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4
64화 ep23. 태양이 되길 간절히 원했던 이유 (3)
관에 누워 있는 남자는 그 위에 떠 있는 몰락한 성좌의 연인이었다.
이 남자는 연인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서 탑을 쌓았다.
백성들은 그의 의지에 동조했다. 그들 역시 헌신해 준 영웅에게 보답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신벌을 받아 탑은 가라앉았고, 흑성이 폭주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만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그 뒤 셀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
“……라는 이야기라는 거지.”
성좌가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른다. 그냥 밤하늘 위에 떠 있는 색깔이 다양한 별들이라고만 느껴질 뿐이다.
리리의 말을 들어 보면 성좌는 지구인이 실제로 신선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듯했다.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보이는 수천의 별. 세 본 적은 없지만 일만에 근접하거나 조금 모자랄 거 같은데.
그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현존하는 성좌가 그 정도라는 거다.
이것만으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성좌가 된다는 게 얼마나 큰 재능과 노력, 그리고 운이 필요한 일인지 말이다.
눈앞에 있는 검은 별을 바라보았다.
“이 성좌가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걸 기꺼이 포기해서 이렇게 된 거네.”
리리는 입을 꾹 다물고 눈앞의 검은 별을 바라보기만 했다. 백색의 망토에 희미하게 가려진 그 모습이 조금은 수도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건, 이건 뭔가 아니야.”
리리는 속삭이듯 말했다.
“이 흑성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모든 걸 포기했어. 그건 명예로운 행동이었어. 숙명이든, 신념이든, 그걸 끝까지 지킨 자에게는 그만한 보답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계의 사람들은 간혹 자신이 따라야 하는 것이나 지켜야 하는 것을 지니고 태어난다. 지구와 전혀 다른 대표적인 이계의 문화였다.
“그런데, 그런 자의 결말이 흑성이라고?”
리리는 나이에 비해서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이야기하다 보면 간혹 어린 게 느껴진다.
미숙한 게 아니라. 아직 실망할 게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다.
“이건 아니야…….”
“아직 결말은 안 났잖아?”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말이야?”
대답을 보류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영창을 중얼거리는 사람들 등에 적힌 룬 문자를 지웠다.
리리는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는 분위기였다.
쓰러진 시체를 무덤 측면에 조용히 눕혔다.
원래는 윤회한다는 별의 자손이 윤회마저 포기하고 이 시간까지 영웅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헌신하고 있었다.
“이제는 쉴 때가 됐지.”
이들이 외는 기도가 무슨 뜻이었는지 조금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무슨 주문인가 싶기도 했지만, 멈춘다고 딱히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다음에 주목한 건 성좌를 옥죄고 있는 네 개의 쇠사슬이었다.
쇠사슬 위에는 길게 늘어진 복잡한 룬 문자가 적혀 있었다.
여러 번 중첩된 방호 결계와 흑성의 힘을 분산하기 위한 주문이었다.
해체하는 데 오래 걸리는 건 아니었다.
반지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 * *
리리는 인도자의 숙명을 타고났다.
그것만이 가문의 목적이라 배웠다.
왕국이 멸망한 날, 어머니가 죽고 인도자의 상을 계승한 그날.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다 하기 위해 악착같이 지배자를 찾아다녔다.
숙명이란 그런 것이었다.
이유가 없기에 더욱 숭고한 천명(天命)이라고, 리리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눈앞의 상황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키고자 한 걸 지킨 결말이 몰락한 별, 흑성이라니.
“……이게 맞는 걸까?”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온 신념이 흔들리는 것 같아 두려웠다.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다는 나약한 마음이 샘솟았다.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어 머리를 비웠다.
생각하지 말자.
강선후가 알려 준 방법이었다.
그제야 리리는 강선후가 뭘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강선후는 쇠사슬로 다가가 손을 가까이 대었다.
파지지직—
결계 룬이 붉은 전기를 쏘아 댔다. 강선후는 그 상태로 흑성을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그 눈가에 어떤 다짐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파지직—
강선후의 손이 사슬에 점점 가까워졌다. 그에 따라 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기도 더욱더 강해졌다.
끝내 쇠사슬을 붙잡았다. 고통이 몰려오는 듯 인상은 썼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쇠사슬에 적힌 복잡한 룬 주문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리리는 강선후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당신, 이 흑성을 풀어 줄 생각이야?”
“이제 성좌가 되어야지.”
“잠깐, 흑성이 뭔지 잘 모르는 거 같은데, 봉인된 상황에서 이 일대를 고열 지대로 만들어 버렸을 정도라고.”
칭!
주문에 의존하여 흑성을 묶고 있었던 쇠사슬에 금이 갔다.
“이게 풀려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죽을 수도 있다고! 이건 성좌가 아니야!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지상에 머물며 완전히 타락한…….”
다급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검은 별을 바라보았다.
흑성이 가진 영혼의 상이 보였다.
“타락…… 한…….”
왕관을 쓰고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던 영혼의 상.
그 상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상처투성이인 손발과 부서진 갑옷은 이 영혼이 얼마나 손상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지표였다.
하나 그 눈빛은 달랐다.
눈물범벅이었지만, 이제는 흐르지 않았다.
또렷한 눈빛으로 강선후를 주시하고 있었다.
명확한 의지가 느껴졌다.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타락한 흑성임이 분명함에도.
강선후는 검은 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서로를 마주 보는 것처럼 보였다. 강선후에게는 저 영혼의 상이 보일 리가 없음에도.
“…….”
리리는 그 모습에 정신을 뺏긴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강선후가 붙잡은 쇠사슬이 부서졌다.
칭—!
조각이 산발했고, 쇠사슬에 연결되어 있었던 기둥의 불이 꺼졌다.
그와 동시에 흑성이 뿜어내는 열기가 한층 더 거세졌다.
“으윽……!”
리리는 조금 노출되어 있었던 손을 황급히 망토로 가렸다.
강선후는 당황하지 않고 끝내 마지막 쇠사슬을 끊었다.
별이 가진 힘은 강대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곳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강선후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더 말릴 수 없었다.
어쩌면 강선후가 믿는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흑성이 불길한 검은빛을 뿜어내며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위에는 이 탑의 꼭대기까지 연결되어 있을 거대한 파이프가 있었다.
강선후는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리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꽉 잡아.”
그는 오른팔에 쇠사슬을 몇 번 돌려 감아 단단히 부여잡았다.
동시에 흑성은 빠른 속도로 솟아올랐고, 강선후와 리리는 쇠사슬에 딸려 끌려갔다.
무시 못 할 높이의 탑을 순식간에 주파했다. 천잠사의 망토마저 제대로 막아 주지 못하는 고열의 터널을 지나, 갑자기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이닥쳤다.
탑의 꼭대기, 드넓은 밤하늘과 끓는 대지가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강선후는 때맞춰 바닥에 착지했다.
탑의 정중앙에 떠오른 별은 불안정하게 깜빡거렸다. 조금이나마 발할 수 있었던 청명한 푸른빛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흑성(黑星).
검은 별의 진정한 모습은 빛을 빨아들이는 검은 구멍이었다.
이 평야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땅이 펄펄 끓었다. 고열의 액체가 파도치듯 솟아올랐다.
하늘에서 지상을 비추는 성좌도 이 땅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로 옆에 있는 성좌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대지에 머문 흑성이 불러오는 재난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문헌은 없었다.
애초에 그걸 목격하고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에 그랬다.
리리는 진동 속에서 간신히 중심을 유지하며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불안했다.
이 남자를 믿기 때문에 영혼을 연결했다. 그건 신뢰를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불안했다. 그 감정을 도무지 외면할 수가 없었다.
“굳이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거야?”
강선후는 그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옛날에 어떤 탐험가가 대원을 모집하려고 신문에 이런 광고를 냈어. ‘위험한 여정, 적은 임금, 혹한과 기나긴 어둠, 끊임없는 위험’.”
“…….”
“그리고 그딴 광고에,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이 지원했어. 이유가 뭔지 알아?”
리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마지막 줄에 이렇게 적혀 있었거든. 성공 시 영광과 명예를 얻을 수 있음.”
강선후는 리리의 망토를 더 꼼꼼히 여며 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성좌가 승천하는 모습을 본 최초의 인간이 되는 거야.”
강선후의 눈을 보고 깨달았다.
이 남자는 이후에 볼 장관을 기대하고 있었다.
“……뭔가 방법이 있는 거지?”
강선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럼, 뭘 믿고 이러는 거야?”
“이 성좌가 만든 이야기.”
강선후는 검은 구멍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평온하지만 단호한 어조였다.
“필멸자가 성좌가 되는 건 힘든 일이지?”
“……한평생을 바쳐도 가능성이 의심될 정도로.”
“이 사람은 평생을 바쳐서 무언가를 쌓고, 깨달음을 얻어서 승천의 기회를 얻었잖아.”
강선후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데 단 한 번, 타인이 위기에 처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쌓아 온 업을 기꺼이 포기했어. 영원히 몰락하는 선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리리는 고개를 돌려 검은 별을 바라보았다.
검은 별의 영혼은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얼굴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눈을 감고,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상태인지, 알 길이 전혀 없었다.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많은 좌절을 견디고 극복한 사람이라면, 심지어 자진해서 그 길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걸 해낼 수 있어.”
“……그게 이유야?”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확신해?”
“내가 알아.”
내가 안다.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강선후의 과거, 리리는 그 단편을 들으며 많은 의문을 품었다.
강선후가 이 흑성을 믿는 이유는 강선후 그 자신이 겪어 온 과거에 있었다.
“너도 그런 결말을 바라잖아?”
“……믿을게.”
“그렇게 사람 잘 믿으면 사기당한다.”
“뱀파이어는 영혼 연결을 한 상대를 전적으로 신뢰해.”
“그럼 선물로 하나 더 알려 줄게.”
흔들림이 커졌다. 리리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강선후의 옷깃을 잡았다.
“아까 쇠사슬에 적힌 룬 언어, 반지로 흡수하면 내 것이 되는데 왜 직접 손으로 지웠는지 알아? .”
“몰라.”
“틀린 언어라서 애초에 흡수할 수가 없었어. 뭔가 잘못되어 있었거든. 비유하자면, 버그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
“……?”
그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던 리리는 휙, 검은 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쇠사슬이 이 흑성을 지탱하고 있었던 거 아니었…… 어?”
진동은 더욱더 거세졌다. 수천 도에 달하는 고열의 파도가 이리저리 날뛰었다.
강선후는 중심을 놓치고 넘어질 뻔한 리리의 어깨를 잡았다.
흑성은 자신의 타락을 스스로 억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리리와 강선후 모두 느꼈다.
한 발자국, 단 한 발자국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걸.
강선후는 손을 들어 올렸다.
반지를 끼지 않은 손이었다.
* * *
강선후는 기억했다.
자줏빛 머리의 남자가 찾아온 그날 밤, 연금술사는 사실 포기하지 않았다.
그 역시 영웅의 몰락을 막고자 했다.
밤을 새워 가며 연구에 매진했다.
흑성을 다시 승천시키는 기적, 신의 영역에 아주 조금이나마 발을 걸치기 위해서 룬을 창조하고, 재결합하며, 뒤틀었다.
사실 연금술사는 반쯤 성공했다.
흑성의 재승천에 일말의 도움을 주는 어떤 문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이를 자줏빛 머리의 남자에게 차마 건넬 수 없었다.
“이건 불가능한 문장이다.”
연금술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금술사가 반드시 지키는 원칙에 어긋나는 언어였다.
“이 룬을 발동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자진해서 희생하는 고결한 영혼이 필요하다.”
강선후는 회상에서 돌아와 다시 눈을 떴다.
그 시절에 보았던, 연금술사가 만들어 낸 문장이 망막에 새겨진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모든 획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평소처럼 유성펜을 꺼내 팔자 좋게 그려 나갈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아마도, 단 한 번의 기회일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진지해지기로 했다.
「이 룬은 고결한 영혼의 희생이 필요하다.」
이 조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성좌를 사랑한 남자는, 영웅을 위해 자진해서 신에게 대항했다.
이보다 더 고결한 영혼이, 이보다 더한 희생이 어디 있는가?
조건은 수천, 수만 년 전에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정리를 끝낸 강선후는 옅게 심호흡했다.
그러고는 읊었다.
“모스mohs.”
리리는 그 손끝을 바라보았다.
불을 뜻하는 룬 단어를 왜 외었는가?
화르륵—!
강한 불씨가 짧게, 넓은 반경에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그을음은.
“……룬.”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고, 이질적인 룬 문장을 그리고 있었다.
강선후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어 자신의 피를 묻혔다.
그리고 그걸 흑성의 바로 아래, 룬 문장의 정중앙에 던졌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특별한 한 단어를 내뱉었다.
“—.”
강선후가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왕의 언어.
강선후는 그 뜻을 알고 있었다.
길을 열지어다.
“……으윽—!”
새까만 밤하늘이 일순간에 하얘지며 눈을 뜰 수조차 없는 광채가 이곳을 비췄다.
리리와 강선후는 간신히 실눈을 뜨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빛의 정체를 깨달았다.
하늘에 떠 있는 수천 개의 별.
희미한 그 빛들이 일제히 이 탑 꼭대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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