을 살아남기 위해서 사용했지만, 지구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 정도로 절박하지 않았을 테니까.
어쨌든 꽤나 괜찮아 보였다. 손도 자유로워지고, 찌릿한 감각에 집중력을 뺏길 염려도 없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 아닌가? 파밍 웜 감각기관이 얼마지?
상관없다. 나는 원하면 구할 수 있었으니까.
“바로 출발한다? 너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문단속해야 하는데.”
“도어락에 문단속이 어딨어. 그래도··· 같이 나가자. 차원문까진 바래다줄게. 택시비 정도는 내가 지원해줘야지.”
바로 택시를 잡아 이동했다.
“차원문이라···.”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
“······.”
나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우두커니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차원문’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장면이 있다.
흉흉한 기운이라든지, 아름다운 광택이라든지, 여러 가지 묘사가 있지만 최소한 그 주변이 삭막하거나 위험한 분위기라는 건 공통적인 감상이기 마련이었다.
근데 이건 뭐야.
“아니···.”
“차원문은 처음 보지?”
“처음 보지. 근데 그거 때문에 놀란 게 아니라···.”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 넓은 광장은 약속 장소로도 사용되는 듯했다.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간혹 보였다. 측면에는 분주한 대규모 물류 센터가 있었다.
거의 기차역이나 공항과 같은 풍경이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인간은 가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강하기 마련이었다. 차원문에 잡아먹히고 던전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은 없었다. 오히려 정복하고, 제어하며, 이용해먹을 뿐.
「통행책임관이 전달합니다. 수속 절차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차원문 통행 희망자는 2번 게이트 앞에서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짜 적응 안 되네.”
이계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고인물이었지만, 현실에서는 그냥 촌놈이 따로 없었다.
“본인 차례 되기 전에 문서작성 미리 해두시면 수속을 빠르게 할 수 있어요!”
“가자. 내가 도와줄게.”
차소희가 그렇게 말은 했지만, 도움받을 건 별로 없었다. 해외여행이랑 비슷한 느낌? 허가증 제시하고, 신원 확인하고, 여러 가지 각서에 사인하면 끝이었다.
<서약서>
가서 하면 안 되는 이것저것이 쓰여 있는 문서였다. 대체로 뻔한 것들이었는데,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 이계의 그 어떤 지적 생명체에게도 지구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서는 안 됩니다.]그러니까 우리는 이계의 존재에 대해 아는데, 이계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모르게 한다는 뜻이었다.
“···진짜 독하구만.”
적당히 서명하고 나섰다.
“수속 다 끝나셨죠! 진입합니다! 다들 모여주세요!”
그 시점에서 차원문도 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훠얼씬 컸다. 거의 10층짜리 건물과 버금가는 크기.
“아저씨.”
고개를 돌려보니 얇상하고 눈매가 날카로운, 까놓고 말해서 좀 불량하게 생긴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이에요?”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장비에 더 눈이 갔다.
촬영 장비 아니야? 그렇다고 무슨 방송국 촬영팀은 아닌 것 같았다.
아, 유튜버구나?
그나저나 왜 실실 쪼개 기분 나쁘게.
“그 장비로 괜찮겠어요? 고생 많이 할 텐데.”
나는 그저 백팩 하나만 매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거의 이삿짐을 꾸린 것 같이 짐이 많았다. 캐리어는 기본이고.
“뭐··· 산책 나가는 느낌으로 가볍게 왔어요”
유튜버는 내 대답을 듣고 웃었다.
“유머러스하시네. 저기 안에서도 장비를 팔긴 해요. 매점도 있고. 근데 다섯 배는 비쌀 텐데···. 하긴, 처음인데 뭐.”
“저기요, 신경 꺼주실래요?”
옆에서 듣다 못한 차소희가 도끼눈을 뜨고 한마디 했다.
“네, 네.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낄낄대며 떨어지는 녀석. 한층 더 빡이 오른 차소희가 입을 열기 전에.
“진입 대기하겠습니다!”
차원문 앞에 마련된 철제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좌우로 벌어졌고, 일렁이는 오색을 발하는 차원문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짐 다 챙겼지? 확인 한 번 하고 가자..”
“······.”
“어, 긴장했어? 음··· 다음에 갈래?”
“아.”
차소희는 왠지 날 걱정하는 눈치였다. 내가 이계에 트라우마가 있을지 몰라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아니, 전혀 안 했는데?”
“그럼 왜 멍 때리고 있어.”
“잠깐 졸았어.”
“어휴···. 이상한 말 말고 짐이나 확인해. 한 번 넘어갔는데 놓고 온 거 있으면 귀찮아지니까.”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유튜버 녀석이 들고 있었던 붉은 열매. 슬쩍 보더니 서둘러 품 안으로 숨기는 저거.
“······.”
저건, 분명 이계의 숲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계의 흉폭한 녀석들을 유인하는 물건인데.
왜 저런 걸 들고 있는 거야?
···무슨 콘텐츠를 촬영하려고?
“진입합니다!”
그때, 인도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그 유튜버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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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