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2
62화 ep23. 태양이 되길 간절히 원했던 이유 (1)
조금 더 정확히 보기 위해 망토를 살짝 걷었다가 확 몰려오는 열기에 닫았다. 자칫 잘못하면 큰 화상을 입을 뻔했다.
어차피 망토를 통해서도 시야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조금 흐리게 보일 뿐.
“크르릉—!”
렐릭시나는 빠르게 선회해서 가라앉은 탑으로 곧장 다가가기 시작했다.
발굽이 닿을 때마다 바닥에서 찰팍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열의 액체가 튀어 올랐다가 발끝까지 덮은 망토에 닿아 치익 소리를 내며 굳었다.
탑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다가갈수록 그 규모가 여실히 체감되었다.
완전히 가라앉아 꼭대기만 남은 탑이 이 정도 규모라니, 실제로는 얼마나 큰 걸까?
그 내부 모습에 대한 수천의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거리는 충분히 가까워졌다. 이제는 준비해야 할 시간.
등자에서 발을 뺀 뒤 말 위에 쪼그려 앉았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은 뒤 황금 지침을 쥐었다.
그리고.
딸깍—
엄지손가락으로 보석을 빼낸 뒤 힘차게 꺼낸다.
주머니에서 손이 나온 시점에 들려 있는 건 보석이 아니라 하나의 활.
“렐릭시나.”
“푸르르—.”
“아무 데나 안전한 곳에서 쉬고 있어. 우리가 다시 나오면 신호를 줄게. 알았지?”
“크릉!”
렐릭시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창문 쪽을 지나쳤다.
나는 타이밍을 맞춰 리리를 끌어안고 그대로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으앗—!”
창을 통과한다. 어두운 풍경이 확 들이닥친다. 십수 미터는 되어 보이는 낭떠러지가 보였다.
몸을 돌려 창을 조준하고 활을 발사했다. 장전된 건 밧줄 화살.
갈퀴가 창틀에 단단히 걸리자마자 밧줄을 잡아 팔에 두어 번 감았다.
찌이익—!
단단한 밧줄이 팽창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그대로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내 한쪽 팔에는 리리가 매달려 있었다. 리리는 내 허리를 꽉 안은 채 망토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이곳에는 비가 내리치는 소리, 땅이 끓는 소리, 돌풍이 불어오는 소리가 저 바깥에서 남 일처럼 들렸다.
공중에 매달린 채 숨을 돌린 뒤 상황을 살피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당신.”
리리가 머리를 파묻은 자세 그대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나랑 얘기 좀 해.”
“우리 개인적인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격하게 움직인 터라 숨이 조금 가빠져 있었는데, 흥분했기 때문인지 힘들어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리리는 내 허리를 놓고 밧줄을 잡았다. 그리고 날렵한 고양이처럼 벽을 몇 번 차더니 순식간에 바닥을 밟았다.
이런 부분에서는 오히려 나보다 더 몸이 가볍다고 느껴질 정도다.
저걸 믿으니, 내가 더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거지.
내려간 뒤 망토를 둘둘 말아 허리춤에 매달았다.
“당신, 기마 궁술은 어디에서 배웠어?”
의외로 이 탑에 들어온 걸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았다.
“예전에 써먹을 데가 있나 해서 하다가 관뒀어. 사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되더라고.”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별의별 거 다 시도해 봤어. 궁술, 기마 궁술, 투창…….”
“왜?”
“식량 수급은 제일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그중에서 제일 좋은 게 뭐였는지 알아?”
“투창?”
“덫. 그냥 이거 하나로 다 되더라고. 시간 적게 들지, 연습 안 해도 되지, 덜 위험하지……. 역시, 몸 최대한 덜 움직이는 게 제일 좋은 거야.”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게 어때?”
리리가 날 바라보는 표정은 정말로 이상했다. 오븐에서 막 나온 컵케익이 완전히 실패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표정.
“재미없는 농담이야.”
“진심인데?”
풍경을 살펴보았다. 천장이 일부 무너져 내려 주변의 풍경은 무리 없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밟고 있는 건 일종의 거대한 계단식 복도였다. 탑 안은 내가 예상했던 만큼 거대했는데, 안쪽 벽을 따라서 빙 두르는 식으로 계단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탑 중앙에는 기둥이 하나 있었다.
사람 스무 명이 팔을 양껏 펼쳐야 빙 두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기둥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쭉 연결되어 있었다.
“저게 뭐로 보여?”
기둥을 가리켰다.
“……통로? 아니면 그냥 이 건물을 받치던 기둥이 아닐까?”
리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는데, 주변을 한 번 둘러봐.”
이 탑은 전체적으로 완만한 원뿔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런 지형에서는 지지용 기둥이 필요 없어. 천장 하나 지탱하자고 탑 밑에서부터 이런 기둥을 쌓는 건 효율적이지 못해.”
리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용도라는 뜻이구나.”
“나는 예상가는 게 하나 있거든?”
활을 들어 올려 탑을 정조준했다. 이번에 장전된 화살은 불화살.
기름을 먹인 천이 촉을 감싼 형태. 끝은 날카롭지 않고 오히려 빨판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대로 기둥에 쏘아보았다.
폭—!
기둥에 정확히 고정된 활은 그대로 미세하게 떨리다가는 멈춰 섰다.
리리도, 나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화르륵—!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화살 끝에 불이 붙었다.
“……고열이야.”
“내 생각에는 에너지 파이프야. 이 탑 아래에 있는 어떤 에너지를 꼭대기까지 끌어올리고 있어.”
“아, 그럼 이 탑에서 나오는 폭풍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탑 아래에서 에너지를 받는 거겠지. 이곳 전체가 녹아서 끓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거고.”
이제 막 탑 안으로 들어왔지만,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내려가 볼 거야?”
“자신을 태양신이라고 주장한 인간, 그 인간이 신이 되기 위해 쌓아 올린 탑, 진짜 신의 저주를 받아 땅 밑으로 가라앉고, 그 안의 어떤 에너지가 땅을 끓게 만들고 있어.”
“…….”
“궁금하지 않아?”
리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얘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같이 내려가 보자.”
“좋아.”
근처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들어 아래로 떨어트려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뭐지?
“열, 하나, 둘, 셋, 넷…….”
리리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세어도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너무 깊지 않아?”
“다른 이유일 수도 있어.”
소리가 여기까지 닿지 않을 상황은 충분히 많다. 아직은 단정 짓기에는 이르다.
이럴 때는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는 게 좋다. 밧줄을 타고 내려가는 건 불확실해졌으니 계단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두 바퀴를 돌아 내려가자 외벽 쪽으로 뚫린 문을 만날 수 있었다. 기나긴 복도로 연결되는 문이었다.
땅에 불꽃을 부르는 룬 문자를 새겼다.
“카츠kaahz.”
“표식이야?”
“길이 복잡할 거 같아서 표시해 두게.”
우리는 그렇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각오는 했지만 역시 깊은 곳이었다. 중간중간 아래가 뚫린 곳을 만날 때마다 밧줄로 숏컷을 만들어 하강 속도를 높였다.
내려갈수록 열기가 심해졌다. 견디기 힘든 시점에서 천잠사의 망토를 꺼내 몸에 둘렀다. 리리는 그걸 만져 보며 신기해했다.
“기생체의 고치로 만든 천이라니.”
“착용감이 나쁘지 않지?”
열기를 막아 낸 우리는 비로소 거대한 회랑을 만날 수 있었다.
“공사 현장이네.”
이런저런 고대의 건축 자재가 널브러져 있었다. 삽, 오랜 시간을 지나며 풍화된 밧줄, 그리고…….
“설계도.”
내 말을 듣고 리리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 탑을 묘사하는 설계도였다. 이미 다 지어진 게 아니었을까?
설계도는 매우 상세했기에, 탑이 지어진 목적과 그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무덤인데.”
탑 중앙 어딘가에 있을 중요해 보이는 공간.
그곳에는 어떤 관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관 위에는 별이 하나 떠 있는 모양새였다.
나는 리리를 바라보았다.
“이게 진짜 하늘에 닿기 위해서 지은 건물이 맞을까?”
“전설에서는 그렇게 전해 내려오긴 해. 전설이지만…….”
전승은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 분명 왜곡된다.
전승 속에서 간혹 악인은 선인으로 포장되며, 선인이 악인으로 몰락하는 때도 부지기수다.
어쩌면, 이곳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리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자칭 태양신이 이곳에 뭔가를 남기려고 한 거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니까, 폭풍이랑 같이 들리는 외침도 그랬거든. ‘자격이 없는 자 그 무덤을 넘보지 말지어다.’라고.”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해 보면, 자격이 있는 자는 넘봐도 된다는 뜻이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니 더 궁금해지는데.”
“설계도는 당신이 챙겨. 가자. 별로 안 먼 거 같아. 최하층까지 갈 필요도 없네.”
어느새 리리도 이 고대 유적에 굉장히 몰입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는 나보다 더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나, 이거 어렸을 때 읽었던 책에 써 있던 내용이야. 네 번째 태양신은 우리 영지에서 되게 인기 있는 이야기였고.”
“그래?”
“아버지가 이야기해 주고는 했거든. 아버지는 이 등장인물을 좋아했어. 야망 있는 사람이라고.”
리리가 몰입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 것 같았다.
어렸을 적 동화책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나의 현실이 된다?
이거 굉장히 두근두근한 일이거든.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감정이다.
“왜 안 와?”
몇 걸음 앞에서 뒤돌아 날 바라보는 리리를 잠시 지켜보다가,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에 우리가 만난 건 원통형 회전 계단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조금 빡빡한 넓이.
“이런 통로가 있다는 건, 이 아래에 복잡하고 넓은 다층 공간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내 말에 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왕실 지하 감옥 계단도 이런 식이었…….”
리리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다행이었다. 만약에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했다면, 내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을 테니까.
「*&$#@…….」
리리는 계단 아래에서 고개만 돌려 내 눈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손가락만 세우며 귀를 기울였다.
「*&$#@…….」
말소리였다.
이 아래에서 말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밖에서 들었던 주문일까? 룬 언어야?’
리리가 입 모양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최대한 그 내용을 들어 보기 위해 집중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그저 기도 소리였다.
그리고, 한 명이 아니었다. 최소 열 명은 넘는 것 같은 말소리.
이곳이 얼마나 방치되었다고 했더라?
이전 황금의 시대가 끝난 직후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리리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내 뒤로 끌었다.
이제는 내가 앞장서야만 했다. 우리는 최대한 발소리를 줄여 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나갔다.
혹시 몰라서 불꽃도 다시 넣었다. 빛이 새어 나가 버리면 낭패일 테니까.
그렇게 도착한 아래층에는 텅 빈 문이 하나 있었다.
나는 달팽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문가에 달라붙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그곳에는…… 별이 있었다.
‘……별?’
정 가운데에 있는 무덤. 그 위에 떠올라 있는 ‘별’.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이 그 별을 둘러싼 채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많이 본 머리카락 색깔인데.
나는 다시 별에 집중했다. 만약에 별이 항성이 아니고, 그게 내 눈앞까지 날아온다면 저런 모양이 아닐까?
푸르게 빛나는 별이 무덤 위에 떠올라 있었다.
리리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걸 보고는 입을 슬며시 틀어막았다.
‘저건…….’
리리가 말을 조심했다. 자신이 생각한 게 맞는지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볼 요량처럼 보였다.
짧은 생각이 끝난 후, 리리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성좌야.’
리리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승천하지 못한 성좌,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추락한 성좌.’
그게 아니라면…….
납치당한 성좌일지도.
온갖 주문이 적힌 쇠사슬에 구속되어 있는 별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