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0
60화 ep22. 시대를 대하는 모험가의 자세 (3)
순례단 대표를 시작으로, 이상함을 느낀 뒤쪽 순례자들이 하나둘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절로 몸을 피했다. 사냥마는 그대로 순례단을 관통하여 내 앞까지 달려왔다.
그 뒤 가만히 서서 날 내려다보았다.
—푸르릉
털에는 윤기가 흘렀다. 마치 이 말 전체가 검은 비단에 감싸져 있는 느낌이었다.
전반적으로 훌륭한 말의 형태에 가까웠다. 날렵한 곡선을 가지고 있었으나, 몸집 자체는 보통의 말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강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갈기와 발굽이었는데.
“이거 불이야?”
서지아도 뒷걸음질 칠 정도로 강렬한 푸른 불길이 갈기를 대신하고 있었으며, 발굽에서도 도깨비불 같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붉은빛이 느껴지는 그 눈빛은 왠지 리리와 닮은 점이 있었다.
“망령의 사냥마입니까?”
이제까지 인자한 표정만을 지었던 순례단의 대표가 처음으로 당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뭐, 그렇죠?”
이걸 어떻게 포획했는지에 관해서 물어보면 대충 넘길 생각이었다. 설명하자면 귀찮아질 거 같았으니까.
그리고 또 맘에 걸리는 건, 이 사람들이 악마의 부정한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시비를 걸 거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망령은 보통 사람들이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 자체로 정신이 더럽혀지고, 최후에는 그자의 영혼에 크나큰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서지아도 비슷한 말을 하던데, 나는 솔직히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 몇 번이나 와일드 헌트에게 맞섰는데 그런 증상은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없었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런 사소한 부분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가능과 불가능을 떠나 이런 시도 자체를 하려는 이는 절대로 없습니다.”
순례자 대표가 말에서 눈을 뗀 뒤 내 쪽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 모험가 길드장이요?”
이제는 준 길드원인 사람이 꽤 되잖아? 길드장이라는 호칭이 썩 어색하지만은 않은 느낌이기도 했다.
팔짱을 낀 채 말과 마주 보았다. 나는 녀석을 올려다보았고, 녀석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눈동자 뒤에서 날 지켜 주었던 백호의 영혼이 보이는 것 같았다.
뭔가 뿌듯한 기분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 * *
“왜 말 안 하는 거야?”
리리가 물었다.
“뭘?”
“지배자라는 거.”
일부러 숨긴다는 느낌이 들었나?
리리도 서지아도 이 부분에서는 조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부러 말 안 하는 건 아니야. 신경 안 쓰는 거지. 애초에 지배자 지위로 뭘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거,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생각하기 귀찮은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 궁금하고, 그걸 눈으로 목격했을 때의 벅차오름이 좋을 뿐이다.
“이거 신어 봐.”
리리에게 이번에 산 부츠를 내밀었다. 235 사이즈의 탐험 부츠를 찾는 게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탐험 장비가 건장한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거든.
리리는 내 말에 곧이곧대로 따르면서 넌지시 말했다.
“모험이 그렇게 좋아?”
“생각해 본 적 없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무 생각이 없을 때 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행동이니까.
“……당신 그거, 중독이야.”
리리의 가벼운 감상에 그저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잖아?”
“……모든 지배자는 숙명에 ‘중독’된 상황이야. 나도 그렇고, 아마 서지아라는 저 엘프도 그렇고. 그리고 그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었어.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우리 가문은 그것 때문에 멸망했으니까.”
“마음이 정리되면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아 봐. 이번 기회에 이야기하는 건데, 날 따라다니고 싶지 않으면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따라다닐 거야.”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어?”
나는 리리의 발에 맞춰서 신발 끈을 매어 주고 있었다. 리리는 한쪽 발을 내민 채 생각에 잠기다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걸로 된 거야. 난 딱 그 시점에서 생각을 멈추고 그냥 해 버려. 결과 보고 다시 결정하면 되지. 아, 이게 내가 원한 게 아니었나? 그럼 그 시점에서 버리고 다른 일 찾으러 가면 되는 거고.”
이게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계에서 새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이건 옳은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이 사고방식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다. 그렇다면 충분하다.
“……당신은 정말 특이해.”
“룬 언어를 쓰는 인간이라? 됐다. 걸어 봐.”
리리는 그저 희미하게 웃고는 조용히 내 지시에 따랐다.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탐험화라서 길을 좀 들여야 하긴 하겠지만, 아마 그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다. 우리가 출발할 곳은 하루 이틀로 끝날 여행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바깥에 있었던 서지아가 문을 쾅! 하고 열어젖혔다.
“인간!”
“깜짝이야.”
뒤를 돌아보니, 서지아의 표정이 굉장히 오묘했다. 뭔가 다급한 거 같은데, 그렇다고 심각한 건 아닌 느낌.
“나와 봐!”
서지아를 따라 밖에 나가보니, 밖에 대기시켜 놨던 흑마가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그 입이 피투성이였고.
“크르릉—.”
마치, 호랑이 같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입에 물려 있는 건.
“사슴?”
정확히는 사슴을 닮은 이계의 초식동물이었다.
잠깐, 저거.
“사냥한 거야?”
“이거 말 맞아? 말 탈 쓴 범 아냐?”
“반쯤 맞긴 한데…….”
서지아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알 거 같았다.
지금, 이 말이 고기를 먹겠다고 사냥을 해 온 거라고?
심지어 그걸 나한테 자랑이라고 하는 듯 여기까지 가져온 상황이었다.
“……고양잇과 동물이 제 주인에게 쥐를 사냥해서 가져다주는 습성이 있다고 들었어. 애정 표시로.”
리리가 말했고,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눈앞에 있는 건 그 습성에 관계된 행동인 셈이었는데, 스케일이 좀 부담스럽게 컸다.
“히히힝! 어흥!”
“……호랑이야, 말이야. 하나만 해.”
“히히흥!”
아무래도 말에 들어간 호랑이의 영혼은 정체성 확립에 혼란을 겪는 듯했다.
“고놈 신기하네…….”
그때,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차소희와 그 아버지, 차태식이었다.
“어?”
“안녕! 리리! 지아 씨도 안녕하세요?”
리리와 서지아가 잠시 뒤로 물러났고,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서 인사했다. 차태식 씨는 내가 입은 옷을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거, 탐험복은 좀 쓸 만해?”
“이게 제 목숨도 살렸어요.”
팔꿈치에 덧댄 철판이 화살을 막아 줬기도 했다. 그 센스에 감탄했었지.
“무슨 일이세요?”
“강 서방이 이번에 말 한 필 뽑았다고 해서 와 봤다. 보니까 무슨 이계 괴물이 있네.”
그러면서, 짙은 갈색을 띤 말안장을 하나 내밀었다.
심지어 2인승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저 의뢰 맡긴 적 없는데요?”
“어떤 돈 많은 양반이 의뢰했다가 막판에 취소했어. 마무리 단계인데! 근데 마침 우리 서방이 말 뽑았다고 해서 가지고 왔다. 너 가져!”
아무리 봐도 호쾌한 성격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받을 수 없었다. 차소희에게 몰래 비용을 전달할 생각이었다.
차태식 씨는 푸르게 불타는 갈기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런데, 이거 탈 수 있는 거 맞어? 빵댕이가 탈 거 같은디?”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 불길은 전혀 뜨겁지 않았다.
내가 손을 대서 시험을 보이자 차태식 씨는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거 쥰내게 신기하네……. 이름은 지었어?”
“이름이요?”
나는 말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있어야 할 거 같긴 하다.
“내가 지어 주까? 페라리! 어때?”
“……그거 표절 아니에요?”
“뭐! 내가 거 코쟁이들이랑 일할 때 동료 이름이었어! 이탈리아 이름이라는디?”
“…….”
뭔가 좀 걸리는데.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으려나?
왠지 더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아서 조용히 말을 바라보는데, 서지아가 뒤에서 넌지시 입을 열었다.
“렐릭시나.”
“무슨 뜻인데?”
“우리의 언어로, 유적을 쫓는 자들을 뜻해.”
차소희와 태식 씨는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나는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엘프의 언어라니 왠지 있어 보이는데.
“마음에 드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말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렐릭시나. 잘 부탁해.
“크르릉…….”
“앞으로 말인 척하는 걸 조금 더 연습하자.”
“푸르르…….”
* * *
“여분 밧줄.”
“챙겼어.”
“식량, 30일치.”
“응.”
“포션하고, 여분 연금술 재료.”
“있어. 아, 잠깐만.”
리리가 텃밭에서 자라난 발광 버섯 몇 개를 뽑아 왔다.
“더 챙기면 도움 될 거 같아서.”
“그릇, 조리 도구, 여분 속옷, 그리고…… 황금 지침.”
“그건 당신이 챙겨야지.”
리리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렐릭시나의 안장 옆에 단단히 매달았다.
나는 황금 지침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었지만, 저 앞에는 거대한 강이 하나 있을 거고, 그 너머에는 복잡한 지형 때문에 고생 좀 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들끓는 용암 지대를 넘어가면, 이제 주신교회가 있다는 설산으로 들어가게 되겠지.
“…….”
그 어딘가에 다음 유물이 있을 예정이었다.
하루 이틀이 걸리는 거리가 아니다. 두 달 내로 도착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무작정 달려 나갈 수도 없을 테니 어쩌면 정말 반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지도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엔 진짜로 제대로잖아?”
“긴장돼?”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긴장도 해?”
서지아가 그렇게 물었지만, 긴장되지 않는다면 재미도 사라지는 게 탐험이다.
그 사이에 리리는 자신의 드레스도 챙겼다.
“굳이 챙겨야 하려나?”
“이 복장이 탐험복보다 유리할 때가 있을 거야. 이게 귀족의 상징이라는 건 모두가 알 테니까.”
최후의 최후까지 짐을 점검했다. 떠나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주신교의 순례단도 이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텐트를 접어 그들의 짐마차에 싣는 게 보였다.
순례자 중 붉은 장발을 가진 여성 하나가 내 쪽을 계속해서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사실 꽤 되었다. 왜 자꾸 내게 눈길을 보내는 걸까? 궁금했지만, 먼저 의도를 말하지 않아서 나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떠날 때가 되니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었다. 여성 순례자는 대표에게 무어라 말을 하더니 내게 곧장 다가왔다.
“저……. 아, 아홉 신이 그대를 굽어보기를.”
“무슨 일 있으세요? 아까부터 신경 쓰이시는 것 같은데.”
순례자는 눈치를 보는 듯,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 우주를 닮은 눈동자는 항상 볼 때마다 신기했다.
“설산으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황금 지침을 가지고 계시네요.”
“아, 네.”
내 손에 들려 있는 지침을 힐끗 바라보았다.
“지배자신가요?”
“네, 뭐……. 그렇게 되었네요.”
순례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곧장 바라보았다.
“……제 자매 역시 지배자입니다. 예언자 비바치시모. 혹시 들어 보셨나요?”
“…….”
꽤 파격적인 이야기인데.
순례자는 초조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순례단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음 황금 유물은, 말로 갈 수 없는 곳일 거예요.”
“네?”
지침을 바라보았다.
이 지침은 정확히 북쪽을 향하고 있다.
말로 갈 수 없는 곳이면, 뭐 바다 아래에 가라앉아 있다는 건가? 아니면 호수?
그런데, 순례자의 손가락은 전혀 다른 곳을 향했다.
나도, 리리도, 서지아도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하늘.”
“당신의 최종 목적지는 저곳에 있을 겁니다.”
“…….”
많은 의문이 들었다.
그게 왜 하늘에 있냐는 의문은 의외로 아니었다. 여기는 이계니까.
“……그쪽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제 자매가 마지막으로 한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의 예언은 절대로 틀리지 않아요. 주신의 전언이기 때문에.”
“……그걸 왜 저한테 알려 주세요? 예언자가 찾는 쪽이 교회에 더 좋은 일 아닌가?”
고개를 내려 순례자를 바라보았다.
우주를 담은 그 눈동자는 깊이만큼이나 다채로운 감정을 담아 낼 수 있는 그릇이었다.
그녀는 지금 슬퍼하고 있었다.
“……예언자가 지배자의 삶을 포기했기에 그렇습니다. 제 자매는 숙명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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