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5
65화 ep23. 태양이 되길 간절히 원했던 이유 (4)
밤하늘 별에서 시작된 빛들이 이곳을 비추고 있었다. 하나하나는 차갑고 미약한 빛이었으나, 한자리에 모인 지금은 주신의 태양에 버금가는 뜨거운 광채가 되었다.
강선후가 그린 룬 문장의 의미가 뭔지, 그리고 시동어로 내뱉은 왕의 언어가 무슨 뜻인지 리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진동이 멈췄다. 파도치던 검은 대지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의 격동을 부정하듯 고요는 일순간에 찾아왔다.
성좌들이 승천하지 못한 별의 존재를 인지했다.
신성의 영역으로 진입하지 못한 검은 별의 비극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흑성의 진동이 잦아드는 게 보였다.
빛을 빨아들이는 그 검은 구멍마저 이 찬란한 빛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벅찼다.
리리는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당신, 흑성을 승천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였어?”
리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강선후가 위험을 무릅쓰고 흑성을 풀어 준 이유가 역시 있었다고.
강선후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강선후의 대답은 달랐다.
“아니? 그런 힘이 어디 있어? 내가 성좌도 아닌데.”
“그럼 이 룬은 무슨 뜻이야?”
“성좌들이 고개를 내려 자신의 후손을 바라보게 되리라. 이는 왕의 전언이니라.”
“……그런 뜻이야? 그게 효과야?”
강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성좌들이 잠시나마 이곳을 내려다보는 것뿐이라고?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결과인 건 맞았다. 하지만 그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효과인가? 혼란스러웠다.
다시 흑성을 바라봤을 때, 그 영혼이 명확한 시선으로 하늘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흑성은 성좌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드높은 밤하늘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모든 성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차오르기 시작한 감정을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쉽게 눈치챌 수 있을 만큼, 그 감정은 흘러넘치고 있었다.
갈망이었다.
흑성은 성좌가 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가 실패한 존재.
그런 흑성의 영혼이 끝내 타락에 굴복하지 않았다면, 그만한 의지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면.
‘단순히 별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그 의지의 불씨를 당길 수 있다.’
그게 연금술사의 생각이었다. 이 룬 문자를 만든 의도였다.
성좌의 빛이 영원한 어둠 속에서 떨던 흑성의 눈가에 닿았다.
그걸 계기로 흑성은 아주 오래전 가슴속에 묻었던 목표를 다시 떠올렸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의 황금.」
리리는 화들짝 놀랐다. 처음 듣는, 청명하면서도 굳센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흑성의 목소리였다. 강선후의 얼굴에 미소가 띠어졌다. 지금부터 보게 될 모든 순간을 뇌에 새기기 위해서 귀를 열고, 눈을 부릅떴다.
「목숨마저 기꺼이 바칠 수 있었던 뜨거운 빛. 나의 황금, 나의 왕. 그게 저곳에 있었어.」
갈망이 잿더미 안에 묻혀 있었던 불씨를 다시 한번 당겼다. 그렇게 피어오른 불꽃은 의지가 되었다.
온 세상이 떨리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땅은 고요했다. 진동하고 있는 건 하늘이었다.
엘 로크라 벨라el rokra bella가 울렸던 그때처럼, 온 하늘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강선후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래서 이계에서는 별자리를 읽을 수 없었던 거구나.”
별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 가며, 하늘 정 가운데에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색색의 빛으로 치장된 이계의 밤하늘, 그 중앙에 공허하게 빈자리가 마련되었다.
새로 승천할 성좌를 위해 준비된 자리였다.
흑성의 영혼에 네 개의 날개가 돋아났다. 푸르게 빛나는 깃털이 이 일대 평야를 가득 채웠다.
강선후는 이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리리의 눈에는 보였다.
흑성, 아니, 성좌가 가진 영혼의 상이 얼마나 거대한지.
돋아난 그 날개는 이 평야의 지평선에 닿고 있었다.
영혼이 날갯짓을 시작했고, 끝내 빛의 폭풍을 만들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저게 그 성좌의 본모습이야?”
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점부터, 날개를 단 여성의 형상은 단순한 영혼의 상이 아니라 진실된 성좌의 모습이 되었다.
성좌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찬란한 빛 때문에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성좌는 강선후를 바라보다가는, 고개를 들어 지평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솟아오르는 성좌의 손에 빛무리가 모여들어 화려한 활이 생겨났다.
성좌는 활을 쏘았다.
화살은 빛 가루의 궤도를 그리며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지평선을 향해 날아갔다.
지평선, 산맥 위에 닿은 화살은 허공에 박히며 밝게 빛났다.
그러자, 그 자리에 숨어 있었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섬이야.”
“하늘섬이네. 그 순례자가 말했던 하늘이 저 뜻이었어.”
설산 위, 까마득하게 높은 하늘 위에 투명하게 숨어 있었던 거대한 섬의 모습이 베일 벗겨지듯 드러났다.
섬 위에는 도시가 있었다. 고대 왕국의 유적 중 하나였다.
성좌는 하늘 위로 사라지고 있었다. 멀어짐에 따라서 그 모습은 별처럼 작아졌다.
「그대 덕분에 나의 왕을 되찾았으니.」
「나 역시 왕을 찾는 그대의 여정을 비출게요.」
강선후와 리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아주 작은 빛들이 탑 안에서 흘러나와 성좌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성좌를 위해서 희생한 백성, 그리고 그 연인의 영혼이라는 사실을.
* * *
황금의 시대 말기.
한 기사가 언덕 위에 서서 백성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기사 옆에는 자줏빛 머리를 한 남자 하나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영웅이시여.”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
“진짜 낯 뜨거워 죽겠어요.”
기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개의 태양이 이 황무지를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왜 승천을 포기하신 겁니까.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아시면서.”
기사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는 심하게 금이 간 그 투구를 벗어 던졌다. 붉은 장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평생을, 그 오랜 시간을 승천을 위해 바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기억도 안 나요. 너무 오래돼서. 나도 나이를 먹었나 봐.”
자줏빛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자꾸 그럴래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와! 우리 기사님 대단해! 해 주면 안 돼요?”
“왜 그날 승천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충분히 우리를 위해 봉사하셨잖습니까. 백성들이 당신에게 해 준 게 뭐가 있습니까? 당신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땡그랑—.
그 순간, 기사가 검을 놓쳤다.
떨리는 손끝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자줏빛 머리를 한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오열했다.
기사는 손을 뒤로 숨기고는 무릎을 굽혀 남자와 눈높이를 맞췄다.
“황금의 시대가 끝나가잖아요? 왕이 수명을 다하고, 이 뒤로 오랜 기간 새로운 왕이 나오지 않는대요.”
“…….”
“그렇죠?”
“그렇습니다.”
“승천의 계단을 눈앞에 두고 생각해 봤어. 내가 이걸 타고 올라가 영원을 얻게 되면, 그렇게 이 시대가 끝나고 기나긴 풍화의 시대가 오게 되면, 그걸 바라보는 게 즐거울까?”
남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필멸자였던 시절, 최후에 외면한 백성들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울까?”
남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겠더라고? 그리고, 오랜 기간 당신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그게 버릇이 된 거야. 그게 내 숙명이 되었고, 내 의미가 되었어.”
“승천하기 위해서 그런 업을 쌓아 오신 거 아닙니까?”
기사는 조금 고민에 빠졌다가 결론을 내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에는 아마 그런 이유로 시작했겠죠? 근데, 나 수행을 시작했을 때가 기억도 안 나요. 지금 내게 남은 의미는 무고한 백성들을 고통으로부터 지키는 거, 그리고.”
기사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의 삶을 지키고 그와 끝까지 함께 하는 거. 그게 내가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뜨거운 빛.”
남자는 그 손끝의 차가움을 느끼고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억눌렀다.
눈앞의 기사가 웃고 있는데, 자신이 먼저 슬퍼할 수는 없었다.
“고백하는데 그러고 있을 거예요?”
“당신이 저를 지켰으니, 이제는 제가 당신을 지킬 차례입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당신을 승천시킬 겁니다.”
기사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지평선까지 펼쳐진 황무지와 그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황금의 시대가 끝나 가요. 예언자가 그랬잖아요? 이후에는 언제 끝날지 모를 긴 정체의 시대가 이어질 거라고.”
남자도 고개를 돌려 황무지를 바라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담긴 영광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래요. 언젠가 반드시 황금의 시대가 재림할 테니까.”
“…….”
“만약에 내가 그때까지 버티고, 새로운 왕이 나타나 황금의 시대를 다시 연 다음, 그때 내가 하늘로 올라간다면…….”
기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황금의 시대만을 살아가는 최초의 성좌가 되는 거예요. 낭만 있지 않아?”
* * *
그 뒤,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리리가 눈물을 찔끔 흘리는 걸 보긴 했는데, 일부러 못 본 척해 줬다. 숨기고 싶은 듯 고개를 획 돌렸으니까.
얘가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나는 자리에 앉아 황금 지침을 꺼내고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황금 지침은 여전히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는, 조금 전 저 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늘섬을 가리키고 있었다.
“순례자가 내 최종 목적지는 하늘이라고 했었지?”
그게 저걸 뜻하는 듯했다.
승천한 성좌가 하늘섬을 가렸던 베일을 벗겨 내 준 거다.
목적지까지 명확해졌으니, 이제는 다시 움직일 일만 남았다. 사실 막연하게 하늘에 있다길래 조금 걱정했던 차였는데 일이 순식간에 몇 단계나 진행된 느낌이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리리가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많아. 당신이 어떻게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내 일지에 관해서 물어보는 거겠지.
근데, 이건 나도 정말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살고 있던 시절이 현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 아니 확실히 아니라는 점.
내가 조난당한 시간은 아무래도 고대 시점인 모양인데.
“……나도 대답할 수 있는 게 없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모험이 나아갈수록 내가 가진 의문이 풀려나간다는 거다.
그렇다면, 더욱더 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리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성좌는 결국 자신의 신념에 보답을 받았어.”
“좀 오래 걸렸지만?”
“……숙명을 끝까지 지킨 이의 결말은 역시 이게 맞겠지?”
이건 질문이었다.
리리가 숙명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고 있다.
그 믿음을 굳이 흔들 필요는 없다. 말하자면, 동심은 지켜 줘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그런 결말을 바라니까.
무언가를 끝까지 지킨 사람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해야 한다. 모두가 좋아하는 결말이잖아?
“당신은, 두 성좌의 가호를 받는 최초의 필멸자가 되었어.”
“그래?”
“게다가 인간인데. 인간은 애초에 성좌의 가호를 받을 수조차 없는데 말이야.”
리리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제 충분히 쉬었지? 여기에서 엄청나게 오래 있었네.”
“안 쉬었잖아? 뭘 쉬어 쉬기는.”
“출발하자.”
방랑자의 활을 소환한 뒤, 효시를 장전하고 높이 쏘아 올렸다.
피이이잉—!
호루라기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는 화살.
그리고 저 멀리에서 렐릭시나가 땅을 박차고 달려온다. 그 푸른 갈기가 여기까지 보인다.
“당신네 마을 사람들 또 난리 나겠네.”
“그럴까?”
“여기에서 있었던 일이 안 보였을 거 같아? 별이 움직이고 하늘에 섬까지 생겼다고. 사고 친 거야. 당신.”
그저 웃었다.
원래 탐험의 최대 목적은 사고 치는 거다. 말이 이상한데 아무튼 그렇다.
남극점을 최초로 찍는 거,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최초로 밟는 거, 마야 문명에 최초로 발을 들이는 거, 전부 ‘사고’ 치는 거잖아.
출발하기 위해 짐을 점검했다.
그때, 옅은 빛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위를 올려다보니 방금 승천한 성좌가 이곳을 비추고 있었다.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빛줄기를 타고 무언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건, 달걀 모양의 주황색 보석이었다.
옅은 빛을 뿜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건 내가 일지를 쓰던 시절에 자줏빛 머리 남자가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었다.
태양신이 되기 위해서 탑을 쌓은 남자가 가지고 있었던 물건.
태양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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