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3
63화 ep23. 태양이 되길 간절히 원했던 이유 (2)
별을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건 열다섯.
하지만 보이는 게 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기둥 뒤, 혹은 내가 기대고 서 있는 이 문의 측면에도 누군가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전방의 상황을 관찰했다.
가장 눈여겨보게 되는 건 역시 회랑 한가운데에 있는 뚜껑 열린 관, 그리고 그 위 허공에 떠 있는 축구공만 한 별.
찬란하게 빛나는 그 별은 아이러니하게도 굉장히 차갑게 느껴졌다.
뭔가 잘못된 느낌이 강하게 풍겨 왔다. 그 순간.
쿠우웅…….
묵직한 진동과 함께, 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검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별빛은 굉장히 불안했다. 언제 꺼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조금 뒤쪽으로 빠진 뒤, 리리에게 말했다.
“저게 성좌야? 성좌는 무조건 하늘에 있는 거 아니었어?”
리리에게 들었다. 성좌는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라고.
“성좌는 승천한 필멸자라며? 뭐 엘프든 간에 별의 자손이든 간에, 등선하면 성좌가 되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
“등선?”
“뭐, 승천의 다른 단어라고 생각해.”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좌는 필멸자가 신성의 영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야. 그게 쉬운 일일 리가 없잖아. 여러 가지 요소로 실패해.”
“……바닷가재가 탈피 실패해서 죽는 것처럼?”
“바닷가재? 나 바다 본 적 없는데…… 엘프들은 번데기를 못 벗어난 나비에 비유해.”
지구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당장 등선이라는 용어도 있으니까.
번데기를 벗어 던진 나비에 비유하는 것도 지나가듯 들어 본 거 같았다.
“특히 엘프 수도승들이 그걸 두려워해. 엘프들은 필멸자의 몸을 번데기라고 여기거든.”
“……승천에 실패한 성좌는 어떻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이거다.
성좌는 승천한 필멸자. 그 목적지는 밤하늘이다.
그런데 승천하지 못하고 지상에 남았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
“……별의 자리는 하늘이야. 지상이어선 안 돼. 지상에 남아 버린 별은 검은 별이 되어 버려. 점점 이성을 잃고 타락해서 주변에 악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
흑성(黑星).
그게 승천하지 못한 반쪽짜리 성좌의 결말이라고 리리는 설명했다.
그러니까 저기에 있는 건 승천하지 못해 흑화한 성좌, 흑성이라는 이야긴데.
“리리.”
“응.”
“그 말대로라면, 지금 저건 성좌를 납치해서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니라…… 흑성이 더 이상 타락하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는 거 아냐?”
“단정 짓긴 힘들지만, 아마도.”
나는 이곳 지하에서 초월적 고대신을 추종하는 어떤 의식이 치러졌을 거라고 상상해 봤다.
사실 그편이 더 재밌을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고는 못하겠다. 이건 내 천성이니까.
그런데, 오히려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가정은 한 적이 없었다.
신이 되고자 했던 이가 하늘에 닿기 위해 쌓은 탑.
그 탑에 오랜 기간 갇혀 있었던 실패한 성좌, 흑성.
“……이 탑을 쌓은 자가, 정말로 신이 되고 싶었던 것뿐일까?”
전승에는 적히지 않은 다른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리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말하려고 했는데 기회가 없었거든.”
리리가 내게 말을 던졌다.
“저기 서 있는 사람들, 영혼이 없어.”
“영혼의 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야?”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
“저 공간에는 단 하나의 영혼만 있어. 흑성의 영혼.”
“어떻게 생겼는데?”
“왕관을 쓴 여성이야.”
“생전에 왕이었다는 뜻인가?”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어.”
리리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와중에 내가 내린 답은 하나였다.
나는 몸을 돌려 다시 문 쪽을 다가갔다.
“가려고?”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진 않을 거 같아.”
“따로 이유가 있어?”
“직감.”
리리가 피식하고 웃었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직감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래 봬도 직감 하나로 살아남은 순간을 셀 수 없다.
그 오랜 경험을 통해 나는 내 직감을 믿게 되었다.
대신에, 활로는 깔아 둬야지.
나는 품속에서 푸른 보석을 꺼냈다. 그건 손아귀 안에서 빛을 발하며 반지로 변했다.
검지에 낀 뒤, 계단 여기저기에 저장된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폭발과 연막 물약을 몇 개 놓았다.
이거면 도망칠 때 시간을 충분히 벌어 줄 거다.
대피 수단을 마련한 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열 명이 조금 넘어 보이는 붉은 머리의 인간들은 수도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영창을 내뱉고 있을 뿐.
별을 바라보았다.
이 시점에서 다시 탑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이 울려 퍼지고, 별이 새까맣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별이 뿜어낸 에너지가 쇠사슬을 타고 기둥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기둥은 그 에너지를 상층부로 전송했다.
고개를 돌려, 관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사제복을 입고 붉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 종족을 나는 알고 있었다.
“별의 자손.”
관에 누워 있는 것 역시 별의 자손이었다.
모두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생물이 아니라 마치 로봇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등에 어떠한 룬 문자가 그려져 있는 걸 발견했다.
안전을 확인한 리리도 안으로 들어와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룬이야. 당신, 알고 있는 문장이야?”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외의 룬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룬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알게 된다. 지난번의 골렘 소환 룬처럼.
리리도 지그시 문자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거, 하나가 아닌 거 같은데.”
“두 개의 룬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어.”
“그런 게 가능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어. 내가 간이 나침반 만들 때 쓰는 룬 언어 기억나? 그게 세 개 중첩이야.”
“그렇구나…….”
리리는 신기한 듯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가져다 대려 했다.
턱—
그리고 내가 그 손목을 잡았다.
“왜 그래?”
“넘보지 말지어다.”
“……그렇게 적혀 있어?”
“결계 역할을 하는 문장이야. 강하지 않긴 한데, 조금 찌릿할걸.”
시험 삼아서 내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파직!
붉은 전기가 손가락 끝을 지진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피부가 살짝 벗겨지는 정도였다.
“봤지?”
“……어떻게 하지?”
아마도 룬 문장을 지울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해 놓은 모양인데.
나는 내 반지를 바라보았다.
계단에서 사용해서 지금 네 칸이 비어 있다.
“……리리.”
“응.”
“나 사는 데에는 바퀴벌레란 곤충이 있어. 그거 못 만지는 사람 많거든? 근데 잡아야 하는 경우가 있단 말이야.”
“……응.”
“그럼 어떻게 하는지 알아?”
“글쎄. 갑자기 그건 왜?”
빨아들이지. 나는 반지를 낀 손을 룬 문자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쏙- 하고 빨려 들어오는 문자. 보석 하나에 불이 새로 들어온다.
“여러 개가 섞인 복합 문자도 하나로 저장이 되는구나.”
이건 생각 안 해 봤는데, 좋은 사실을 알았네.
이건 이제 내 거다. 나가서 공부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반지를 바라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룬 문자가 사라진 별의 자손의 입에서 영창이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것.
풀썩—
그는 쓰러졌다. 리리는 놀라서 조금 뒷걸음질 치며 헌팅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나는 리리를 진정시켰다.
“걱정할 필요 없어. 죽은 사람이야.”
“어떻게 알아?”
“경계 문장 안에 적혀 있는 거, 골렘을 소환하는 룬 문자의 변형이었어. 적용 대상을 무생물에서 죽은 생물로 변형한 거 같은데…….”
“사령술인 거야?”
“우선 지금 예상으로는 그러네. 나머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룬 문자가 저장되어 있을 반지를 잠시 바라보았다.
시체를 조종하는 룬 문자라니. 좀 찜찜한데.
어쨌든 알아 두면 쓸 데가 있으려니 생각했다. 기록관이 만들었다는 ‘으헝헝!’하는 룬 문자보다야 훨씬 실용적이겠지.
우리가 그다음에 바라본 건 흑성 아래에 있는 뚜껑이 열린 관이었다.
그 관 안에는 누군가 누워 있었다.
살아생전의 모습 그대로, 입술만 살짝 파래진 채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누워 있는 남성의 시신.
신기하게도 자주색 머리카락이었다. 특유의 날렵한 생김새는 별의 자손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약간의 주름이 이 남자의 나이를 말해 주는 듯했다.
“……별의 자손은 죽지 않는데.”
“그래?”
“윤회를 통해서 환생하는 종족이야.”
“아니, 진짜 금수저네? 기억도 그대로 이어져?”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야.”
그럼 환생이 무슨 소용이야?
어쨌든 그렇다는 건 지금 이곳의 별의 자손이 윤회를 포기했다는 거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악착같이 현세에 남았다는 뜻인데.
이유가 뭘까.
나는 그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보기 위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왜 그래?”
리리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내게 말을 걸었다.
“……리리.”
“응.”
“가방 속에 내 일지 있거든. 좀 큰 책이야. 기억나지?”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서 첫 번째라고 쓰여 있는 거, 나한테 잠깐 줘볼래?”
리리는 금방 일지를 찾아내서 내게 건넸다.
3권의 일지, 그중 첫 번째.
그건 대부분 룬 언어에 관한 내용과 그걸 배웠던 도시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난 이 첫 번째 일지 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 정신 상태가 제일 안 좋았을 때였고, 그만큼 헛소리도 너무 많이 적혀 있으니까.
즉, 여기에 적혀 있는 건 진짜인지 미쳐 가지고 쓴 개소리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구우우웅…….
진동이 한 번 더 울려 퍼졌다.
웅얼거리는 기도 소리, 별이 까맣게 변하며 울리는 건물.
그 사이에서 바닥에 풀썩 주저앉은 뒤 일지를 펼쳤다.
“당신, 갑자기 왜 그래? 일지는 왜…….”
나는 방금 찾은 부분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리리는 잠자코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의사를 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를 거둬 준 사람은 연금술사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연금술사의 공방에 오늘 어떤 자줏빛 머리의 사람이 찾아왔다.”
자줏빛 머리.
리리는 고개를 돌려 관 안에 누워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관에 누워 있는 자 역시 자줏빛이었다.
“그자는 오늘 연금술사와 엄청나게 싸웠다. 그건 마치 가족의 병을 치료해 달라고 사정하는 간호인의 모습이었다.”
이 부분을 들은 시점부터 리리의 표정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그자의 손등에는 십자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리리가 시체의 손등을 살펴보았다.
칼에 그은 듯한 십자가 모양.
“손바닥에는 네모 표시가 있었는데, 아마도 주문을 사용하기 위한 사전 준비인 듯했다.”
시체의 팔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확인한 리리가 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자의 눈이었다. 검은 우주가 흐르는 그 눈동자에 엑스자로 칼집이 나 있었다. 어째서 저런 상처를 입은 걸까? 고문이라도 당한 걸까?”
리리가 시체의 눈꺼풀을 까서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리의 입술이 살짝 말라 있었다.
“……당신이 어떻게 이 남자를 알고 있는 거야?”
태양신이 되기 위해 신을 거역하고 탑을 쌓아 올린 자줏빛 머리의 남자는 내가 조난당한 시절에 만나 본 적이 있는 자였다.
나는 다음 부분을 읽었다.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고 침착한 어조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자줏빛 머리의 남자는 연금술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백성들을 위해서 승천의 기회를 포기하고 전장을 지휘했습니다. 무고한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승천을 포기한 겁니다. 그 기회를 놓친 바람에 그녀는 몰락한 성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영웅이 흑성으로 타락하고 있단 말입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연금술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승천의 기회를 놓친 필멸자는 그대로 흑성이 될 운명에 처한다.
그걸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저, 토벌할 뿐.
자줏빛 머리를 한 남자는 연금술사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녀가, 내 연인이 모든 걸 희생했다고! 우리를 위해서 승천마저 포기했어! 그럼 우리도 그 보답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연금술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자줏빛 머리를 한 남자는 멱살을 잡았던 손을 거칠게 놓았다.
그리고,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 그녀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녀를 성좌의 자리로 올릴 겁니다. 필요하다면, 신의 지위를 찬탈해서라도.”
그는 품속에 있는 유물, 태양의 돌을 꽉 움켜쥐었다.
나는 일지를 덮었다.
관련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었다. 이다음에도 무언가 적혀 있긴 했는데, 내 정신이 슬슬 나가는 바람에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의 나열일 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검은 별이 슬프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을 위한 슬픔이 아니었다.
“……이 별은 누군가를 위해서 승천마저 포기한 영웅이었어.”
이 별은 단순히 타락한 흑성이 아니었다.
이 탑은 오만한 사이비 교주가 숭배를 받기 위해서 지은 게 아니었다.
타인을 위해서 희생을 택한 영웅, 영웅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신에게 대항했던 백성.
이 탑에는 그들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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